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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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타다닥!

 

탁! 타닥!

 

 넓지는 않지만 또 좁지는 않은 방안, 흰색 바탕의 제복을 걸친 두 여성이 저마다의 책상에 앉아 빠르게 손가락을 놀리다 서로를 바라보며 물었다. 

 

“음. 오늘 작전 현황 보고서는 이걸로 끝인가?”

 

“네. 대장님. 이걸로 끝입니다.”

 

“수고했어. 발키리. 이제 좀 쉬자.”

 

 방문의 반대편에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던 철혈의 레오나의 권유에 발키리는 싱긋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곧장 홍차 세트를 찬장에서 꺼내 들었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철혈의 레오나 역시 싱긋이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의자에 걸어두었던 장교 코트를 집어 들곤 제 어깨춤에 둘러 얹었다.

 

딸-그락

 

 그녀들은 딱딱한 책상 앞을 떠나 방의 한가운데에 비치된 타원형 유리 테이블 앞의 소파 위에 앉아 간단한 티타임을 시작했다. 이것은 그녀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져오던 바쁜 하루의 휴게시간이었다.

 

“음. 이번 홍차 잎, 정말 괜찮은걸?”

 

 평소와 같은 시간, 하지만 색다른 향이 느껴지는 홍차잎의 향에 철혈의 레오나는 입가의 미소를 더욱 넓게 가져갔다.

 그런 대장의 모습에 발키리 역시 매사 딱딱한 눈가를 누그러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장님. 근래에 들어 보급품목들의 질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후훗. 그 라붕이라는 남자. 생각보다 유능하네.”

 

 그가 이 함에 도착하고 또 이 함을 떠난 지가 어언 2주일. 그 사이에 오르카 1호로 배급되는 보급품목들은 나날이 질과 양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것을 병사들뿐 아니라 장교들마저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평소 3000씩 들어오던 각 배급물량이 두 배로 늘어나더니. 이제는 아예 질까지 올리네.”

 

“후후. 각하께서도 크게 기뻐하시는 눈치셨죠.”

 

“어련히. 우리 막내도 차곡차곡 쌓이는 자원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을 정도니까.”

 

 적당한 인선이라고 생각했던 라붕이 대장. 그는 13일 전, 요안나 아일랜드에서 임관식을 진행한 후, 오르카 1호로 별다른 소식을 보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신 그는 나날이 늘어나는 보급량으로 회답했다.

 

‘이렇게 보니 우리 저항군은 정말 운이 좋네.’

 

“..유능한 남자가 둘이나 있는 저항군이라. 앞날이 어둡지만은 않아.”

 

“병사들의 사기도 최고조입니다. 지급 받는 생필품부터 여가생활 물품까지. 이렇게 호황을 누리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정말. 앞으로도 이랬으면 좋겠어.”

 

 친자매와 같이 만담을 나누던 그녀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환경과 시간을 만끽하던 그때 그 광경을 깨뜨리는 누군가의 통신이 철혈의 레오나의 책상에서부터 들려왔다.

 

삑-삑-삑-

 

“..누굴까? 내 티타임을 방해하는 녀석은.”

 

 갑작스레 찾아온 통신에 철혈의 레오나는 아까까지의 눈웃음을 완전히 거둔 채 싸늘한 시선으로 제 테이블 위를 노려다 보았다.

 

또각-또각-

 

“여기는 오르카 1호,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총지휘관. 철혈의 레오나 소장.”

 

 얼음장같이 차가운 그녀의 목소리가 그녀의 새빨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자 그와 동시에 홀로그램 통신 너머에서도 얼음장과 같은 목소리로 그녀의 차가운 분노를 맞받아쳤다.

 

-여기는 오르카 저항군 북방 전선 지휘관, 철혈의 레오나 중령. 티타임 시간 중이었지? 미안해. 소장님.

 

“...알면 됐어. 중령.”

