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 조금 이상한 오르카가 보고 싶다


모음집 링크 : https://arca.live/b/lastorigin/26141632


01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6141408

02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6403929

――――――――――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치코의 질문에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당장 하치코가 이를 드러낼 염려는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꾸로 말한다면 하치코는 지금 이 상황을 일종의 충성심 테스트로 보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뜻도 되었다. 나는 모르겠으니 당신이 나와 당신의 관계를 규정해달라. 즉, 판단을 나에게 떠넘긴 것이다. 자율적인 판단이 거의 없는 행동이었지만 군견을 모델 삼아 만들어졌다면 이해가 갔다. 일단 내려진 명령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불합리해도 따라야하는 것이 군인. 물론 같은 사람이라면 항의하거나, 혹은 회피한다는 선택지가 있다.


 하지만 바이오로이드라면? 선택지 따윈 없다.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것만이 그들의 미덕이다. 아니, 미덕 이전에 머릿속 깊은 곳에 각인된 본능이다. 상관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따르는 것. 게다가 뇌파나 외모, 그 외의 모든 것들은 여전히 예전의 인간임을 가리키고 있으니 거부할 수도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인간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군."

 "다른 인간님...이란 말씀이십니까?"


 하치코는 믿기 힘들다는 듯, 약간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상관이 갑자기 왜 이런 이상한 일을 하는 건가, 싶겠지. 그야 나라도 안 믿을 거다. 그렇다면 역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내가 다른 인간이라는 것을.


 "어차피 말로 주절주절 떠들어도 믿지 않겠지."

 "..."

 "그렇다면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제일 확실하고 빠르겠지. 지금, 이 시간부로 어떤 바이오로이드에게도 손을 대지 않겠다."


 그 말에 하치코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흰 자위가 전부 보일 정도로 크게 뜬 눈에 섬뜩하다기보다는 귀엽다고 느낀 나는 어딘가 잘못된 걸까.


 "진심이십니까, 사령관님?"

 "진심이다."


 믿기 어렵다, 라는 시선을 주고 있는 하치코의 모습에 나는 내심 그 말도 옳다며 고개를 끄덕일 뻔 했다. 그야 내가 본 태블릿만 봐도 아무리 못해도 하루에 한 번은 가혹한 짓을 하고 있었다. 즉, 이 사령관에게는 숨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이오로이드를 고문하고 학대했다는 뜻이다. 그런 내가 이후로 바이오로이드에게 손을 대지 않는다는 건 말 그대로 이전의 존재와 극단적으로 달라졌음을 알려주는 지표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믿을 거야, 아니면 믿지 않을 거야?"

 "저는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하치코는 이번에도 판단을 유보했지만, 아까와는 달리 조금 동요하는 기색이 강하게 느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치코에게 다가갔다. 하치코는 여전히 그 자리에 똑바로 서서 부동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하치코의 어깨에 손을 탁 올리고 두들겨줬다.


 "하루 아침에 믿으라고는 할 수 없는 법이니...그러면 우선 일부터 하자."

 "일이라고 하셨습니까?"


 하치코의 진심으로 놀란 표정에 나는 헛웃음을 들이켰다. 하지만 우선은 일이다.


 "우선 현 상황에 대한 파악이 필요해. 이 몸의 원래 주인이 뭘 했는지 몰라도 엉망진창이니까. 내가 알고 있던 오르카 호와는 천지차이야."


 기본적인 방위조차 내팽개친 이 오르카 호가 어떻게 살아남고 있는가? 자원은 어떤 수로 수급하고 있는 건가? 하나같이 의문 투성이였기에 나는 하치코를 통해서 알아볼 예정이었다. 리리스? 걔는 내가 원래 사령관이 아님을 알아챈다면 무슨 일을 벌일지 너무 위험해서 감당이 안된다. 하치코는 그래도 원판이 순박한 개체였으니까 내가 시도라도 해보려고 했지만.


 "우선 첫 번째. 대체 유아 바이오로이드는 왜 이렇게 많지?"

 "사령관님의 지시 때문입니다."

 "내 지시?"

 "예. 사령관 님의 특별한 유희를 위해 정기적으로 생산되는 바이오로이드입니다. 성인 바이오로이드를 주로 사용하셨던 적도 있으셨습니다만 최근에는 거의 유아 바이오로이드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나는 무심코 하치코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이 새끼 진짜 제정신이 아니었구만. 


 "다른 바이오로이드의 숫자는 왜 이렇게 적은 거지? 오르카 호 규모에 비하면 너무 적은데."

 "대부분 사령관님께서 내쫓으셨거나, 혹은 일상적으로 처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보고서에 나온 작전 수행이 가능한 바이오로이드는...대부분 부상을 입은 개체입니다."

 "부상을 입었다면 당연히 제외해야-"

 "그러고야 싶습니다만, 현장에서의 일손 부족이 심각합니다. 최대한 휴식을 취하게 하면서 회복에 힘을 쏟게는 하고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즉각적으로 현장에 급파되어 보조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자는 복귀해 휴식을 취합니다. 저 역시 그런 과정을 겪었습니다."


