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엡실론_EP1 https://arca.live/b/lastorigin/26648771

라스트 엡실론_EP2 HARD RAIN#1 https://arca.live/b/lastorigin/26720767

라스트 엡실론_EP2 HARD RAIN#2 https://arca.live/b/lastorigin/26747149 

라스트 엡실론_EP2 HARD RAIN#3 https://arca.live/b/lastorigin/26770620





당신은 전쟁에게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

- 레프 트로츠키(1879~1940)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전쟁에 관심을 준 적은 없다.

처음부터 내가 제작된 목적이 전쟁이었다. 

존재의의 자체가 전쟁인데, 따로 관심을 전쟁에게 줄 수 있는가?

어쩌면 전쟁이 내게 관심을 주었기 때문에 내가 창조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그럼 전쟁은 자아를 가지고 행동하는 주체인가?



폭파 포인트 근처에서 약 10m 떨어진 낡은 나무둥치 안의 뿌리께 웅크린 채로, 곧 날아올 드론 감염체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기다리는 동안 잠시 사고회로의 처리능력에 여유가 생겼을 때는 저장된 메모리 내의 구인류 전쟁사 관련 기록들을 랜덤 서칭해보곤 한다.

원래는 기록 개요의 알파벳 머리글자 순서대로 색인한 데이터를 확인 후 실전에 적용하고자는 목적이었으나, 

랜덤 서칭 쪽이 단기간에 더 다양한 방면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음을 체감하였다.

그리고 효율과 더불어 이 랜덤 서칭을 통해 얻는 미지의 결과값에 대한 일종의 '기대감'을 선호하게 되었다. 

인간들이었다면 이를 '심심풀이'나 '장난'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할지도 모르겠다.



ㅡ 드론 감염체 감지. 폭파지정 포인트에 접근 중. 거리 150m. 

온다. 생각은 그만. 


ㅡ 140m.


고전압유탄 장전 확인. 모터를 한바퀴 공회전시켜본다. 큰 저항 없이 잘 들어간다.

무너진 막사에서 주워온 경기관총의 방아쇠가 인계철선이 당겨지면 발사되도록 조정해 놓는다.

총구 방향을 폭파 포인트 쪽으로 향하게 해 둔다.


ㅡ 130m.


매니퓰레이터 양쪽에 휴대용 연막수류탄을 두 개씩 꺼내쥔다. HUD 조준사격 모드로 전환. 


ㅡ 120m.


동시투척 시 예상탄착지점 모두 계산 완료. 연사하기엔 특수탄이 모자란다. HMG 조정간 반자동으로.


ㅡ 100m.


스러스터 예열 개시. 글라이딩 휠은....


ㅡ 90m.   80m.   70m.   60m.   50m.


...아니 그냥 뛰어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다. 

설치해둔 경기관총의 상태를 한번 더 확인한다. 이상 없음.


ㅡ 40m.


2차 매복지 및 이탈경로 확인 완료.


ㅡ 30m.   20m.   10m.



5m.


지금. 


연막수류탄 캡을 따서 투척. 계산한 대로의 탄착지점에 떨어진다. 바람이 심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철벅이는 흙바닥에 연막탄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 드론 감염체의 카메라가 돌아간다.

그 다음은 수류탄이 날아온 방향 ㅡ내가 있는 방향ㅡ 으로 시선을 돌리겠지.


나무둥치 위에 떠서 멈춰 있는 상태로 말이다. 

지금처럼.


기폭장치에 전자신호를 보낸다.

썩은 나무둥치 한가운데부터 단숨에 폭염이 솟구쳐오르며 상공의 드론 감염체를 집어삼켰다.

1.02초 후 연막탄이 터진다. 폭파지점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백색 장막이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저격형이 아직 쏘지 않는 걸 보니 내 위치가 포착되진 않았다.


1차 매복은 성공이다. 확실히 하기 위해, 추락하는 감염체를 조준하여 탄환을 한방 쏘아넣는다. 

순간적으로 청백색 스파크가 터져나가고, 배기구에서 전기불꽃과 연기가 쉭쉭대며 흘러나온다. 

