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가 되어서 슬슬 업무를 마치려는데, 경호원 중 한명인 CS페로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그녀는 어쩐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주, 주인님. 큰일났습니다."


"무슨 일이니?"


리리스와 사령관이 의아한 듯이 바라보았다. 매사에 침착한 편인 페로가 말을 더듬는 적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게…… 인간 님이 새로 나타나셨습니다."


사령실에 있던 모든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인간이 나 말고 또 나타났다고?!"


"정말이니? 어디서?"


페로는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그게, 어떻게 한지는 모르겠지만 오르카호 안에 숨어들어 온 모양이에요. 게다가……."


"게다가?"


페로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리리스 언니를 닮은 분이세요. 아주 똑같진 않지만."


"뭐어?"


리리스와 사령관은 놀라서 마주보았다.


"일단, 객실에 자리를 마련해 놓고 감시 중입니다만. 그분이 한사코 주인님과 리리스 언니를 만나 뵈어야겠다고 하셔서."


"나를……."


놀라움을 금치 못하던 사령관은 이내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 리리스, 일단 만나 보자."


"괜찮으시겠어요? 일단 제가 먼저 만나 보는 게."


"어차피 네 앞에서 암살은 불가능하지 않겠어? 어떤 영문인지는 몰라도 진짜 인간이라면 만나 봐야지."


현재 지구상에서 인간은 사령관 한명 뿐이었다. 그 외에 살아 있는 인격체는 로봇이나 바이오로이드가 전부였다. 그러니 새로운 인간의 등장에 도무지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리리스가 페로를 보고 말했다.


"야옹아. 그 인간님의 몸수색은 해 뒀니?"


"네. 그다지 특이한 점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언니와 비슷한 복장이란 점 빼고는요."


사령관은 페로를 시켜서 그 인간 여성을 데려오게 했다.


정예 대원들에게 둘러싸여 나타난 그녀를 보는 순간 리리스와 사령관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놀랐다. 복장 뿐만 아니라 외모도 리리스와 닮은 것이다.


하지만 놀라운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인간 여성은 사령관과 리리스를 보자마자 만면에 화색을 띠었다.


"아, 드디어 만났네요. 엄마, 아빠."


"?!"


여자가 웃으며 하는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다시 한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 * *



놀라움이 가시기도 전에 여자와 사령관, 리리스는 셋이서 둘러 앉았다. 사령실에 들어온 간부들은 신기함 반 불신 반으로 여자를 면밀히 살펴 보았다.


부드럽고 긴 머리카락, 비껴 맨 구급가방, 흑백으로 나뉜 색의 재킷과 치마. 거기에 팔과 목에 달린 장치까지. 눈길을 잡아끄는 외모 또한 블랙 리리스와 흡사했다.


그런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미니 리리스라고 했다. 정확히는 미니 리리스 컴패니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사령관이었으며, 어머니는 블랙 리리스라는 것이었다.


"어머니께선 당신의 딸 뿐만 아니라 동생들이 낳을 자손까지 포함해서, 컴패니언이 새 가문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이셨어요. 그래서 아버지도 저와 제 동생들한테 컴패니언이라는 성을 새로 만들어 주셨죠."


리리스가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 말을 우리보고 믿으란 거야?"


"한번 뇌파를 느껴 보세요. 저와 아버지가 비슷하단 걸 아실 테니."


리리스를 비롯한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의 뇌파를 느낄 수 있었다. 이에 리리스는 할 말이 없었다. 철충과 인간의 뇌파가 비슷하긴 해도, 미니의 뇌파는 철충과도 전혀 다른 뇌파였던 것이다.


물론 사령관은 여전히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난 리리스한테 반지를 주긴 했어도…… 피임은 철저하게 했다고."


어디서 두 사람의 자식이 태어나서는 이렇게 나타난단 말인가.


가만히 있던 닥터도 나섰다.


"애초에 지금의 기술력으로는 바이오로이드가 낳은 신생아는 금방 죽어. 내 신체 성장약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초일 뿐인걸."


미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직은 그렇겠죠. 지금으로부터 몇 년 뒤까지는."


"……그럼, 미니 언니가 미래에서 왔단 말이야?"


"한 가지 가능성이라고 볼 수 있겠죠. 지금 오르카의 입장에선요. 저는 이십년 뒤에서 과거로 온 셈이고."


