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글자. 가르쳐드릴게요."


 "와! 정말요?"


 드디어 이곳에서 진정으로 할 일을 찾았다. 베로니카는 이런 사명을 내려주신 빛에게, 성 디도 고아원에 갈 수 있도록 길을 알려준 총무수녀에게 마음 속으로 감사를 표했다.


 베로니카가 자신의 가슴에 아로새긴 사명은 이러했다: 코헤이의 적들을 몰살하고, 그들의 살덩이를 땅 삼아 갈아엎은 뒤, 그 위에 계몽의 씨앗을 뿌린다. 그동안 몰살은 할당량을 10배, 100배로 초과해 달성했지만, 계몽의 씨앗을 뿌리는 단계까지는 가본 적이 없었는데. 


  새 사명을 받으니 베로니카는 한껏 신이 났다.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미소를 지었다. 미소만 지었을까. 베로니카는 앞장서서 쪽방으로 올라가면서, 평소보다 훨씬 더 말이 많아졌다. 목소리도 톤이 한껏 높아졌다.


 "글은 어디까지 배우셨다고 했죠?"


 "글자... 쓰는 법을 조금 배웠어요. 라울 신부님이 조금 가르쳐주시기는 했는데, 신부님이 많이 바쁘셔서 얼마 배우다가 못 배웠고요."


 소학교 1학년, 다른 나라의 아이들은 북한의 소학교 1학년이랑 비슷한 나이에 글자 읽는 법은 다 배운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500km도 떨어지지 않은 대한민국에서는 소학교 1학년에 대응하는 초등학교 1학년이 글을 모르면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부모가 적절한 교육 환경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아동학대 혐의로 조사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만큼 소학교 1학년은 중요한 때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때도 아니고 하필 그 학년에 배움의 길이 끊긴 사람을 가르쳐야 한다. 라울이 포기한 것에도 그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 베로니카는 자신의 양 어깨에 올려진, 문맹 타파라는 짐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점을 생각하니, 그 짐이 매우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매님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요?"


 "안서영...이요."


 "그렇군요. 안서영 자매님."


 베로니카는 의자를 끌어왔다. 하나는 딱 엉덩이를 붙일 정도의 면적만 있는 좁은 의자였고, 하나는 오래됐지만 나름대로 쿠션도 달린 편한 의자였다. 베로니카는 서영을 편한 의자에 앉히고 자신은 불편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베로니카 그녀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서 그나마 읽기 쉬운 어린이를 위한 포켓 성경을 꺼냈다. 이것도 저 나이가 되기까지 글 읽는 법을 모르는 이가 절대 읽을 수 없는 어려운 책이었다. 그래도 문맹에게는 무슨 책을 가져다 놔도 읽는 것은 무리라는 점을 상기하며, 그 옆에 노트를 꺼냈다. 


 "자, 여기 펜이에요."


 "아, 감사합니다. 수녀님!"


 베로니카는 노트를 펴고 펜을 꺼내서 안서영에게 건네주었다. 서영은 펜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글을 쓰기 위해 펜을 잡아야 하는데, 펜을 어떻게 잡아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펜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채 멀뚱멀뚱 펜만 보고 있는 모습. 베로니카는 여분의 펜을 꺼내서 ㄱ,ㄴ,ㄷ... 순서로 글자를 쓰다가, 가만히 앉아있는 서영을 보고 물었다.


 "안서영 자매. 문제라도 있나요?"


 "이 펜으로 뭘 해야 할까요?"


 "...음."


 베로니카는 그제서야 아주 중요한 것을 간과했음을 알아차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당연하게 글줄을 쓰고, 베로니카는 실제로 태어날 때부터 글을 쓸 줄 알았으니 다들 잊는 게 있었다. 글을 쓰는 데 있어 기본인 '연필을 잡는 법'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알게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글을 쓰는 법과는 달리 인간의 본능과 직결된 식사도 그렇지 않은가. 아기들은 숟가락 쓰는 법도 몰라서 얼굴을 음식으로 마구 칠하고, 걷는 법도 몰라서 뒤뚱거리면서 걸어다니면서 먹는 법과 걷는 법을 배운다. 하물며 필기구 쓰는 법이야. 


