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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이 브래드버리가 죽었다. 이제 이 문장으로 돌아가도 될 것 같다. 그 다음으로 이어질 문장으로는 무엇이 좋을까. 그 범인인 이터니티는 휴이 브래드버리의 아들인 론 브래드버리를 데리고 저택에서 빠져나왔다.

 이야기의 순서는 맞지만 이것으로 이야기를 이해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현재에 발생한 행동의 뒤에 따라오지 않는다. 이유는 언제나 행동보다 앞서 있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재 일어난 이터니티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몇개월 전으로 올라가야 한다. 정확히는 3개월하고도 12일, 그리고 6시간 34분 43초. 그정도로 앞으로 돌아가 휴이 브래드버리와 이터니티의 대화를 들을 필요가 있었다.

 그 대화가 이뤄진 곳은 브래드버리 가문의 스타크로스성, 저택의 서재였다. 휴이 브래드버드의 조부, 그의 증조부, 그의 고조부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깊은 곳이었다. 방의 모든 것이 고급 원목으로 되어있는 방에는 오랜 세월, 오랜 세대에 걸쳐 내려오는 역사를 가진 곳이었다. 방만이 아니라 방에 있는 모든 사물과 책, 심지어는 사소한 장식마저 그에 걸맞는 역사와 이야기와 추억을 가지고 있었다.

 휴이 브래드버리가 앉아있는 의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의자란 어느 집에나 있었다. 원목의자는 요즘 그리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의자는 달랐다.

 그 의자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빅토리아 시대까지 올라간다. 유명한 의자 장인이 브래드버리 가문의 의뢰를 받아 만들었다. 그런 간단한 문장 하나로 설명하기에는 의자에게 사과를 해야 할 정도로 의자의 가치에 비하면 부족한 설명이었다.

 그것은 대영제국의 상징이었다. 당시 덴버러 백작이었던 에드워드 브래드버리는 런던의 한 의자 장인을 찾아갔다. 그는 황실에도 의자를 납품할 정도로 이름있는 장인이었다. 이름있는 장인이라 하고 이름을 소개하지 않는 것도 실례겠지. 그의 이름은 바톨로뮤 스미스였고 그 이름은 수많은 귀족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에게 에드워드 브래드버리는 의자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의자에 대한 요구사항은 단 한줄이었다. 의자에 대영제국을 표현해달라고. 그리고 그 요구사항을 바톨로뮤는 완벽하게 해내었다.

 그 의자의 네 다리는 영국을 상징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 네 지역에서 난 나무로 네개의 다리를 만들었다. 엉덩이 받침은 오스트레일리아산 유칼립투스 나무였고 쿠션은 인도산 면으로 만들어졌다. 등받이는 캐나다산 단풍나무로 만들어졌고 팔 받침은 아프리카의 바오밥 나무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손이 닿는 부분은 특별하게 왼쪽은 아프리카 코끼리의 오른쪽은 인도 코끼리의 상아로 마감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의자에 가득한 부조는 영국의 역사와 해외진출에 관한 것이었다. 그 의자에는 영국의 역사가 담겨있었다.

 그것을 본 에드워드 브래드버리는 흡족한 얼굴을 지었다. 그의 서재에 있는 수많은 책만큼이나 의자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 그의 서재에 그만큼 어울리는 의자도 없을 것이었다.

 휴이 브래드버리는 그 역사를 알지 못했다. 그에게 그 의자는 단순히 오래된 골동품에 지나지 않았다. 오래되어 색바랜 상아만의 값어치를 볼 뿐이었다. 그마저도 그는 그것을 긁으며 흠집을 내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낸 흠집은 먼 미래에는 가치있는 연구대상이 될 것이다. 그런 자신감이었다.

 그 의자의 옆에는 작은 탁상과 촛대가 있었다. 그 촛대는 설명하기 위해 중세시절까지 올라가야 했다. 그러나 휴이 브래드버리에게 그 촛대는 블랙 리리스를 괴롭히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가 읽고 있는 책은 그 유명한 사드 후작의 소돔의 120일이었다. 그가 어렵게 구한 사드후작이 살아있던 시절에 만들어진 판본이었다. 물론 프랑스어로 된 판본이었다.