 

 똑같은 이름과 똑같은 목소리. 하지만 그녀 둘은 별개의 존재였다. 한 명은 오르카 1호 초창기 때부터 차근차근 전투경험을 축적해온 총지휘관, 다른 한 명은 근래 생산된 다른 철혈의 레오나. 그녀들을 구분하는 방법은 고유번호와 계급. 그 중에서도 부르기 쉬운 계급으로 그 둘은 서로를 나누었다.

 

“무슨 일이야? 혹 전선 유지에 문제가 생긴 걸까?”

 

 그녀는 그녀 자신을 잘 안다. 그렇기에 홀로그램 너머의 목소리의 주인공이 별다른 이유로 그녀에게 통신을 걸 리가 없었다. 따라서 철혈의 레오나는 티타임을 중단하고 들을 가치가 있다고 판단, 다시 업무 테이블 앞에 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하려 들었다.

 

-전선 유지에는 문제없어. 가끔 철충 무리가 기지건설 현장을 습격하는 것 빼고는.

 

“..병력이 부족해? 따로 원하는 병사들을 이야기해 봐. 제조되자마자 차출해줄 테니.”

 

 철혈의 레오나는 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메모장을 꺼내곤 펜을 집어 들었다. 현재 오르카 1호는 다수의 병력과 다양한 방향으로 대륙 진출에 힘을 쏟고 있다. 따라서 어디가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 시급한 사안이라면 곧바로 처리해야 했다.

 

-병력은 충분해. 아니, 넘쳐 흘러. 우리 사령관님, 너무 제조에 힘쓰시는 거 아니야?

 

“...부정은 못 하겠네. 그래. 그러면 무슨 일일까? 보급에 차질이 생겼어?”

 

-보급은 전보다 늘었으면 늘었지. 그건 소장님도 잘 알 텐데.

 

“..그럼 대체 뭐가 문제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철혈의 레오나의 이야기, 오르카 1호의 철혈의 레오나는 이제 눈살을 찌푸렸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흐르자 발키리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업무 테이블 곁으로 다가와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다른 게 아니야. 어려운 건 아니지만 그쪽으로부터 확답을 받고 싶어서.

 

“..병력도, 보급도 충분한데 뭐가 문젤까? 무슨 확답을 원해?”

 

-흐응. 혹 우리 병력 중 일부를 요안나 아일랜드로 파견을 보내고 싶어서. 어때? 괜찮지?

 

“..요안나 아일랜드?”

 

 홀로그램 너머에서 넘어오는 단어에 철혈의 레오나 소장은 눈썹을 위로 치켜세웠다. 딱히 화가 나서가 아니라 이 중령의 요구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은 탓이었다.

 

“거길 왜?”

 

-아, 장성 계급들은 오르카 라이브 채널 접속 금지였지? 후훗.

 

“? 오르카 라이브 채널?”

 

-응. 오르카 저항군 소속의 병사들이 저마다 잡담을 나누는 인터넷 사이트야. 본거지는 당연히 그쪽이고.

 

“대체 뭘 이야기하고 싶은 건데? 돌리지 말고 이제 확실히 이야기해. 아니면 끊겠어.”

 

 감이라곤 일도 잡히지 않는 대화에 철혈의 레오나가 질색할 때, 건너편의 철혈의 레오나는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자신이 내건 요구의 힌트를 읊어주었다.

 

-역시 동형기는 동형기네. 알겠어. 당신 부관의 계정으로 그곳으로 가 봐. 그리고 개념글이라는 탭을 눌러. 그러면 내 요구사항을 거부 못 할걸? 좋은 대답을 기대할게.

 

삑-

 

“...대체 뭐야? 발키리. 그 인터넷 사이트, 어서 접속해 봐.”

 

“네. 대장님. 이미 접속했습니다.”

 

 언제나 신속한 부관의 대응에 철혈의 레오나는 아까까지의 기분 나쁜 목소리로 인해 구겨진 미간의 주름을 살짝 풀어내며 그녀가 내민 단말기를 받아 스크린 위를 응시했다.

 

‘여기네. 확실히 우리는 접속이 안 되는 곳이었지.’