 "아, 자매님. 펜은 어떻게 잡냐면..."


 베로니카는 펜을 올려놓은 안서영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옆면으로 펜의 앞부분을 잡고, 펜의 뒷부분은 엄지와 검지 사이에 받치게 했다. 그리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검지를 받치도록 움직였다. 베로니카를 포함한 세상 사람들은 전부 당연하게 하는 행위건만, 그녀에게는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조금 어렵죠?"


 "네... 헤헤."


 서영은 멋쩍게 웃으면서도, 베로니카가 알려준 그 손동작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펜을 잡은 손가락에 하나하나 힘을 줘보고, 굽혀도 보면서. 손을 펼쳐서 펜을 놓았다가 베로니카가 알려준 대로 잡아보려고 애썼다. 아예 손동작을 잊어버리기도 했지만, 베로니카가 끈기를 잃지 않고 다시 알려주었다. 방콕의 시장을 저격하려고 1달간 대기하던 그녀의 인내심을 시험하기에는, 안서영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이렇게... 이렇게! 맞나요?"


 "잘 했어요. 자매님."


 베로니카는 손뼉을 딱 치며 그녀를 칭찬했다. 이것도 원래는 몽둥이 쥐듯 펜을 쥐는 것으로 시작해서, 부모와 교사의 도움으로 점점 개선해야 하는 것인데, 아직 시작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빠르게 따라와주니 정말로 고마웠다. 베로니카는 한글 자음을 전부 써놓은 노트를 내밀며 웃었다.


 "잘 했어요. 자매님. 그러면 기초적인 글자를 쓰는 것부터 시작하죠. 이 글자가 기역이고, 이 글자가 니은이에요. 이 글자는 이렇게 생겼고..."


 "네? 네. 기역, 니은, 디... 디귿?"


 "역시 조금 어렵죠?"


 "네..."


 "걱정하지 마세요. 다 잘 될 거랍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건데,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에요. 자... 글자들을 쓰면서 시작해볼까요?"


 "네. 네!"


 "그러면, 시작할게요. 기역, 니은..."


 "기,기역... 니은..."


 안서영은 베로니카가 이야기하는 대로 자음을 써내려갔다. ㄱ 자를 가리키며 기역, 이라고 말하자 안서영도 그녀를 따라 기역, 이라고 말하며 ㄱ 자를 썼다. 안서영이 쓴 첫 ㄱ자는 ㄱ은커녕 낫 모양조차 아니라 생각할 정도로 엉망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원래 모두의 첫 걸음이란 건 엉망진창 아니던가. 안서영에게 특별히 관대할 필요도 없었지만, 특수하게 가혹할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리을... 미음... 비읍... 시옷..."


 "리... 리... 리을... 미음... 비읍... 시, 시오..."


 ㄱ, ㄴ, ㄷ, ㄹ... 안서영은 베로니카를 따라 글을 쓰면서, 자음과 그 자음에 대응되는 소리를 익혔다. 처음에는 베로니카가 말하는 자음을 그대로 읽는 것도 어려워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글자를 쓰는 손에 속도가 붙었다.


 "잘 했어요. 자매님. 그러면, 이 글자가 뭔지 짚어볼 시간이에요. 제가 손가락으로 짚어드릴 테니까, 제가 짚은 글자가 뭔지 한번 이야기해 보시겠어요?"


 "네. 수녀님."


 어느 정도 자음이 눈에 익었을 거라 판단한 베로니카는 노트를 돌려받았다. 베로니카가 글자를 적어놓은 앞장을 펼쳤다. 그리고 적힌 글자를 손으로 짚었다. 서영은 글자를 보고는 머릿속에서 그 글자와 대응하는 소리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저게... 리... 리..."


 "을?"


 "리을! 네! 리을이요."


 "네에. 다음.."


 처음에는 글자를 써놓은 순서대로 읽게 했다. ㄱ, ㄴ, ㄷ, ㄹ... 순서가 눈에 익고, 그 순서대로 글자를 대답하는 데 속도가 붙자 베로니카는 글자를 무작위로 짚었다. 이번에 기역을 짚었다면 다음은 히읗, 그 다음은 리을, 그 다음은 미음. 그런 식이었다. 순서가 머리에 익어서 글자를 잘 몰라도 대답할 수 있던 방금 전과는 달리, 순수히 알고 있는 것으로만 대답해야 하는 지금은 훨씬 더 어렵게 느껴졌다. 


