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 조금 이상한 오르카가 보고 싶다


모음집 링크 : https://arca.live/b/lastorigin/2614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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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어색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눈치를 살피고 있는 미녀였다.


 깜빡.


 눈을 감았다가 떴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나는 최대한 비명을 지르지 않고, 당황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머리를 살짝 긁었다. 내가 손을 들자 은빛 머리칼을 가진 미녀는 움찔 몸을 떨었다. 마치 학대를 당한 아이같은 모습에 가슴 속 한구석이 시큰해졌지만 거기에 정신을 팔 여유는 없었다.


 깜빡.


 바뀌지 않는다. 나는 그제야 현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게 뭐였지? 피곤해서 깊은 잠에 빠져들고 통발을 돌렸던 것 까지는 기억한다. 그리고 꿈속에서 보였던 보랏빛 무언가가 내 마지막 기억이다. 그건 뭐였지? 왜 나는 이런 곳에 있지? 무슨 이유로 의자에 앉아 책상에 팔을 올리고, 손등으로 턱을 괸 채 미녀를 보고 있었지? 시선을 아래로 돌리자 서류 같은 것이 보였다. 집어 보자 척 보기에도 꽤 고급진 느낌의 종이였다.


 "흠."


 펄럭, 하는 소리와 함께 서류를 집어들자 미녀의 시선이 내가 들고 있는 서류로 향했다. 으음, 잘 안보이는데. 방금 막 정신을 차린 탓인지 눈에 초점이 잘 맞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인상을 살짝 써서 시선을 집중하려 했고, 그러자 옆에 있던 미녀가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떨었다.  왜 저러는 거지? 나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태연한 척하려고 노력하며 서류에 눈동자를 고정했다.


 「오르카 호 함내 인원 정리 1분기 보고서」


 상당히 평이한 문체로 제작된 보고서는―, 보고서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유치했다. 다르게 말하면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읽기 쉬우면서도, 동시에 수많은 정보가 생략되고 가려진 보고서였다.


 「현재 남아있는 유아 바이오로이드 : 181체」

 「현재 작전 수행이 가능한 바이오로이드 : 72체」

 「현재 특별업무수행이 가능한 바이오로이드 : 200체」

 「외부로부터의 자원 수집 현황 : 양호」

 「다음 육지 상륙일까지 27일」


 수많은 내용들을 추리고 추려보면 남은 건 이 다섯 개 뿐이었다. 장난치는 건가? 나는 의아함을 품은 채 미녀를 보았다. 그러고보니 어디서 본 듯한 디자인인데. 이렇게까지 눈에 띄는 사람을 내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있던가?


 "리리스."


 그리고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상대의 이름이 나왔고, 나는 그제야 혼란스럽던 정신이 말끔해지며 기억이 정리되는 걸 느꼈다.


 여긴 라스트 오리진이었다.


 "예, 사령관님."

 "그러니까, 그―"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혼란스럽던 정신은 마치 칼로 자른 듯 일거에 정리가 되었지만 내 입에서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이게 뭐냐고 물어봐야 하나? 왜 이 육신의 기억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건데? 나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어떻게든 뭔가 적당한 말을 찾아내려고 애썼지만 실패했다. 무슨 말을 꺼내야 좋을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리리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판토마임 대회에 나가도 될 정도로 변화무쌍한 그녀의 얼굴은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었다.


 공포


 그녀는 나를 보고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어째서, 라고 물을 수는 없었다. 내 말 한 마디가 대체 무슨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조금도 예측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녀를 부르던 것을 멈추고 다시 서류와 눈싸움을 시작하기로 했다. 대체 이 서류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나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들기면서 고민에 빠졌다.


 왜 유아 바이오로이드는 따로 분류하고 있는가? 특별업무수행이란 건 대체 뭔가? 대체 뭐길래 작전 수행 가능 인원보다 3배 가까이 많은 건가? 왜 정기적으로 육지에 상륙하고 있는가? 이 유치할 정도의 보고서로는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리리스."

 "...예, 예!"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던 리리스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공포가 가득 담겨있었다. 처음 보는 나조차 알 수 있을 정도의 선명한 공포의 색에, 나는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말했다.


 "보고서, 자세하게 다시 써서 제출하도록."

 "예?"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아, 예!!!"


 혹여나 자신이 징벌이라도 받을 까 두려운 아이마냥 후닥닥 도망치는 리리스의 모습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상황이...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내가 알고 있던 라스트 오리진이 아니다. 분명 곁에 있어야 할 메이드 바이오로이드는 단 한 명도 보이지가 않고, 리리스만 덩그러니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들 컴패니언도 털끝 하나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뭐가 일어나고 있는 거지?


