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도쿄도 경시청 본청 지하주차장,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퇴근시간이라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그는 도쿄도 경시청 공안부 공안 1과 소속의 형사였다. 이치가야 쿄세이라는 이름이 그의 형사뱃지에 적혀있었다.

 그가 이른 시간에 경찰청을 나서려는 이유는 퇴근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급히 가야할 곳이 있었다. 그는 주차장 한켠에 세워진 자신의 유럽제 자동차로 걸어갔다. 조수석 문을 연 그는 조수석에 자신의 가방을 놓은 뒤 차를 돌아 운전석으로 탑승했다.

 그가 의자에 앉고 문을 닫자 의자는 그의 몸에 맞추어 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최적의 모습으로 변형했다. 그가 앉은 운전석에는 앞에 모니터와 수도 없이 많은 버튼들이 있었다. 그는 그 버튼들의 의미와 작동법을 알지 못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환영합니다, 이치가야씨.

 그가 시동을 켜자 화면에는 자동차회사의 로고가 뜨고 그에 뒤이어 정장을 입은 OL 여성이 나타났다. 그 여성은 실제 사람이 아니었다. 차안에 있는 AI였다. 원래 환영하는 말의 디폴트는 ‘환영합니다, 주인님.’이었다. 하지만 이치가야는 주인님이라는 말이 어색했고 대신 자신의 이름을 부르게 한 것이었다.

 어째서 이치가야는 그 버튼들을 알지 못하는가. 그것은 AI가 있기 때문이었다. 차 안의 수많은 버튼들은 그저 항공기의 모습을 본따기 위해 만들어진 장식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사실 대형 항공기들조차 자동화가 되며 버튼하나 없는 비행기까지 나오는 것이 현실이었다. 아마도 구세대 전투기를 모티브로 만든 것이었겠지. 심플 이즈 베스트라지만 복잡한 것이 좋을 때도 있었다.

 자율주행차가 나온지도 40년이 넘었다. 이제와서는 자율주행이 되지 않는 차가 더 이상한 차였다. 심지어 자율주행 통합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자율주행이 되지 않는 차는 퇴출해야 한다는 말까지 들리던 시기였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를 보내셨나요? 아, 오늘은 퇴근이 빠르시군요.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이치가야는 AI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신문을 가방에서 꺼냈다. 그것은 종이재질의 신문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존 종이신문과 같은 크기의 접을 수 있는 전자 종이였다. 일본은 인터넷 기사가 무료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기사는 돈을 내야 볼 수 있었다.

 신문 구독서비스가 없어지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개별 기사에 돈을 내는 것보다 한번에 돈을 내고 여러 기사를 보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이게 만든 것이었다. 어차피 지금 같은 시대에 여유롭게 신문기사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돈을 아끼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

 운전석에서 신문을 펼쳐든 그는 출근길에 읽다 만 부분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말을 했다.

 “도쿄지검으로 가줘.”

 -도쿄지검말입니까? 잠시만요... 도착했습니다!

 갑자기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AI의 말에 이치가야는 눈썹을 찡그리며 신문을 접어 조수석에 놓았다.

 “무슨 소리야. 도쿄지검. 거기로 가라고.”

 -네 알겠습니다. 도착했습니다!

 AI의 말에 이치가야는 한숨을 쉬었다.

 “도쿄도의 도쿄도지방검찰청으로 가.”

 -잠시만요... 도착했습니다!

 AI가 세번째로 같은 말을 다르게 반복하자 이치가야는 머리끝까지 솟아오른 화를 간신히 참았다.

 “지도로 경로 확인해봐. 도쿄지검 말이야.”

 -현재위치에서 도쿄지방검찰청으로 가는 루트입니다.

 “하아...”

 화면의 지도를 본 이치가야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지도에 현재위치가 경시청 앞 도로도 되어있었던 것이었다. 이치가야가 있는 도쿄 경시청 본청의 앞에는 법무부 건물이 있었고 그 뒷편에 있는 것이 도쿄지방검찰청이었다.

