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 A1의 경우

 

 

 

-블랙 웜에게 약 1주일간 빨린 뒤.-

 

죽을 것 같다.

말을 잘못한 내가 문제긴 하지만 블랙 웜을 달래주기 위해 뭐든지 하겠다고 한 말에 설마 그렇게 나왔을 줄은.

 

그럼 당분간그 일을 잊을 수 있게 저만 봐주세요.’

 

처음에는 뭐퍽이나 귀여운 부탁이구나 싶었지만 그녀의 봐주세요라는 뜻을 제대로 이해한 순간 미치는 줄 알았다.

아니 세상에, 1주일 동안 항상 자기를 시선에 두고 자기 시선 밖으로 벗어나지 말라니이 무슨 리제나 할 법한 끔찍한 생각인지!

하지만 피해자는 그녀가해자는 나.

게다가 이미 뭐든지 해준다고 말도 했기도 했고 역시 전 주인님에게 폐가 되는걸까요.’ 라며 시선을 떨구는 그녀의 모습에 허둥지둥 그러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말 그 1주일이 참뭐라고 해야 할지.

아니 뭐일단 약속이니까진짜 1주일동안잘 때를 제외하곤 24시간 내내 그녀를 시야에 두고그녀의 시야에 있다 보니 피로도가 장난이 아니다.

낮에는 리리스와 리제에게 시달리고 밤에는 뭐다른 의미로 시달리다보니 굉장히 고-급의어지간한 바이오로이드보다도 강한 육체를 지닌 이 몸으로도 체력의 한계가 다가왔다.

 

게다가 이상한 거에 눈을 떠버렸단 말이지.’

 

내가 했었던 말이 꽤나 충격이었는지 이젠 밤일을 할 때조차 날 항상 시선에 두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그녀가 내 위에 올라타는 자세가 많아지고 그리고.

내가 원할 때 끝낼 수 없다는 것 정도만 말해두지.

 

그렇게 정말 지옥 같은 1주일이 지난 뒤그녀는 어느 정도 만족했는지 괜찮아졌다며 간신히 이렇게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친 몸으로 사령관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으면.

 

하아죽겠군.”

 

전부 다 주인님의 자업자득입니다낮이나 밤이나 발정난 개처럼 허구언날 허리를 놀리니 그런겁니다그러니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싸늘한 시선으로 날 바라보는 바닐라의 시선에 움찔한다.

아니네가 봤어봤냐고!

그리고 낮에는 안했어!

 

마치 낮에는 안했어!’라고 말하시는 듯한 표정이십니다만화장실은 방음성능이 떨어진다는 것 쯤은 슬슬 자각하실 때가 아닙니까?”

 

… 화장실에서… 하긴 했지.

 

덕분에 그 앞을 지나던 LRL양은 화장실에 대낮부터 귀신이 나온다며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가끔은 주인님의 뒤처리를 감당하는 제 기분도 헤아려주시면 참 감사하겠군요.”

 

그건 참할 말이 없긴 하지만.

 

 

. . .

 

 

게다가 몇 번이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주인님은 절제할 줄 아셔야 한다구요.”

 

이것은 추한 질투에 불과하단 것쯤은 자신도 알고 있다.

요 일주일 간주인님은 다른 인원들이 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사람이랑만 딱 달라붙어선 보란 듯이 애정을 과시한 것에 대한 질투.

 

고작 1주일.

그 짧은 기간 동안 왠지 소홀히 대해진 것만 같아 나오는 추한 감정.

하지만 분명 주인님은 머쓱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하거나 적당히 받아치시겠죠.

여태 그래왔듯이그리고 앞으로도 말이죠.

 

시끄러워.”

 

?”

 

시끄럽다고!”

 

강하게 책상을 내려치며 소리치는 주인님의생전 본적 없는 모습에 움찔하며 아차싶은 생각에 성급히 변명거리를 찾았지만 주인님의 처음 보는 낯선…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아서일까요생각보다 입이 열리지가 않았고결국 사태는 최악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말이 심했.”

 

나가있어.”

 

주인님에게서 처음으로 듣는 완강한 거부의 말.

거대한 철충에게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해지며 처음으로 현기증이란 것을 느꼈지만 그 뒤에 마치 꼴 보기도 싫다는 듯이냉정하게 제 이름을 부르시자 실이 끊긴 인형처럼 터덜터덜사령관실을 나왔고뒤늦게 현실을 직시하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 앞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아니아니에요전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게.”

 

 

. . .

 

 

뭐야생각외로 편하게 넘어가잖아?’

 

정신적으로육체적으로 지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시끄럽다라는 말이 나왔을 때는 식은땀이 흘렀다.

틀린 말도 아니고 날 위해서 설교를 해주는 바닐라에게 무슨 짓을?