 마치 황야에 떨어진 나그네마냥 고독한 상태가 되어서야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잠수함 치고는 어마어마할 정도의 넓은 개인실이었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악세서리를 포함해 벽지, 가구, 기기, 그 무엇하나 고급이 아니라고 느껴지지 않는 게 없었다. 장식용 도자기는 이상할 정도로 뿌연 빛을 뽐내며 그 자태를 자랑했고, 가죽 제품들도 악어 같은 것을 손질해서 만든 건지 특유의 광택이 번들거렸다.


 이게 잠수함 내에서 허용되는 사치인가?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엇보다 이 사치에서 졸부의 냄새가 났다. 막대한 권력과 부를 갓 손에 넣어서 어찌할 줄 몰라 허둥지둥 써버리는 졸부의 냄새. 권력과 부에 취해 자신을 가누지 못하고 흥청망청 자신을 타락으로 내던지는 어리석음이 느껴졌다.


 "역겹군."


 한숨을 폭 내쉬며 나는 감상을 한 마디로 요약했다. 이 정도면 오르카 호 내부가 어떤 꼴인지는 안 봐도 알 만했다. 리리스가 그토록 공포에 떨고 있던 것까지 합친다면 필시 바이오로이드에게 온갖 말못할 짓을 해왔을 것이 분명하다. 혹시나 해서 이 몸의 주인이 가지고 있었을 거라고 추정되는 태블릿을 열어보았다. 우습게도 비밀번호 하나 걸려있지 않았는데, 자신의 것을 감히 누가 건드리겠냐는 거대한 오만의 발로였음이 분명했다.


 "어디보자...."


 나는 리리스가 보고서를 내오는 동안 의자에 앉아서 태블릿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단 3초 만에 후회했다.


 「더치걸 아트 모음집」

 「코코 아트 모음집」

 「LRL 아트 모음집」

 「바이오로이드 가공품 디자인 초안」

 「레프리콘 포르노 모음집」

 「레오나 사지절단 쇼 Vol.3」

 「영아 쇼 모음집」

 「바이오로이드 미식 평가 영상」

 「바이오로이드 악기 연주 합창회」


 폴더 이름부터가 심상치가 않았다. 뭐하는 새끼지, 이건? 그나마 마지막 2개는 좀 정상적으로 보이긴 하는데, 그 동안의 이름값을 생각해보자면 이것도 정상은 아닐게 분명했다. 나는 우선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더치걸 어쩌구를 보았다.


 "........."


 그리고 그 결과, 나는 태블릿을 집어던지지 않은 내 인내심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로 했다. 날짜 별로 세심하게 정리된 - 이 부분에서 진짜 미친 놈이구나를 느꼈다 - 영상들은 더치걸들을 문자 그대로 종류별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하드코어 포르노 영상이었다. 누가 봐도 어린애로 밖에 보이지 않을 더치걸들이 죽은 눈으로 영상에 나와 자기 소개와 날짜를 언급한 다음, 차례대로 소모되어 가는 영상은 끔찍하기 그지 없었다.


 그나마 앞부분의 영상은 평범하다고 할 수 있었다. 기껏해야 목덜미에 약 좀 놓으면서 괴성을 지르며 짐승처럼 박아대는 게 전부였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대체 사람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기라도 하는 것마냥 철저하게 합리적이고 기계적인 분석으로 상대를 고문하는 고문 쇼에 가까웠다. 예를 들면 어느 이를 뽑았을 때 가장 기분이 좋은 짓거리를 할 수 있느냐, 라던가. 어느 정도 크기의 물건을 집어넣어야 내부 장기가 손상되는가, 혹은 팔과 다리 중 무엇을 잘랐을 때 좀 더 반응이 좋거나 남자의 기분이 좋아지는가와 같은 일이었다.


 키르케를 옆에 두고서 제XXX차 실험 기록 운운하면서 하나하나 세심하게 기록하고 촬영하는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최상류층의 음습한 개짓거리에 필적하는 또라이 짓이라 평가할 수 있었다. 돈 많은 것들은 눈치 보면서 살지를 않으니까 온갖 미친 짓을 다하니 말이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건 그것보다 더 하다, 라고 평가할 수 있었다. 걔네들은 그래도 적어도 기분은 좋자고 하는 짓이었으니. 근데 이 녀석은 갈수록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해하면서도 관성에 젖어서 이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살다살다 이런 진성 또라이 새끼는 처음보네."


 중동에서 고문과 아동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천조국에게서 어여쁜 항공 폭탄을 선물받는 지하디스트들도 이것보단 덜하리라. 아동 포르노 제작자조차 고해성사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참회를 할 정도의 광기가 아닐 수 없었다. 겨우 정신을 추스른 나는 혀를 내두르면서 영상을 껐다. 첫 영상이 이 정도면 나머지 영상은 안 봐도 뻔했다.


 "시발 진짜 X같네."


 보기만 해도 눈이 썩어들어가는 영상을 대충 30분 정도 보고 있었더니 머리가 어질어질해왔다. 나머지 영상은 보고자 하는 용기조차 생기지 않았다. 리리스는 아직일까. 나는 눈을 감고 한숨을 폭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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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본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