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할 수 있는 가장 엄숙한 목소리로 구술을 시작했다.
 
"철남충이," 하고 그는 말을 시작했다. "오르카의 십만 섹돌을 따먹고 임신시켜...."
 
그러나 나는 타자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십만 섹돌을 따먹었다고?" 내 목소리는 불신에 가득차 있었다.
 
"물론이지, 난 전부 들었어." 하고 그는 대답했다.
 
"네 말을 믿지 않는 것은 아냐," 하고 나는 말했다.
 
(물론 믿어야만 했다. 내 친구는 나보다 세상 보는 눈은 없지만 그의 기억에 의문을 품어본 적은 한번도 없다. 또 주가가 떨어질 각오가 된 사람이 아니라면 감히 의문을 품을 생각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설마 오르카의 모든 섹돌을 따먹은 이야기를 구술하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해야만 해," 하고 내 친구는 말했다. "그게 인류가 다시 창조된 역사니까. 모든 인류의 역사는 최고의 기억력을 가진 바로 이곳에 다 기록되어 있다구," 그는 자신의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나는 키보드에서 손을 때며 투덜댔다.

"너 요즘 하드디스크 값이 얼마나 하는지 알기나 하니?"
 
"뭐라고?"

(그가 엄청난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때때로 그의 머릿속엔 하드의 가격같은 추잡한 세상사는 고려하지 않음을 느끼곤 한다.)
 
나는 말을 계속했다.

"네가 하드 하나마다 한 섹돌에 걸친 떡신을 구술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려면 우리에겐 하드가 십만개나 필요하겠지. 그 하드를 쓸 정도로 말을 많이 하려면 얼마 안가서 네 목은 완전히 쉬어버리고 말거다. 그리고 그 많은 양을 타자로 치면 내 손가락은 떨어져 나가버리겠지. 좋아. 우리가 그 많은 하드를 구입할 능력이 있고 또 네 목은 쉬지도 않고 내 손가락도 멀쩡하다고 생각해보자구. 도대체 어떤 미친 녀석이 그 많은 양을 다시 복사하려고 들겠니? 우리가 이걸 썼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사본이 적어도 100 세트는 있어야 할텐데 사본을 못만들면 우린 사기꾼 취급을 받겠지."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양을 좀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거야?" 하고 그가 물었다.
 
"물론이지," 하고 나는 대답했다. "사람들에게 어필하려면 그 수밖에 없어."
 
"만명 정도로 줄이면 어떨까?" 하고 그가 제의했다.

"600은 어때?"하고 내가 말했다.
 
그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장대한 야스의 역사를 겨우 600에 구겨넣을 수는 없어."
 
"내가 가진 하드는 그 정도가 다야. 어떻게 할래?"
 
"좋아,"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한 그는 다시 구술을 시작했다.
 
"철남충이... 600의 섹돌을 따먹고 인류를 재건했다... 이거지, 지석?"
 
나는 엄숙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지, 육백이었다고. 애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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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한 원작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원래는' 인데, 글재주도 별로 없고 대충 끼워맞추기 식으로 쓰다보니 일일이 타자를 친다던지 하드 하나에 썰 하나밖에 못 들어간다는 괴한 설정이 되어버렸다. 원작은 짧고 재미있으면서 읽고 나서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는 명작이니 한번쯤 읽어볼 것을 권함.

그리고 왜 하필 600이냐면 창고 크기가 600이라서 그럼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