 "기역...?"


 "니은이랍니다."


 "아! 니은..."


 "이건... 미음 아니면 비읍인지..."


 "비읍."


 "아..."


 안서영은 실수를 반복했지만, 실수가 쌓이고 쌓이자 많이 했던 실수들은 점점 벗어나게 되었다. ㄱ, ㅎ 같은 맨 앞과 끝의 자음이 눈에 익는 것을 시작으로, 점점 확실히 아는 자음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더럽게 안 읽히던 ㄹ까지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리... 리... 리..."


 "자매님. 이제 이거 하나만 알면, 자음은 다 안 거에요. 그러니까..."


 "리을! 리을이요!"


 "정답이에요. 자매님. 잘 했어요"


 그렇게 안서영이 자음을 겨우 눈에 익혔다. 하지만 안서영의 성취는 미약한 시작에 불과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한국인도 자음만 가지고 글줄을 쓰지는 않으니까. 자음을 다 배웠으니 모음도 배워야 하고, 모음이랑 자음을 조합하는 법, 모음이랑 자음이 결합해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머리가 좋네요. 안서영 자매."


 "헤헤..."


  베로니카는 그녀답지 않게 미소를 지으며 칭찬했다. 자음을 벌써 다 깨치는 건 대단한 것 아닌가? 베로니카가 놀라운 발전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때, 뒤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크흠! 크흠!"


 "신부님?"


 "어? 신부님? 여긴 무슨 일로..."


 서영이 일어나서 인사를 하고, 라울은 대충 인사를 받았다. 잘 배웠니? 형식적으로 물은 라울은 베로니카에게 고개를 돌리고 손을 흔들어서 불렀다. 


 "수녀님, 잠시 저 좀 봅시다."


 "네. 신부님. 자매님. 글자 몇번만 더 써보고 계세요. 알았죠?"


 "네."


 베로니카는 라울을 따라 바깥으로 나왔다. 라울은 베로니카와 함께 계단을 내려가서 바깥으로 나갔다. 아이들이 떠들면서 놀고 있었다. 라울은 입을 꽉 앙다문 채, 입꼬리를 내리고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베로니카는 실눈을 뜨고 라울 쪽을 곁눈질했다. 


 베로니카가 알던 라울은 허허 웃고 눈치만 보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자신이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싶었다. 이런 곳에서 경비를 서는 게 아무리 의미없는 짓이었다고 해도, 어쨌든 라울이 맡긴 업무인데 멋대로 이탈해서 다른 일을 한 게 문제가 된 걸까?


 "아까 서영이를 가르치고 계셨지요?"


 "그렇습니다."


 "잘 배우던가요?"


 "가르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속단하기 조심스럽지만... 자음을 벌써 뗐습니다."


 "그럼 잘 됐군요!"


 라울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표정을 폈다. 그리고 나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베로니카가 라울의 반응을 걱정한 것과 별개로, 라울도 베로니카가 걱정이었다. 갑자기 사라졌길래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찾아봤는데, 글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자 베로니카에게 느끼던 막연한 공포심이 사라졌다. 그랬다.


  베로니카는 코헤이의 적들에게는 무자비한 학살자지만, 코헤이의 뜻 안에서 사는 이들에게는 올바른 삶을 권면하는 교사이자 봉사자다. 그게 코헤이에서 공표한 내용이었다. 그 내용을 "원칙"으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상대가 상대라서 감정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던 차였다. 그런데 그녀의 행실을 보고 나니, 마침내 원칙이 아닌 감정의 영역으로 그녀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정말로 바빴습니다. 수녀님께서 하시는 일과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겠지만, 이곳도 나름대로 힘든 곳입니다. 예를 들어서..."


