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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오르카 내명부 내 침소


제조상궁(提調尙宮) 콘스탄차는 알림 소리가 울리기 전 눈을 떴다. 항상 혹시나 해서 맞춰 놓는 알림이지만 그녀가 알림보다 늦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새벽 4시. 아직 오르카 내명부의 공식적인 시작 시간보다 2시간 일렀으나 콘스탄차는 흐릿해진 정신을 갈무리했다.

멍했던 표정에 날카로움이 더해지고 흐릿했던 눈동자에 촛점이 돌아왔다. 오늘 하루를 시작할 채비가 끝난 것이다.


세안장을 향하는 도중 마주치는 것은 야근담당인 나인들 뿐이었다. 이윽고 아무도 없는 세안장에 도착한 콘스탄차는 씻을 준비를 하였다.

단 한순간이라도 청결에 신경을 놓치지 않는 그녀의 몸은 자고 일어난 직후에도 그 빛을 잃지 않았지만 콘스탄챠에게 있어 몸을 씻는 것은 일종의 의식이었다.

몸과 마음 모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어야할 것. 지존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그녀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씻는 것이 끝나고 몸단장이 끝난 그녀는 침소 밖으로 나섰다. 깨어나자마자 바로 향해야 할 곳은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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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오르카 정궁(正宮) 앞


정궁 앞에 다다르자 지밀상궁 금란이 그녀를 맞이했다. 금란 옆엔 그녀를 보좌하는 나인들이 도열해 있었다. 예민한 감각으로 그녀를 이미 알아채고 있던 금란은 그녀에게 먼저 예를 표했다.


"제조상궁 마마, 평안하셨습니까."


"평안하십니까 금란 상궁, 주상전하의 문안을 여쭙고자 합니다."


"주상전하께선 금일 성은을 입기로 예정되어 있던 블랙하운드와 함께 자리에 드신지, 5시간이 지났습니다."


오늘 성은을 입기로 예정되어 있던 자가 누구인지는 당연히 콘스탄차도 알고 있었다. 주상께선 최근 백성들을 위무하는데 큰 공을 세운 스카이나이츠 일동에게 성은을 내려주기로 마음먹으셨고 어젯밤은 그 이틀째 되는 밤이었다.

어제 대대장 슬레이프니르가 성은을 입었으니 오늘은 블랙하운드의 차례였을 것이다.


"주상전하께서 언제 기침하실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금란은 그녀의 뛰어난 감각으로 주상께서 얼마나 피로하신지, 언제 기침하실지를 알아챌 수 있었다. 게다가 어젯밤 성은을 하사하시는 시간을 모두 경청하였을 테니 현재 오르카 내에서 금란만큼 금상의 기상시간에 자세한 이는 없을 것이다.


"주상전하께서 성은을 내려주시고 침수(寢睡)에 드신지 5시간이 지났습니다. 현재 주상전하의 숨소리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3시간 뒤면 기침하시리라 사료되옵니다."


금상께서 잠드신지 5시간이면 동침의 시간은 3시간을 넘지 못하였을 것이다. 오늘 동침을 기대하던 티가 역력했던 블랙하운드였지만 주상전하와 밤을 보낸 횟수가 얼마 되지않는 그녀가 주상전하를 오롯이 상대하긴 버거웠을 것이다.

게다가 블랙하운드는 성정이 유순하여 주상의 기를 보하면 보했지 해칠 여지는 없는 자였다. 내심 주상께서 성은을 내리시느라 충분히 침수에 드시지 못할 것을 염려했던 콘스탄차는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2시간 이후에 돌아오도록 하지요. 잠시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네, 상궁 마마. 살펴가시지요."


콘스탄차는 금란 너머 잠들어 계신 그녀의 주인께 예를 표하고 다시 내명부로 발길을 돌렸다. 곧 내명부 정기조례를 주최해야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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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오르카 내명부



콘스탄차가 내명부에 도착해 자리에 앉자 금일의 정기조례가 시작되었다. 콘스탄차가 제일 상석에 위치했고 오른쪽앤 부제조상궁 블랙웜, 감찰상궁 앨리스가 왼쪽엔 기미상궁 바닐라, 최근에 내명부에 들어 온 히루메가 나란히 앉았다.


지존의 경호를 위해 불참한 금란과 수랏상 준비에 여념이 없는 소완을 제외하고 모두가 출석함을 확인한 콘스탄차는 조례를 시작했다.


"스카이나이츠의 위문활동 이후 주상전하께서 노래를 흥얼거리거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옵니다. 최근 철의 탑 건으로 인해 지휘활동으로 목을 많이 쓰시는 주상전하께서 노래까지 즐기시면 건강을 헤치실까 염려되옵니다."


감찰상궁, 앨리스가 말하였다.


"하지만 주상전하께서 노래를 즐기기 시작한지 채 이틀이 지나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막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신 것에 대해 간하는 것은 오히려 주상전하의 심기를 헤쳐 홧기를 불러일으키는 하책(下策)으로 사료되옵니다. 차라리 수랏간에 일러 수라상에 목을 보하는 수라를 올리는 것이 어떠련지요."


부제조상궁, 블랙웜이 말하자 기미상궁 바닐라가 이어 말하였다.


"목을 보하는 음식을 올린다 하더라도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매번 수랏상에 목을 보하는 음식을 올리기도 어렵사오니 감찰상궁께서 이르신 것처럼 주상께 청을 올리는 것이 낫지 않겠사옵니까."


바닐라의 치켜세워진 눈은 콘스탄차가 간하지 않겠다면 자신이라도 간하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잠시 눈을 감고 곰곰히 생각하던 콘스탄차가 말했다.


