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독 보테배 오메가 보고시퍼

https://arca.live/b/lastorigin/9767641


아이를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오메가 보고시퍼

https://arca.live/b/lastorigin/20116778



순서대로 읽고 오시면 이해가 편합니다.




 

  *

  탁한 조명이 좁은 방 안을 어둑하게 밝혔다.


  방 한가운데에 놓인 의자 위에 초점 잃은 눈의 검은 머리 여자가 묶여있었다.


  이 방에 갇힌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힘겹게 낳아 간신히 품에 안은 아이를 보며 부드럽게 웃어주던 남자는, 갑자기 돌변하여 자신에게서 아이를 빼앗아 자신을 이 방에 가두었다.


  수많은 고통 끝에 간신히 품에 안아본 아이를,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아이를 미친 듯이 부르짖으며 방에 갇혔다.


  방에 갇히고 나서도 오메가는 묶인 의자에서 끊임없이 남자와 아이를 부르짖었다.


  울고


  빌고


  원망하고.


  찾는 사람 하나 없는 어두운 방에서 움직일 수 없는 의자 위에 묶여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시간 감각도 어그러졌다.


  어림잡아 세던 날짜도 4년이 넘어가고 나서부터는 세지 않았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아이는 얼마나 컸을까?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텐데. 


  엄마라는 말도 입에 담기 시작했을 텐데. 걷기 시작했을 텐데. 


  뛰어다니고, 웃고, 울고, 반찬 투정도 하고, 무엇이든 물어보고.


  사랑스럽게 자라고 있을 텐데.


  허나 그런 모습은 한순간도 보지 못한 채 여자는 그저 방 안에 갇혀있었다.


  시간이라는 독한 약에 절여진 머리는 녹슨 톱니바퀴처럼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울기에도, 소리치기에도 지쳤다.


  자신은, 언제까지 이곳에 갇혀있어야 하는 걸까.


  자신은, 한 번이라도 딸아이를 볼 수 있는 걸까.


  그때 육중한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하얗고 날카로운 빛이 작게 열린 틈 사이로 새어 들어와 연약한 눈을 사정없이 찔렀다.


  육중한 문이 닫히고 간신히 눈을 뜨자 이제는 얼굴도 흐릿하게 바랜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남자의 앞에 작은 여자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8살이나 되었을까.


  똘망똘망한 눈.


  앳된 얼굴


  어깨를 덮는 검은 머리카락.


  그 아이를 보자마자 오메가가 본능적으로 느꼈다.


  딸이다.


  딸아이를 부르려는 오메가보다 빨리, 남자가 조용히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탁한 조명 빛을 받아 둔중하게 빛나는 권총이 들린 오른손을.


  오메가가 숨을 들이켜며 속으로 비명을 지른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이해가 되었기에.


  아이가 남자를 올려다보며 우물쭈물 말했다.


  “아빠… 정말로 해야 하나요…?”


  “약속이잖니?”


  “그치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아빠는 모르는 사람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데. 소원을 빌고 싶다면 아빠와 약속을 지켜야지?”


  그 말에 아이가 불안한 눈빛으로 쭈뼛쭈뼛 오메가를 향해 다가온다. 


  떨리는 손으로 팔걸이에 묶인 오메가의 오른손을 잡은 아이가 손등 위로 커다란 말뚝을 올렸다.


  “무슨…?”


  아이가 불안한 눈빛으로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오메가의 손등 위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 소녀가 작은 망치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망치가 순식간에 오메가의 손등 위에 올려진 말뚝을 후려갈겼다.


  날카로운 말뚝이 뼈를 부수고 근육을 찢으며 파고들었다.


  “꺄아아아아악!!!!!”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 오메가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날카로운 비명에 아이가 히익 하고 신음을 흘리며 두려움에 젖은 눈으로 오메가를 바라보았다.


  “이런 이런.”


  아이의 어깨를 잡고 뒤로 물린 사령관이 허리를 숙여 오메가의 귀에 속삭인다.


  “당신 비명에 딸이 겁먹고 있잖아. 그렇게 소리쳐도 괜찮겠어? 내 손가락은 인내심이 부족해서.”


  사령관의 말에 오메가가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이를 다시 오메가의 앞까지 데리고 온 남자가 아이의 등 뒤에서 오메가에게 조용히 총을 흔들어 보였다.


  떨리는 손으로 말뚝을 꺼내 든 아이가 오메가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며 말한다.


