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아이나는 사령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스스로를 탐험가라고 소개한 트리아이나였기에 사령관은 멸망한 세상에 보물을 목숨까지 걸어가며 찾을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트리아이나가 자랑스럽게 탁자 위에 펼친 보물지도를 본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정말로 리오보로스의 유산이 숨겨진 금고가 표시되어 있는 지도가 확실하나?”

 

 “어? 방금까지는 보물찾기 따위에는 관심 없다더니 이제 생긴 거야?”

 

 “그래, 축하한다 트리아이나. 내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 것 같군.”

 

 “역시 사령관도 나 같은 탐험가의 정신이 있구나! 좋아, 그럼 당장 출발하자! 그럼 앞으로는 캡틴이라고 부를게. 잘 부탁해 캡틴!”

 

 “당장은 힘들다. 때가 되면 너를 부르도록 하지. 그때까지 쉬면서 기다려라.”

 

 트리아이나는 아쉬워했지만 함께 보물을 찾을 동료가 생겼다는 것에 기뻐하며 사령관에게 알겠다고 말했다. 사령관에게 확인을 받은 트리아이나는 지도를 다시 챙기고 싱글벙글 웃으며 함장실을 나갔다. 

 

 “리오보로스의 유산이라. 이런 기회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사령관은 보물찾기 같은 행위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관심이 없다는 것은 관심을 끌만한 것이 나타나면 충분히 나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트리아이나가 보여준 보물지도는 충분히 사령관의 관심을 끌만 했다. 삼안, 팩스와 더불어 멸망 전 가장 융성했던 기업이었던 블랙리버, 그 블랙리버의 회장이었던 앙헬 리오보로스가 죽으면서 남긴 유산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사령관은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사령관이 원하는 것은 리오보로스 가문이 쌓은 금전이 아니었다. 무릇 유산이라고 하면 그 인간에게 가장 가까웠거나 중요한 것들이 함께 있기 마련이다.

블랙리버의 회장이었던 자의 금고라면 블랙리버의 막대한 병력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블랙리버의 최고위 바이오로이드인 무적의 용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령관의 입고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잠시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오르카 호에 승선한지 거의 1년 가까이 되어간다. 수십 년 전, 칸과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르카 호에 오르고 사령관으로서 책무를 보기 시작한 그날부로 오늘까지 어느새 1년 가까이 흘렀다는 것에 사령관은 순식간에 흐른 시간에 놀라웠다. 사령관으로서 책무를 다하겠다는 말에 따라 하루도 빠짐없이 업무를 보았다. 오르카 호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저항군의 세력을 성장시켰다.

그러나 사령관은 업무를 보느라 오랜 시간 동안 바깥바람을 쐬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열심히 저항군을 위해 한 몸 바쳐왔는데 한 번 정도는 자신을 위해 휴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사령관은 스스로 생각했고 스스로 결정했다.

 

 트리아이나가 찾고 있다는 보물은 사령관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고 사령관은 이번 보물찾기를 기회로 업무에서 벗어나 심신을 안정시킬 계획이다.

때마침 보물지도에 금고가 표시되어 있는 곳은 섬이다. 오랫동안 저항군을 위해 수고해준 승조원들에게 해변에서의 휴가를 주겠다고 핑계를 댄다면 그 누구도 반대를 하지 못할 것이다.

사령관은 곧바로 함장실에 자주 출입하는 고정 멤버들에게 연락을 넣었다. 할 말이 있으니 천천히 함장실로 오라고 연락을 넣고 사령관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대었다.

 

 ---

 

 사령관의 호출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얼굴이 함장실에 집합했다. 하지만 그녀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좋지 않아 보였다. 굳은 얼굴로 사령관에게 불만이 가득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사령관은 그녀들이 저런 시선을 보내는 이유를 이미 빤히 알고 있었다. 

 

 “주인님, 승조원들에게 다 들었어요. 철충들에게 포위당한 세이렌 양이 구조 요청을 보냈고 주인님이 새로운 슈트를 착용하고 직접 구출을 하러 가셨다고요.”