"뭐, 시간이동이란 거야?"


"네."


미니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리리스는 총을 꺼내들었다.


"헛소리 하지 마. 너, 철충이지? 뭘 위해서 이런 연극까지 하는 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미니는 살기등등한 리리스를 보고도 크게 겁내지 않았다.


"엄마도 참, 젊으셨을 때부터 성격이 급하셨군요."


가만히 바라보던 사령관이 리리스를 말렸다.


"리리스, 그만 해. 너도 그녀의 말이 거짓은 아니라는 걸 뇌파로 알고 있잖아."


리리스는 어쩔 수 없이 총을 거두었다.


"하지만 미니. 나도 네 말을 믿기 힘든데."


"저도 쉽게 믿으실 거란 생각은 안 해요. 아무렴 지금 기술로 타임머신은 꿈도 못 꿀테니까. 사실, 제가 있던 곳도 철충의 기술을 기반으로 실용화에 성공한 정도라서."


"철충의 기술을? 잠깐, 그렇다면 철충도 시간 여행이 가능하단 뜻 아니야?"


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제 시대에서는 철충부터가…… 일종의 평행 세계의 존재들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별의 아이를 피해서 인간들이 스스로 개조된 결과물이라고요."


사령실 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오르카호에서 보기에도 공상과학 같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좋아. 그런데 여기까지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아무한테도 안 들켰잖아. ……혹시, 그 히루메처럼 멸망 전 유산 상자에 숨어서 왔다던가?"


"네. 맞아요. 들킬까봐 조마조마했다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불굴의 마리 소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것들이 경계는커녕 물자 검사도 대충 하다니. 그녀의 표정을 본 사령관은 한동안 수송계와 보급계가 편하지 못하리란 사실을 직감했다.


"도대체 왜 그랬어. 그냥 정상적으로 기지에 방문했어도 됐잖아."


"왜냐니. 시간 절약을 위해서기도 하고……. 그리고 그편이 재미있으니까."


미니가 히죽 웃었다. 리리스를 비롯한 바이오로이드들은, 최소한 이런 짓궂은 면은 사령관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도 이것저것 물었지만 미니의 답변엔 허점이 없었다. 똑똑한 리앤과 아르망도 더 캐묻는 것을 포기할 정도였다.


살다살다 시간이동자가, 그것도 장성한 딸이 나타나다니. 사령관은 한숨을 쉬며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지금이야? 뭔가 중요한 일이라도 있어서 그런 거야?"


미니가 순순히 대답했다.


"음…… 일단은 부모님의 젊은 시절을 보고 싶었거든요."


"젊은 시절이라고? 하지만 나랑 리리스는 그다지 노화하지 않아."


바이오로이드인 리리스는 물론, 바이오로이드 의체를 가진 사령관 또한 1000년에 가까운 수명을 지닌 채 거의 늙지 않는 것이었다.


"정신적인 부분에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애초에 저도 엄마 아빠의 유전자를 사용한 의체니까."


"그래?"


"그리고……. 다가올 위험에 대비하도록 돕기 위해서기도 하고요."


"위험이라."


싱글거리던 미니가 허리를 세우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곧, 엄마 아빠와 모두에게 커다란 어려움이 닥칠 거예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힘든 싸움이 벌어지겠지요. ……폭풍이 다가오고 있는 거예요."


사령관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아. 하지만, 어떤 식으로 도우려고 온 거야?"


그러자 미니는 자신의 머리핀을 하나 떼어냈다. 리리스가 가진 삼각형 머리핀과 같은 종류였다.


"이 안에는 신기술과, 철충, 별의 아이에 대한 정보, 그리고 전투 기록이 담긴 모듈이 있어요. 이걸 므네 언니한테 저장해 주셨으면 해요."


미니가 고개를 돌려 므네모시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른 바이오로이드보다 훨씬 컴퓨터적인 사고 방식을 갖도록 만들어졌다. 인류의 방대한 기록과 유전자 정보를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기록을 위해 그 자리에 있던 므네도 미니를 응시했다.


"게스트 인간의 뇌파 안정 확인. 관리자님, 액세스를 허용하시겠습니까."