  “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


  그렇게 말하며 아이가 다시 오메가의 손등에 말뚝을 박아 넣었다. 


  허리까지 꿰뚫는 무시무시한 고통에 오메가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간신히 삼켜냈다. 


  말뚝이 손등 뼈를 부수고 파고드는 것이 생생히 느껴졌다. 고통이 닥쳐올 때마다 오메가가 이가 부러질 정도로 악물어 비명을 참아낸다.


  “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


  아이가 고장난 인형처럼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이윽고 오메가의 손등에 말뚝을 박아 넣었다.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아낸 오메가가 숨을 돌릴 새도 없이 아이가 발등에 말뚝을 박아넣었다.


  “으으그극…”


  발등뼈를 부순 말뚝이 발바닥을 꿰뚫고 나오는 고통에 머리가 불타는 것 같았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오메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눈물과 비명을 삼키는 것뿐이었다.


  손발에 말뚝을 박아 넣은 아이가 눈물 젖은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망치를 붙잡은 아이가 뒷걸음질 치며 오메가에게 멀어지다 남자의 다리에 매달린다. 


  남자가 무릎 꿇고 아이를 품에 안자 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빠… 저 해냈어요…”


  “그래. 역시 내 딸이다.”


  “이제… 약속을 지켜주세요…”


  부탁. 몸을 갈기갈기 찢는 듯한 고통에 몸부림치던 오메가의 귀에 약속이라는 단어 하나가 날아와 박혔다.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를 만나게 해 주세요…”


  아이의 말에 피가 싸늘하게 식고 고통이 저 멀리 날아갔다.


  아이를 향해 웃는 남자의 얼굴을 본 오메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아빠가 너를 여기로 왜 데려왔을까?”


  “아니야!!”


  사령관이 웃으며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벌써 엄마랑 만났잖니."


  "아니야아아!!"


  사령관의 말보다 크게 오메가가 외쳤다. 그의 말이 자신의 목소리에 묻히기를 바라며. 그럼에도 남자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저기 있는 저 여자가."


  남자가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오메가를 가리켰다.


  "아니야!!! 아니야!!"


  "네 엄마란다."


  "아니야아아아아아아!!!!!"


  딸아이가 천천히 몸을 돌려 오메가를 바라보았다.


  공포와 경악, 후회와 자책. 수많은 감정이 뒤섞인 눈으로 딸아이가 오메가를 바라보았다. 무거운 입술을 간신히 움직여, 짧은 말 하나를 간신히 입에 담는다.


  "엄...마...?"


  "아니야! 아이야! 나는 네 엄마가 아니야!! 너는 내 아이가 아니야!!"


  무엇보다 가슴이 찢어지는 말.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밖에 없는 말.


  그러나 오메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보다 가슴 아픈 그 말밖에 없었다.


  "정말이에요…?"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딸아이의 얼굴은 그 무엇보다도 아팠다.


  "정말로 내 엄마가 아니에요? 내가 아프게 한 사람은 엄마가 아니에요?"


  아이가 공포와 기대가 뒤섞인, 차마 표현할 수 없는 표정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들어 보였다.


  "내 검은 머리카락은 엄마가 준 게 아니에요? 오르카 호에 있는 나같이 검은 머리카락을 한 사람들한테 전부 물어봤어요. 내 엄마가 아니냐고! 다들 내 엄마가 아니래요! 아빠는 내 머리카락은 엄마를 닮은 거라고 말하는데…!"


  눈물에 젖은, 그럼에도 눈동자 깊은 곳에 희망을 품고 아이가 물었다.


  “정말로 내 엄마가 아니에요…?”


  안 돼.


  “너는…”


  아이가 다칠 거야.


  “아이야, 너는…”


  나라는 엄마는, 없는 게 나아.


  그럼에도 참지 못하고.


  “엄마는…”


  그리운 딸아이의 눈물에 참지 못하고.


  “엄마는 괜찮아…”


  말해버리고 만다.


  “너는 아무런 잘못 없단다, 아가야…”


  간신히 웃어 보이는 오메가를 보는 아이의 뺨에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사랑스러운 내 딸...”


  “엄마…”


  그런 아이를 보며 오메가가 마른침을 삼켰다. 


  이러면 안 되는데. 


  우리 둘 다 위험해질 텐데.


  그럼에도 다가오는 아이를 사랑스럽게 보고 만다.


  꿈에서나 보았던 사랑스러운 딸아이를.