 베로니카를 살인병기가 아닌 사람으로 대하게 되자, 라울도 드디어 입을 제대로 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라울은 원래 이곳에서 애들 교육도 하려고 했지만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서 포기했다고 한다. 애들 밥 해주랴, 고아원 시설 수리하랴, 식량 구하러 가랴, 이것 하고 저것 하다보면 너무 바빠서 쿄헤이 교리공부는 커녕 글공부조차 못 시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베로니카도 그 이야기를 듣고는 수긍했다. 언제나 라울은 바빠보였다.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그가 쉬는 꼴을 본 적이 없었다. 뭔가 하고 있지 않더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절벽처럼 깊게 패인 라울의 검은색 눈두덩이 바쁘다고 대신 알렸다.


 "잡설이 길어서 죄송합니다... 하하. 어쨌든, 각설하고... 짧은 시간이겠지만, 베로니카 수녀님께서 아이들의 글공부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공부, 말씀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이곳의 아이들은 17살, 18살이 되면 전부 바깥으로 쫓겨난답니다. 한 글자도 읽을 줄 모르는 아이들이 전부 바깥으로 나가는 거예요. 글씨도 읽을 줄 모르는 아이들이 살아남기에는... 북한 지역은 너무 위험한 곳이지요. 잘 아시지 않습니까?"


 "확실히 그렇죠."


 베로니카도 잘 알고 있었다. 굳이 북한이 아니더라도,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이들에게 가혹한 것이 세상이었다만... 북한은 특히 더 그랬다. 문맹들만 겪을 수 있는 온갖 시련이 종합 선물세트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팻말에 쓰인 게 지뢰인지 어뢰인지도 모르고, 아니, 지뢰란 게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멋대로 들어가서 지뢰를 밟고 걸레짝이 되는 아이들, "침입시 즉각 사살"이라는 간단한 글자 하나 못 읽어서 금지 구역에 나물 캐러 들어갔다가 수많은 군인들의 사격 과녁이 되는 어른들. 죽기만 하는가? 죽지는 않더라도 "제 모든 생명권과 인권을 갑에게 양도합니다."라는 엉터리 계약서에 서명해서 죽는 것만도 못한 상황에 빠지고, 자기 인생을 망치는 사례가 한둘이 아니었다. 살인만 하던 베로니카도, 잠입 근무 중에 그 정도 세상 이야기는 주워들었다.


 "네, 신부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베로니카는 미소를 지으면서 흔쾌히 수락했다. "계몽" 역시 베로니카가 다해야 할 의무였으니까. 기관총을 들고 아무도 오지 않는 고아원의 문 앞을 지키는 것보다는 계몽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었다. 허리를 가볍게 숙인 베로니카는, 실눈을 뜨고 작은 문제 하나를 생각해보았다. 


 베로니카는 한 달 후 이곳을 떠난다.



 베로니카. 코헤이 특무수녀회 48번 요원.



 코헤이가 북한 지역에서 수행하는 비밀 작전에 있어서는, 그녀가 최중요 인력이었다. 자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베로니카를 이런 곳에 평생 배치할 정도로 전투수녀가 넘쳐나지도 않았고, 그래도 될 정도로 북한 지역의 상황이 한가하지도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전장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격렬한 전투에 참가할 수 있을 정도의 몸 상태는 아니었기에 타협해서 고아원으로 배치받았을 뿐. 


 한 달. 사람을 죽이기에는 차고 넘치는 시간이다. 누구를 죽이라고 시간을 한 달이나 준다면, 베로니카는 혼자서 제대로 훈련받은 1개 대대도 죽일 자신이 있고, 목숨을 버린다는 단서를 달면 다른 나라의 대통령도 죽일 자신이 있었다.


  한 달. 하지만 사람을 가르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안서영 자매는 다행히도 배움이 빨랐다.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면 이미 대학을 들어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지능 발육에 직결되는 영양 상태가 의심스러운 나머지 아이들은 빠르게 글을 배울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베로니카 수녀님? 무슨 문제라도?"


 "아뇨, 아닙니다. 하지만, 한 가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해야 한다고 하심은...?"


  "안서영 자매님을 먼저 가르치게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안서영 자매가 어느 정도 글을 깨치면 그때부터 아이들을 가르치겠습니다."


 안서영, 그 이름에 라울의 눈이 커졌다. 다른 아이들도 많았지만, 안서영만 특수하게 교육시키겠다는 이야기에 라울이 벙쪄서 가만히 베로니카를 바라보았다.


 "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라도?"


 "이유를 물으신다면..."