 

 잔소리의 포문을 연 이는 콘스탄챠였다. 

 

 “그래, 시간에 맞춰서 잘 갔고 사망자 하나 없이 귀환했다. 대단하지 않나?”

 

 사령관의 신경을 긁는 대답에도 콘스탄챠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주인님께서 지난 점령 작전 때 큰 사고를 당하시면서 저희들에게 약속하셨잖아요. 직접 전장에 나가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이번 일에 대해서는 주인님이 직접 저희를 설득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스카이나이츠 대원들을 구조대로 출격시킬 수도 있었어요. 주인님이 직접 나설필요는 없었다고 저희는 생각해요.”

 

 콘스탄챠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전부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콘스탄챠는 사령관의 전속부관이자 메이드장이자 하우스키퍼로서 이들을 대표해 말을 하고 있었다.

콘스탄챠는 사령관의 측근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 중에서는 태생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그러나 사령관을 처음 발견하고 그의 첫 번째 부관으로서 봉사하고 있는 콘스탄챠는 다른 고위 바이오로이드에게 조차 꿀리지 않는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 너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말이다 콘스탼챠. 만약 스카이나이츠 대원들이 출격했어도 나처럼 사망자가 없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나? 내가 출격했기 때문에 철충들의 시선이 끌려 사망자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던 거다. 그리고 대원들이 포위당한 곳은 중앙에 숲이 울창한 섬이었다. 스카이나이츠가 갔던 둠 브링어가 갔던 지금처럼 원만하게 해결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내 오랜 경험을 토대로 말하도록 하지.”

 

 사령관은 이 문제로 더 이상 말을 할 생각이 없었다. 대화를 끝내버리기 위해 오히려 몰아붙이듯이 말을 던졌고 경험까지 들먹여가며 조금은 추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사령관의 예상대로 이러한 태도를 보이자 그녀들은 벙찐 얼굴로 사령관을 보았다. 한 번 추한 짓을 했으면 무릇 사과를 해야 하는 법, 사령관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이번에 아무 말도 없이 나간 것은 미안하다. 하지만 대원들의 목숨이 걸려 있던 급박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앞으로는 너희들에게 말한 대로 웬만하면 직접 나서지는 않도록 하겠다. 하지만 이것은 알아두도록 해라. 정말 중요한 작전이나 내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나는 슈트를 입을 거다.”

 

 사령관은 사과를 하면서도 반드시 슈트를 입고 다시 나갈 것이라는 의지를 내비쳤다. 말을 마치고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곧바로 새로운 주체를 꺼냈다.

 

 “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지. 내가 너희들을 부른 이유는 따로 있다.”

 

 사령관은 그녀들에게 하려고 했던 말들을 했다. 해변에서 하루 동안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휴가를 즐기자는 사령관의 의견에 그녀들은 관심을 보였다. 

 

 “사령관이 휴가를 제안하다니. 굉장히 의외인 걸? 그동안 항상 업무에 몰두해 있길래 나는 사령관이 중증인 일 중독자인줄 알았어.”

 

 “쉬는 걸 안 좋아하는 인간이 어디 있나? 그런데 몇 달 전까지 오르카 호의 꼴을 보고 있으면 도저히 그런 생각이 들지가 않더군. 문제가 한 두 개여야 휴식도 즐기는 것이다.”

 

 사령관은 오르카 호에 오른 후로 지금까지 거의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해왔다. 사령관의 업무를 보좌하는 콘스탄챠, 홍련, 알렉산드라가 지쳐 쓰러지더라도 본인은 쉬지 않고 업무를 보는 사령관의 모습은 레오나의 말대로 일에 중독된 환자와도 같았다.

하지만 사령관이 이렇게 미친 듯이 업무를 보는 이유는 좋아서가 아니라 오르카 호의 상황이 사령관으로 하여금 미친 듯이 일할 수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나도 기계가 아닌 사람인지라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안 그랬다간 어떻게 될 것만 같다.”

