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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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콜사인 에셜론, 탈론페더에요. 그리고 방금 제 레이더를 볼 때... 큰일이 난 것 같아요.


"팬케이크 1? 그리폰? 그리폰?"


"..."


"젠장..."


저는 그리폰이 불리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리폰이 도망치라고 했을 때, 제 때 도망칠 수 있었지요. 하지만 막상 그리폰과의 무전이 끊어지고 그리폰이 레이더 상에서 사라지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일단 현재 상황을 아군들에게 알리고 다음 지시를 받아야 해요.


"에셜론 1에서 임무 중인 전 대원에 알림... 어... 팬케이크 1이... 격추당했습니다. 무전은... 응답이 없어요. 레이더에 기록된 마지막 위치에 마커를 띄워둘게요."


제 떨리는 목소리가 무전망을 통해 뻗어나갔지만, 오르카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오르카... 듣고 있죠?"


"..."


답변 대신 지직거리는 잡음만이 들려와요. 물론 평소에도 무전 채널에서 항상 들리고 무시해왔던 잡음이겠죠. 하지만 오지 않는 답변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입장이 되니 지지직 거리는 소리가 머릿속까지 파고들고, 긴장한 심장이 쿵쿵 거리는 것이 느껴집니다.


칸 대장님이 그러셨죠. 심박이 빠르고 몸을 울리듯이 느껴질 때는 너무 과한 긴장을 한 것이라고. 아마 짧게 겪었던 전투의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은 모양입니다. 진정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숨을 크게 들이쉬고 흥분을 가라앉히면서 전투로 흥분한 머릿 속을 정리해봅니다.


"오르카는 무선 침묵 중이었지... 응답할 수 있는 대원이 있나요? 저기..."


그리폰을 격추시킨 철충들이 다음으로 쫓을 대상이 누구인지는 명확합니다. 레이더에 보이지 않는 적이, 숫자도 방향도 거리도 모르는 적들이, 저를 쫓고 있을거에요. 


열영상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적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카메라 하나로 광활한 하늘에서 적을 찾아내길 기대하는건 무리겠지요. 아마 저는 공격받을 때까지 적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고, 기관포 하나밖에 무장이 없는데다가 공중전에 미숙한 저는... 아마 그리폰의 희생도 무색하게 이 정찰 임무 전체가 실패로 돌아갈 거에요.


"에셜론 1에서 전 대원에게, 임무 중인 다른 편대가 있나요? 도움이 필요합니다."


"..."


이번에도 답변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르카호는 바다 밑으로 숨어버렸는데 어디로 가야하나요...


도와줄 이도, 착륙할 곳도 없이 온통 푸르기만 한 하늘과 태평양 사이에서 질식할 것만 같은 느낌이 밀려오고 있어요.




"... 기...이카입... 들..시나요?"


막 들려온 구원의 목소리는 잡음이 많이 섞여있었지만 제가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듣는데에는 충분했어요.


"다이카? 다이카에요?"


"네. 합류를 위해 이동 중입니다. 290으로 선회하고 채널 3번으로 연락하세요."


"무전 채널 3번... 설정했어요. 290 방향으로 선회합니다."


"아- 잘 들려? 나도 같이 있어. 적 편대를 우회하는라 좀 돌긴 했는데, 그리로 곧 갈게."


또다른 익숙한 목소리가 무전망에 끼어들었어요.


"하르페이아? 그게..."


"무전 들었어. 구조대가 될 줄 알았는데 복수...를 하게될 줄은 몰랐네."


"미안해요."


"괜찮아... 아니 괜찮지는 않지만! 탈론페더의 잘못은 아니니까."


"...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동료를 잃은 부대원을 위로하는건 쉽지 않지만, 떨리는 심정을 억누르고 밝게 대답해주는 하르페이아가 고마울 따름이에요.


"끼어들어서 미안하지만, 탈론페더양은 고도와 속도를 유지해주세요. 200초 후에 합류할거에요. 하피 1은 교전 준비. 적기 FQ-104 넷. 위치는 데이터 링크 확인하세요."


"NARAAK 미사일을 쓸거야. 반능동 유도는 다이카의 레이더를 이용하는게 좋겠어."


