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부모님 두분 다 기독교도였고 모태신앙인지라 어려서부터 교회 가는걸 당연시함

애초에 삶의 일부로 태어나서부터, 그 전부터 이어져왔기에 어떤 의문이나 반감도 없었지

해가 동쪽에서 뜨는걸 만인이 당연시하듯 일요일에 교회 가는건 지극히 당연한거고 그 말씀과 가르침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음

최소한 원초적인 범주에서는 말이야


'서로 사랑하라', 혐오가 만연하고 증오로 점철된 이 시대에 얼마나 각별하고 애절한 가르침일까

난 이 가르침만큼은 특정 종교나 사상을 떠나 범인류적인 가치로서 여전히 존중함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세상의 구조와 진실에 호기심을 가지고, 기존에 당연시했던 것들에 '왜?' 라는 물음을 던지기 시작하자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지극히 당연한 구조는 변하기 시작함


성경을 읽다보면 모순적이고 이해가 안되는 구절이 종종 나옴

물론 은유적인 표현이니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안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궁금증을 전도사님이나 심지어 목사님에게 물으면

그 때마다 만족할만한 답변을 들을 수가 없었음

그 중에는 종교를 떠나 인격적으로 존경할만한 분도 있었고, 종교라는 굴레에 빠져 자가당착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씁쓸한 분도 있었지만

어느 쪽이든 내게 이성적으로 명쾌히 알려주질 못했지


오히려 답을 안겨준건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 끝에 스스로 이리저리 찾아나선 나 자신의 행보였음

나이를 먹으면서 사춘기를 겪고 으레 그러듯 중2병의 시기가 찾아오고, 하필 심취했던 애니가 신세기 에반게리온이었던지라

거기에 담겨있는 성경의 메타포적 요소에 대해 이리저리 분석하며 많은 생각을 쌓고 또 쌓음

물론 20년이 넘는 세월과 함께 잔뼈가 굵은 지금은 그런 거창한 의미따위 부여할 필요 없다는 단순한 결론에 도달했지만

이 충동적인 방황은 끝없는 갈구로 이어졌고 모든 것에 대한 의심과 반항으로 향하는건 당연한 수순이었음


그리고 매우 깊게 빠져들었던게 페이트 시리즈

덕후들이 그렇듯 무언가에 심취하면 거기에 관련된 부차적인 것들에도 손을 대잖음?

나같은 경우에는 최애캐가 길가메시고, 그렇기에 길가메시 서사시를 구입해 읽고

관련 박람회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등 꽤나 열정적이었음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이를 통해 성경이 쓰여진 역사와 그 원본, 이해관계에 나름대로 도달하게 됨

그토록 갈구하며 답을 구하고자 물음을 던진 전도사와 목사는 내게 답을 주지 못했고, 혹은 주지 않았고

인류 학문의 일각인 고고학이, 결국 이성의 극치인 과학이 오랜 물음에 답해준거지


난 결국 성경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신실한 믿음을 고수하는 신자가 아니라

매사 의심을 품고 타당성을 따지는 삐딱한 냉담자로 변해감

여기에는 내가 진로를 과학자로 잡았던 것도 컸음

이성과 논리야말로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우주의 진실에 도달하는게 목표인 과학자에게 

종교는 그 진실의 편린을 엿볼 실마리이자 감정과 광신이라는 장막으로 눈을 가리는 난관이기도 했거든


그동안 습관처럼 나가던게 있으니 일요일이 되면 예배에 참석했지만

목사의 설교는 결국 기존에 만들어둔 족보를 그대로 반복하는 앵무새에 지나지 않고

명쾌한 답변으로 시원함을 안겨주는게 아닌, 그저 믿음을 강조하며 스스로의 눈을 흐리우라는 강요로 귀결되곤 했음

그래도 주어진 역할과 자리에 충실한 편이었기에

고등학생이 되니 학생회장이라는 직함을 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장년부 등 교회를 구성하는 다른 부서와 행정도 어떻게 굴러가는지 보다 직접적으로 볼 수 있게 됨


아직도 기억에 남는건 목사가 교회의 확장에 혈안이 되어 수련원 설립에 무리하게 빚까지 끌어들이고 있었던 것,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종이라면 세상의 권세에 눈을 돌리지 말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모 장로님의 비판에

'어이 박XX, 당신 더이상 장로 아니니 나가' 라며 목대 뻣뻣하게 세우던 광경,

몇년 후 나이가 들어 은퇴해야 하니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려다 속세주의의 정점이라는 신자들의 비판이 신경쓰여

미국에서 친분이 있던 목사를 영입하고는 정작 3주만에 권력다툼으로 다시 내쫓았던 것,

그리고 그렇게 토사구팽당한 목사마저도 동정의 눈길을 보내려니 첫 설교 당시 '난 땅밟기를 참 좋아한다.

