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요새 글 왜케 안써지냐

힘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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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번 일어난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두 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


멸망 전의 모 유명 소설에 적힌 이 귀절은, 마리가 현 사령관과 의기투합하는데 지대한 기여를 했다.


유일한 인간이라 믿었던 철남에 이어 두 번째 인간이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세번째 인간도 발견될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 인간은....


"세번째 인간은 핑잦 쇼타가 딱이노."


"음!"


마리의 취향을 완벽히 저격한 두번째 인간의 발언.


둘은 그날 그야말로 쇼원결의를 맺고, 마리는 두 번째 인간의 강력한 지지자가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 번째 인간이 발견될 기미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고, 새로운 사령관이 그렇게 믿을만한 사람이 아님 역시 금방 드러났다. 


그렇다고 마리가 새로운 사령관을 손절하는 일은 없었다.


새로운 사령관이 추천한 책은 여전히 진중문고로 계속 들어왔고, 마리는 병사들을 페미전사로 이끄는 종교행사도 적극 권장했다.


결과적으로 스틸라인은 새로운 사령관이 그렇게 외치는 '사상적 무장'만큼은 다른 어느 부대보다 뛰어났다고 볼 수 있었다.


비록 그 사상적 무장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폭탄을 막아주는 일은 없었지만.



* * *


콰쾅-!


"으아아.. 이뱀.... 우리 좆된거 아님까?"


"....당연한거 물어보지 마라."


쏟아지는 호라이즌의 포격. 


이미 반격할 만한 거점은 개전하자마자 박살이 났고, 스틸라인 병들은 참호나 진지에 틀어박혔을 뿐 총 한 발 제대로 쏴보지 못했다.


몇몇 브라우니들이 근처에서 터지는 소리가 날 때마다 호들갑을 떨긴 했지만 대부분의 부대는 동요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이 평온이나 안정, 의지 따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압도되었다는 쪽에 더 가까웠다.


아르망의 섬세한 화력 조절이 더해졌다지만 폭발하는 포탄은 살벌하게 내리꽂혔다.


이는 압도적인 화력을 통한 제압, 동시에 마음만 먹으면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다는 협박이기도 했다.


그리고 협박이 요구하는 답은...


"이쯤에서 항복하라는 거겠지."


마리는 신경질적으로 지휘봉으로 스스로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녀에게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백기를 드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이 앞장서서 상황을 타개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불굴의 마리다.


둠 브링어의 지원으로 빈틈만 좀 생긴다면, 충분히 부대를 뒤쪽으로 빼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 터.


그렇게 마리가 이를 갈며 지원을 기다릴 때, 갑자기 호라이즌의 포격이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고막을 찢을 것만 같은 소음이 들리더니, 귀에 익은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들렸다.


"아- 아- 들리나? AA캐노니어의 아스널 준장이 전한다."


아스널이 왜? 우릴 상대로 배팡팡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갑작스러운 아스널의 등판에 여기저기서 혼란이 일었지만,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이들은 그 의미를 이해했다.


전 사령관을 따라 떠났던 아스널 준장이 여기 왔다는 건, 지금 호라이즌이 단독으로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니라는 의미니까.


"즉, 우리는 지금 전 사령관과 싸우고 있다는 거겠지."


이프리트가 한탄했다. 시발 간부들 정치질에 안 휘말리려고 그렇게 조심했는데 말년에 사령관 단위 정치질에 끼어서....


"오, 갓치사령관 대 한남사령관임까!"


"씨발 진짜... 돌겠네..."



* * * 


호라이즌의 스틸라인 습격은 철남의 현 사령관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었지만, 현 사령관의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더 내부 기강을 다져야 하는 것 아니겠노."


두번째 인간은 오늘도, 이쯤되면 사상 교육인지 취미생활인지 알 수 없는... 징벌방 라이프를 즐길 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시가 되었기 때문에 '요리'의 중요성은 낮아졌다. '요리'보다는 '식량'이 필요한 시점이니.


그리고 그것은 두 번째 인간이 벼르고 벼르던 소완을 조질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드디어 미친 요리사를 손봐줄 때가 됐노..."


그렇게 두 번째 인간은 싱글벙글하면서 또 혼자 징벌방으로 떠나고, 경호실장 포이는 페로, 하치코와 함께 빈 사령관실을 지키게 되었다.


".........."


"봊나 심심하노... 페로 언니."


"응?"


"심심한데 재밌는 얘기 없노?"


사령관 라인을 탄 포이는 컴패니언의 수장 자리까지 슬쩍 앉더니 이젠 위아래도 없다. 


"으응? 재밌는 얘기....? 어..."


포이의 느닷없는 요구에 당황한 페로는 황망히 머리를 굴렸다. 


"그... 스노우페더의 반댓말이 뭔지 알아?"


"??"


"스노우페더의 반댓말은 스노우페덜......."


".....뒤지고 싶노."


페로의 얼굴이 새빨개지고, 포이의 시선은 페로를 떠나 하치코 쪽을 향했다. 


"하치코, 너도... 아니다, 넌 그냥 하지마라."


"엥... 져두 재밌는 얘기 할래요."


"아니, 하지마.."


이렇게 컴패니언들이 사령관을 기다리면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을때, 사령관실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나타난 건... 궁핍한 상황에서도 어디서 얻었는지 계속 먹을 것을 들고 다니는,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알비스였다.


"하치코! 놀자!"