 

 오르카 호의 규모가 거대해질수록 그에 비례해서 사령관의 업무량은 증가했고 업무 피로도 덩달아 증가했다. 하지만 사령관은 군말 없이 묵묵히 업무를 봐왔다. 

자신이 업무를 보지 않으면 오르카 호가 마비되어 버린다는 것을 사령관은 잘 알고 있었다.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의 명령 없이는 아무 결정도 내릴 수 없는 존재이다. 때문에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오르카 호의 거의 대부분의 일들은 사령관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 

때문에 사령관은 휴식이란 것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휴식 시간을 가지기에는 그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너무 많았다. 

 

 “나도 그렇고 승조원들도 그렇고 이 답답한 잠수함에서 나가 공기도 쐬고 몸을 햇살도 쬐야 심신이 건강하게 유지되지 않겠나? 너희들도 이 기회에 휴가를 즐기며 마음에 담고 있던 스트레스나 피로를 풀어라. 해변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은 많지 않나?”

 

 사령관의 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사령관이 지금까지 말도 안 되는 양의 업무를 봐온 것도 승조원들 중 잠수함에서의 생활에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특히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령관의 말에는 다들 공감을 했다. 제아무리 사령관의 체력이 바이오로이드와 비교해도 더 좋다고 해도 이런 생활을 계속했다간 언젠가 몸에 피로가 쌓여 쓰러질 수도 있다. 사령관은 오르카 호 자체라고 해도 무방한 존재, 무슨 일이 있어도 그에게 변고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

 

 “정말 좋은 생각이세요. 언제 출발하신건가요? 오드리 양에게 수영복을 부탁해 놓을게요.”

 

 “사령관님도 드디어 휴식을 취하시는군요. 언젠가 쓰러지시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습니다만 이제야 안심이 되네요.”

 

 “휴식 얘기가 나왔으니 이참에 주인님의 일정표를 한 번 싹 수정할 필요가 있겠네요. 물론 지금은 휴가에만 집중하도록 하죠.”

 

 동의를 구하는 사령관의 질문에 가장 먼저 동의를 한 이들은 사령관의 업무를 바로 옆에서 보좌하는 콘스탄챠, 홍련, 알렉산드라 셋이었다. 

사령관의 업무를 보좌하며 그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생활한 그녀들은 사령관이 평소에 처리하는 업무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의지가 굳고 체력이 대단한 인간이라도 포기하게 만들 수 있고 심지어 그녀들조차 버거운 양의 업무를 사령관으로서 책무를 다하겠다는 말 한 마디만으로 군말 없이 해내는 사령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경외심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령관이 아무 말이 없이 새로운 슈트를 입고 다시 전장에 나갔다는 것에 화가 나있었지만 지금은 그에 대한 걱정과 안도가 화를 잊게 만들었다.

다른 이들 중에서 사령관의 휴가를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르카 호는 예정에 없던 해변 휴가를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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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갑다고 느껴질 만큼 강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는 날이다. 해변으로 들어오는 파도치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던 해변이 지금은 바이오로이드들로 가득했다. 

평소 입고 다니는 의상이 아닌 디자이너인 오드리가 제작한 수제 수영복을 입고 승조원들은 사령관이 준 휴가를 만끽하고 있었다. 

 

 빛을 반사시키며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에 들어가 해수욕을 즐기는 대원들도 있었고 모래사장에 네트를 설치해 비치발리볼을 즐기는 대원들도 있었다. 몇몇은 그냥 파라솔을 꽂고 작은 그늘을 만들어 그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여유를 즐기고도 있었다. 

사령관은 파라솔을 설치하고 그늘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 부류 중 한 명이었다. 넓은 파라솔을 펼치고 그 아래에 비치썬배드를 설치해 등받이를 뒤로 젖혀 앉아 있었다. 

그늘 아래에 누워 한 손에 시원한 콜라가 담긴 유리컵을 들고 빨대를 입에 물고 쪽쪽 콜라를 빨아먹고 있는 사령관은 거의 1년 만에 맛보는 진정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수평선까지 일체의 장애물도 없이 탁 트인 바다풍경, 바다에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고운 모래로 이루어져 있는 백사장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피부를 한껏 들어내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들, 입이 심심할 때마다 한 모금씩 빨아먹는 탄산 가득한 시원한 콜라.