 베로니카는 안서영을 먼저 가르쳐야 하는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라울 신부님도 미리 언질을 받았겠지만, 저는 한 달 뒤면 이곳을 떠날 겁니다."


 "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한 달은 저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하지만 안서영 자매는... 제가 가르쳐봤는데 배움이 정말로 빠릅니다. 문자를 처음 접하는 문맹이라는 걸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에요. 한 달 동안 역사, 과학, 수학 같은 건 무리더라도, 최소한 글을 읽을 수 있는 상태가 될 겁니다."


 "수녀님이 그러시다면야... 안서영 자매가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요. 하지만, 한 달 내로 글을 깨치는 건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라울이 1달 내로 글 쓰는 법을 가르치겠다는 베로니카의 목표에 의문을 던졌다. 어릴 때부터 배움과 단절된 사람이 한달 만에 글을 깨친다고? 라울의 의문에 베로니카는 고개를 저었다.


 "신부님의 우려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하루도 아니고, 겨우 몇 시간만에 자음을 다 외운 것을 보면, 안서영 자매는 머리가 좋은 게 분명합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 글을 가르치는 건 보통 몇 달이 걸리는 일인 게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그 사람의 지적 능력에 따라서는 더 길어질 수도 있고, 아니면 더..."


 "짧아질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죠?"


 베로니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설명을 계속했다.


 "배우는 걸 좋아하면 더 좋습니다. 안서영 자매가 글을 한번 깨치고 나면, 굳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책을 보게 될 겁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만 신부님께서 짚어주신다면, 나중에는 제가 없어도 글을 가르칠 수 있을 정도가 될 겁니다. 그리고, 한 달 뒤 이곳을 떠날 저와, 일이 바쁜 신부님을 대신해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칠 수 있을 겁니다.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리면... 적절한 책만 있다면, 혼자서 글 말고 다른 것들, 역사, 과학 등을 배울 수 있게 되겠죠."


 "...과연 그렇습니다."


 그대가 읽는 법을 배운다면, 영원히 자유가 되리라. 라울은 옛날에 한 사상가가 말했다는 격언을 떠올렸다. 라울의 서재에서 먼지만 먹고 있는 책들은 언젠가 글을 깨치고 이곳에 찾아올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글 공부만 어떻게 성공한다면 나머지는 책이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제야 라울은 베로니카가 의도하는 바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베로니카가 의도하는 대로 된다면, 라울은 너무 바빠서 손도 대지 못한 교육을 도맡을 사람이 하나 생기는 셈이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되겠군요. 한 달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수녀님."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부님."


 베로니카는 라울의 동의를 얻고 나서, 다시 쪽방으로 올라갔다. 안서영은 새로 배운 "글자"라는 것에 푹 빠져서, 자음들을 이것저것 쓰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벌떡 일어나서 베로니카를 반겼다. 


 "아, 오셨어요. 수녀님?"


 "네. 그 사이에 많이 쓰셨네요?"


 베로니카는 한글 자음으로 가득 찬 노트를 흡족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미숙한 글씨체였지만, 뒷장으로 가면 갈수록 점점 나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개선하는 모습을 보고, 베로니카는 자신의 판단이 맞을 것이라 기대하며 안서영의 손을 잡았다.


 "자매님."


 "네, 수녀님?"


 "절 도와줄 수 있을까요?"


 "네? 어떻게요?"


 베로니카는 라울과 이야기한 사항을 안서영에게도 똑같이 말해주었다. 조용히 베로니카가 이야기하던 내용을 듣다가, 자신이 나중에 가르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눈을 빛냈다.


 "제가... 나중에 교사가 될 수도 있다고요?"

 

 "자매님이 얼마나 발전하냐에 달린 문제긴 하지만... 안 될 건 없죠. 코헤이의 교리는 '공평'이니까요."


 "할래요. 저, 하고 싶어요!"


 그녀의 눈이 빛났다. 안서영은 꼭 하겠다며, 꼭 배우겠다며 나섰다. 


 "배우려는 그 모습. 보기 좋아요. 그러면... 시작하죠. 여태까지 안서영 자매님이 쓰고 있었던 게 '자음'이라고 하는 거에요. 이제는 모음, 모음이라는 것을 배울 차례죠. 모음은..."