"확인했습니다. 동기화는 되어 있으니 그대로 발사하면 돼요."


"좋아. 놈들 뒤로 10마일까지 접근한 다음에 퍼부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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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한 오르카호는 외부로 연결되는 창문이 모두 차폐됩니다. 내부의 불빛이 새어나가 적에게 들키는 어리석은 상황이 일어나서는 안되니까 당연한 일이겠지요. 다만 레이더 탐색도 햇빛도 들지 않는 지휘함교는 음침하고... 뭐 원래 전략사령부 지휘벙커는 이렇게 어두컴컴했으니까 딱히 새로울 것은 없네요. 우리 메이 대장에게 제일 어울리는 환경이기도 하고요.


긴급 잠항을 하느라 잠시 시끌벅적했던 지휘 함교는 다시 지휘관들과 기술 장교들만이 남아 차분해졌습니다. 어두운 분위기도 물론 한 몫 했구요. 함교에 비치는 불빛은 지휘 패널들의 깜빡이는 불빛 뿐이고, 들리는 소리는 기계음과 간간이 들어오는 함내 유선 통신, 그리고 지휘관들의 대화 뿐입니다.


지금은 메이 대장도, 사령관도, 용 대장도 모두 상황판 위 우리 편대의 좌표에 눈을 고정하고 신경을 곤두세운 모습이에요. 지금 화면에 보이는 것은 다이카와 하르페이아 뿐이지만, 다이카가 정찰편대와 컨택하고 나면 그리폰과 탈론페더의 정보도 볼 수 있겠지요. 


사령관님은 우리 정찰 편대가 공격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뒤 걱정이 얼굴에 큼지막하게 들어차셨습니다. 메이 대장은 자신의 공격 계획안 대신 정찰 편대를 구원하기 위한 단 두 대만을 출격시켰다는 것이 불만이고요. 침착하게 표정을 유지하는건 이번에도 용 대장 뿐이네요. 메이 대장도 저렇게 카리스마 있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에셜론 1에서 임무 중인 전 대원에 알림... 어... 팬케이크 1이... 격추당했습니다. 무전은... 응답이 없어요. 레이더에 기록된 마지막 위치에 마커를 띄워둘게요."


침울한 탈론페더의 무전이 함교로 들어오자 함교가 일순간 조용해졌습니다. 1초 정도의 침묵 후 각자가 무전의 충격적인 함의를 이해하고 나서, 침묵은 이윽고 탄식과 한숨으로 바뀝니다.


틱틱 거리는 소리와 함께 용 대장이 차분하게 패널을 조작하네요. 다이카, 하르페이아, 탈론페더와 함께 상황판의 [작전 중] 대원 목록에 들어있던 [P/A-00 Griffon]이 [작전 중 실종] 목록으로 옮겨집니다. 빵빵한 볼을 자랑하며 밝게 웃고 있는 그리폰 양의 프로필 사진이 회색으로 바뀌고, 그 위에 [MIA] 딱지가 붙었네요.


바이오로이드의 입장에서, 특히 전략공군 사령부의 부관으로서 장교 업무를 다뤘던 눈으로 볼 때 이런 일은 멸망 전에는 병가지상사로 특별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사자 0을 자랑하는 우리 사령관님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예. 걱정대로 사령관님은 저쪽 테이블에서 멍하게 상황판을 쳐다보고 계시네요. 다행히도 용 대장이 도저히 말을 걸 수 없을 것 같아보이는 사령관님에게 말을 붙여주십니다.


"주군."


"..."


"상심이 크신 것은 알겠으나, 지휘는 계속 하셔야 합니다."


"후우..."


용 대장이 의자에서 꼼짝 않는 사령관님의 옆으로 다가가 손을 붙잡고 눈을 마주칩니다.


"세수라도 하고 마음을 다잡으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으응... 알겠어."


사령관이 의자에서 일어나 터널터널 복도로 걸어나가고, 문 앞을 지키던 하치코가 그 뒤를 따릅니다. 사령관님이 기운을 차리셔야 할텐데요. 그리고 우리 대장은-


"아니 대장은 왜 또 울상인데요?"


