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님,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컨펌은 다 받았는데요."

"지금 제정신이야? 게임에 일부로 버그를 발생시켜?"

"그, 왜 그러시는지 도통 모르겠..."

"시치미떼지 마, 다 알고 왔으니까! 이 증거들을 보고도 오리발을 뺄 생각은 없겠지!"

"...하핫, 참."

"왜 웃는거지? 폐에 바람이 들었나? 아니면 점심에 먹은 소고기덮밥?"

"이사님, 정말로 모르시겠습니까?"

"게임의 퀄리티를 스스로 낮추는 멍청한 짓거리라는 건 아주 잘 알지!"

"정확히 그게 필요한 겁니다, 내 참. 이사님, 우리 서로 믿고 맡기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러면 날 설득시켜 봐."

"오타쿠 문화에만 박식하시지 시장과 경제에 대해서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는군요. 경제와는 관련도 없는 대학을 나온 저보다도..."

"..."

"한 마디로 요약해드리자면, 출혈경쟁이 문제입니다."

"내가 용어도 모를 줄 알고 이야기하는 건가?"

"이사님, 이해력과 응용력은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애초 20대 30대 남성을 겨냥한다는 마케팅을 꺼낸 것도 접니다."

"...계속해봐."

"한 프랜차이즈 피자집이 동네 피자집을 출혈경쟁으로 눌러 버렸다던가, 동네 구멍가게가 편의점 프랜차이즈들에게 밀린다던가의 이야기도 물론 아시겠지요."

"그래, 들어본 적 있지."

"저희 라스트오리진같이 착한 BM을 추구하는 회사 또한 그런 압력을 겪을 것입니다."

"뭐?"

"저는 예언가가 아닙니다. 분석가일 뿐입니다. 착한 BM에 대한 홍보가 상당히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후일, 어쩌면 한 달 내에도 그런 일이 당장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만약 일어나지 않는다면?"

"게임이 19금인 만큼 방심위를 불러다가 사사건건 트집을 잡을 수도 있고, 애플 앱스토어의 폐쇄적인 방책을 이용한다거나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다가 어쩌면 구글... 아니, 설마 구글이 나설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1년 내로 그런 일이 없다면 그 때는 저를 자르시지요. 퇴직금도 안 받고 나가겠습니다."

"......"

"그래, 이해는 했어. 그러면, 버그를 만드는 건 무슨 상관이지?"

"라스트오리진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떨어트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대체 왜?"

"아시겠지만 저희 쪽 프로그래머는 경력이 경력인 만큼 의외로 굉장히 유능합니다. 이전 결과물을 보셨었나요?"

"그래, 그랬지."

"그럼 유려한 초고화질 그래픽, 유저 친화적 운영, 롸벗부터 로리타, 슬렌더, 거유와 폭유까지 다양한 취향의 공략. 이 정도로도 충분한데 시스템에 버그조차 없는 국내 최상위 퀄리티의 게임을 출시한다고요? 그것도 심심하면 대표이사랑 디렉터가 이렇게 서로 막 독대를 하는 인디게임 팀에 불과한 우리 팀이? 너무 대기업들의 눈에 띄지 않겠습니까?"

"뭐든간에 자신을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경쟁 상대를 압박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적인 것이니, 뚫고 나가면 그만..."

"수많은 중국산 게임들이 왜 표절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하는지 아십니까? 고소를 건다고 해도 그게 쉽게 처리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쓰잘데기없는 논란을 만들어낼지는 몰라도 페미니즘 세력들을 선동해 공격한다던지의 이유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진 상태에서 재판에 소모되는 비용이라던지를 우리 팀이 감당해내기는 힘들 겁니다. 애초에 19금이라 유저 수도 상대적으로 적은 주제에 박리다매 전략을 택한 라스트오리진은 초기 생존이 가장 중요하니까 그 시점에는 아무리 승소를 한다고 해도 상처뿐인 승리일 거고요."

"......"

"혹시 아직 질문이 있으십니까?"

"게임의 퀄리티를 의도적으로 떨어트린다니... 정말 끔찍한 계획이잖아..."

"하지만 살아남으려면 필요한 것이지 않습니까."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어."

"이사님, 사회라는 것은 원래 납득할 수 없는 악행들의 뭉터기일 뿐입니다."

"그래... 진행시켜."

"그럼, 가보겠습니다. 아 이사님..."

"...유저님들께 미안해서 어쩌나..."

"제... 제가 유저님들께 라이브 방송이라도 해 볼까요?"

"스, 후우... 그래. 나중에 시간 되면."

"여기 실내 금연인데..."

"아가리 쌉쳐."

"아니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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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대화문은 현실의 그 어떤 단체, 개인, 현상, 지형지물, 상황, 정치적 이념과도 관련이 없는 가상의 창작물임을 알립니다

나가 책만 좀 읽었지 가방끈이 길거나 관련 업종에 대해 뭘 많이 아는 편은 아니라서 일반적인 사무실이랑 다르게 게임업계 사무실은 엄청 분위기가 자유롭지 않을까! 하는 망상이 잔뜩 들어간 픽션이란다

아무튼 픽션이야
완전 픽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