 그 다음으로 모음을 배울 차례. 베로니카는 노트 뒷장에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의 순서로 모음 글자를 써내려갔다. 자음을 할 때와 똑같이, 베로니카가 말하면 안서영이 똑같이 말하면서 글자를 쓰고, 그 다음으로 모음을 외웠다. 그 다음으로 자음과 모음을 외웠다. 이제 자음과 모음을 붙여서 소리를 만드는 방법을 배울 차례였다.


 "자, 다시 정리해볼게요. 자매님. 기역과 아가 붙으면 어떤 소리가 날까요?"


 "...가."


 그 다음 며칠간, 안서영은 일어나서 공부만 하고, 일어나서 공부만 하기를 반복했다. 가르치려는 열성과 배우려는 열성이 합쳐지니, 베로니카마저도 놀랄 정도로 발전이 빨랐다. 글 깨나 읽는다는 사람도 어떻게 읽어야 할 지 난감한 글자들을 빼면 거의 다 깨우쳤다. 겨우 사흘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이건... 놀랍네요."


 배운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안서영은 벌써 성경 구절을 떠듬떠듬 읽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글과 말을 함께 쓰면서 자연스레 배우게 되는 발음과 표기의 법칙과 예외들(예를 들어 왜 깻잎을 깨십이 아니라 깬닙으로 부르는지)은 갓 문해를 배운 안서영이 감히 접근할 부분이 아니었고, 붙어있는 글자들을 한 단어로 인식하지 못하고 글자 하나하나를 빠르게 읽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놀라웠다.


 "너 희 도 함 께 갇 힌 듯 지 금 갇 혀 읻 는 사 람 들 을 생 각 할 걷 이 며 너 희 도 몸 을 가 진 즉 학 대 받 고 읻 는 사 람 들 을 생 각 하 라."


 "...안서영 자매님?"


 "네. 수녀님."


 "한번 이름을 써 볼까요?"


 "이름이요? 네. 이름..."


 그녀는 이름을 쓰라는 말에 노트를 펼치고 곰곰히 생각했다. 자음 ㅇ 에 모음 ㅏ 그리고 다시 자음 ㄴ 이 붙으면 "안"이 되고, 자음 ㅅ에 모음 ㅓ 가 붙으면 "서"가 되고, 자음 ㅇ 에 모음 ㅕ, 그리고 자음 ㅇ 가 붙으면 "영" 이 되니... 곰곰이 생각하던 안서영은, 결국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서 자신의 이름을 써냈다. 분명히 다 배운 내용인데도 확실하지 않아서, 자신의 이름 석자의 획이 엉망이었지만... 분명히 썼다. 안서영. 그녀의 이름 석자가 맞았다.


 "안, 서, 영. 맞죠?"


 "훌륭해요."


 자음과 모음을 붙여 글자 하나를 쓰는 행위. 한반도 남반부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과 베로니카에게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쉬운 행위다. 하지만 안서영, 소학교 1학년에서 배움이 완전히 끊긴 소녀에게는 아니었다. 인류가 달에 내딛은 첫 걸음이 그랬던 것처럼 정말로 어려웠고, 동시에 지식의 한계를 강제로 깨버리고 새 틀을 만드는 어려운 행위였다.


 "안, 서, 영... 안, 서, 영..."


 자신의 이름을 안서영이라 적은 소녀는, 공책 한장을 자기 이름으로 꽉 채우고 나서 밝게 웃어보였다. 베로니카도 그녀를 보고 흡족하게 웃었다. 베로니카는 기록적인 학습 속도를 보고 내친 김에 받아쓰기까지 할까 생각했지만, 잘못하면 안서영이 수많은 규칙과 예외 앞에서 좌절할까봐(구지와 굳이의 차이, 바치라고 발음하는 것을 밭이라고 쓰는 등) 나중에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이 정도만 해도 다른 이들이면 아무리 빨라도 몇 주에 걸쳐 해야 했을 내용이었으니까.


 일단 읽는 법을 제대로 가르치기로 했다. 읽는 것도 쉬운 게 아니었지만, 일단 코헤이의 십계명 같은 것부터 제대로 읽게 한 뒤에, 점점 읽는 것의 범위를 넓힐 생각이었다. 베로니카는 안서영이 읽고 있던 쉬운 성경의 맨 앞장을 폈다. 그리고 안서영에게 넘겼다.