"므네 언니는 아직 말투가 딱딱하시네요. 후후. 나중에 조금 더 부드러워지겠지만."


"……."


미니의 말이 진실인지는 둘째 쳐도, 그녀가 가져온 정보는 모두 귀중한 것들뿐이었다. 그녀의 자료가 있으면 저항군이 지금보다 싸움을 더욱 유리하게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사령관은 받은 자료 모듈을 므네한테 맡기는 작업을 위해, 기술진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그는 일단 미니를 자기와 같이 대우하라고 일러두었다.


간부들도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저 인간의 말이 정말 사실일까?"


"일단 거짓말을 하는 뇌파는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중요한 정보도 가져왔고……."


"오메가나 철충이 계략을 꾸미는 걸지도 모르지."


"그러니 컴패니언이 감시하겠다는 거지만."


지휘관들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떠날 무렵 리리스는 미니를 뜯어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확실히, 나랑 닮긴 했어도 어떤 부분들은 주인님하고 똑같아. 눈색도 주인님처럼 갈색이고."


"두 분의 유전자를 섞은 의체니까요."


"그럼 너도 주인님처럼 새로 몸을 만든 거니?"


"네. 성장기가 끝나서 이 몸으로 옮겼지요. 그러니 저도, 아니, 새로 태어날 인류는 당분간 반쯤은 바이오로이드일 거예요."


"그랬구나…… 그나저나 날 닮아서 외모도 완벽하구나?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어."


"후훗, 어머니도 완벽하신데요? 역시 아버지의 정실이에요."


두 모녀는 턱에 손등을 대고 마주 웃었다.


지켜보던 리리스의 동생들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렇게 놓고 보니 확실히 언니 딸이 맞는 거 같아."


"그러게."


그때 하치코가 미니를 향해 말했다.


"안녕하세요. 미니…… 아가씨?"


"하치코 이모. 그냥 미니라고 부르셔도 되요. 저한테는 엄마나 마찬가지시니까."


"헤헷. 정말?"


하치코는 신기해서 싱글벙글 웃다가 이렇게 말했다.


"음, 하치코가 마침 간식으로 정어리 파이 만들었는데. 같이 먹을래? 원래 주인님하고 언니 드리려고 했거든."


미니는 살짝 멈칫했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십여 분이 지나자 하치코는 민트 정어리 파이를 먹는 미니를 보고 물었다.


"맛은 어때? 좋아? 나중에 하치코도 정말 다른 메이드분들처럼 맛있게 만들 수 있을까?"


내키지 않게 파이를 먹던 미니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 하하. 노력하시면…… 될지도요. 아마."


"진짜? 와아- 하치코도 성공할 수 있대!"


하치코는 싱글벙글하며 자리를 떠났다.


리리스가 안쓰러운 눈으로 지켜보았고, 페로가 위로하듯이 말했다.


"미래에서도 하치코의 실력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건가요."


"애초에, 하치코 이모가 요리를 못하는 건 미각 문제니까요. 개의 유전자 때문에 미각이 통상과는 다른 거예요. 그것까지 고려하기란 쉽지 않죠."


미니가 하는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저기, 나는 어떻게 지내?"


펜리르를 필두로 컴패니언 자매들은 미니에게 앞일을 물었다. 미래를 아는 사람만큼 정확한 예언자는 없는 것이다.


사령관의 딸을 자칭하는 인간 님이 미래를 말해 준다- 그런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서, 오르카호의 승조원들은 너나할 것 없이 미니를 찾아갔다.


덕분에 미니는 그날부터 승조원들의 점쟁이 노릇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취미로 점을 봐주는 일을 하던 바이오로이드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진짜 예언자가 나타날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


미래를 말해준다는 것도 있어서, 승조원들은 미니를 매우 공경했다.


개중에는 중 2병에 걸린 등대지기 LRL이 잔뜩 허세를 부리며 찾아왔다.


"큭, 큭, 큭. 권속의 피를 이은 예언자여- 이 진조의 미래도 보았는가? 앞으로도 영겁의 시간을 권속과 보낼 수 있겠지?"


"……."


미니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밝게 웃으며 좋은 일이 생기리라고 알려 주었다.


그러나 떠나가는 LRL의 등을 보며 순간 우울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신경이 쓰인 페로는 이유를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다음 손님(?)이 밀어닥쳤기 때문이었다.