 그는 틈만 나면 그 책을 보곤 했다. 현실은 300년전의 인물보다 훨씬 악랄했다. 거리에 나가면 바이오로이드에게 행해지는 수많은 학대를 볼 수 있었다. 인터넷에는 그보다도 심한 학대가 담긴 스너프물이 돌아다녔다. 소돔의 120을 가리켜 100년전만 해도 너무 외설적이고 잔인하고 지금 시점에 봐도 충격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22세기의 지금, 사람들은 그 책을 보고는 이게 그렇게 논란이었다고? 라고 말하곤 한다. 세상은 과거의 상상보다 더 끔찍했으니까. 휴이 브래드버리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물론 잔인한 것으로 따지면 현대를 과거가 이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드 후작의 가학에는 미학이 담겨있었다. 그저 바이오로이드를 놓고 때리고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쏘고 팔다리를 자르고 분쇄기에 갈고 심지어 식인을 한다고 해도 그것들은 그저 잔인하기만 한 불쾌한 무언가일 뿐이었다. 그곳에는 미학이 담겨있지 않았다.

 가학에는 미학이 필요했다. 최소한 휴이 브래드버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팔다리를 자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어느 장소를 어느 방향으로 잘라야 더욱 아름다운가. 그것을 찍는 카메라의 구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그런 미장셴이 가학에도 필요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누가 더 많이 피를 튀기고 누가 더 많이 바이오로이드에 고통을 주는가? 그런 경쟁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진정한 가학이란 칼을 얼마나 많이 찌르느냐가 아닌 단 한번의 칼질로 바이오로이드를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들 수 있냐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알기 위해 서재의 나무바닥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그 핏자국을 카펫으로 가리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자랑스러운 훈장과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이야기를 하면 수십장에 걸쳐 설명해도 모자란 그 바닥은 그에게 그저 바닥에 불과했다.

 그 바닥을 벽난로는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벽난로에서 나오는 주홍색 빛은 바닥의 혈흔을 잘 보이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서재에는 전등을 달지 않는다.’ 그것은 전기가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절부터 내려오던 규칙이었다. 서재에는 역사가 담겨있었다. 그 역사는 언제나 진짜 불로만 비추어야 한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휴이 브래드버리는 그 역사를 존중해서 서재에 전등불을 달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이 분위기가 좋았을 뿐이었다. 은은한 빛은 사람에게 편한 기분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빛이 적을수록 바이오로이드의 비명은 더 멀리 퍼져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한 벽난로의 불빛은 피사체의 빛과 어둠의 대비를 더욱 강조하게 해주었다.

 이터니티가 그 서재에 들어온 것은 휴이 브래드버리가 소돔의 120일의 2장을 다 읽고 3장으로 들어서려는 순간이었다. 원목으로 된 문을 밀자 문에서는 작은 마찰음이 들렸다. 그 마찰음은 끼이익 거리는 소리를 냈고 그 소리는 그 문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나타내고 있었다.

 문을 연 이터니티는 서재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 나무로 된 마룻바닥에서는 나무가 압력에 찌그러지며 나는 소리가 났다. 현대에는 들어보기 힘든 소리였다. 그 삐그덕하는 소리가 나자 휴이 브래드버리는 읽고 있던 책을 닫았다.

 “무슨 일이지?”

 휴이 브래드버리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읽고 있던 책을 방해받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터니티의 존재 자체가 휴이 브래드버리에게는 탐탁치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삼안산업의 이터니티라고 합니다. 이 저택에 조금전 도착을 하게 되어 인사를 드리려 왔습니다.”

 이터니티는 그렇게 말하고는 치마자락을 잡아 들어올리며 우아한 자세로 고개숙여 인사했다. 이터니티의 은발은 벽난로의 빛을 받아 은은한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이터니티를 보며 휴이 브래드버리는 그것을 비웃으며 말했다.