사령관 몸에 흐르고 있던 피로는 햇빛에 녹아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깔끔하게 날아갔다. 몸에 꽉 끼는 제복을 벗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을 때 사령관은 마치 오랫동안 채워져 있던 사슬이 풀어지는 듯한 해방감과 같았다. 

 

 “주인님, 편히 쉬고 게시나요?”

 

 콘스탄챠가 사령관의 옆으로 걸어왔다. 항상 메이드복을 고수하는 콘스탄챠도 오늘은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녀의 메이드복처럼 수영복은 검은색과 흰색이 비율 좋게 섞여 있었다. 

콘스탄챠의 비키니를 본 사령관은 감탄스러운 추임새를 했다. 옷이 사람의 분위기를 좌지우지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콘스탄챠를 메이드로서 대했던 사령관이었지만 지금은 콘스탄챠가 그저 아름다운 한 명의 소녀로 보였다. 

 

 “잘 어울리는군.”

 

 “아, 감사합니다. 모처럼 오드리 양이 만들어주신 수영복인데 제가 입어 이상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어요.”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 너희들이 입으면 무슨 옷이든 어울릴거다.”

 

 “감사해요. 주인님.”

 

 비키니가 잘 어울린다는 칭찬과 외모에 대한 칭찬을 동시에 받은 콘스탄챠는 얼굴을 붉혔다. 사령관이 콘스탄챠에게 칭찬을 해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외모에 대한 칭찬은 그녀가 기억에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유능한 부관으로서 칭찬을 받은 것이 아닌 여자로서 칭찬을 받은 듯한 기분에 콘스탄챠의 마음이 붕 떴다. 

 

 “오르카 호는 안전한 곳에 잘 정박시켰나?” 

 

 “예, 철충들이 없는 장소에 안전하게 대기시켜 놨습니다. 경계태세도 최소한으로 해서 최대한 많은 대원들이 해변에 나와 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수고했다. 너도 가서 메이드 자매들이랑 시간을 보내라. 오늘 하루는 어지간해서 나 건들지 말고.”

 

 “알겠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콘스탄챠는 알겠다고 말하며 물러났다. 사령관은 비치썬배드를 완전히 젖혀 침대처럼 누웠다. 한숨 낮잠을 자기 위해 콜라를 썬배드에 있는 소형 테이블에 올려놓고 눈을 감았을 때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캡틴!!!”

 

 트리아이나가 사령관을 부르며 신나게 뛰어오고 있었다. 트리아이나가 옆까지 달려오자 사령관은 눈을 떴다. 

 

 “캡틴 기다리고 있었지?! 조금 늦어버렸네.”

 

 “이제 그 보물찾기를 시작할 거냐?”

 

 “응!”

 

 “좋아, 그 전에 대원들한테 할 말이 있다. 조금만 기다려라.”

 

 사령관은 벌떡 일어나 대원들이 많이 모여 있는 해변 쪽으로 걸어갔다. 사령관이 해변으로 걸어오자 대원들의 시선들이 사령관에게 집중되었다. 

하지만 대원들의 시선은 평소와 다른 곳으로 쏠렸다. 평소 대원들은 사령관을 바라볼 때 주로 얼굴이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령관의 몸통 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언제나 제복 속에 꽁꽁 감춰져 있던 사령관의 몸이 지금은 수영복 상의 단추를 끼우지 않아 복부와 상체 일부분이 무방비하게 들어나 있었다. 

사령관은 처음 수영복을 입을 때부터 불편해서 단추를 끼우지 않았고 이 선택은 그가 뜻하지 않게 대원들에게 좋은 눈호강을 시켜주고 있었다.

사령관의 배에는 초콜릿과 같은 선명한 복근이 서로의 경계를 확실하게 나누고 있었다. 복부에서 살짝 올라가면 근육으로 가득 차 봉긋 솟아있는 탄탄한 흉근이 보였다.

