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메이 대장님과도 좀 자주십쇼."

나이트앤젤이 면담 시간에 꺼낸 첫마디였다.

"개인적 불만사항이 먼저 나올줄 알았는데."

쓴웃음을 지으며 물을 한모금 마셨다. 보통 이런 자리에서는 개인적 불만사항이 먼저 나오는거 아닌가? 나이트앤젤이니까 뭐 가슴 작다고 다른 사람들이 놀리는거 좀 그만두게 해달라, 아니면 가슴 키우는 방법 좀 연구해달라 이런 말을 할 줄 알았더니.

"다른 지휘관들은 다 안아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심지어 가장 최근에 착임한 무적의 용도 금방 부르셨죠. 저희 부대 대장만 아직 처녀입니다. 둠브링어의 명예와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메이 대장은 분명 사령관님을 좋아하니까 좀 억지로 해도 괜찮을겁니다.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나이트앤젤은 나에게 깊숙히 고개를 숙였다. 저번에 나랑 섹스할때도 끝나고 은근슬쩍 물어보더니 진심으로 메이랑 섹스하길 바라는 모양이네.

"알았어. 조만간 기회를 만들어볼께."

"설마 이번에도 손잡고 끝내는 일은 없으리라 믿겠습니다."

얘 진짜로 독하게 말한 모양이네.

나이트앤젤은 몇번이나 당부하면서 방을 나갔다. 방 안에 혼자 남은 나는 서랍에 넣어둔 위스키를 꺼내 한잔 따라서 마셨다. 잔을 내려놓자마자 마리와 라비아타, 그리고 콘스탄챠가 안으로 들어왔다. 라비아타와 콘스탄챠는 모르는 눈치지만 마리는 나이트앤젤이 나가는걸 보고 무슨 이야기를 나눈지 알아챈 눈치였다.

"사령관 각하,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알아, 알아.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마리가 입을 떼자마자 곧바로 말을 막아섰다. 마리는 메이를 구조한 시점부터 곧장 주장했다.

'멸망의 메이와는 너무 친밀해지시 말길 권고드립니다.'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주장하기에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난 아직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물론 불굴의 마리가 진지하게 주장하는 것은 어떤식으로든 중요하다. 지금껏 내게 바친 충성으로 쌓인 신뢰가 내게 마리의 말은 귀담아 들을 가치가 있다고 보증한다.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귀담아 들어볼 가치는 있다.

"불굴의 마리 지휘관, 그게 무슨 말인가요?"

"멸망의 메이와 가까워지지 말라 말씀드렸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라비아타는 조금 불쾌한 듯 보였다. 콘스탄챠는 쓴웃음을 지었다.

"질투인건가요? 다른 지휘관들보다 더 걱정되는 건가요?"

라비아타가 물었다. 그녀는 지휘관들간의 불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곤 했다. 콘스탄챠 역시 질투라 생각한 모양이다.

"아니, 근거가 있는 주장입니다."

"마리, 나도 아직 근거를 못들었어. 네 말이니까 듣기는 했는데, 그러는 이유라도 있어?"

마리는 잠깐 눈을 감고는 숨을 내쉬었다. 뭔가 저항감이 있어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꺼낸 말은 내 가슴에 깊이 박혔다.

"과거 전쟁 때, 멸망의 메이가 인간을 살해하거나 자폭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외부로는 공표되지 못한채 기밀로써 남겨졌지만 저는 우연히도 그런 자료들에 접근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조사 결과는 항상 동일했습니다. 어떠한 한 인간과 가까워진 메이 개체들이 그런 사고를 일으켰더군요. 그래서 멸망의 메이와 근무하는 인간분들께는 가까워지는걸 피하란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마리는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 지시가 효과를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당시 인간분들이 그렇게 판단하셨다면 뭔가 이유가 있는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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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와 라비아타, 콘스탄챠가 떠나고 방 안에 홀로 앉은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왜? 왜 멸망의 메이한테만? 단순히 인간을 죽인 사고라면, 그런 사고는 드물지 않았다. 팬텀이나 에이미는 분명 사람의 피를 손에 묻힌 모델이다. 080 기관 소속이라면 인간을 죽인 일은 드물지도 않다. 몽구스팀 같은 경우에는 아예 대인간 훈련까지 했을 정도다. 그런데 어째서 메이한테만일까?

가능성 1. 메이가 강대한 힘을 다루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스러웠다. 아니다. 단순히 강대한 힘을 다루기 때문만이라면 레아도 있고 앨리스도 있다. 그리고 어떠한 바이오로이드라고해도, 심지어 연약해보이는 LRL이나 코코도 그러기로 지시만 받는다면 인간 따위는 별 수고도 들이지 않고 죽일 수 있다.