 

 최소 한 페이지에 열 개가 넘는 게시물이 가득한 이곳, 스타를 단 지휘관들은 병사들의 친목 도모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접근이 금지된 사이트였다. 장성들 역시 굳이 병사들의 사생활을 침범할 생각이 없어 관심도 두지 않았던 곳이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개념글..이거구나. 흐음. 별달리 이상한 건 안 보이는데...응?’

 

 다른 일반 게시물과 달리 옆에 별이 붙어 있는 게시물들을 읽어내리던 철혈의 레오나의 회색 눈동자가 몇몇 게시물들의 제목에서 멈춰섰다.

 

-실시간 제보) 영상 포함) 요안나 아일랜드 현 상황, 돌아버린 대장님.

 

-사진) 미친 삼인방 년들을 제보한다. 여기서 이 년들 마주치면 무조건 피해라.

 

-긴급 제보) 앞으로 요안나 아일랜드에 파견 오지 마라.

 

“..요안나 아일랜드? 거기가 왜 병사들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거야?”

 

 철혈의 레오나는 의미심장한 게시물의 제목을 누르기 전, 제 부관을 올려다보며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해달라는 눈빛을 넌지시 보내었다.

 물론 대장과 함께 보내온 시간이 긴 그 부관은 곧장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설명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작전관님의 등장으로 한동안 병사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많이 오고 갔습니다. 그중에서도 현재 요안나 아일랜드로 파견된 병사들이 작전관님에 대한 제보를 수도 없이 해왔습니다.” 

 

“..상당히 자세히 알고 있네. 발키리. 너도 꽤 봤구나?”

 

“..읏.”

 

 가볍게 제 부관에게 농을 건넨 철혈의 레오나는 그제야 싱긋이 미소를 짓고는 단말기로 눈길을 돌렸다. 아까부터 계속 눈에 밟히는 제목, 돌아버린 대장님이라니. 설마 그 라붕이 대장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라는 일말의 걱정과 함께 그녀는 그 게시물 제목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지는 진풍경에 항상 반쯤 감겨있던 그녀의 속눈썹이 부릅-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눈과 마찬가지로 점점 커지는 그의 구강 사이로 경악스러움이라는 것이 한가득 묻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이게 대체 뭐야?!”

 

“대..대장님? 대체?-허억!”

 

 평생 철충들을 마주해온, 별의 아이마저 공포를 극복해내고 당당하게 걸어오던 두 사람은 단말기의 작은 화면에서 펼쳐지는 그림에 두 눈을 크게 뜨고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27)

 

“으음. 각하께서 요새 많이 침울해하시는군.”

 

“..그 정도입니까? 대장님.”

 

“음.”

 

 불굴의 마리는 제 지휘관실의 업무 테이블에 앉아 방금 내린 커피를 홀짝이며 부관의 물음에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관인 레드후드 역시 제 잔에 커피를 채우며 대장과의 담화를 이어갔다.

 

“그 라붕이 작전관님이 많이 그리우신가 봅니다.”

 

“아무래도 3년 만에 만난 새로운 인간님, 거기에 같은 남성이니 말이다. 만난 지 겨우 몇 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요안나 아일랜드로 바로 보낸 것이 문제가 된 듯하다.”

 

 금빛의 눈동자로 꺼먼 커피잔 위를 응시하던 불굴의 마리는 제 이마 위를 검지로 톡톡 치며 말을 이어갔다.

 

“요안나 아일랜드, 그러고 보니 레드후드. 우리가 전역시킨 병사들은 거기서 어떻게 지내고 있나?”

 

“대다수 전역 전에 배운 기술들을 활용해 그곳에서 생산업무를 맡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흐음. 각하의 소원도 들어드릴 겸, 한번 방문하는 것도 건의해봐야..”

 

 근래 부쩍 늘어난 보급품의 물량에 가장 큰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저항군 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스틸라인 보병대대였다. 평소 보급해도 해도 모자랐었던 비누와 같은 생필품들, 거기에 전투 때마다 찢어지게 일상다반사였던 전투복까지.

