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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 정말로 혼자가야겠어?"


"난 애초에 지휘같은걸 소질도 없고. 그냥 혼자다니는쪽이 편해서."


하루도 조용할날이 없는 함장실은 다시 싸늘한 분위기가 감돈다. 메이가 내 앞으로 다가와 눈을 마주친다.


"잘 들어. 이건 중요한 일이야. 바이오로이드를 구조해서 오르카호로 데리고오는거라고.


나는 자기말도 책임못지는 남자는 별론데?"


이 싸늘한 분위기의 원인은 내가 오늘 아침에 던진 폭탄선언이다. 나 혼자 밖으로 나가 바이오로이드들을 구출해오겠다. 그 말을 듣자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주인님. 챙겨야할 사람이 많은게 불편하신거라면... 하다못해 절 데려가주세요!"


"안돼. 넌 탱커가 아니잖아. 저격수인 나랑 포지션이 겹쳐."


이게 다 효율을 중시한 판단인데 왜들그리반대가 심한지. 


다같이 밖으로 나간다면 이 오르카호는 누가 지켜. 육지에 정박해됬다가 지나가던 철충에게 빈집털이라도 당한다면...


"우린 다 거지되는거야. 알아?"


"확실히... 오르카호는 계속 바다에 머무르는게 안전하겠군."


"요안나! 그게 지금 할소리야?"


"진정하게나 그리폰. 우린 아직 사령관이 뭘 할수있는지 알지 못하네. 나는 주군을 한번쯤 믿어보는쪽을 택하겠네."


요안나가 호탕하게 웃으며 나를 지지해준다. 


"거기에 하나더. 이건 나만 가능한 방법인데 말이야... 


인간인 내가 직접 나서면 만나는 바이오로이드한테 명령할 수 있잖아?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것같아?"


"협상이나 사정설명같은 귀찮은 과정은 필요없겠네. 


눈앞에 인간이 있는데 그런걸 따질 머저리는 없을테니까


흠...좋아. 실패하면 인류멸망밖에 더하겠어?"


***


"흐흐... 흐흐흐..."


오르카호를 나오자마자 웃음이 나온다. 


내 손에 들려있는 크고 아름다운 저격총. 사실 이걸 실전에서 써먹어보고 싶었다. 도시 외곽지역에서 출발해 안쪽으로 들어가라고 했었나?


"좌우좌. 메이가 준 지도좀 꺼내줘."


"여기 있느니라."


아무리 말리고 타일러도 따라온다는 좌우좌는 막을 수 없었다. 명령하면 강제로 떼어놓을수는 있지만 금세 토라질게 뻔한데 차마 그럴수는 없었다.


"잘들어 좌우좌. 여기서부턴 내 말만 따라야해. 무슨일이 있어도."


"후.후후! 걱정 말거라 권속! 이 진조와 함께라면 철충따위는ㅡ"


쿵!


"씨잉... 알겠어..."


꼭 머리를 쥐어박아야 말은 듣는단 말이야. 주변의 건물이 점점 더 높아진다. 포장된 도로를 따라 고층건물 사이를 거닌다.


"음... 권속이여. 이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구나."


"그렇네. 아무것도 없...


진 않은데?"


질척.


발에 찐득하게 핏물이 엉겨붙는다. 시야 구석에 핏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저걸 따라가는건 바보짓이나 다름 없지만... 


'그래도 누가 살아있을지도 모르니까.'


"좌우좌. 자세를 낮추고 발소리를 죽여야해. 내가 하는대로만 따라해."


"인비저블 프린세스이니라..."


모퉁이를 돌자 지하주차장의 입구가 나왔다. 물신 풍기는 피냄새가 무슨 광경이 펼쳐질지 예고해주고 있었다.


격렬한 전투의 흔적. 죽어있는 바이오로이드들과 철충들. 그 시체가 수어개는 있었다. 


"이미 늦은건가... "


시체들을 옆으로 대충 치워두고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고인 핏물웅덩이 안에 아직 구조신호를 보내고있는 신호기를 발견했다.


"신호는 여기서 나오는거였네..."


