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 속 소중한 작은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 사령관은 오랜만에 혼술을 하고 있었어.


소완이나 포티아에게 부탁해서 따로 차린 건 아니지만, 안드바리 몰래 꿍쳐놓은 맥주와 직접 만든 안주로 차린, 저녁식사를 겸한 주안상을 스스로 내놓고 스스로 받은 거였지.




"캬! 역시 닭꼬치에 시원한 맥주는 최고야!"




라거를 좋아했던 사령관은 맥주 두 캔에 닭꼬치를 뜯으며 행복해하고 있었어.




그러던 중, 수신기가 울렸지.

발신인은 아스널이었어. 그걸 본 사령관은 2.7초 정도 받을지 말지 고민했으나, 이내 받았지.




"아스널, 무슨 일이야?"




"그대여? 내가 지금 술을 마시려고 하는데 안주가 없네. 그대에게 찾아가겠네!"


사령관이 아스널에게 착정당하기 5분 전.




"여보세요?! 아스널! 아스널!"




아스널의 일방적인 통보에 패닉에 빠진 사령관은 일단 술상을 치운 뒤 뭘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에 빠졌어.



어떻게든 오늘만큼은 의무방어전을 피하고 싶었던 사령관은 머리를 굴렸어.



하지만 그의 고민과는 상관없이 아스널은 방문을 부수고 들어왔고, 곧 사령관은 짜일 운명만을 맞이할 예정이었지.



"그대여, 침대 위에 올라가 주겠나?"



아스널이 입맛을 다시자 소름이 돋은 사령관은 머리를 굴리다가 순간 전에 콘스탄챠가 갖다 준 책을 보고 말문을 열었어.



"잠깐만 아스널! 이 책을 봐봐!"



"<군주론>? SM 플레이 교본인가?"



"뭔 소리야! 수 세기 전, 니콜로 마키아벨리라는 철학자가 쓴 통치 철학서라고!"



"흐음...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지?"




"난 사령관으로서 너희를 옳게 지도할 의무가 있어. 그건 캐노니언의 지휘관인 너도 그렇지.


섹스하기 전에 이 점을 배우고 가면, 부대 지휘는 물론이요 새로운 체위를 개발할 수도 있을 거야."



"흠... 일리가 있군. 좋네! 그 책은 무슨 내용인가?"



아스널이 설득에 넘어가자, 사령관은 자신에게 주도권이 넘어왔음을 확신하고 씩 웃었어.




"좋아. 그럼 설명을 시작해보도록 하지. 미리 말해두는데, 지금 내 바지를 벗기는 손은 떼고 듣도록.



<군주론>은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가 1600년대에 저술한 고전으로, 군주의 자질과 통치방법에 대해 다루고 있어.



마키아벨리는 이 책에서 정치와 종교를 분리했는데, 이는 당시 막강했던 교황청의 위세를 생각하면 정말 파격적인 조치였지. 실제로 이 주장 때문에 교황청에서 금서로 지정하기까지 했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런 일이 없도록 쿄헤이 교단을 탄압하자는 소리는 아냐. 군주론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종교적 내용과는 거리가 있으니까.



이 책은 종교성이나 도덕성보다는 합리성에 기반한 통치방법을 제시한, 일종의 지침서니까."




"생각보다 흥미롭군. 계속해보게나!"




"책의 내용을 보면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유형을 구분해놓고, 군사에 대한 지침, 피정복민에 대한 지침 등을 구분해놨어. 특히 군주의 자질에 대해 서술한 부분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는 부분이지."




"아! 군주는 지혜와 용기, 야망을 갖춰야 하며, 방법의 도덕성과는 무관하게 종교까지도 이용해야한다는 부분 말인가?"



아스널의 입에서 나온 말에 사령관은 순간 당황했지.



"뭐야? 안 읽어봤다면서 그건 어디서 들은 거야?"



"멸망 전에 우연히 봤지. 설명을 계속해주게나."




"어... 알겠어.



네가 말한대로, 마키아벨리는 도덕을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써도 된다고 했지. 그렇지만 그게 군주의 기분에 따라 대학살을 벌이는 걸 긍정하거나 군주가 싸이코패스라도 괜찮다는 건 아니야.



마키아벨리는 이 모든 조건이 뚜렷하게 좋은 목적만을 위해 사용될 경우 정당화될 수 있다고 했어.  그러니까 어떤 일이든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합리적인 방법만이 정당하다는 것이었지. 군주가 학살을 펼쳐도 그게 합리적이라면 된다고 한 거지."




"병학(兵學)과 비슷하군. 상대를 효율적으로 꺾는 것만 볼뿐, 도덕적 평가에는 개의치 않는다는 부분이 특히 그렇구만."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아스널, 마키아벨리는 그걸 통치의 방법이라 봤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한다고 했어. 



병학에도 나오지. 게릴라 양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피정복민을 다룰 때 지나친 학살을 통한 지배보다는 자신의 통제 하에 두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보호하는 편을 권장한 거."




"훗, 게릴라가 없도록 우리 캐노니언이 싹 포격해버리면 된다!


포격을 못하더라도, 여기서 인간이 끝없이 나와 게릴라들을 섬멸할 걸세!"



아스널이 자랑스럽게 배를 두드리자, 사령관은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어.




"너의 수단이 그 상황에서 합리적이라면, 마키아벨리는 긍정했겠지."



"확실히 이 책은 좋군. 많은 도움이 될 거 같네."



"그렇지? 아스널, 그럼 이걸 캐노니언에 갖고 가서 네가 설명을..."




"아니! 배운 건 써먹어야 하는 법.



벗어라, 그대와 나 중 누가 오늘의 군주일지 궁금하다네."




입맛을 다시며 다가오는 아스널을 보고 계산이 어긋남에 당황한 사령관은 저항했어.




"잠깐만! 마키아벨리는 합리적으로 사고하라고 했다고!"




"어차피 인류재건도 해야하는데 밤의 군주를 정하는 걸 겸하면 충분히 합리적이지 않나?"



"아! 이건 억지지!




화간 멈춰! 멈추라고!




니콜로 마키아벨리이이잇!!!!!"




결국 사령관은 다음 날 삐쩍 마른 채로 발견되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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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챈에 썼던 글인데, 다듬어서 여기에도 올려봐.

사령관은 오늘도 무사하지 못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