"저기, 아가씨. 저희도 사령관님하고 썸씽이 좀 생길까요?"


"나랑 다크엘븐은 어떨 거 같아? 또 그런 재밌는 일 할 수 있을까?"


"미래엔 단독으로 출격하는 일은 안해도 되겠지, 응? 제발 그렇다고 해 줘."


리리스의 라이벌인 소완조차 이런 질문을 해 왔다.


"아기씨,  소첩이야말로 주인님의 아내가 되어서, 첩을 여럿 두겠지요?"


"아하하, 글쎄요."


미니가 잘 대답하지 못하자 소완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뒤에 서 있던 시저스 리제는 꼬시다는 듯이 낄낄거리며 소완을 밀쳐냈다.


"나는 어때? 역시 주인님과 나는 누구보다도 튼튼한 붉은 실로 이어져 있겠지? 히힛."


"으음……."


미니는 중요한 부분은 흐리게 대답하면서도, 상대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었다. 리제는 유리한 부분을 주로 기억한 다음 좋아라하며 떠나갔다.


그 모양으로 많은 대원들이 즐거워했다.


멀찍이서 그녀가 하는 양을 지켜보던 사령관은, 곁에 있던 아르망을 보고 물었다.


"아르망은 안 물어봐?"


아르망은 쓴웃음을 지었다.


"최소한, 미니 아가씨가 계셨을 미래에도 저는 폐하를 도울 게 분명하니까요. 게다가, 미래를 안다고 해서 그 미래대로 흘러갈지도 의문이고요."


"아르망은 의외로 운명론자가 아니구나. 리앤도 비슷하게 말하긴 했는데."


"의외라니요. 폐하도 참."


미니는 사령관과 리리스의 일상을 지켜 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닥터 등의 기술진에게도 미래 기술의 아이디어를 알려주었다. 덕분에 닥터는 이걸로 10년은 빠른 발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미니는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고 알렸다.


"다시 돌아갈 수도 있어?"


"네. 그러지 않았으면 과거로 올 엄두는 내지 못했을 테니까요."


사령관과 리리스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인간 여자가 진짜 딸인지는 몰라도, 며칠 간 함께 보내면서 어느새 정이 든 것이었다.


그녀는 어떤 해안가의 좌표로 자신을 데려달라고 부탁했다. 사령관은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미니가 떠나는 길에는 사령관과 리리스를 포함한 컴패니언, 몇몇 대간부 정도만이 나왔다.


"귀환 장치에 대한 건 정말 알려줄 수 없는 거야?"


닥터가 아쉬운 듯이 말했다. 그녀는 가능하면 미니가 가진 장비를 분해해 보고 싶어했다.


"장치를 쓸 수는 있어도, 저도 원리는 모르니까요."


씩 웃은 미니가 사령관을 보고 말했다.


"아버지, 짧게나마 뵐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응, 고마워."


"……가기 전에 하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말해 봐."


미니가 사령관을 응시했다.


"아버지께서는 모두에게 용기를 주셨어요. 이 어두운 시대에,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물론 모든 분들이 절망에 죽어갔겠죠.


아버지는 아버지 생각보다도 훨씬 중요한 분이세요.


아버지가 살아 계셔야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어요. 물론 저까지도요.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미니는 그 말을 마치며 고개를 숙였다.


리리스와 사령관은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며칠 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어쩐지 새삼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 느낌이었다. 혈육의 정이란 것일까.


인사를 마친 미니도 코를 훌쩍였다. 그녀는 쑥쓰러운 듯이 씩 웃었다.


"역시, 위험을 무릅쓰고 두 분을 만나러 오길 잘한 것 같아요. 헤헷."


"위험?"


"뭐…… 올 때도 잘 됐으니 갈 때도 잘 돌아갈 수 있겠죠."


사령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미니가 미래로 돌아가는 게 쉽지만은 않으리란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있잖아, 정 위험하면 차라리 여기서 계속 있는 게 어때."


미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제가 있던 세계도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거든요. 저, 이래뵈도 저항군에서 꽤 중요한 위치이기도 하고요."


"……."


"그럼, 정말로 감사했어요."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걸어가려는데, 리리스가 문득 그녀를 불러세웠다.