이야말로 만방에 하나님의 영토를 선언하는 영광스러운 행위가 아닌가' 라며 사상을 의심케 하는 이단스러운 발언을 자랑스럽게 했던 것,

동시에 이 설교를 듣던 신자들 중 노골적으로 반박하는건 어렵다 하더라도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이 없이 '아멘' 이라는 외침으로 결집했던 것,

여름캠프 시즌이 되어 학생회장이면 당연히 가야지, 무슨 일이 있어도 빠지면 안된다면서 나를 잡아끌고는

정작 커리큘럼 과정으로 성경구절 읽기를 장장 6시간동안 잡아놓고 정해진 분량까지 읽자니 너도나도 지치는 상황,

서로 돌아가며 몇구절씩 읽다가 내가 읽는 속도가 빠르다며 남은 분량을 전부 나에게 일임하고는 이제 금방 끝내고 남은 시간에 쉴 수 있겠다며

같이 온 학생들은 그렇다 쳐도 인솔하는 청년들까지 손뼉을 치던 그 광경까지

썩 유쾌한 기억은 별로 없음


물론 좋은 기억도 있기야 있지

하지만 내겐 종교의 정의와 그 필요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고 고민하게 만들었던 나날이었고

결국 대학에 입학하면서 자연스럽게 거리를 둠

결정타는 어머니가 '설령 기숙사에 들어간다 한들 종교생활을 소홀히 하면 안된다, 

대학에 기독교 관련 동아리가 있을테니 거기에라도 들어가라' 하셔서 일단 들긴 했는데, 

등록하고 몇달 후 평일 밤 10시에 갑자기 기숙사에서 긴급호출 사이렌이 울림

'XX학부 X학년 XXX 학생은 지금 바로 1층 경비실로 내려오기 바랍니다'

무슨 큰일이라도 났나보다 웅성거리는 같은 방 동기들의 웅성거림을 뒤로 하고 내려가보니 동아리 부장이 웃으면서 기다리고 있더라고

조만간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우리 동아리는 종교캠프를 떠날 예정이니 당연히 참석할거라 믿는다며

종교라는게 이렇게 사람의 눈꺼풀을 가리고 사리분별 못하게 하나 싶더라

그동안 기독교, 혹은 기독교라는 이름 하에 진정한 믿음과 가르침과 동떨어진 행동을 하는 이익집단의 행보에 점점 진절머리가 나던 차였는데

이거 한방이 결정타였음

이 날을 기점으로 동아리 발길 끊고 아예 무교로 전향함


그래서 지금은 모태신앙 출신의 무교임

물론 원초적인 가르침 하나만은 아직도 가슴에 품고 있음

예수가 이 땅에 나타나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널리 퍼뜨리려 했다는 것

갈수록 서로의 마음이 피폐해지고 혐오와 증오의 정서가 짙어지는 이 때

저 말씀은 각별하지

하지만 그게 다임


거기에 약간의 테이스트를 곁들인다면 이 우주를 창조한 신이라 불릴만한 초월적인 존재는 있고,

그 존재는 인간이라는 결과물에 나름에 흥미를 가지고 있을거라는거

하지만 종교에서 그리는 마냥 우호적이거나 하는 모양새라고는 단정하지 않고 애초에 그 신이라는게 지성체일지, 개념일지, 

그 모든걸 초월한 무언가일지 굳이 정형화하지 않으려 함

내 종교관을 조악하게 표현한다면 기독교적 배경에 크툴루 신화가 약간 가미된 무언가임


쓰다보니 글이 길어져 이 내용을 올릴 때쯤이면 떡밥은 진작 식었겠지만

그냥 그렇다고

내 종교관은 대단히 해괴하고 뒤틀려 남에게 말하기에도 뭣하지만

눈과 귀가 막힌채 맹목적으로 쫓던 과거보다는 낫다 생각하니 그 점에서는 다행이겠지

그리고 어쨌든 신실하고 순수한 믿음으로 이 세상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신자와 공유하는 최소한의 요소도 있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