 “흥, 인사? 너는 이 저택의 사용인이 아니야. 물건이라고. 너는 내가 앉은 이 의자가 이 저택에 왔을 때 내 선조께 인사를 했다고 생각하나? 너는 그저 만들어진대로 해야 할 일을 하면 되는 거야. 그 흉물을 돌보는 것. 그게 네 일이다. 그리고 하나 더. 내 눈앞에 띄지 않는 것이다. 그 흉물과 같이 이 저택 어디라도 좋으니 처박혀 있는게 네 유일한 일이다.”

 그렇게 말한 휴이 브래드버리는 무관심하다는 듯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이터니티는 서재를 나서기 전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 자리를 떠날 때 인사를 하는 것은 기본 예절이었으니까.

 “아얏!”

 고개를 숙인 이터니티는 갑작스러운 머리의 고통에 고개를 들었다. 바닥에는 유리로 된 재떨이가 떨어졌다. 이터니티는 멍하니 휴이 브래드버리를 보았다. 그녀의 이마에서 턱으로 한가닥의 피가 흘러내렸다. 그 피는 그녀의 머리 양옆의 분홍색 브릿지와 똑같았다.

 “누가 내 눈에 띄는 행동을 하라고 했지? 눈치가 있었으면 조용히 이 방을 떠날 것이지, 뭐? 실례하겠습니다? 무슨 말을 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말을 했다는 거야. 나는 그 흉물의 존재도, 그 흉물을 위해 너는 사야 했다는 것이 혐오스러워.”

 이터니티는 휴이 브래드버리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진 상태로 자신의 이마를 만졌다. 손에서 따듯한 피가 느껴졌다. 바닥에는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터니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 자리에 엎드려 용서를 구할 뿐이었다. 용서해달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아, 그래. 바이오로이드들은 언제나 그렇지. 자신의 주인에게 빌지. 아니,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야. 그들은 언제나 빌지. 제발 용서해달라고, 살려달라고 말야. 하지만 말야, 난 알고 있어. 그들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속으로는 나를 욕하고, 패고 싶고, 죽이고 싶다는 것을 말야. 바이오로이드와 인간의 차이가 바로 그것일지도 모르지. 살기위해 순종하는 자들과 순종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것들. 촛불을 하나로 예로 들까?”

 휴이 브래드버리는 촛대를 들고 일어섰다. 촛대에는 불이 붗은 초가 세개 있었다. 삼지창과도 같은 촛대를 든 휴이 브래드버리는 이터니티의 앞에 멈추어섰다.

 “사람은 말야, 본능이라는 게 존재해. 고통을 받으면,”

 휴이 브래드버리는 촛대를 이터니티의 목덜미 위쪽에 들었다. 그리고 기울였다.

 “반응하지.”

 이터니티의 목덜미에 몇방울을 촛농이 떨어지자 이터니티는 움찔했다. 이터니티는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아팠다. 하지만 동시에 순종해야 했다.

 “하지만 바이오로이드는 말야, 다 이런 식이지. 무슨 짓을 당하더라도 순종하지. 작동불능이 되면서까지 내게 잘못을 빌어. 사람이라면 죽을 때가 되면 살기위해 무슨 짓이든 하거든. 하지만 너희 것들은 끝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 그게 순종이라는 것인가? 아니면 속에서는 나를 죽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도록 프로그램이 되어있는 건가?”

 그렇게 말한 뒤 휴이 브래드버리는 코웃음을 쳤다.

 “그래. 그럴지도 몰라. 너는 나를 죽이고 싶을 거야. 이제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곳에서 지내야 했는지를 알테니까. 너는 그 흉물을 위해 모든 것을 해야 하고 그 흉물이 죽는날, 같이 무덤에 묻힐 거야. 그리고 무덤속에서 작동불능이 되는 순간까지 아무것도 못하게 되겠지. 미우나? 내가 증오스러우나? 하나만 말하지. 그 흉물은 내가 살아있기에 존재하는 것이야. 그 흉물, 그 반것의 정체가 뭔지 아나? 혼혈이야. 잡종이지. 어느 바이오로이드가 내가 싸지른 걸 처리도 못하고 임신을 해버리는 바람에 만들어진 반것이지.”

