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https://arca.live/b/lastorigin/26662311


"휴가? 갑자기?"

"안될..까?"


사령관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바이오로이드 입에서 휴가라는 단어가 나온 것은 아마 역대 최초일 것이다.


바이오로이드들은 기계가 아니라서 휴식이 필요하긴하다. 하지만 주인과 한몸이기 때문에 주인이 허가하지 않는다면 쉬지 못한다.


그래서 사령관은 간곡히 부탁하여 일주일에 2일, 3일씩 쉬는 날을 배정하였고 오르카 호 바이오로이드들은 휴식이 보장됐다.


그렇지만 휴가라는 단어는 말하지 않는다. 휴가는 인간만이 누리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왜나면..."


하르페이아는 뒤에 숨겨놨던 책을 꺼냈다.


"여행을 가보고 싶어."


그녀가 보여준 책은 '제럴드의 세계 탐방'이라는 책이었다.


하르페이아는 자유라는 것을 책으로 공부했다. 멸망전 작가들의 저서, 영화를 보며 자유란 무엇인지 탐구했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다. '자기가 가고싶은 곳에 가보는 것.' 그것이 자유라 생각했다.


"여행..."

"나.. 나도 인간들처럼 이곳저곳 돌아다녀보고 싶어."


하르페이아는 얼굴이 빨게지면서 말했다.


"하핫"


사령관은 웃음이 터졌다.


"언제라도 말해줬으면 여행을 보내줬을텐데."

"그게 그... 항상 가고싶었지만... 이렇게 말하면 안되는데."

"알아알아. '바이오로이드니까' 잖아."

"사령관은 그런 사람이 아닌데..."


하르페이아는 기가 죽었다.


"한동안 작전도 없고 최근에 대형 사고로 제대로 쉬지도 못했으니까. 그것에 대한 보상을 해줘야지."

"정말?!"

"단! 조건을 지켜줘야해."


사령관은 검지를 하늘로 세우며 말했다.


"어디든 가도 되지만 어딜가는 지, 우리에게 말해주기."

"... 네?"

"밖은 위험하니까. 귀찮은 건 알지만 자유와 방종은 구분하기. 알고있지?"


사령관은 하르페이아의 몸상태가 좋아진건 맞기에 딱히 막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속은 다른 자매들과 다르다.


그것이 걱정되어 조건을 걸은 것이다.


"그리고 간 곳에 대해 조사하고 일기써오기.  바이오로이드의 눈이 아닌 하르페이아의 눈으로 세상을 관찰해줘."

"... 알았어."


하르페이아는 사령관이 제시한 조건들을 받아드렸다. 그리고 사령관도 휴가 요청을 받아드렸다.


3일 뒤 휴가를 떠나기 전날 하르페이아는 두근 거림에 잠에 못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 짐을 챙긴 하르페이아는 오르카 호에서 내렸다.


"다녀올게."

"잘 다녀와. 무전기 잃어버리지 말고"


하르페이아는 힘차게 걸었다. 오르카 호에서 멀어질 수록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에 기쁨이 가득찼다.


"자..."


하르페이아는 지도를 펼쳤다. 세계지도다.


"어디 부터 가볼까."





하르페이아는 여행을 시작했다. 


관광명소, 자연유산, 문화유산들을 찾아다녔다. 


파리에서 아직까지 서있는 개선문을 봤고 베를린에서는 기둥하나가 무너진 브란덴부르크 문을 봤다.


마추픽추에 올라가 끝내주는 절경을 보기도하였고 무너져 버린 소피아 성당의 폐허도 봤다. 피라미드는 두번 방문했다.


그녀가 가는길이 곧 길이고 텐트를 펼치면 그곳이 집이며 계곡물에 몸을 던지면 그 곳이 목욕탕이었다.


물론 이동 보고와 기록은 빼먹지 않았다. 약속이니까.


개선문을 감싼 덩굴, 더 찬란해진 마추픽추의 절경은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느낌있었고 흥미로웠다.


지금까지 겪은적이 없는 행복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휴가 막바지가 다가오는 동안 하르페이아는 대한민국의 서울에 도착했다.


"그러니까 여기가..."


하르페이아는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 봤다.


"그 인기게임 '패왕' 박물관인가. '인공영웅' 박물관과 붙어있네"


너무 서양에 치중되게 관광을 동아시아도 관광을 해야 겠다는 마음에 반나절을 날아서 도착한 것이다.


"게임을 위해 박물관을 만들다니 얼마나 대단한 게임인지... 유미씨 말로는 데이터가 유실되어서 복구를 못한다는데..."


'꿀꺽'


"여기에 정보가 있을지 몰라!"


하르페이아는 박물관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실망하며 나왔다.


"게임은 하나도 없고 캐릭터 상품들만 있네. 게임 박물관이라면 게임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르페이아는 멸망전 게임 박물관의 클라스에서 느낀 짜증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온천으로 이동하려 했다.


그때 였다.


그녀의 철충이 나타났다. 그녀는 철충의 존재가 보이자마자 건물 뒤에 숨어서 동향을 살폈다.


"전혀 느끼지 못했어... 후... 큰일 날뻔 했다."


하르페이아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인간의 뇌파를 인식하는 기능이 사라진 하르페이아는 같은 뇌파를 보내는 철충도 인식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근처에 접근해도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조금만 늦었으면 철충이 하르페이아를 인식하고 기관총을 날렸을 것이다.


"여긴 그래도 수복한 지역인데, 어떻게 나타난거지."


평소같았으면 응전했지만 이번 여행에 무기들을 들고오지 않았다.


"일단 이 사실을 사령관에게 전하고 도망을..."

"꺄악!"


그때 비명소리가 들렸다. 바닐라 A1 개체의 목소리다. 사령관실에서 많이 들었었다.


하르페이아는 비명이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닐라가 총상을 당한채 뒹굴고 있다.


그것을 본 하르페이아는 얼어 붙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만약 과거의 그녀였다면 사령관을 찾았을 것이다. 그의 선택과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도구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과거와 다르다. 그리고 지금 사령관은 옆에 있지 않는다.


그녀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에서 하나의 생각이 등장했다.


'구하자'


철충의 기관총이 예열음과 함께 발사하려는 순간, 다리에 달린 제트기의 출력을 최대로 높여 바닐라에게 달려들었다.


"꽉 잡아!"


그리고 순식간에 바닐라를 잡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철충은 하늘로 올라간 그녀들을 쏘려했지만 너무 높았기에 조준이 불가능했고 그 둘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