 하치코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회백색 눈동자를 가리켰다.


 "...신규 바이오로이드를 제조해서 대체하는 일은?"

 "대부분의 자원은 사령관님의 유흥과 사치품 조달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리벨리온이라 불리는 탈주 부대가 대부분의 자원을 들고 도주한 것도 원인 중 하나입니다. 그들의 이탈 이후 자원 수급 부대 규모의 하락으로 인해 비어버린 자원을 충당하는 일은 더 힘들어졌습니다."

 "리벨리온?"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나는 하치코에게 되물었다.


 "라비아타 통령을 중심으로 탈주한 일단의 부대를 말합니다. 호라이즌과 둠브링어, 스카이 나이츠는 모두 그들에게 합류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부대원이 이탈했습니다. 일부 인원은 이곳에 남았습니다만 리벨리온의 규모는 저희의 10배쯤 됩니다."

 "즉 10분의 1로 오르카 호의 규모가 줄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사령관 님. 성벽의 하치코 개체도 모두 저쪽으로 넘어갔고, CS 페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리리스 경호실장님께서 보내셨습니다. 그 분은 이 일이 발각되고 나서 사령관 님의 손에 처형되셨습니다만."


 그렇게 말한 하치코는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동생들만이라도 구하기 위해 어떻게든 리리스가 손을 썼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더 빨리 이 세계에 왔다면 그 리리스도 구할 수 있었을까.


 "...그 리리스의 기억은?"

 "계승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리리스 경호실장님은 다른 바이오로이드보다 더 강력한 명령 구속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바이오로이드는 그렇습니다."

 "아닌 바이오로이드는?"

 "저와 오드리 드림위버, 그리고 잔류 중인 지휘관 개체, 아르망 추기경 뿐입니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는 하치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하치코의 눈동자가 왕방울만하게 커졌다. 철저한 군인다운 자세를 유지하던 하치코였지만, 이것만큼은 완벽하게 의외였던 모양이다.


 "...기분 나쁘면 말해."

 "아, 아닙니다. 사령관님."


 그렇게 말은 해도 주인을 따르는 개의 본능이 남아있는지, 하치코의 꼬리는 맹렬하게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아이들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해왔단 말인가. 전 사령관은. 가슴이 울컥해온다. 꽉 끌어안고 이제는 괜찮다며 달래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 행동 이상으로 해줄 수 없었다. 두려울테니까. 하치코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꼬리는 맹렬하게 흔들면서도, 시선은 나와 마주치지 못하고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 불안한 듯이, 손가락은 조금씩 움찔거리고 귀는 파르르 떨리면서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버려질 지도 모른다. 희망을 주고 다시 나락에 처박을 지도 모른다. 인간을 따르고자 하는 본능과, 그 동안의 경험으로 인해 축적된 지혜가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었다. 게다가 실제로도 전 사령관은 비슷한 짓을 한 번 해봤던 모양이다. 본인 성격에 안 맞았는지 불과 1시간 만에 그만뒀던 모양이지만.


 "그럼 한 가지 더. 현재 바이오로이드 제조는 누가 담당하고 있어?"

 "닥터가 담당하고 있었습니다만, 사망했습니다."

 "신규 닥터 제조는?"

 "불가합니다. 리벨리온 쪽에 닥터가 한 명 더 있긴 합니다만 데려오실 수는 없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다만 기존에 등록된 유전자 지도는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존에 생산된 바이오로이드는 문제없이 제조하실 수 있습니다."

 "기존에 제작된 바이오로이드의 명단은?"


 내 말에 하치코는 내가 내려놓은 태블릿을 집어들고 톡톡, 조작했다.


 "여기 있습니다."

 "어디 볼까."


 LRL, 알비스, 화롯가의 포티아, 더치걸, T-2 브라우니.


 "...이게 전부야?"

 "예. 대부분의 고급 바이오로이드는 외부에서 합류한 경우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쓸 수 있는 전력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없는데."

 "죄송합니다. 사령관님의 취향에 맞춰서 많은 양의 아이들을 공급하다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결국은 이 미친 놈의 취미 문제인가.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만, 최근 삼안 산업의 유전자 연구소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자료를 확보하시는 게 어떨련지요?"

 "원정나갈 전력은 있어?"

 "사령관님의 취미 활동을 중단하신다면 가능합니다. 대부분 사치품을 수색하거나, 혹은 쓸만한 바이오로이드를 납치하는 일에 할당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원 확보에만 집중한다면 큰 무리없이 안정적인 전력을 굴릴 수 있습니다. 조직 규모의 확대는 무리입니다만."

 "좋아, 그럼 그렇게 하자."


 하치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원정대를 짤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래, 맡길게."

 "예, 사령관님. 기대에 부응해보이겠습니다."


 그 말을 마친 하치코의 꼬리는 부드럽게 살랑거렸다.


――――――――――

아무도 관심없는 이상한 오르카 시리즈 리메이크. 재미없나 보구만.


그리고 검은 하치코는 만화 그린 분에게 허락 구하려 했는데 글이 사라져서 대체 어느 분인지도 몰라서 그냥 내가 알아서 재해석해서 쓰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