대원들의 시선이 조금 다른 곳으로 쏠려 있었지만 사령관은 해변에 있는 대원들이 시선이 자신에게 쏠렸다는 것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자, 다들 주목! 이 섬이 단순한 무인도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이곳은 사실 단순한 무인도가 아니다.”

 

 사령관의 말에 대원들이 술렁거렸다. 이곳이 무인도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대원들은 서로 질문을 했지만 당연하게도 그 누구도 아는 이가 없었다.

사령관은 손가락으로 트리아이나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기 있는 녀석의 말에 따르면 이 섬에는 블랙리버의 회장 앙헬 리오보로스의 보물들이 숨겨져 있는 금고가 있다고 하는군. 이번 휴가도 사실 내가 그 보물들에 관심이 생겨서 준 것이다.”

 

 사령관의 말에 눈치가 빠른 대원들과 보물이란 단어에 흥미를 느낀 몇몇 대원들은 무언가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대원들은 사령관의 말에 그닥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여유로운 휴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대원들도 있었고 그저 보물에 관심이 없는 대원들이 있었다. 사령관도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그는 지금부터 대원들이 결코 거절하기 힘든 조건을 제시할 생각이었다. 

 

 “도중에 찾은 귀금속이나 장식품들은 원하는 만큼 가져도 된다. 그리고 금고의 입구를 가장 먼저 찾는 대원들에게는 내가 직접 포상을 줄 것이다. 관심 있는 대원들은 한 번 찾아봐라. 아, 말하는 걸 잊을 뻔했군. 이 섬에는 철충들이 꽤 있으니 조심하도록 해라. 혹여나 만나기라도 하면 그냥 쏴버려라.”

 

 사령관의 말은 조금 전까지 일말의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대원들이 열정적으로 보물을 찾고 싶은 마음을 들게 했다. 사령관이 직접 주는 포상. 술렁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한 브라우니가 손을 번쩍 들며 질문했다.

 

 “일병 브라우니! 사령관님에게 질문이 있습니다!”

 

 스틸라인 내에서 사고뭉치로 유명한 브라우니들이기에 곁에 있던 이프리트가 브라우니의 손을 강제로 내리기 위해 팔을 잡고 끌어당겼지만 뚝심 있는 브라우니는 끝까지 손을 내리지 않았다.

 

 “무엇인가?”

 

 사령관의 허락을 받은 브라우니는 그제야 손을 내렸고 스틸라인 대원들은 일동 침묵했다. 그저 저 브라우니가 사령관에게 쓸데없는 질문만 하지 않기를 바랬다. 

 

 “사령관님의 포상이 뭔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저희들과 다른 대원들이 원하는 것들이 다 다르지 않습니까?! 혹시 개별로 원하는 것을 받는 겁니까?!”

 

 “좋은 질문이다. 네 말대로 다들 원하는 것은 다르지. 그렇다면 이렇게 하도록 하지. 가장 먼저 금고를 찾는 대원 혹은 대원들에게는 원하는 것을 주겠다. 이러면 만족하나?”

 

 “정말 감사합니다! 충성!”

 

 브라우니가 사고를 치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스틸라인 대원들은 잔뜩 쪼그라들었던 가슴이 다시 펴졌다. 금고 입구를 발견한 자에게는 원하는 것을 주겠다. 

얻을 수 있는 포상이 명확해지자 대원들의 반응은 술렁거리는 것을 넘어 폭발적으로 변했다.

대원들은 마음이 맞는 대원들이나 친한 대원들을 불러 팀을 꾸렸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대원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사령관은 다시 썬배드가 있는 곳으로 모래에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갔다.

 

 “보물찾기를 하는데 경쟁자가 없으면 재미가 없겠지? 트리아이나 너도 이제 보물 찾으러 가라. 나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너에게는 특별히 호라이즌 멤버들을 일행으로 붙여주도록 하지.”

 

 “어? 캡틴은 안 가는 거야?”

 

 “나는 금고 안에 있는 게 궁금한 거지 금고를 찾는 과정은 궁금하지 않다.”