"에엑- 지금은 경호 임무즁인뎅...?"


"어차피 사령관님도 안계시잖아! 엘라가 보드게임도 빌려줬고, 간식도 있어!" 


"가.. 간식?"


하치코가 군침을 꿀꺽 삼켰다. 근래 이런저런 이유로 미트파이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는 하치코의 마음은 벌써 복도를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근무 중. 하치코는 슬쩍 포이의 눈치를 살폈다.


"안될 거 뭐 있노. 갔다와라."


의외로 포이는 시원하게 허락했다. 어차피 사령관이 오려면 꽤 남았고, 컴패니언 자매들도 요새 형편이 좋지 않음은 그녀도 인지하고 있었으니. 


하치코는 포이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알비스를 따라 나갔다.


포이는 그걸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페로에게도 말했다.


"언니는 안 가노?"


"응...? 나, 나도..?"


"저짝 부대가 그간 사령관님한테 개긴 거 생각하면, 하치코 혼자 갔다가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지 않노?"


"그거야 그렇지.. 맞아."


안 그래도 포이와 단 둘이 있기 껄끄러웠던 페로는 후다닥 하치코를 따라나갔고, 사령관실에는 포이 혼자 남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은 모두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대장, 레오나의 계획대로였다.


"그래, 쟤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어. 미친 고양이만 잡으면 되지. 발키리, 호드 쪽에 지금 포이 혼자라고 알려줘."



* * *


다시 스틸라인 주둔지. 아스널의 확성기는 멈추지 않았다.


"아, 그리고 둠브링어 녀석들은 이미 우리 애들이 싹 정리했으니 괜히 기대하지 마라!"


아스널의 말대로, 나이트 앤젤이 부재한 둠 브링어는 지휘 공백 때문인지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스틸라인 주둔지 근처에도 오지 못했다.


항공 지원이 오면 상황이 바뀔 거라고 믿던 병사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우리 사령관 성격 다들 알지 않나! 지금이라도 투항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


동요를 느끼고 슬슬 약을 치려는 아스널. 하지만 확성기 소리만큼이나 쩌렁쩌렁한 마리의 육성이 이를 받아쳤다.


"헛소리 하지 마라. 스틸라인은 서서 죽는다!"


"우와!!"


마리의 호령에 정신을 차렸는지, 브라우니들의 함성소리가 이에 호응하며 하늘을 덮었다.


좀만 더 흔들었으면 넘어왔을텐데. 아스널은 아쉬워하면서 타깃을 마리로 옮겼다.


"허.. 뒤에 숨어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야 나오셨군."


"숨어? 내가?"


마리는 코웃음을 쳤다.


"뭐 그럼 그렇다고 치고.... 대장이 나왔으면 이야기가 빠르지. 협상하지 않겠는가?"


"협상이라니. 나는 그쪽과 할 말이 없다."


"그래? 나는 아주 많은걸?"


"......"


바로 협상 테이블을 걷어차려던 마리였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그러면 30분 뒤, 중간지점에서 보도록 하지. 허튼수작은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걸."


"좋지."


약속을 잡은 마리는 곧바로 레드후드에게 지시했다.


"레드후드. 내가 나가 있는 사이 후방에 위치한 부대부터 몰래 조금씩 후퇴시켜라. 포격 사정거리에서 최대한 벗어나서 재정비하도록.'


"알겠습니다, 대장님."


말이 협상이지, 항복 권고가 뻔하다. 항복할 의사가 없는 스틸라인에겐 무의미한 시간이 되겠지만....


그 시간을 이용해서 반격의 실마리를 찾아 주마.



* * *


해변에 간이 막사가 생기고, 협상 테이블이 놓였다. 


이야기가 잘 풀린다면, 수백 수천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는 있는 자리다.


하지만 그런 자리에 응당 따라야 할 무게감과 진중함은, 아스널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마리가 들어오자마자, 아스널은 마리를 쇼타섹스를 이유로 사령관에게 등을 돌린 바이오로이드는 마리가 유일할 거라며 놀려댔다.


"흥, 각하께 대한 악감정은 없네. 문제라면 그걸 벌레보듯 하던 자네들에게 있겠지."


음쇼섹 발언 후 콘스탄챠가 보인 경멸의 눈빛은 마리도 잊을 수 없다. 이어 철남까지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서 확인 사살.


결국 비슷한 취향의 요안나를 제외하면 이후 두 번째 인간이 오기까지 누구도 마리를 지지해주지 않았다.


"음? 나는 쇼타도 '가능' 이네만? 무얼 벌레보듯 했다는 건지?"


물론 극한의 가능충 아스널에게 그건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지만. 


맥이 빠졌는지 한숨을 쉬는 마리를 보며 아스널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말을 꺼냈다.


"뭐 굳이 태클을 걸자면 애초에 욕망이 일치한다고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게 잘못 아닐까."


"......."


"예를 들어 나도 두 번째 인간의 '사령관 후장에 딜도넣고 휘젓고 싶다'는 발언에는 십분 동의하지만... 그것이 그 자를 따를 이유는 되지 못하지."


"?????"


진지한 얼굴로 훅 들어오는 아스널.


마리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후방에서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을 레드후드를 상상하며 겨우 삼켰다.


하지만 아스널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연이어 저세상 발언과 각종 섹드립을 쏟아냈고,


마리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참으며 필사적으로 웃참에 들어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