 지하주차장에 있어서인지 GPS가 현재 위치를 제대로 잡지 못해 일어난 버그였다. 현위치가 잘못되어 바로 앞에 있는 도쿄지검의 앞에 도착했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이치가야는 혀를 찼다. 아직도 기계는 믿을 수 없다니까.

 “수동운전 모드로 변환해.”

 아카사카에 있는 그의 집에 갈 때에는 이렇게 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지하주차장을 나서면 GPS 오류가 고쳐져 제대로 된 루트로 안내를 하니까. 이렇게 가까운 곳에 가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길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중에 시간이 날 때 고객센터에 가서 항의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운전해서라도 도쿄지검에 가야 했다. 그의 말에 화면 밑에서 접혀있던 핸들이 나와 펼쳐졌고 발 아래에서는 페달이 올라왔다. 그가 핸들에 달린 기어를 조정하자 차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도쿄지검으로 가면서 기사를 한두개 정도 더 볼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는 얄짤없이 그곳까지 운전을 해야 했다. 특히 지하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것은 고역이었다. 경시청 본청 지하주차장의 출구는 단 한개였다.

 언론이 제일 좋아하는 주차장 출구를 설문조사하면 2위나 3위정도 할 것이 분명한 유명한 주차장 출구였다. 특히 유명사건이 터지고 경찰서에서 다른 곳으로 피의자가 이송될 때면 수많은 기자들이 나오는 차량을 향해 플래시 라이트를 터트리곤 했다. 이것이 다 경시청 주차장의 출구가 단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기자들에게는 좋은 소식이었지만 경시청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이는 고역이었다. 경찰에게 낮과 밤은 없다 했지만 이래뵈도 공무원이었다. 정시에 퇴근하는 경찰과 경시청직원들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았고 그 중 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덕분에 퇴근시간이면 주차장은 언제나 혼잡했다.

 어느정도냐면 그 혼잡을 피하기 위해 일찍 퇴근할 수 없으니 일부러 저녁을 먹고 천천히 퇴근하는 경찰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퇴근하는 경찰의 말에 따르면 집에 도착하는 시간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하니.

 그런 점에서 보면 이른 시간에 경시청 본청을 나서는 이치가야는 다행일지도 몰랐다. 수많은 차들이 출구에 몰리는 꼴은 보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주차장을 나선 그는 경시청을 끼고 크게 좌회전을 한 뒤 국회의사당 앞 교차로에서 왼쪽차선을 타고 가 국토교통성 앞에서 좌회전을 한 뒤 조금 더 가 도쿄 변호사 협회 앞에서 다시 좌회전을 하고 조금 더 나아갔다.

 그렇게 5분을 운전한 뒤, 그는 도쿄지방검찰청 앞에 도착했다. 고작 2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일방통행과 우회전 불가의 환상적인 조합 덕분에 그는 빙빙돌아야 했다. 그리고 이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는 자율주행 차량에 화가 났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아무 악의없는 AI의 말에 이치가야의 참으려던 화가 터지려는 찰나였다.

 “형사님, 안녕하세요!”

 흰 반팔 와이셔츠를 입은 누군가가 밝게 웃으며 조수석 창문을 두드렸다. 그가 이치가야가 만나기 위해 찾아온 이유였다. 이치가야는 화를 내는 대신 문 잠금해제 레버를 당겼다. 덜컥 하는 소리가 났고 밖의 그는 문을 열고 조수석에 올라타려 하자 이치가야는 조수석에 있는 자신의 가방과 신문을 뒷좌석에 던져놓았다.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에는 검찰청의 ID카드가 달린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그 ID 카드에는 그의 사진과 마츠야마 켄조라는 그의 이름과 그 뒤에 검사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도쿄지검 특수부 마츠야마 켄조 검사. 사람들은 보통 그를 그렇게 불렀다.