 

 사령관은 다시 썬배드에 누웠다. 트리아이나는 김이 샜는지 뾰로퉁한 표정을 지었다. 사령관은 트라아이나의 얼굴을 못 본 척하며 몸을 돌려 옆으로 기댔다. 하는 수 없이 호라이즌 대원들을 부르려고 할 때 사령관이 누운 채로 트리아이나를 불렀다. 

 

 “세이렌을 잘 부탁한다.”

 

 “무슨 뜻이야?”

 

 트리아이나의 질문에 사령관은 무심하듯 하지만 어딘가 걱정이 되는 어른처럼 답했다.

 

 “그냥...말 좀 많이 걸어주고 대원들이랑 친해지도록 도와주고...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주고...그런 것 있잖나.”

 

 트리아이나는 사령관의 의중을 파악했다. 

 

 “세이렌이 걱정되는구나? 하긴 요즘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은 모습이 보였어. 설마! 세이렌을 막 혼낸 거야?! 인간님들처럼 막 때리고 욕하고?!”


 “정말 과거의 인간을 보고 싶으면 계속 선을 넘어도 된다.”

 

 사령관은 팔을 살짝 들어 올려 주먹을 꽉 쥔 주먹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허벅지만한 근육질 팔뚝과 진심이 담긴 진지한 말투에 트리아이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트리아이나는 장난이라고 멋쩍게 웃으며 웃어넘겼다. 

 

 “그런데 캡틴, 그런 거라면 캡틴이 직접 해도 되는 거 아니야?”

 

 “나는 세이렌이 스스로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놨으면 한다. 내가 나서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너에게 호라이즌 대원들을 붙여준 이유도 성격 좋은 너라면 세이렌이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캡틴은 무섭게 겉모습은 무섭게 생겼는데 사실 좋은 사람이구나.”


 “좋은 사람이라...글세. 어쨌든 이제 다녀와라. 나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알았어! 그럼 나중에 봐!”

 

 “무슨 일이 생기면 곧바로 무전해라.”

 

 트리아이나는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며 호라이즌 대원들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갔다. 뛰어가는 트리아이나의 뒷모습을 보며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 사령관은 그런 녀석에게 세이렌을 맡긴 게 잘한 일인지 스스로의 결정이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자신보다는 트리아이나가 세이렌이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내려놓게 하는데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흔들리지 않았다. 

 

 해변을 가득 채우던 대원들이 보물을 찾으러 섬 안으로 들어가니 해변은 오르카 호가 처음 정박했을 때처럼 다시 휑해졌다. 대원들의 웃음소리와 목소리가 사라지니 들려오는 소리들은 해변으로 들어오는 파도치는 소리와 바람 소리 뿐이었다. 

일정하게 들려오는 파도치는 소리와 산산하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파라솔이 햇빛을 막아줘 눈을 감으면 빛의 방해 없이 편하게 낮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령관은 몸에 힘을 빼 썬배드에 몸을 편안하게 뉘었다. 오르카 호 사령관 침실처럼 푹신한 침대는 아니지만 사령관은 금방 잠에 들었다. 

 

 --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을 때 사령관의 옆에 콘스탄챠가 다소곳하게 서있었다. 사령관이 잠에서 깨자 콘스탄챠는 그에게 자면서 좋은 꿈을 꾸었는지 물었다. 

왜 그런 것을 묻는지 묻는 사령관에게 콘스탄챠는 그가 자면서 지금껏 본 적 없는 매우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잠을 자고 있었다고 답했다. 혹여나 코를 골거나 이를 가는 등 보기 싫은 잠꼬대를 했는지 묻는 사령관에게 콘스탄챠는 조용히 잠을 잤다고 답해주었다. 

 

 한숨 자고 일어난 사령관은 썬배드를 조금 새워서 눕지 않고 기대는 정도로 각도를 맞추었다. 아무리 바람이 불고 파라솔 그늘 아래에서 잤더라도 더운 날씨 때문인지 사령관은 목이 말라왔다. 자연스럽게 사령관의 손이 콜라가 담긴 컵으로 향했다.

