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뭔 개소리지?



바닐라는 셔츠의 단추를 채우다 말고 그녀의 사랑스러운 주인을 빤히 쳐다봤다.


분명 자신들은 성행위(sex)를 하긴 했다.

하지만 굳이 동의어 반복을 통해 강조를 하는거로 봐선 뭔가 다른뜻으로 쓰인게 틀림없었다.


특히 앞에서 쓰인 섹스와 뒤에 쓰인 섹스는 무언가 어감이 달랐다.


앞에서 쓰인 섹스는 말그대로 섹스(sex)를 칭함에 틀림 없는데 

그녀의 주인은 왜 뒤에 장난스러운 어감의 섹스를 덧붙이는가?


그가 말한 섹스는 그녀가 아는 섹스와 다른것인가?


그렇다기엔 앞에 쓰인 섹스는 문맥적으로나 어감으로나 그녀가 아는 섹스임에 틀림없었다.



아 이런 젠장 



머릿속으로 섹스, 섹스 반복 했더니 점점 섹스라는 단어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게 게슈탈트 붕괴라는 것인가.


아아, 이건 섹스라는 것이다. 

보지와 자지를 결합시켜 전방의 자궁을 향해 사격하는것이지. 



"아스널 대장님도 아니고 말이죠." 


"응? 아스널은 왜? 설마..."


"무슨 천박한 생각을 하신건지 모르겠지만 아니라고 의지 표명하겠습니다. 주인님."


"내가? 나만큼 순수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



바닐라는 뭐라 우물거리다 결국 말을 삼켰다.

한숨을 푹 쉬고 다시 옷을 주섬주섬 주워입으며 원래 품었던 의문을 내뱉었다. 



"그나저나 아까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이죠?"


"말씀? 아스널에 대한거? 아아 그건..."


"아뇨 그전에 주인님이 말씀하신 그 개소리...이상한 말씀이요."


"개소리는 너무 심한거 아냐?"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것은 미덕이 아닙니다. 주인님."


"아까까진 얼굴이 터져라 악을쓰면서 '오빠! 오빠!' 했으면서 딱딱하게 굴긴..."


"크윽...?!"



젠장 현타가 왔을때 비겁하게 치고 들어오다니!


바닐라는 소름끼치는 비음을 섞으며 아까 자신이 내뱉은 망언을 다시 상기시키는 사령관을 째려봤다.

심지어 아까 자신이 헐떡거리는걸 표현하듯 눈을 뒤집으며 열심히 성대모사를 하는중이었다. 



"아! 아! 오빠! 오빠! 나 진짜 임신시킬꺼야? 오옥!"


"으엑...진짜 진지하게 역겹습니다. 주인님은 심해 쓰레기를 자청하시는건가요? 나가 죽으시죠."



입으로는 매도의 말을 내뱉으면서도 쾌락으로 점멸하던 기억의 저편에서 자신이 내뱉은 망언임을 기억했다. 


바닐라는 부끄러움을 털어내듯 과장된 몸짓으로 다입은 옷을 탁탁 털었다.



이런 니미랄 다음부턴 정신 꽉 잡고 대사선택에 신중함을 기해야지...



"그...저랑 섹스를 하면 섹스가 어쩌구 하던거요."


"응? 바닐라랑 섹스를 하는거야말로 섹스잖아?"



그런것도 모르는거야? 하면서 어깨를 으쓱하는 사령관을 패고싶었다.


그냥 팰까?



"하아...그러니깐 저랑 섹스를 하는게 섹스라고 굳이 한번 더 동어반복을 하는게 무슨 의미냐는거죠."


"그러니깐 바닐라랑 섹스를 했잖아? 내가 기분이 존나 끝내줬거든? 특히 마지막에 엉덩이를 꽉 잡을때 바닐라가 응호옷!"


"제발 그런 성대모사 좀 그만 하세요! 세상에! 지금 주인님 표정 어떤지 아세요?!"



자신의 주인이 지금 하고 있는짓은 가관이었다.


사진으로 찍어둘까? 


혀를 해까닥 내뱉으며 양눈을 위로 치켜뜨며 눈물이 고여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면 


오르카호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자괴감에 단체자살을 할것 같았다.


...아니다. 더 좋아할 년들이 몇명 떠올랐다.


빛이시여 맙소사. 이 오르카에 희망은 없나니...


사령관이 내뱉은 혀 끝에 침방울이 맺힐 무렵 정신은 다잡은 바닐라는 다시 말했다.


솔직히 이제 아무래도 좋은 주제였지만 저 충격적인 모습을 본이상 답을 들어야할것 같았다.



"...그러니깐 그거랑 동어반복에 무슨 연관이 있냐고요."


"하아...그러니깐 기분이 끝내줬다고? 그러니깐 그게 섹스라고!"


"예? 섹스를 해서 기분이 좋은게 섹스라고요?"


"그래! 이제야 알아듣네! 바닐라랑 섹스를 하는게 섹스지!"



철충하고 대화해본적은 없지만 적어도 빌어먹을 트릭스터 새끼도 이것보단 제대로된 소통이 될것이다.


그냥 이 인간에겐 정의의 명치빵을 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살의를 모아 내뻗은 팔은 고양이가 애교부리듯 부드럽게 사령관의 가슴팍에 툭 놓여졌다.



김지석 개새끼. 에머슨 개새끼.


어째서 바이오로이드에게 이 빌어먹을 자식에게 단죄의 철퇴를 내리지 못하게 만든것이더냐.


지옥에서 고블린들과 사이좋게 칙칙폭폭 기차놀이나 해라.


하지만 김지석이 게이라면 어쩌지?



"..."



자신의 주인이 보여준 충격적인 모습들 때문일까 바닐라의 머릿속은 방어기재를 통해 끝없이 확장되었다.



"자 다 입었으면 일하러 가자 바닐라."


"...하아."


"응? 뭐야 부족해? 한판 더?"


"그게 아닙니다."


"뭐야 바닐라도 기분좋은거 아니었어?"



그 좋은 기분 당신이 잡쳤잖아!



"...아닙니다."



수많은 말들이 바닐라의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꾹꾹 누르고 눌러 대답했다.


어째서인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