의아한 듯이 돌아보는 딸에게 리리스는 자신의 헤어핀을 하나 떼어서 건넸다. 붉은 삼각형에 검은 느낌표가 그려진 특유의 장식이었다.


"이거 가져 가. 우리한테 하나 주고 갔잖아?"


"굳이 주지 않으셔도 되는데."


"널 만났단 증거를 남기고 싶어서 그래. 내 증표라 생각해 줘."


미니는 말없이 바라보다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헤어핀을 건넨 리리스는 이어서 미니를 가만히 안아 주었다.


"……음, 역시 주인님과 껴안고 있을 때하고 느낌이 같아. 분명히 내 딸이 틀림없어."


리리스는 미니를 부둥켜안은 채로 환하게 웃었다.


미니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이윽고 미니가 워프를 위한 자리에 올라섰다. 모두는 긴장하며 미니 쪽을 바라보았다.


미니의 팔찌와 목걸이 장치가 작동하더니, 점차 주변에 스파크가 일어났다. 그리고 번쩍이는 빛이 생겨났다.


미니의 주변을 둘러싼 스파크가 격렬해지면서 세찬 바람이 불었다. 모두가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자, 불빛이 더욱 커져서 눈을 부시게 했다.


별안간 미니 쪽에 전하의 구체가 생겨나며, 미니를 집어 삼켰다. 바로 다음 순간 번쩍하고 사방으로 빛이 퍼져나갔다. 섬광탄이 터진 듯해 사령관은 물론이고 리리스까지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잠시 뒤에 다시 눈을 떠 보자 미니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는 원형의 불씨만이 남아서 조금씩 타들어갈 뿐이었다.


정말 떠났구나. 사령관을 비롯한 모두는 아쉬운 마음으로 오르카호에 돌아갔다. 그녀가 무사히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이었다.


수면을 취하고 난 뒤 사령관과 리리스, 그리고 승조원 모두는 최근 며칠 전부터의 기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한두 명도 아니고 단체로 동시에 기억을 상실할 수 있을까. 혹시 휩노스 증후군의 일종인가 싶어서 급히 오르카호의 CCTV를 확인해 보았지만, 어째서인지 며칠 동안의 기록이 모조리 훼손된 상태였다. 오르카호의 기술진조차 도무지 복구할 수 없을 정도의 손상이었다.


생체 컴퓨터인 므네 또한 며칠간의 기억이 없다고 전했다. 그녀가 생존해 있던 몇십여년 동안 이 같은 일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관리자님?"


"응. 뭔가 수상한 점을 발견했어?"


"신규 데이터베이스 등록이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사령관은 기억에도 없는 설계도며, 철충들의 정보, 전투 기록이 남아 있자 당황했다.


"누군가 보낸 건가?"


"등록자는 관리자님입니다."


"내가 그랬다고? 난 그런 기억이 없는데."


사령관이 당황해하는 사이 리리스가 다가왔다. 안 그래도 조금 전 닥터 역시 출처 불명의 자료들을 가져온 참이었다.


한편, 리리스는 어딘지 멍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사령관은 리리스를 응시하던 도중 무언가 달라진 점을 느꼈다.


"리리스. 머리핀 한 쪽은 어디 갔어?"


리리스는 그제서야 자신이 머리핀 한쪽이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이걸 어디서 분실한 걸까.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 그러네요…… 이상하게."


그녀를 바라보던 사령관이 문득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리리스. 왜 울어?"


"네?"


리리스는 당황해서 눈가를 만졌다. 잃어버린 머리핀에 대해 떠올리려고 하자 갑작스레 눈물이 흘렀던 것이다.


어째서인지는 몰랐다. 그저, 무언가 그립고도 사랑스러운 존재를 잊어버렸다는 느낌이었다.


"머리핀 잃어버려서 그래?"


"아, 아니에요. 그런 거 가지고."


"오드리한테 부탁해서 하나 만들어 줄게."


사령관은 쓴웃음을 지으며 리리스를 달랬다.


머리핀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었다. 리리스는 마음 속에서 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언젠가 아이와 다시 만나면 알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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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 시절 올린 구작 리뉴얼

리리스의 본선 진출을 기원하며

소중한 한표가 미래의 미니 리리쮸를 살립니다

No f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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