마치 반항기에 처음으로 부모에게 소리치고 난 뒤에 느끼는 강렬한 후회감 비슷한 것을 느꼈지만 한번 저지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일단 사과를 하는 것이 백번 옳은 일이지만 바닐라의 눈치를 보니 잔뜩 커진 눈은 파르르떨리고 있고 꽉 쥔 손이 부르르 떨려오는 것이 굉장히 열 받은 모양이다 싶어 일단은 화라도 식히고 오라는 뜻으로 나가있으라고 했다.

 

하지만 뭔가 상태가 이상했지.’

 

그렇지만 일단 잘 풀렸으니까 문제없겠지?

잔소리야 화가 좀 누그러진 뒤에 듣는 쪽이 훨씬 나을 태니까.

 

난 그렇게 또다시 안일한 생각을 했고,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그렇다무려 열흘열흘 동안이나 바닐라의 그 잔소리를 듣지 않았다!

처음에는 드디어 얻은 자유에 세상 편하게 생활했지만 그것도 사흘째에서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쯤이면 슬슬 그때의 일 때문에라도 바닐라가 찾아와서 잔소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뭐지기를 모은 다음 한 번에 터트리겠다는 뜻인가타란튤라?

그렇게 앞으로 있을 미지의 공포 앞에서 무력해진 난나흘째가 되는 밤복도에서 바닐라와 마주쳤다.

 

평소의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이 아닌어딘가 혼이 빠진 사람처럼 초점이 나간 눈여기저기 구겨져있는 메이드복작게 무언가 중얼거리는 모습까지.

 

솔직히 지릴 뻔 했다.

 

하지만 여기선 스윗한 남자라면 망가진 여성의 모습을 못본 척 해주는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못 본 척 해주기 위해 그녀에게서 몸을 돌렸고 그것이 기폭제가 되었다.

 

 

. . .

 

 

-사령관님이 나가라고 한지 3시간 뒤.

 

방금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제가 잠깐 이성을 잃었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솔직히 제가 말이 심하기도 한건 사실이니까요다음에 주인님이 절 부르시면 사과를 드려야겠군요.

 

 

-사령관이 나가라고 한지 하루 뒤.

 

아뇨 괜찮습니다주인님도 하루정돈 머리를 식히고 싶으실 태니까요내일이면 다시 절 불러주실 거에요그럼 전 주인님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사과를 드리고주인님은 멋쩍게 웃으며 자기도 잘못했다고 말씀하시겠죠.

 

 

-사령관이 나가라고 한지 이틀 뒤.

 

어쩌면… 제가 했던 말이주인님에게 큰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르겠군요제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주인님은 신경 쓰고 계셨을지도 모르는데.

사과드리고 싶어요그러니 제발제발 다시 절 불러주세요 주인님.

 

 

-사령관이 나가라고 한지 사흘 뒤.

 

주인님잘못했어요주인님잘못했어요주인님잘못했어요주인님잘못했어요주인님잘못했어요주인님잘못했어요주인님잘못했어요주인님잘못했어요.

 

 

-사령관이 나가라고 한지 나흘 뒤.

 

주인님잘못했어요주인님잘못했어요주인?”

 

그토록 다시 자신을 불러주길 바라던 주인님의 모습이눈앞에 있다.

지금 시간이라면 분명 주무시고 계실 시간이겠지그런데 왜 내 눈앞에… 바이오로이드도 너무 지치면 환각이나 환청을 들을 수도 있다고는 들어봤습니다만… 그런걸까요?

 

그렇다면 왜환각속의 주인님마저 제게서 등을 돌리시는 거죠?

 

아아… 싫어싫어!! 가지마세요 주인님!”

 

가슴이 찢어질 듯 한 고통을 느끼며제게서 등을 돌린 그 가짜에게 달려들었고옷을 움켜쥐자 얇은 천조각 너머로 느껴지는 주인님의 체온이 이것은 가짜가 아니라고 제게 말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 잔인한 현실이 더욱 더 제 마음을 난도질하는 것만 같아 야속하기만 합니다.

 

이제 절대로주인님에게 거슬리는 말 안할게요주인님이 불쾌해 하실만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그만둘게요제게 난폭하게 하셔도 괜찮아요제게 욕을 해도 괜찮아요그러니까그러니까… 제발… 절 쫒아내지만 말아주세요.”

 

제발주인님을… 곁에서 모실 수 있게 해주세요속죄할 수 있게… 허락해주세요.”

 

제발주인님을 바라보는 것만큼은 허락해주세요.

제게서당신을 빼앗지 말아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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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 뒤에, 잔뜩 애호해줄 예정이지만 

만약 저상황에 사령관이 좆간이라 뿌리치고 돌아가면 아마 바닐라는 밧줄을 찾지 않을까 싶음

반응이 생각보다 좋아서 한번 더 써봤는데 쓰면서도 내가 너무 맵다 시발


그러니까 제발 자기머리에 총쏘는 섹돌보고 후회하는 사령관 보고싶단말 하지마

이미 저걸로도 치사량 만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