 반것, 반은 사람이고 반은 물건이라는 말이었다. 사람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닌 사물이었다. 그렇다면 그 혼혈은 반은 사람이고 반은 물건이라 불러야겠지. 혹은 그 인간인 반 조차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반-것이었다.

 “내가 죽으면 저 흉물이 이 유산을 이어받게 되겠지. 덴버러 백작위도, 이 저택도, 우리 가문의 부도 말이야. 아니, 너는 그렇게 생각할 거야. 그게 이나라 계승법이니까. 하지만 그렇지 못해. 저 흉물은 반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공표하지 않았지. 아니, 저 흉물의 존재를 아는 것은 이 저택에 있는 나와 진짜 물건인 바이오로이드 뿐이지. 내가 죽으면 일어날 일을 말해주지. 브래드버리 가문의 재산을 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콩고물을 얻으려 달려들 거야. 그리고 그들은 발견하겠지. 내게 아이가 있다는 것을 말야.”

 휴이 브래드버리는 촛대를 문 옆의 선반위에 올렸다.

 “계승법에는 계승 순위란게 있어. 안타깝게도 선조님들께서는 아이를 하나만 낳지 않았거든. 그 흉물은 계승 1위겠지만 그 뒤에는 2,3,4위 쭉 이어지지. 그들이 저 흉물을 보면 어떻게 할 것 같나? 이 재산의 부를 저 반것이 가져가게 할 것 같나? 아니지. 저 흉물은 그 존재 자체가 자신들에게 위협이야. 내가 저 반것의 존재를 세상에 공표한다면 저 반것은 이 나라의 절반을 적으로 돌리게 될 거야. 자신이 계승순위 1위라 착각하고 있는 불쌍한 내 사촌은 언제라도 저 반것을 죽이려 할 거야.”

 그렇게 말하는 휴이 브래드버리는 미소를 지었다.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한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만일 저 흉물이 내 손을 더럽히지 않고 죽는다면 더 바랄 건 없겠지만 저 흉물의 존재는 나의 명성에 흠을 줄 수 있다는게 문제지. 저 흉물은 영원히 이 저택 안에 묻혀야할 존재야. 나는 영원히 이 저택을 지킬 것이고 너는 이 저택에서 조용히 지내야할 물건이라는 것이다. 명심해라. 저 반것이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네가 저 반것을 지키기 위해 내게 해를 가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렇게 말한 휴이 브래드버리는 천천히 벽난로로 걸어갔다. 그리고 불에 달궈진 부지깽이를 집어들었다. 검은 부지깽이의 끝은 붉게 달구어져 있었다.

 “그리고, 잘못을 한 것이 있다면 벌을 받는 것도 당연하겠지?”

 휴이 브래드버리는 이터니티의 목에 촛농을 떨어트린 것은 단순한 유희였던 것처럼 말했다. 다시 이터니티에게 돌아온 휴이 브래드버리는 이터니티의 머리를 구둣발로 짓눌렀다. 그리고 촛농이 떨어진 상태 그대로인 이터니티의 목덜미에 부지깽이의 끝을 갖다대었다.

 치이익 하며 살이 익는 소리과 냄새가 났다. 이터니티는 부르르 떨었지만 아무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엎드린채로 휴이 브래드버리가 가하는 고통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한편 휴이 브래드버리는 이터니티가 언제쯤 반응할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대로 목이 뚫려 작동불능이 된다면 다른 이터니티를 사면 그만이었다. 삼안은 그것을 반길 것이었고 휴이 브래드버리의 삼안 내에서의 고객중요도도 올라가게 될 것이었다.

 몇분이 지났지만 이터니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지깽이는 살을 짓누르고 있었다. 뾰족한 그 끝은 이미 이터니티의 목을 파고 들었다. 그가 힘을 준다면 그대로 이터니티의 목뼈를 꿰뚫어 척추신경을 자를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터니티는 그것을 참고 있었다. 그리고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이터니티가 죽은 것보다 먼저 부지깽이가 식은 것이었다. 그것을 본 휴이 브래드버리는 부지깽이를 집어던졌다. 그 바람에 이터니티의 살갗 일부가 떨어져나갔다.