 "코헤이의 계명이에요. 코헤이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내용이죠. 한번... 읽어볼까요?"


 "네. 네... 코 헤 이 의 뜯 에 복 종 할 지 어 다  이 는 코 헤 이 의 뜯 이 항 상  옳 음 이 라..."


 "잘 읽었어요. 이 부분은 이렇게 읽으면 더 정확할 거에요... 코헤이의 뜻에 복종할지어다."


 "코, 코헤이의 뜻에 복종할지어다... 그런데 수녀님. 복종이 뭔가요?"


 "아, 복종은... 복종은 말을 잘 듣는 것을 뜻한답니다. 예를 들어 저는 빛에 복종합니다. 라고 말하면, 제가 빛의 말을 잘 듣고, 빛이 하라는 대로 한다는 거죠."


 "복종... 그게 복종이군요. 그럼 그 다음으로... 현 세 를..."


 베로니카는 계명을 함께 읽어내려갔다. 안서영이 읽으면, 어떻게 읽으면 정확한지 다시 알려주었다. 그리고 중간에 안서영이 모르는 단어를 물으면, 그 뜻이 무엇인지 쉽게 풀어주었다. 그녀가 일상적으로 쓰던 단어들, 예를 들어 잡귀, 이교도, 살인, 괴물, 폭발 등. 그런 것들을 일일이 설명하려니 그녀도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하지만 설명을 하려고 머리를 쓰다보니 점점 교육에 대한 열의도 강해졌다. 서영이 계명을 스무 번 넘게 읽자, 어느새 계명은 잘 읽을 수 있게 됐고, 계명에 나오는 단어들도 그 뜻을 대충은 알게 되었다.


 "어떤가요?"


 "정말 훌륭해요. 배우는 속도도, 배우는 태도도."


 "헤헤... 그런가요?"


 "그래요. 정말이에요. 빈말이 아니라."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한다. 실패를 하면 주변에서 비웃거나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고, 그 전에 자신이 그 실패를 매우 수치스럽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혀 몰라도 잘 아는 척, 전혀 하지 못해도 할 수 있는 척, 전혀 하지 못하는데도 뒤에서 가만히 숨어서 중간은 가는 척을 했다. 하지만 안서영은 그렇지 않았다. 틀리건 말건 일단 했다. 그리고 틀리면 베로니카에게 지적을 받고 고쳤다. 베로니카가 사근사근 말해줬다는 것을 감안해도. 태도가 좋으니까 가르칠 맛이 났다. 


 그리하여 안서영을 위한 매우 기초적인 교육이 끝났다. 이제는 다른 아이들을 가르칠 시간이었다. 글공부에 매진하던 안서영과 ,옆에서 그녀를 봐주던 베로니카를 위한 오늘의 해가 지고, 다음 날의 해가 뜨자, 라울은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아이들은 우성대면서도 라울의 말을 들으려고 한 자리에 모였다.


 "자, 여러분. 오늘 아주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한번 맞춰볼까요?"


 한번 맞춰보자는 이야기에도, 아이들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라울만 바라보았다. 몇몇 아이들은 라울이 무슨 말을 하건 자기들끼리 떠들기 바빴는데,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상호야. 그래. 말해보렴."


 "계란 프라이 나오는 날인가요?"


 "그랬으면 좋겠구나. 그건 아니란다."


 아이가 손을 내리자 다른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고기, 계란, 더 많은 죽! 대부분 먹을 것 얘기였다. 라울은 아이들의 먹성을 보고 껄껄 웃더니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부터, 짧은 기간이지만, 글공부를 할 겁니다."


 "공부요?"


 "네. 공부요. 읽고 쓰는 법을 배울 거랍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공부를 한다는 소식에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공부란 건 그들과는 딱히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아예 "공부"라는 단어를 처음 듣는 이들도 있었다. 이전에 라울이 공부를 가르치던 시절을 기억하는 아이들은 라울이 하는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런 기억이 없는 어린 아이들은 공부가 뭐냐며 웅성거렸다. 


 "그리고... 오늘부터 공부를 가르칠 분은, 네. 들어오시죠."


