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y had a little lamb. Little lamb, little lamb."

                                                                                   -Mary had a little Lamb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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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변가에다 성을 쌓으면서 놀고 있던 엘프리데가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이들도 덩달아 바다를 쳐다보았다. 혹시라도 바다에 뭐가 있는가 싶어서 경계하던 이들은 엘프리데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녀가 쌓고 있던 성으로 다시 관심을 돌린 이후에도 한동안 바다 쪽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어린 아이들이 모래를 가지고 모래성을 쌓으면서 놀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더치 걸 정도 크기의 검은 용, 엘프리데도 흙으로 된 성을 쌓으면서 놀기를 좋아했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어린 아이들이 그냥 모래와 흙으로 성을 만든다면 엘프리데는 물로 반죽한 흙에다 불을 뿜어서 만든 벽돌들로 성을 쌓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정확하게 딱딱 재서 크기와 형태를 맞춘 것이 아니라 어린애가 눈대중으로 대충 크기와 형태를 맞춘 조잡한 벽돌인지라 그걸로 성이라고 쌓은 모습을 보면 엉성하기 그지없었지만 그걸 보고 뭐라고 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엉성하게 만든 벽돌들의 들쭉날쭉한 크기로 인해 생긴 높이 차이 때문에 벽돌을 더 쌓아올리기가 힘들어 보이자, 잠시 못마땅해하는 소리를 내면서 자신이 쌓은 성을 쳐다보던 엘프리데가 흙을 벽돌들 위에다 대충 발라서 높이를 맞췄다. 


 "저거 날림공사 아냐?"


 "옛날에는 저런 식으로 집을 짓기도 했었어요. .......아마도요."


 홍련도 흙으로 벽돌을 구워서 집 짓던 시절의 토목 공학 지식 같은 건 없었기에 미호의 질문에 애매하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애매한 홍련의 대답과 아무리 봐도 날림공사 같아 보이는 모습에 미호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엘프리데나 누가 저기 안에 들어가서 살 것도 아니고, 애가 재미를 위해서 흙으로 만드는 성에다가 부실공사한다고 뭐라 하기도 그랬다. 저렇게 짓다가 무너지면 자기 손해지 뭐, 라고 중얼거린 미호가 팔짱을 꼈다.


 미호와 홍련이 약간 거리를 두고 엘프리데를 지켜보는 동안 이그니스와 스노우페더는 엘프리데와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고, 마리아와 노움은 불안해하는 눈빛으로 엘프리데가 쌓아올리는 성을 쳐다보면서 자신들이 벽돌 크기와 형태를 조금 다듬어주는 편이 나을지 어떨지를 고민했다. 


 주변의 불안해하는 눈빛은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엘프리데는 계속해서 벽돌 성을 쌓아올렸다. 


 바이오로이드들이 이 작은 검은색의 용을 처음 만난 것은 몇 주쯤이었다. 그녀들이 살던 장소가 갑자기 붉은 섬광에 휩싸였을 때 그녀들은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떴을 때 그녀들의 거처와 그녀들은 모두 어딘지 모를 무인도에 와 있었다. 그리고 눈을 뜬 그녀들을 맞이한 것은 눈자위는 빨갛고 눈동자에서는 파란 빛을 뿜어내는 용이었다. 일어나고 나서야 그녀가 작은 용이라는 사실을 알았지, 눈 뜨자마자 왠 시꺼멓고 커다란, 눈에서 광선을 뿜어내는 도마뱀이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것을 본 레오나는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도마뱀의 입에서 발음이 뭔가 이상한 독일어가 흘러나왔을 때 다시 한 번 화들짝 놀란 건 덤이다.


 스스로를 아릴카릿사-이베아란 엘프리데라고 소개한 작은 흑룡도 바이오로이드들과 마찬가지로 어느날 갑자기 이 무인도로 떨어진 생물이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자신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가, 아무리 자고 일어나도 부모도 가족들도 곁에 없어서 한참을 울면서 섬을 헤매고 다녔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바이오로이드들을 보았을 때 혹시 가족들이 자신을 찾으러 온 건가 싶어서 기뻐했다가 전부 낯선 사람들이었던데다 그나마도 다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어서 또 한참을 울었고, 바이오로이드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자신이 이 섬에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기뻐서 또 울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바이오로이드들 상당수는 그러다 조난당하면 어쩔 생각이었냐, 자신들이 나쁜 사람들이었으면 어쩔 생각이었냐면서 그녀를 타박했지만.


 그렇게 해서 엘프리데와 함께 살게 된 바이오로이드들은 지난 몇 주 동안 어린애가 얼마나 사고를 치고 다닐 수 있는지를 실감했다. 꿀이 먹고 싶다고 벌집을 건드렸다가 잔뜩 쏘이질 않나, 그 사고 때문에 벌이라면 기겁을 해서 벌집이나 벌만 보이면 입에서 불과 벼락을 뿜어대서 화재를 일으킬 뻔 하지를 않나, 어쩌다가 해안가에 떠내려온 해파리를 가지고 놀다가 쏘여서 펑펑 울지를 않나, 신기하게 생겼다고 독버섯을 가지고 놀아서 주변 사람들을 기겁하게 만들지를 않나. 아주 온갖 사고를 치고 다녀서 바이오로이드들로 하여금 머리와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특히 엘븐 포레스트 메이커와 포레스트 레인저는 엘프리데가 숲에다 불을 낼 뻔한 사고 이후로 한동안 도끼눈을 뜨고 엘프리데를 따라다니면서 감시했고 그 이후에도 바이오로이드들 여럿이 엘프리데에게 붙어서 따라다녔다. 만일 그녀들의 감시가 없었다면 엘프리데는 틀림없이 숲에서 조난을 당했거나 큰 사고를 당했을 것이다.