 라붕이 작전관이 요안나 아일랜드에서 임관을 한 이후, 그 모든 물품이 단 일주일 만에 물량이 급증한 것이다. 이것은 잔뼈가 굵은 불굴의 마리가 보아도 신기하고 이상한 일이었다.

 

“근래 브라우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떻던가? 레드후드.”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각자의 관물대에 예비 전투복을 3개씩 두고 다닌다 합니다. 예전에는 하나도 아껴 꺼내 썼는데 말이죠.”

 

“..흐음. 좋은 일이야. 음. 분명.”

 

“작전관님의 적성이 보급대대라는 걸 각하께서는 이미 눈치를 채고 계셨던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더없이 좋은 상황이다. 레드후드. 앞으로는 각하를, 뒤로는 작전관이라는 거대한 철벽에 보호받고 있는 것이니.”

 

 불굴의 마리는 지금보다 더한 호재가 더 없다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물론 무적의 용이 합류했을 때나, 레모네이드 알파의 합류로 인한 세력 증가 역시 무시하지 못할 호재였지만 당장에 사령관이 등장하고 백전불패를 자랑하던 오르카 저항군이었기에 새로이 등장한 인간마저 유능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긴다. 레드후드. 펙스던, 철충이던, 별의 아이던 말이다.”

 

“..맞습니다. 대장님. 모두 분기탱천, 그 자체입니다. 언제라도 전투에 임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음! 음!”

 

 부관의 확답에 불굴의 마리는 콧김을 내쉬며 기분이 한껏 고조되었다.

 

‘굳이 각하께서 외로워하시지 않아도 꼭 작전관님을 뵈어야겠군. 얼마나 성장하셨을지.’

 

 불굴의 마리는 아직도 2주 전의 라붕이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멸망 이후, 쉽사리 보지 못했던 인간 병사의 완벽한 경례. 온몸에 각인이 되어있다는 것처럼 딱딱하고 완벽한 발성으로 모습을 나타낸 그의 모습은 부디 오르카 1호의 스틸라인 장병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다.

 

‘흐음. 어차피 곧 오리진 더스트를 추가로 보내야 하는데. 이 기회에..’

 

삑-!

 

“충성! 임펫 중사. 대장님께 급히 보여드려야 할 것이 있어 방문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임펫의 방문에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던 불굴의 마리는 눈동자만 굴려 그녀의 은빛 머릿결을 쫓았다. 기다란 은빛 머릿결 사이로 살짝이 비추어지는 그녀의 뺨 위에는 붉은 홍조가 물들어 있었다.

 

‘..심상치 않군.’

 

 평소에도 느긋한 임펫이 저렇게 긴장한 상태라니, 불굴의 마리는 곧바로 눈동자를 또 굴려 제 부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을 읽은 레드후드는 제 업무용 테이블에서 일어나 부동자세를 유지하는 임펫의 앞으로 걸어갔다.

 

“무슨 일이지? 대장님이 뭘 보셔야 한다는 거냐?”

 

“...여기 이 게시물의 사진을.”

 

“이건..오르카 라이브?”

 

 레드후드의 입에서 흘러나온 단어에 불굴의 마리는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런 그녀의 반응을 읽지 못한 레드후드와 임펫은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갔다.

 

“여긴 대장님을 비롯한 장성 분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공간이다. 네가 그걸 모를 리는 없을 테고.”

 

“..예. 레드후드 중령님. 그럼 하다못해..”

 

“..그래. 내가 본 뒤에 보고를..드..?”

 

 임펫이 건네준 단말기를 눈으로 읽어내리던 레드후드의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옅어지자 불굴의 마리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들을 향해 목소리를 내었다.

 

“레드후드, 들고 와라.”

 

“..예예! 대장님! 이것..이것 좀 보십시오!”

 

 항상 점잖게 굴던 제 부관이 얼굴을 시퍼렇게 질려가며 허겁지겁 자신에게로 뛰어오자 불굴의 마리는 도리어 놀란 눈으로 제 부관의 상기된 듯한, 아니면 질겁한 듯한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대체 무언데..”