"으으.. 대령..."


"점심 먹은거라도 잘못됐어요?"


"아니... 사령관 표정 봤지..."


"아끼던 대원을 처음으로 잃게 생겼으니 그럴 만도-"


"나 이제 완전 끝장인걸까? 어떻게 하지..."


"뭐요? 결론이 왜-"


"으흠"


용 대장이 메이 대장의 상태를 봤는지 이 쪽을 보고 헛기침을 합니다.


"메이 공도 세수라도 하고 오는게 좋지 않겠소?"


그러더니 저를 보면서 눈짓으로 데리고 나가라는 듯 신호를 보내네요. 네. 우리 대장도 정신 좀 차려야 할 것 같긴 해요.


"... 일단 나가죠 대장."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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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 함교 앞 복도는 작전 중이라고 통제된 모양인지, 화장실 까지 오는 길에 마주친 바이오로이드라곤 복도를 감시하던 스노우 페더와 남자 화장실 앞을 지키던 하치코 뿐이었네요. 스노우 페더가 풀이 확 죽은 메이 대장의 처진 걸음걸이가 신기한지, 고개를 자꾸 까닥거리며 곁눈질을 해서 약간 낯부끄러웠습니다.


[솨아아아]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며 울상이던 얼굴을 닦아낸 메이 대장이 물을 끄고 휴지로 물을 대강 훑어내더니 손바닥으로 양 볼을 짜악 소리가 나게 두 번 칩니다.


"휴우..."


"도대체 뭐가 그렇게 걱정이라 울상입니까?"


"뭐? 대령은 사령관 표정도 못봤어?"


"당연히 봤죠. 그리폰이 격추됐다고, 사령관님 휘하에서 첫 바이오로이드 사상자가 나오게 생겼으니 그렇게 멍때리시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 아닐까요."


"그건 그냥 멍때리는 표정이 아니였어."


"예?"


"분노와 후회가 눈에 이글거리고 있었단 말야..."


"저는 모르겠던데... 그리고 만에 하나 그렇다고 쳐도, 분노와 후회가 왜 대장을 향한답니까?"


"당연한거 아냐? 일단 내가 입안한 작전이고, 심지어 격추 직전에는 정찰 편대 지원할 애들 대신 폭격 편대를 띄우라고 건의까지 했는데 누굴 탓하겠어?"


"그게 그렇게 됩니까?"


"당연하지!"


"그렇다손 쳐도 공군참모총장이랑 스트랫콤(USSTRATCOM; 미합중국 전략사령부) 사령관 앞에서도 '댁들이 틀렸어' 하면서 당당히 뻗대던 그 성깔은 어따 버려두고 그런걸 걱정하시죠? 그 때 부리던 성격 반만 좀 유지해보시죠."


"그땐 그 인간들이 틀렸고! 지금은 내가 틀리고 사령관이 옳았단 말이야!"


옛날 성격은 어디갔냐고 비꼰 것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대장이 소리를 빽 질렀습니다. 제가 좀 과했던걸까요? 아니 그보다도...


"잠깐... 애초에 틀린 조언을 했다고요?"


"정보가 모자라서 방심하긴 했지만... 철충이 바다를 가로질러 1000마일 넘게 날아오질 않나, 초음속 제공기에서 미사일을 쓰질 않나, 대함미사일이나 쓰고 그런걸 본 지가 벌써 70년은 넘었단 말이야..."


"아뇨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처음부터 사령관님께 잘못된 조언을 하려고 했냔 말입니다."


"미쳤어 대령? 내가 그럴 바이오로이드로 보여?"


"그러니까 그 때 가진 정보로는 그게 가장 좋은 전략이었다는거 아닙니까?"


"그럼. 그 놈들이 안하던 짓을 갑자기 해서 그렇지."


"그냥 솔직하게 의도를 말씀드리면 넘어가주시지 않을까요?"


"지휘관은 결과를 말하는거야 대령. 그리폰이 격추된 책임을 어떻게 져야할지 도저히 모르겠어. 사령관을 무슨 낯으로 봐야할지도..."


"그래도 밝히면... 그러니까 나쁜 의도는 없었다... 아니지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겠군요. 실수였다... 음..."