 문이 열리고 베로니카가 들어왔다. 검은색 수녀복, 감은 눈. 그 감은 눈을 뜨면 무엇이 드러나는지 알고 있던 아이들은 떠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공부인지 뭔지 하는 걸 다시 할 수 있게 생겼다며 기뻐하던 아이들도, 자기를 가르칠 교사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망태할멈 같은 베로니카라는 사실에 찬물을 얻어맞은 듯 잠잠해졌다.


 "..."


 "오늘부터 교육을 맡게 된 베로니카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


 "...여러분?"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베로니카가 예상치 못한 아이들의 반응에 당황해서 입을 다물자, 라울이 나섰다. 


 "자, 여러분. 수녀님한테 인사해야죠. 자, 인사!"


 처음에는 쥐죽은듯 조용했던 아이들이, 라울이 재촉하자 그제서야 베로니카에게 인사했다. 베로니카도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받았다. 그리하여, 베로니카는 아이들의 글공부를 맡게 되었다.


 "자, 여러분. 이 글자가 기역, 이라고 하는 글자인데요."


 "..."


 처음에는 안서영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음부터 시작했다. 아이들은 조용히 베로니카가 글자를 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베로니카의 붉은 눈을 봤던 아이들은 그 붉은 눈이 자기를 향할까 숨을 죽이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괴물이라고 생각한 사람에게 배운다니, 어떻게든 집중을 하려고 해도 떨려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글자를 쓰고 나서, 한 아이를 지목하며 말했다.


 "이 글자가 뭐라고 말씀드렸죠?"


 "네, 저요?!"


 "네. 이 글자가..."


 "어... 어... 어... 잘 모르겠는데요."


 옆에서 지켜고 있던 아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련지. 하지만 베로니카는 그 아이를 혼내거나, 총을 꺼내거나, 눈을 떠서 위협하는 대신 미소로 화답했다.


 "처음이라 많이 어렵죠? 다시 알려드릴게요. 이렇게 낫처럼 생긴 게 기역이에요."


 "어어?"


 "이게 기역. 다시 한번 따라해볼까요? 이게 뭐죠?"


 "기... 기역이요. 기역."


 "좋아요. 잘 했어요."


 하지만 베로니카는  아이들이 생각했던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웃으면서, 첫 걸음을 내딛은 아이를 칭찬했다. 아이들은 생각하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베로니카를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충격은 베로니카가 공부를 이어가며 위화감이 되었고, 위화감마저도 시간이 지나서 사라졌다. 정말로 빨랐다. 몇시간만에 아이들은 시뻘겋게 달궈서 녹아내릴 것 같은 쇠못을 씹는 괴물이 아닌, 공부를 가르치는 선생님 베로니카를 받아들였다.


 "자, 이 글자가 뭐죠?"


 """리을이요!"""


 "맞아요. 다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첫 수업을 했다. 아이들이 베로니카의 무시무시한 일면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일면 때문에, 베로니카가 지닌 따뜻한 면까지 무시하지도 않았다. 베로니카는 상대에 따라서 악마가 될 수도 있고 천사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었고, 지금 당장은 "천사"인 이상 아이들도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있게 소리를 내지르는 아이들을 보며, 그때의 끔찍한 이미지를 벗어난 거 같아 기뻐서 웃었다.


 "자, 여러분.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입니다. 고생하셨어요."


 "베로니카 수녀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루의 수업이 끝났다. 베로니카는 책을 정리하고 아이들을 내보냈다. 아이들은 왁자지껄 떠들면서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안서영과 베로니카만이 남은 공간에는 적막이 드리웠다. 적막 사이에서 베로니카와 안서영이 교실 겸 예배당을 정리했다. 정리한 다음에는? 또 공부였다.


 "이제 공부하러 갈까요?"


 "...네."


 베로니카는 쪽방으로 다시 안서영을 불렀다. 공부, 또 공부, 다른 나라의 학생들이라면 지옥 같은 일상이라 비명을 질렀겠지만, 안서영은 베로니카의 가르침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다.



1달은 문맹자가 글을 깨치는 데 너무 짧은 시간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걸 따지면 스토리가 성립하기 어려워 일단 던져봤습니다.


너그러이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