"아니요. 이 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겠습니다. 히루메, 기술부 국장, 닥터에게 연통하여 3일 후 약속을 잡도록 하세요."


"네, 넷, 제조상궁 마마" 아직도 내명부 조례만 되면 긴장하는 히루메가 황급히 대답했다. 순간 다른 상궁들의 눈이 히루메에 잠깐 스쳤다가 다시 돌아왔다. 조례가 끝난 후, 히루메가 어떤 꼴을 당할지 눈에 선한 콘스탄차였지만 굳이 이에 대해 언급하진 않았다. 그녀도 내명부의 일원이면 이제 신입티를 벗을 때가 되었다. 철에 아직도 불순물이 남아있다면 단단해질때까지 연단할 뿐. 그녀의 연단은 다른 상궁들이 알아서 맡아줄 것이다.


"제조상궁 마마, 어찌 주상전하의 건강에 직결되는 문제에 손을 놓으신단 말입니까."

겉보기엔 평온하나 화기가 말 아래 깔린 블랙웜이 반발했다. 상관을 향해 눈을 똑바로 뜬 그녀의 태도는 원래 책잡아야할 것이지만 콘스탄차는 넘어갔다. 

차가운 태도로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은 블랙웜이었지만 그녀 속에 주상을 향한 거대한 용과 같은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는 것을 콘스탄차는 잘 알고 있었다.


"4일 후 제 2차 철탑 원정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마리 육군참모총장이 오르카호에 복귀하는 것을 모두 알고 계시지요. 이번에 철탑 원정에 스틸라인의 공이 가장 크고  주상전하께서 큰 원정 때마다 가장 공이 큰 부대의 사령관과 동침하시는 것이 통례이지요. 성은의 대상인 마리 육군참모총장이 그녀의 충성에 대한 보답으로 어떤 것을 선택할까요?


"음.....ㅅ"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은 바닐라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신성한 내명부에서 차마 꺼낼 수 없는 단어였다. 바닐라뿐만 아니라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같은 단어를 생각했기에 바닐라에 대한 타박 대신 함께 침음을 내뱉을 뿐이었다.


유일하게 동요하지 않은 콘스탄차가 미소를 띄며 이어 말했다.


"여러분께서 짐작하시는 것처럼 육군참모총장의 바램은 지나가던 하치코도 알 지경이니 앞으로 4일간 주상전하께서 아무리 목을 상하게 하신다 하더라도 닥터를 통해 주상전하의 옥체를 교체하면 그만일 것입니다. 옥체를 교체하는 동안 닥터에게 일러 신체의 조정을 기할 것이니 미리 준비할 채비를 하시길 바랍니다."


왜 닥터와의 만남을 갑자기 주선하자고 했는지 그제서야 깨달은 히루메가 아~,라는 탄성을 지르다가 앗, 하고 급히 숨을 삼켰다. '제발, 제발, 제발' 고개를 조금 돌려 그녀의 맞은편에 있는 앨리스의 눈치를 보았지만 이미 앨리스의 얼굴엔 미소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데뎅, 그녀의 얼굴이 파래지는 동시에 9개의 꼬리가 고개를 숙였다.


"역시 제조상궁 마마의 혜안은 당해낼 수 없는 것 같사옵니다." 블랙웜은 고개를 숙여 콘스탄차에게 사죄했다. 콘스탄차는 조용히 웃으며 사양했다. 이후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지만 특이할 사항은 없었고 콘스탄차는 항상 하는 끝맺음 말로 정기조례를 마쳤다.


"오늘도 각자 맡은 직분에서 최선을 다해 임해주시길 바랍니다. 지존께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의 모습은 곧 주상의 얼굴이니 이를 명심하여 항상 말과 행동을 주의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명심하겠사옵니다. 제조상궁 마마.""


상궁들의 인사를 받은 콘스탄차는 자리를 정리하고 해산을 명했고 각 상궁들은 부서로 돌아갔다.

앨리스에게 질질 끌려나가는 히루메를 보며 작게 미소지은 콘스탄차는 발길을 돌렸다.




그녀의 주인에게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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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상궁 - 궁녀들을 지휘했다 합니다 (1인자) - 콘스탄차

부제조상궁 - 왕의 사적인 금고를 관리했다 합니다(2인자) - 블랙웜

지밀상궁 - 항상 왕의 곁에서 어명을 받들었다 합니다 - 금란

감찰상궁 - 궁녀 세계의 경찰 노릇을 했다고 함 - 앨리스

기미상궁 - 수라상을 먹기 전 독이 있는지 없는지 검사했던 궁녀- 바닐라

수라상궁 - 소완

https://www.pixiv.net/artworks/89758952의 설명 참조함


야심한 밤 오랫만에 배틀메이드 한복컨셉 일러스트가 마려워서 찾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원래 일러가 챈에 있던걸로 기억하는데 글이 사라져있더라. 일러스트를 올릴까말까 고민하긴 했는데...작품의 탄생에 매우 큰 기여를 한 그림이라 첨부하지 않을 수가 없었음. 후에 작가님이 이의제기하시면 바로 내리겠스빈다.


원래 빅토리아 메이드의 하루처럼 시간별로 딱딱 정해서 하루를 관통하는 시리즈를 쓰려했는데 중간중간 너무 길어져서 일단 여기서 컷.

생각해보니 조선으로 사령관이 가는 컨셉의 창작물은 많았지만 오르카가 조선화되는 작품은 별로 없는거 같드라고.

그래서 목마른 사람이 우물파기로함 ㅋㅋ


이 작품은 여기서 끝날수도....궁중암투물이 될수도....있습니다?이 뒤에 어떻게 진행할지는 나도 모름 ㅋㅋ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