  품에 안아보고 싶었던 사랑스러운 딸아이를.


  아이가 한 발짝 한 발짝, 천천히 오메가를 향해 다가왔다.


  “엄마…!”


  탕!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고 아이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비틀거리던 아이가 털썩 무릎부터 무너지며 쓰러졌다.


  아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배를 내려다봤다.


  새하얀 옷 위로 붉은 피가 번져나갔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아이가 천천히 남자를 돌아보았다.


  “아ㅃ..”


  탕!


  다시 한번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고, 아빠라는 말도 채 끝맺지 못한 아이가 바닥에 쓰러졌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듯했다.


  핏방울이 흩날리고.


  아이의 두 눈이 천천히 빛을 잃고.


  더러운 바닥을 아이의 붉은 피가 천천히 물들여갔다.


  피가, 죽음처럼 천천히 퍼져나갔다.


  오메가가 탁한 조명 아래로 보이는 무표정한 남자의 표정과 연기가 피어오르는 총구를 보고 나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그가 딸아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을.


  “아아…아…아아아아아!!!!!”


  차갑게 식어가는 아이를 보며, 오메가는 의자 위에서 몸부림쳤다.


  “아가!! 아가야!! 아가야!! 고개 들어보렴!! 괜찮다고 말해주렴!! 엄마를 위해서 한 번만 웃어주렴!!”


  허나 오메가의 그런 간절한 외침에도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끝내 아무런 반응 없는 소녀의 모습에 오메가가 처절한 비명을 터뜨렸다.


  “아아아아아아아아!!!!!!!”


  남자가 울부짖는 오메가를 향해 걸어갔다.


  검은 구두를 아이의 피로 적시며.


  쓰러진 아이를 향해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발 앞에 쓰러진 아이가 있어도 남자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단단한 구둣발이 쓰러진 아이를 짓밟았다. 


  남자의 발아래에서 무언가 부러지는 듯한 불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나 남자는 발아래 한 번 내려다보지 않고, 그대로 아이를 밟고 넘어서 오메가를 향해 걸어갔다.


  딸아이의 피로 물든 발자국을 새기며.


  그 모습을 보며 오메가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의 무언가가 무너졌다.


  알아버렸기에.


  남자는 딸아이에게 애정도, 증오도, 애증도 아닌 정말로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버렸기에.


  오메가의 간절한 마음.


  보고 싶은 딸아이의 얼굴.


  배를 곪지는 않을까.


  미움받지는 않을까.


  나의 딸이라서 미움받을 텐데.


  어미가 보고 싶다며 눈물 흘리지 않을까.


  그럼에도, 그럼에도.


  수많은 눈물로 지새운 걱정의 나날 속에서 바랬던 단 한 가지.


  그래도.


  그래도 아버지에게만큼은 사랑받기를.


  그 마지막 기도조차도 짓밟은 남자가, 오메가를 향해 걸어왔다.


  "인가아아아아안!!!!!!!!!"


  분노에 미쳐 스스로가 무어라 지껄이는지도 모른 채, 오메가가 눈앞의 남자를 향해 울부짖었다.


  그러다 걸어오는 남자 너머 바닥에 쓰러져 엉망이 된 딸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하다.


  뚫린 구멍 너머 검은 무언가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는 듯하다.


  품에 안아주지 못한 어미를 용서하지 말거라.


  사랑해주지 못한 어미를 용서하지 말거라.


  구해주지 못한 어미를 용서하지 말거라.


  이 어미는, 네게 어미라 불릴 자격도 없으니.


  의자에 묶여 오메가가 몸부림쳤다. 눈앞의 남자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다. 목을 졸라 꺾어버리고 싶다.


  그 잔혹한 얼굴에 침을 뱉고 딸아이를 살려내라며 목이 찢어져라 외치고 싶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것은 의자에 묶여 코웃음도 치지 못할 분노를 토해내는 것밖에 없기에.


  오메가는 그 누구보다 스스로가 증오스러웠다.


  목이 찢어져라 울부짖고.


  더는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눈물 흘려.


  더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그저 고개를 떨구고 흐느끼는 것밖에 할 수 없을 때.


  남자가 여자의 머리를 휘어잡아 억지로 눈을 맞추었다.


  초점 잃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오메가를 보며 남자가 웃었다.


  그림자 하나 없는, 마치 어린아이 같은 한없이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남자가 말했다.


  "둘째 이름은 뭐로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