"거 봐. 어렵지 대령? 무능한 년이 되거나 나쁜 년이 되거나 둘 중 하나야. 사령관이랑은 완전히 끝장이라구."


확실히 단순히 애정 문제로 답답하게 구는 것이 아니니, 대장의 고민도 지금 상태가 큰 위기라는 것도 공감이 됩니다.


"당당하게 하와이를 탈환하고 사령관에게 점수라도 딸 수 있을까 했는데, 최악의 작전을 선사한 꼴이-"


[뚜벅 뚜벅-]

 

밖에서 들려온 구둣발 소리에 대장이 황급하게 말을 멈춥니다. 화장실로 들어오는 인물은...


"듣자하니까 많이 건방져졌네 메이?"


"사령관님?"


"사, 사령관... 어디서부터 들었어? 아니지... 그게 아니고... 어..."


메이 대장을 노려보며 다가가던 사령관님이 앞에 멈춰서서는,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추고 눈을 뚫어져라 마주 쳐다봅니다.


"그... 그게... 미안해 사령관..."


"네가 책임질게 아니야."


"응?"


"그리폰이 격추된건 네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어..."


"이번 공격 작전을 승인한 것도 나고, 그리폰과 탈론페더만 정찰 보내는 계획을 결재한 것도 나야."


"그... 그치만..."


"그리폰이 격추된걸 책임질 수 있는건 최고 사령관인 나 뿐이야. 아니면, 메이 소장님은 혹시 제 위에 서고 싶기라도 하신지요?"


"뭐뭐, 뭣? 아, 아니. 말도 안되지."


"나는 이제 작전을 마저 수행해야 하는데, 아마 항공 작전이 계속 되겠지? 메이가 말했던 대로 내가 항공 작전엔 좀 무지해서-"


"미안해 사령관!"


사령관님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메이 대장을 보고 피식 웃으시더니, 다리를 펴고 일어서서 메이 대장의 머리를 쓰다듬어줍니다.


"그래서 유능한 공군 지휘관이 필요해. 나는 메이가 나한테 주었던 작전 계획들과 제안들이 그 때 가진 정보들로는 최선이라는걸 알아. 그리고 이제 상황이 바뀐 것도 확인했고, 새로운 환경에서도 항공 전역에 관해서 나를 가장 잘 도와줄 수 있는건 메이일거라고 믿고 있어."


"응... 응... 고마워."


끄덕거리며 사령관의 말을 듣던 메이 대장이 기어코 훌쩍이며 눈물을 쏟아내네요. 


"... 그런데 그 지휘관 상태가 이래서야 쓰나. 세수하고, 마음 다잡고, 다시 잘 해줘. 알았지?"


사령관님은 대답은 못하고 연신 고개만 끄덕이는 메이 대장의 등을 토닥여주더니, 이내 뒤돌아 밖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나가는 길에...


"메이 좀 잘 챙겨줘. 부탁할게."


"아. 예. 그럼요."


저한테 윙크까지 한 방 쏘고 나가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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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솨아아아]


메이 대장은 다시 세수하고 물기도 잘 닦은 뒤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정돈했습니다. 낯빛이 이제야 좀 예전 대장 같네요.


"정말 기우로 일을 키우시네요."


"그렇네."


"애정 전선도 단순하게 기우가 잔뜩 낀거라고 생각해보신 적은 없습니까?"


"... 일단 지금 할 일에 집중하지 대령."


"예 뭐... 그래야죠."


"그래. 돌아가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나 정하자고."


"네네. 가시죠."


함교로 돌아갈 때는 당당하게 걸어나가는 메이 대장을 뒤따라서 지휘 함교로 향할 수 있었네요. 


메이 대장도 사령관님도 좀 더 기운을 내시는 것 같으니,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쉽지 않더라도 도전해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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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근 3달만에 다시 끄적이는 글쪼가리.


안쓰다 쓰려고 하면 인물들 행동 말투 이런거 하나 떠올리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걸려서 엄청 느려지더라. 그래서 일단 5000자는 채운다는 느낌으로 썼는데 나중엔 속도가 붙어서 다행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