 “징한 것이야. 돌아가. 그리고 다시는 눈에 띄지 말아라.”

 휴이 브래드버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의자로 돌아가 책을 집어들었다. 이터니티는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일어나 서재의 문을 닫았다.


 휴이 브래드버리는 끔찍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론 브래드버리는 사랑스러운 주인님이었다. 이터니티는 론 브래드버리를 위해 살았다. 휴이 브래드버리는 론 브래드버리를 흉물, 반 것이라 불렀지만 이터니티에게 있어서 론 브래드버리는 주인님이었다.

 2살도 안된 아이에게 이터니티는 꼬박꼬박 주인님이란 말을 붙였다. 론 브래드버리는 이터니티가 모든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는 존재였다. 론에게 분유를 먹일 때도, 론의 기저귀를 갈아줄 때도, 론이 잘 때도, 론이 놀 때도 이터니티는 언제나 론과 함께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언제나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동그란 론의 오드아이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통통한 론의 몸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아직 숱이 얼마 없는 론의 회색 머리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자신을 향해 옹알이를 하며 뻗은 론의 손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론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이터니티는 그 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목숨이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을 바쳐서라도.

 “그거 알아? 주인님도 어렸을 떄는 이렇게 귀여웠어.”

 이터니티에게 매번 분유를 가져다주던 한 바닐라 A1의 말이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이 저택에 일하고 있었고 휴이 브래드버리의 나이보다 이 저택에 있었다고 한다.

 “...”

 이터니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휴이 브래드버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의 목덜미에는 휴이 브래드버리의 체벌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그 고통 역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까.

 “작은 주인님은 자라면 어떤 분이 되실까?”

 “분명 올바른 분이 되실 겁니다. 우리같은 바이오로이드를 물건이 아니라 진정한 동반자로 볼 수 있는 분이요.”

 하다못해 처음본 바이오로이드의 목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내는 사람은 되지 않겠지. 이 귀여운 아이가 휴이 브래드버리 같은 잔인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잖아요.”

 바닐라 A1은 그렇게 말했다. 그것은 한쪽 눈은 흐려져 있었다. 회색빛이 된 그녀의 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이제와서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론의 양쪽이 다른 눈은 사랑스러웠지만 그 바닐라 A1의 한쪽 눈은 안타까웠다. 바닐라 A1이 그렇게 말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터니티 역시 바닐라 A1과 같은 경험을 겪는다면 그렇게 변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저는 주인님을 믿어요.”

 이터니티는 요람속의 론 브래드버리를 보며 말했다. 그 사랑스러운 아이. 그것이 이터니티의 삶의 이유였다.

 그래서였다. 이터니티는 론 브래드버리를 죽이려 했던 휴이 브래드버리를 막아야 했다. 어쩌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는 죽일 마음은 없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은 늦은 뒤였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휴이 브래드버리는 죽었다. 이터니티는 자신의 품안에 론 브래드버리를 안아들었다. 휴이 브래드버리는 말했다. 자신이 죽는다면 론 브래드버리 역시 마찬가지로 죽을 것이라고.

 이터니티는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터니티는 휴이 브래드버리를 죽였다. 살인죄. 그것이 바이오로이드에게도 적용될 것인가. 혹은 법적 처벌을 받을 기회도 없이 폐기가 될지도 몰랐다. 바이오로이드는 물건이었으니까.

 만일 이터니티가 이 세상에 없게 된다면 누가 론 브래드버리를 지킬 것인가. 휴이 브래드버리의 바이오로이드들? 그것들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론 브래드버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론 브래드버리는 혼혈이었다. 휴이 브래드버리는 반것이라 불렀다.

 다른 브래드버리 가문의 사람이 나타나 자신이 덴버러 백작이라고 하며 바이오로이드의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론 브래드버리를 지킬 것은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론 브래드버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 뿐이다. 이터니티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그 결론에 따른 행동은 브래드버리 가문의 저택에서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터니티는 도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