 도쿄지검 특수부. 길게 말하면 도쿄지방검찰청 특수수사부였다. 100년넘게 일본의 재벌이나 정치인의 비리를 파헤쳐온 것으로 유명한 검찰청 최고의 수사팀이었다. 마츠야마 켄조는 그런 특수부에서 일하는 수많은 검사중 하나였다.

 “와 차 좋네요. 버튼도 많고요. 이거 전부 국민의 세금으로 산 건가요?”

 마츠야마는 차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차가야의 차는 어디서 싼 차라고 불릴만한 차를 타지 않았다. 오히려 대부분의 곳에 가도 꿀리지 않는 고급차였다. 대시보드는 원목과 고급 가죽으로 장식되어있었고 거의 쓸 일이 없는 핸들조차 고급스럽게 마감되어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마츠야마와 같은 반응을 보이겠지. 하지만 마츠야마가 할 말은 아니었다.

 “검사님은 차도 있으면서 왜 제 차를 같이 타자고 한 거에요.”

 이치가야는 한쪽 팔을 창가에 올리며 말했다. 이치가야는 마츠야마의 차를 본 적이 있었다. 이치가야의 차보다 비싼, 누가봐도 진짜 고급차였다. 그런 차를 타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이런 저런 일이 있어서 말이죠. 지금은 그쪽이 가져가 수사중에 있어요. 누가 차에 폭탄을 심어놔서 말이죠. 차에 침입 경보기능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거에요. 그리고 형사님도 제 소식을 들었겠죠. 뉴스에도 나왔을 테니요.”

 마츠야마는 웃으며 말했지만 웃을 일이 아니었다. 현직 특수부 검사에 대한 암살미수. 쉽게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대충 어느 조직 소행인지 밝혀졌나요? 요즘 수사하는 것때문에요?”

 아마도 이치가야의 귀에도 곧 들려올 이야기일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보다 조금 더 일찍, 당사자의 입으로 듣고 싶었다.

 “뭐, 어딜 수사하는지는 아직은 대외비라서 말이죠. 일단 약속한 그곳으로 갈까요? 롯폰기 힐스로 가줘.”

 마츠야마는 운전석의 화면에 있는 AI에게 말했다.

 -현재는 수동운전 모드가 활성화중입니다. 자율주행은 수동운전모드를 해제해야 작동합니다.

 “수동운전? 아, 여기까지 직접 몰고 오신 건가요?”

 “자율주행에 버그가 있어서요. 나중에 한마디 해야죠. 경시청에서 여기가 가깝다고 루트를 아예 못잡더라고요. 나중에 검사님도 한번 경시청으로 자율주행으로 와보세요. 제대로 오나. 아니면 경시청에서 왔다가 돌아갈 때라도요.”

 이치가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롯폰기도 수동운전으로 갈 예정인가요? 저는 요즘은 운전하는 법도 까먹어서 말이에요. 면허를 양심적으로 반납해야 하나 고민할 정도라니까요."

 “저도 그럴 줄 알았죠.”

 그렇게 말한 이치가야는 기어를 중립으로 맞춘 뒤,

 “자율주행 모드로 복귀해.”

 라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자율 주행모드로 이행.

 핸들은 접혀 깔끔하게 모니터 아래에 수납되었고 페달은 아래로 내려가 발판의 일부가 되었다. 핸들에서 손을 뗀 이치가야는 등을 뒤로 기대 편하게 앉았다.

 “정확히 위치가 어디죠?”

 “롯폰기 힐즈 뉴 모리 타워. 거기 최상층에 좋은 바가 있어요. 거기서 한잔 하시죠.”
 라며 그는 일본주잔을 드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바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제스쳐였다.

 -뉴 모리 타워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제대로 자율주행이 되는 모양이었다. 물론 신문은 읽을 순 없었지만.

 도쿄지검 앞에서 출발한 차는 도로로 나아갔다. 롯폰기 힐즈. 경시청 본청과 도쿄지검이 있는 사쿠라다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