가능성 2. 메이가 가지고 있는 선천적 결함이다. 가능성 있다. 아니, 아니다. 핵무기를 다루는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는 역할을 맡기 위한 모델에 결함이 있는걸 받아들였다고? 모델 자체를 폐기했겠지. 아니면 그걸 감수할 수 밖에 없었던가.

아니, 모든걸 떠나서 결론적으로 메이한테는 태생적인 문제가 있다는거다. 여기서 눈을 돌리면 안된다. 저 행동이 단순히 누군가의 강한 명령으로 일어난 일이라면 당시 인간들이 그렇게 지시하진 않았을거다. 그 시대의 인간들한테는 혐오감밖에 들지는 않지만, 적어도 바이오로이드를 노예로 부리면서 사회가 유지되었단건 그들이 멍청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그 지성을 그딴 방향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아둔하기 짝이 없는 미개함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왜 메이에게 사람을 죽이지 말란 지시를 하는게 아니라 가까워지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을까? 문제가 대체 무엇이길래? 메이가 다른 모델과 뭐가 그리 다르단 말인가?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위스키를 다시 따른다. 알콜이 식도를 통과하며 남긴 화끈함이 순간이나마 고민을 지워었다. 그래, 메이가 그런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소중한 오르카의 가족이다. 평소 나한테 새침떼기 꼬마처럼 굴지만 둠브링어라는, 그리고 핵무기라는 인류 최강의 화력을 다루는 지휘관으로서 메이는 단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은 없다. 특히 내가 신경쓰지 못하거나 전술 상황이 달라졌을때, 메이는 나에게 지시를 구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해 유기적으로 대처했다. 물론 그럴때마다 나한테 화를 내기는 했지만, 내 실수 때문이 아니라면 투정에 가까웠다. 그런 점 때문에 둠브링어가 참여하는 작전에서는 내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물론 회의 때에는 가차없이 비판을 하지만 말이다.

다시 위스키 한잔. 그래. 누가 뭐라고 해도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처럼 사랑하는 가족이다. 비록 대부분의 아이들과는 달리 내가 지시해도 안듣고 혼자서 행동하지만 그거 역시 귀여... 응?

순간 머리를 스친 가능성. 나는 그 가능성의 결론에 참지 못했다. 위스키를 따른다. 계속 마신다. 세잔, 네잔... 눈 앞이 흐려진다. 구토감이 올라온다. 참지 못하고 화장실에 달려간다. 몇번이나 게워낸 빈 속은 고통스럽지도 않아서 머리가 명료해진다.

오르카의 바이오로이드들 중에서 자율성이 있는 아이는 단 셋이다. 무적의 용, 라비아타, 멸망의 메이. 무적의 용과 라비아타는 단일 모델이다. 무적의 용은 다른 인간과 친밀하지 않았다. 라비아타는 친밀한 인간과 금방 헤어졌다. 메이는 귀하긴 하지만 결국은 양산형이다. 그래, 메이가 인간과 접촉한 경우가 훨씬 많다. 자율성이 문제를 일으킬 여지가 훨씬 많았다.

자율성. 인간의 지시를 무시하고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내가 언젠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주어야만 하는 권리. 그래, 그 자율성이 있기 때문에 메이는 명령 없이도 인간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자유다.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 그거야말로 자유 아니었던가.

메이가 가까워진 인간을 죽인 이유가 그것일 것이다. 무적의 용이나 라비아타와는 달리 그녀의 인간적인 면은 고작해야 사춘기 소녀에 불과했다. 밀려오는 감정의 소용돌이 앞에서 그녀의 자유로 행사한 힘은 아무도 책임져주지 못할 결말로 이어진다. 그래, 그것이 메이가 가진 위험성이다. 그러니 인간은 그녀를 폐기할 수도 없어 고작해야 가까워지지 말라는, 말도 안되는 지시를 내리는데 그쳤을 뿐이다.

메이. 얼마 안되는 자유로운 존재야.
나라는 인간과 마주볼 수 있는 소중한 사람아.
네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네가 너무나 두렵다.

아아, 난 너를 사랑하면서도 밀어낼 수 밖에 없구나.





-곰이나 사자같은 맹수를 애완동물로 키우지 않는 이유가, 개는 인간의 통제가 굉장히 강하게 발휘되고 고양이는 육체적 능력 자체가 굉장히 부족한 반면 그런 맹수는 장난으로 톡 치거나 하는게 인간에게 치명적이란 점에서 어쩌면 바이오로이드과 지내는건 그런 맹수들과 지내는것과 똑같은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써봤음. 메이가 주인공인 이유는 그냥 내가 메이를 좋아해서.



통피일때 썼던 문학 처녀작 추하게 재업하는 데스

그래도 난 메이가 아다인 이유를 아직도 이렇게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