신호기의 작동을 중지시키고 지도를 다시 꺼내들었다. 구조신호중 하나를 지웠지만 아직도 이 주변에는 구조신호가 가득했다. 설마 전부 죽어있는건 아닐 것이다. 


아니어야 한다...


"좌우좌. 조금 서둘러야 할 것 같은데. 아직 움직일 수 있지?"


"그... 그게 ... 무.물론이니라...우웁."


아. 이건 안될 것 같다. 


좌우좌의 얼굴이 심각하게 창백해졌다. 총을 잠시 내려놓고 좌우좌를 꼭 안아주었다. 


"미안해. 시체찾느라 널 못챙겨줬네."


처음 보여줄 광경이 설마 이정도로 하드한걸줄은 몰랐다. 철충이 죽은것만 봐왔지 진짜 피흘리는 시체는 이번에 처음보는걸텐데.


 "미안해 사령관...


 근데...나 너무 무서워..."


***


결국 간신히 좌우좌를 달래고 그날은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철충이 습격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고층으로 올라가 텐트를 쳤다. 먼저 잠들어버린 좌우좌를 뒤로하고 포츈에게 받은 통신장치를 작동시켰다.


[흐응? 자신만만하게 나온것치곤 하루만에 통신이라니?]


"그래...내가 죽일놈이다. 그런데 여기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


메이에게 방금전 보았던 상황을  간략하게 전했다.


[시체는 죽은지 얼마나 됬었어?]


"완전 싸늘하던데?  죽은지 얼마나됬는지도 잘 모르겠던걸?"


[...지금이라도 돌아올거야?]


메이는 약간 눈을 찡그리며 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대로 고립된 바이오로이드들이 죽는것보다 사령관의 목숨이 몇만배는 소중했다. 잔혹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그런 계산을 하기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나도 바보는 아니야 메이. 원라라면 돌아왔겠지."


내가 뒷주머니에서 피묻은 탄환 하나를 꺼냈다. 그 자리에 죽어있던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총알. 


[그냥 총알 아니야?]


"모르는 소리. 이건 특수탄이야. 그것도 제압용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살상력을 낮춘 탄환이라니. 농담이 따로 없어."


기껏 쐈는데 죽이지도 못한다니. 쓸모없어보이는 물건이지만 간혹가다 쓰이는경우도 있었다.


"범죄자 제압이라던지 대테러 특수부대. 같은곳에 말이야."


[특수부대라면... 


있어. 


몽구스팀중 한명이 그 근처에서 실종됬었어.]


일단 한명정도는 살아있다. 그것만으로 수색을 계속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면 이걸로 용건은 끝. 통신 종료할게."


[조심해. 지


금 사령관을 잃는다면 손해가 너무 커. 내가 사령관을 믿어주고 있다는걸 잊지 마.]


살벌한 경고를 보내며 메이가 통신을 끝냈다. 슬며시 미소지으며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좌우좌가 눈을 뜬다.


"으음... 사령관...""


"좌우좌 


말해야할게 있어.


더이상 널 챙겨주기가 힘들어. 지금부터는 정말로 위험해질 것 같거든."


"왜!? 아니... 무슨 일로 그러느냐 인간!"


대뜸 발끈하며 일어선 LRL. 그렇지만 미약하게 떨리는 눈동자는 숨길 수 없었다. 오늘 본 처참한 광경이 아직 눈에 선했다. 어린아이에게 그런 광경은 아직 일렀다.


"내일 연락하면 그리폰이 널 데리러 올거야. 그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ㅡ"


"싫어! 싫다고!


다들 나보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나도...나라도..."


목이 메어오는 것을 꾹 참으며 좌우좌는 말을 이어갔다. 오르카호에서도 그녀는 어린애취급이었다. 생산비용이 저렴한것만이 장점인 LRL은 다른이들을 도와주기에 버거웠다. 


"하... 정말로 괜찮겠어?"


"후!


후!후! 짐은 유구의 세월을 살아왔도다!"


그래. 그래야 우리 좌우좌지. 다시 웃는모습이 참 보기좋다. 


'기합이 좀 들어간거 같으니까. 이쯤이면 적당하겠지?'