하지만 사령관은 더운 날씨 때문에 컵에 담겨 있는 얼음들이 다 녹아 콜라 맛이 밍밍해졌다는 것도 몰랐다. 목을 축이기 위해 빨대를 입에 물고 빨아먹은 콜라가 혀에 닿자 사령관은 그대로 입에서 콜라를 뱉어버렸다. 

밍밍하고 톡 쏘지도 않는 달기만 설탕물을 마신 사령관은 짜증을 내며 컵에 담긴 콜라를 모래에 부어 컵을 비웠다.

 

 “주인님, 여기 새로운 콜라 드세요. 그건 제가 치우겠습니다.”

 

 콘스탄챠는 시원한 콜라가 담긴 새 컵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사령관은 손에 들고 있던 빈 컵을 콘스탄챠에게 건네주었다. 콘스탄챠가 테이블에 올려놓은 컵은 손바닥으로 잡았을 때 아주 차가웠다. 컵 안에 들어있는 콜라는 갓 따른 콜라답게 탄산이 표면에 톡톡 튀고 있었다. 콜라를 한 모금 마시자 탄산이 목을 톡 쏘는 쾌감과 시원함이 느껴졌다.

 

 “크으으으. 딸꾹. 고맙다. 콘스탄챠 너는 보물찾기에 별로 관심이 없나?

 

 사령관은 자신을 보좌하는 세 명의 바이오로이드들 중 가장 오랜 시간 동안 고생을 한 콘스탄챠가 이번 휴가를 기회로 느긋하게 쉬기를 원했다. 하지만 콘스탄챠는 정중하게 사령관의 권유를 거절했다.

 

 “저는 주인님의 곁을 지켜야죠. 그리고 주인님이 시키시는 심부름도 해야 하고요.”

 

 콘스탄챠에게 이번 휴가는 온전히 사령관의 심신을 안정시키기 위함이지 자신이 쉬어도 되는 시간이 아니었다. 메이드복을 벗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을 때부터 사령관이 최고의 휴가를 만끽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겠다고 다짐했었다. 

콘스탄챠가 만약 사령관이 원한다면 침실에서 했던 일을 다시 할 마음도 충분히 있었다. 

 

 “그래도 저희 자매들 중 몇몇은 주인님에게 상을 받아내겠다며 의기양양하게 출발했어요. 특히 엘리스가 굉장히 의지를 불태우더라고요.”

 

 “그런가. 다른 대원들이 먼저 찾아주기를 빌어야겠군.”

 

 콘스탄챠의 말에 사령관은 피식 웃으며 가학적인 미소를 짓고 있을 엘리스를 상상했다. 엘리스가 나섰다는 말에 사령관은 그녀와 비슷한 생각을 품고 금고를 찾고 있을 바이오로이드들을 몇 명 머리에 떠올랐다. 감정 표현이 지나치게 솔직한 바이오로이드들, 그녀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이 되었다. 사령관은 콜라를 반 잔 비우고 다시 컵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평화롭네.”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긴장이 풀어지자 사령관은 그 기분을 짧게 말했다. 철충들과의 전쟁이 아직 한참이나 남았고 이 섬에도 수많은 철충들이 있다.

언제든지 무전기에서 대원들이 철충들과의 교전을 시작했다는 무전이 와도 이상하지 않지만 파도치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는 조용한 해변, 파라솔 밑에 썬배드를 설치해 앉아 시원한 바다바람을 쐬며 콜라를 마시는 이 순간은 마치 전쟁이 끝나고 조용한 휴양지에서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는 기분이었다.

150년이 넘는 긴 시간을 살아왔지만 이렇게나 평화롭고 조용한 순간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고 사령관은 생각했다. 

 

 “그러게요. 정말 평화롭네요. 조용한 해변에서 시간을 보낸다니 옛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콘스탄챠도 사령관처럼 분위기에 취했다. 1년여 전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한 환상과도 같은 것들이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마음이 통했는지 사령관과 콘스탄챠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저 싱긋하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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