 한쪽 면이 뻥 뚫린 벽돌 상자처럼 생긴 성곽을 완성한 엘프리데가 지붕에 쓸 용도로 보이는 넓찍한 흙판을 만들기 시작하자, 지금까지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노움과 마리아가 끼어들었다.  셋이서 열심히 팔을 벌리고 엄지와 집게를 벌려서 길이와 두께를 재 가면서 흙판을 만드는 것을 지켜보는 홍련의 곁으로 식량을 찾으러 나갔던 엘븐 계통의 바이오로이드들이 나무 열매들과 사냥한 동물들을 가지고 다가왔다. 

 

 "꽤 많이 만들었네."


 "워낙에 공사를 부실하게 해 놔서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지만."


 "애가 흙 가지고 재미로 짓는 성인데 부실공사 좀 하면 뭐 어때서?"


 "무너지기라도 하면 쟤 짜증 있는대로 낼 걸?"

 

 "실패로부터 배우라고 해야지."


 "애한테 뭘 바라는 건데, 너."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엘븐 포레스트 메이커와 만담을 주고받은 미호가 그녀가 가져온 식량들과 그녀의 화살통을 슬쩍 쳐다보았다. 예전에 비하면 그래도 화살 쏘는 실력이 많이 늘은 모양이지만 그래도 사냥한 동물의 숫자에 비해서 화살의 소모량이 너무 많았다. 어차피 미호나 엘븐 시리즈 바이오로이드들이나 전부 궁술은 별로인데다 실력이 늘 수 있는 방법은 계속 쏘는 것밖에 없다는 것도, 잔소리해봐야 아무 소용도 의미도 없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래도 속이 답답한 건 어쩔 수 없었던 미호가 시선을 다시 엘프리데에게로 돌렸다. 엘프리데가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최소한 그 동안만큼은 이들이 처한 상황도, 이들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에게는 항상 사용하던 장비도, 이들이 자랑하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모듈도, 빠른 학습과 효율적인 활동을 가능하게 해 주는 모듈도 없었다. 이들의 몸뚱아리는 원래 그들이 가지고 있던 능력을 감안하면 폐품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아무도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활과 화살을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고 아무도 금속으로 된 칼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나무를 깎아 만든 창이나 쿼터스태프를 무기로 사용했다. 당연히 한물 간 몸으로 조잡하게 만든 원시적인 무기를 가지고 수렵과 채집 활동을 하려니 힘들었지만 지금 이들이 처한 상황은 힘들다고 안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나마 이 섬 전체에 먹을거리는, 최소한 지금으로서는 부족하지 않다는 게 다행이었다. 


 노움과 마리아, 스노우페더와 이그니스의 도움을 받아서 넓직하게 만든  흙판을 벽돌 상자 위에 올려놓고, 그 위로 뾰족하게 만든 벽돌들을 올린 엘프리데가 자신이 만든 작품을 감상했다. 그녀가 짓고 싶었던 것만큼 크고 멋있게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완성하니 기분은 좋았다. 엘프리데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그녀를 칭찬해주는 바이오로이드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세레스티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지내는 것이 대체 얼마만일까요........"


 세레스티아의 말을 들은 바이오로이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섬에 오기 직전까지 그녀들은 하루하루 죽지 못해서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언제 어떻게 사고를 치고 다닐지 모르는 저 꼬마 흑룡을 쫓아다니기도 하고, 그녀가 노는 것을 지켜보거나 사고친 것을 수습하기도 하고, 그녀가 친 사고에 휘말리기도 하면서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비록 성하다고 할 수 없는 몸을 이끌고 원시적인 도구를 가지고 수렵과 채집을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기는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들이 저지른 커다란 죄악으로 그녀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누구를 원망하지 않아도 되었고 누구에게 원망받지 않아도 되었다. 경멸과 증오, 원망이 가득한 시선 대신에 아무런 두려움도 증오도 담겨있지 않은 어린아이의 눈빛을 볼 수 있었고, 그 어린아이가 뛰어다니는 것을 지켜보거나 함께 걷고, 먹고, 잘 수 있었다. 


 씁쓸한 표정을 지은 엘븐 자매들과 홍련, 미호의 곁으로 콘스탄챠가 걸어왔다. 수렵과 채집으로 모은 식량들을 가지고 오늘의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엘븐 자매들이 콘스탄챠와 함께 이들의 거처로 향하고, 홍련과 미호는 또 무언가를 만들려 하는 엘프리데와 그 주변의 바이오로이드들을 불렀다. 


 거처로 향하는 바이오로이드들, 홍련과 미호, 그리고 엘프리데와 함께 그녀들에게 걸어오는 바이오로이드들. 이 자리에는 없지만 이들과 함께 이 섬에 온 바이오로이드들. 하나같이 헐벗은 차림새를 한 그녀들의 배와 가슴, 그리고 한쪽 얼굴에는 선명한 낙인이 찍혀 있었다. 바이오로이드들로서 절대로 저질러서는 안 되고, 원래대로라면 저지른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어야 할 죄를 저지른 대가로 지금의 연약하고 고통스러운 육신과 함께 받은 것이었다. 


 그녀들은 대역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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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전에서 다룰 것은 시젠 이외의 다른 인간이 아닌 피보호자(=용가리)들과 그 관련 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번편은 그 중 하나인 엘프리데(Elfriede)의 이야기 1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