배낭 안쪽에 깊숙이 숨겨두었던 주사기처럼 생긴 물건을 꺼낸다.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강해지고 싶지않아?


이건 전투모듈이란거야. 이걸 주입하면 너도 최소한은 싸울 수 있어."


포츈에게 사정사정해서 특별히 받은물건이다. 


비전투원인 LRL 에게 전투모듈을 달아주는건 비효율의 극치라고 메이에게 욕먹어가며 허락받은 일이다.


"문제 없도다! 


...그런데 사령관, 주사면 아픈거야?"


"그냥 약간 따끔해. 뇌에 부착해야해서 정수리에 놔야하는거 빼면."


도망가려는 좌우좌는 붙잡는다. 버둥거리지만 내 손바닥 안이다.


"아 한번이면 끝나! 딱 한번이면!"


"싫다! 지금이라도 역시 오르카호로 돌아가겠다~!"


푹!


'이렇게하는거... 맞겠지?'


좌우좌의 정수리에 큼지막한 구멍이... 아니다. 난 아무것도 못본거다. 포츈이 같이 챙겨준 소독약과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놓는다. 음 된것같다.


...


"좌우좌? 대답좀 해봐. 응?"


착.


뺨을 때려보지만 반응이 없다. 


'이거 진짜 큰일난거 아니야? '


"좌우좌! 일어나봐"




팟!




...만약이때.


눈을 감고있지 않았다면 나는 실명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시신경을 불태우는듯한 빛을 간신히 손으로 가리고 서서히 눈을 뜬 좌우좌를 바라본다.


"작렬하라 사안이여!


후. 후. 이제 짐을 사이클롭스 프린세스라고 부르는걸 허락하겠노라!"


"큭! 눈이!"


좌우좌의 섬광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서 낮선이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저런 바이오로이드를 알지 못한다. 스텔스 장비와 가벼운 무장만을 두른 모습에 나는 그녀가 암살자에 가까운 부류라는걸 직감했다.


ㅡ!


철컥.


등에 매고있던 총을 손에 쥐는데 2초. 눈앞의 수수께끼의 여성을 조준하는데 한순간도 걸리지 않았다. 


"항복하는게 좋은 것이다. 이 드래곤 슬레이어에 묻은 무수한 핏물중 하나가 되고싶지 않다면!"


이제 내 성격을 파악한 좌우좌도 도끼를 들이밀며 쓰러진 여성을 위협했다.


"...그게... 


절 찾아내시다니 대단하시군요."


응 그래. 내가 좀 대단해.


총구로 볼을 툭툭 건리리며 위협하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연보라색 머리의 여성. 


바이오로이드인가? 구별할 방법이 있지.


"명령이야. 이름을 대고 여기서 뭘 하고 있었는지 말해."


바이오로이드라면 내 명령을 거부할수는 없을 것이다. 


"저는 ... 팬텀. 버뮤다팀에서 만들어진 AL 팬텀이라고 합니다. 


일단 바이오로이드라는 거군. 명령으로 도망치거나 움직이지 못하도록 구속해놓은 후 질문을 이어갔다.


사실. 인간님이 이곳에 발을 들였을때부터 뒤를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왜?"


"인간님의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당신은 현재까지 확인된 유일한 인간이니까요."


팬텀은 스텔스상태에서 사령관과 만났었다. 


마침내 인간을 발견한것이 너무 기뻤지만 근처의 철충들을 확인하고 바쁘게 움직였다.


"그렇게 하루종일 주위를 얼쩡거렸으면...


날 죽이려면 죽일수도 있었겠네?"


"네? 아니요?! 그럴 생각은 단언코 없었습니다. 애초에 전ㅡ"


"헛소리. 전쟁때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들은 애초에 인간을 죽이려고 만든게 대부분이야. "


소름돋는다. 하루종일 붙어있었는데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스텔스능력. 거기에 버뮤다팀이라는건 들어본적도 없다. 그렇지만 아직도 의문이 남는다.


"그리고 그럴거면 ...


나한테 모습을 드러내고 밀착경호하는편이 낫지 않아? 


왜 굳이 호위대상한테까지 모습을 숨기면서 주위를 맴돌아야 했지?"


...


...


"그게...


언제 말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