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lastorigin/27542461

1편



*2일차, 아침


으음.... 


오르카 호는 항상 철충과 대전 중이며 듣기로는

우주 외부 세력의 위협도 견제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전투 태세를 갖춘다고 한다.

때문인지 군대처럼 오전 6시 30분이면 함내의

모든 방이 자동으로 점등되는 모양이다. 


...'군대 같다'는 인식이 있는 것을 보아 아무래도

나는 대한민국의 군필 남성이었던 모양이다. 

아쉽게도 기상과 함께 뇌가 회복되어 모든 기억을

되찾는다는 희망적인 전개는 포기해야할 듯 싶다. 



기침하셨나요, 인간 님?

어제 말씀 나누셨던대로 일정을 진행하기 위해

찾아왔어요. 준비가 되셨으면 문을 열어주세요.


응? 으응! 알, 잠깐만 기다려줘!


6시 30분에 기상하자마자 일과가 바로 시작된다니

아무리 그래도 씻을 시간 정도는 줘야할 거 아니야!

하는 생각과 함께 서둘러 간단히 세안을 마치고서

문을 개방했다.


콘스탄챠 모델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함교로 향했다. 오늘 내내 사령관이 지휘한다는

모양이다. 


앗, 아스널 님.


오, 콘스탄챠. 

..그 옆에는 두 번째 인간이신가 보군?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걸어오는,

짙은 갈색의 장발을 찰랑거리면서 의기양양한 

표정의 여성, 아스널이라고 하는 바이오로이드가

나를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안에 든 것이 인간이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뇌파로만 대상을 특정하기보다

시력 의존도가 더 높은 나로선 인간 대우하기가

힘들 것 같군. 이해해주게나.

아, 그렇다고 사령관과 차등대우할 의도는 없다네.

어디까지나 동등한 입장에서, 알겠지?


응..  알겠..어.


바이오로이드의 몸이라 그런지, 아마 고위급의

개체로 보이는 저 바이오로이드에게서 위압감이

느껴졌다.



아스널 님, 사령관 님과 계시다가 오는 길이시죠?


응? 아아, 기분좋게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를

조금 했다고 해야 할지. 

아, 그러고 보니.. 오늘 경호담당은 경호실장인 것

같더군. 조심해야겠어? '블랙 리리스'라고 말하면

무슨 의미인지 알려나?



......!!!!!

블랙 리리스라면, 그....?


...


블랙 리리스는 과거 자신의 주인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인간을 살상한 남성 바이오로이드의 전면

폐기를 일으킨 T-1 고블린과 같이 주인에 대해서

충성심이 극에 달해, 주인에 위해를 가하는 대상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즉 인간이라 할지라도 죽여서

문제 시됐지만 재벌가들의 비호 덕분에 오히려 그

매출이 올랐다고 하는... 


...


말은 안 해도 표정을 보니 이해한듯 하군.

아무리 사령관이 인간 대우를 해준다고 해도

도리에 벗어나는 언사는 주의를 하라는 말일세,

아직 아무 사건도 저지르지 않은 상태이니까

단순히 시비를 거는 것처럼 들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네만, 내 진심이 전해졌음 좋겠군. 



아, .....아.. 명심할게.



쿡쿡, 일단 오래 살아남아야 꿈에 그리던 도원향을

맞이할 수 있는 게 아니겠나?

남자라면 이 무수한 미모의 여성들에게 둘러싸여서

주지육림의 생활을 누리는 것도 어느 정돈 기대를..



아스널 님.



음. 조금 장난이 지나쳤군. 

..하지만 콘스탄챠. 이것도 '도움'이 됐겠지.


...

아스널은 싱긋 또 다시 미소지었다. 하지만 어쩐지

공기가 급속도로 냉각된 것만 같았다.

...


나는 다시 콘스탄챠S2의 안내로 함교로 향했다.

아직 오전 7시도 안 되었는데, 대형 스크린에서는

철충과 교전중인 부대원들의 영상이 송출되고 있고

높은 자리에 앉은 사령관은 지도와 다른 부대들의

상황을 직접 보거나 즉각 보고 받으면서 지휘를

하고 있었다. 



...이리로.


멍하니, 그 정신없는 지휘 장면을 바라보다가 결국

콘스탄챠의 손에 이끌려 사령관이 앉아있는 자리

옆까지 붙들려왔다.


사령관은 한참 전투 지휘하다 곧 내 존재를 깨닫고

나를 향해 가볍게 미소지었다.


....!!!!


방심하고 있다가, 훅 들어오다니.

일에 집중하는 남자의 모습과 일상에서의 갭

이 두 가지 공격을 한번에 하는 걸 보니 역시

천상 지략가구나 생각이 들었다.


...전투 지휘는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어느샌가

2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제2의 인간 님?

보시는 것에 대한 소감을 들을 수 있을까요?



응?아. ...

미안.. 난 진짜 전혀 모르겠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안 들어. '바둑'처럼 바이오

로이드들을 미리 적재적소에 배치해두는 큰 그림을,

사실 어디까지가 큰 그림이었는지도 몰랐을 정도야.

그런 것을 쉬지도 않고 저렇게 할 수 있다니 놀라워.



... 인간 님도 충분히 숙달되면 가능하실 거예요.


아니! 난 진짜 무리야.

난 사령관과 달리 지휘 모듈 이런 것도 없는걸.

사령관이랑은 전혀 다른 몸이지....



주인님에게도 '지휘 모듈' 같은 건 없으세요. 


에?


주인님은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된 인간의 몸일 뿐,

그것 말곤 큰 차이가 없으세요.

제2의 인간 님이 쓰고 있는 그 AG-1네레이드의

육신이라면 적어도 근지구력 정도는 주인님과

감히 필적할 수 있겠지만요.


에......


...

다시금 전투 상황 화면을 보았다. 대형 스크린 외에

수십 개의 작은 화면, 부대 물자 보급 상황판, 지도들

동시에 크고 작은 전투를 수행하고 있는 사령관.


이게... 정말로 나랑 같은 인간이라고?


그후 2시간이 더 넘게 함교의 사령관 옆을 지키다

다른 컴패니언 소속 경호원, 펜리르가 리리스와

교대를 마치고 나는 리리스, 콘스탄차S2와 함께

병영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굉장히 떠들썩해서 마치 여고 같았다.




오? 인간 님! 오늘은 저희와 함께 식사하심까?!


어??..응...


헤헷 운이 좋으시지 말임다!

오늘 중식 식단은 해물비빔소스, 고순튀, 된장찌개임다!

크으 군침이 싹돌지 말임다! 

어제는 잘 주무셨슴까?


억.엉... 으음, 근데, 우리.. 만난 적이 있...나?


엣...


어, 음.. 어제 새벽 3시쯤 화장실에 가시지 않았슴까?

그때, 불침번을 섰던 브라우니70252임다..



아, 그래..

어. 점심 맛있...   게 먹구.


예.. 인간 님도 맛있게 드십쇼..


브라우니가 힘이 빠진듯하면서도 아리송해하는

표정으로 뒤돌아 가면서 혼잣말을 하는 것이 들렸다.



흐잉.. 인간 님은 원래 잘 기억을 못하시는 건가?

아님 역시 사령관 님이 특별하신 걸까.. 



... 차차 익숙해지실 거예요. 



...오후에는 뭘할까?


1. 직접 전투를 지휘해보자!

2. 함내를 더 돌아다녀보자.

3. 해군기지 구경을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