충분히 잘 태워졌겠지.



이제 오는군. 레이더에 마지막 드론 감염체의 신호가 잡힌다.



연막 속에서 2차 매복지로 즉시 이동한다. 

나무둥치께의 뿌리줄기들과 얽혀 움푹 파인 흙구덩이. 바로 근처.

크지도 튼튼하지도 않지만 한번 나갔다 들어오기엔 충분하다.


내가 도망가기 전에 저격형에게 내 위치를 알려주고 싶겠지.

연막 안으로 들어오진 못하고 주변을 돌며 수색을 시작한다. 


철충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내게는 아직 안전한 공간.

여기 있을거라는 판단은 못 하나. 연결체가 없으면 철충들은 사고가 단순해지는 것 같다.


여기까지 연장해둔 인계철선을 끊는다. 이러면 설치해둔 경기관총이 발사되고...



쾅.



...저격형이 그 쪽을 노려 쏘겠지.


아음속탄이 날아옴과 거의 동시에 감염체 드론이 내 머리 위를 지나쳐 경기관총이 설치된 쪽으로 날아간다.

코어 뒤쪽이 훤히 보이는군. 사격준비태세를 갖추고 바로 구덩이 밖으로 뛰쳐올라간다.


드론 감염체는 아직도 등을 돌리고 총알이 날아온 쪽을 주시하고 있다. 

조준사격할 시간은 충분하다. 고전압유탄 한 발. 깨끗하게 엔진 후방을 관통하며 스파크가 번쩍인다.

반응로에 직격했나 보군. 폭발하며 타오르는 철충의 파편이 이쪽까지 날아온다. 확인사살할 필요도 없다.



저격형이 다시 사격할 때까지 시간이 아직 남았다. 

순간적으로나마 모니터에 남은 발사광.

연막을 통해 남겨진 아음속탄의 궤적.

빗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반향음.

종합된 모든 정보가 모여 목표물에 도달하게 해주는 단서가 된다. 


ㅡ 음향 감지 센서 데이터 확인.

ㅡ 탄도 데이터 확인. 

ㅡ 데이터 종합 완료. 가까운 순서대로 추산된 저격 가능 포인트 위치 및 거리 표시.


스러스터 작동. 점프하여 안전한 장소로 이탈한다. 

연막이 걷히고 나면 나는 그 장소에 없을 것이다.


놈도 멍청하게 그 장소에 그대로 있진 않겠지. 하지만 수색범위가 크게 좁아졌다.

곧 더 가까운 거리에서 교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 교전이 될 것이다.


추산된 첫번째 저격포인트로 이동한다. 





빗물에 젖은 가파른 경사면을 기어오르고 있다. 진흙과 암반이 미끌거린다.

코어 덮개와 HUD에 쏟아지는 비가 시야를 방해한다. 냉각이 잘 되는 점은 좋군.

주변은 칠흑같이 어둡다. 서치라이트를 켤 생각은 여전히 들지 않는다. 


반응로에 물린 수소 전지가 끊임없이 동력을 뽑아내며 전자두뇌를 가속시킨다.

 

은신한 적을 추적하는 고금의 갖가지 방법을 검색한다.

내 존재를 알고 매복한 적에 대한 최선의 대비책을 마련한다. 

눈을 잃은 저격수의 약점을 효과적으로 찌르고 사냥하는 법을 궁리한다.


소유하고 취득할 수 있는 모든 전술적 지식과 정보를 종합하고, 논리적 판단 하에 최선의 결론을 내려 실행한다.

고로 나는 생각한다.



전쟁이 나를 만들었다.

이제 내가 전쟁을 만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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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tional objectives>

제 1목표 : 살아있는 인류의 발견 및 생존과 수호


제 2목표 : 모든 철충의 제거 및 박멸


제 3목표 : 제 1목표와 제 2목표에 위배되지 않는 한, 본 기체의 작동 활성화 상태를 유지ㅡ생존할 것


기록:

육군 32사단 AGS 1연대 4중대 3소대 

엡실론 분대 1/5

CT2199W 폴른 No.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