 

“대..대장님! 이! 사진 속의 인물! 혹시..작전관님 아니 십니까!?”

 

“음. 어디..음?! 이..이건 대체?!”

 

 불굴의 마리가 제 부관과 같이 경악으로 얼굴을 물들이는 데에는 1초라는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녀 역시 단말기 위의 사진을 보고 두 눈을 부릅뜬 것이다.

 

“이..이 사이트에서 더 자료를 검색하도록!”

 

“예..예! 대장님! 임펫! 내 단말기도 들고 오도록!”

 

“예!”

 

 그렇게 세 장성과 장교와 부사관은 2분이라는 시간 동안 오르카 라이브 채널에 있는 영상과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을 각각 탐독했다. 그 결과.

 

쿵!

 

 불굴의 마리는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격정이 어린 목소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부관과 부사관에게 명령을 내렸다.

 

“난 각하를 뵙고 오겠다! 부관! 자네는 각 부대의 장교를 소집하고! 중사! 너는 병사들의 복무기록들을 낱낱이 정리해 올리도록!”

 

“예! 대장님!”

 

“알겠습니다!”

 

“음!”

 

 쿵-쿵-쿵!

 

파직! 파-지직!

 

 그렇게 푸른 생체전기를 눈꼬리에 건 채 사령관실로 걸음을 옮기는 불굴의 마리를 뒤따라 비장한 얼굴의 레드후드와 임펫 역시 그녀를 따라 지휘관실을 벗어났다.

 

28)

 

“후우. 베로니카. 이번 성도들의 편지는 어떤가요?”

 

 갖가지 색의 투명한 유리가 벽면 뒤에 설치된 전등빛에 제 자태를 뽐내는 엄숙한 성당 내부의 공간, 등에 새하얀 날개를 펄럭이는 성스러운 분위기를 온몸에 두른 반라의 여성의 물음에 그녀 앞에 서 있는 흑발의 수녀는 살짝이 고개를 숙이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새로운 작전관님, 라붕이 대장님의 존재는 과연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물음으로 가득합니다.”

 

“..후우우. 사라키엘도 그렇고. 성도들도 그렇고. 모두 구원자의 유일성을 의심하고 있군요.”

 

 베로니카의 대답을 들은 아자젤은 근래 계속해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들의 교리에 따르자면 유일신은 사령관 단 한 명뿐. 세상에 더는 구원자가 없어야 했다.

 

“..성도들이 작전관님의 은총은 은총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후우. 은총이 어떻게 부식으로..”

 

“..저희가 나눠주는 부식을 저희가 사령관님의 은총이라 했기에 물러설 곳도 없습니다.”

 

“아아..”

 

 담담하게 핵심을 찔러오는 베로니카의 말소리에 아자젤은 제 검녹빛 머릿결 위를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매번 설교가 끝나면 찾아오는 부식 배분 시간, 예전에는 초코파이 하나에 만족하던 장병들이 근래 늘어난 보급으로 인해 이제는 햄버거를 요구하고 있었다.

 

“..이번에 저희에게 배급된 은총은 무엇인가요?”

 

“성도들에게 일 인당 초코파이 3개, 과일 음료 2개. 그리고 초코바 2개씩입니다.”

 

“..그렇게 나요? 그렇게나 많이 주어도 문제가 없는 건가요?”

 

“예. 지금 성도들이 저희 창고로 옮기는 중입니다.”

 

“아아아-”

 

 베로니카의 확답에 천사는 제 이마에 손등을 얹은 채 성당 단상 위에 철푸덕-누워버렸다. 시원한 목조바닥이 제 하얀 날개를 품어주자 아자젤의 머릿속에서 따듯했던 사령관의 침상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구원자여.’

 

 어느 부대가 안 그렇겠냐 하지만 현 오르카 1호의 식량 사정과 보급품 사정은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을 맞이했다. 좋은 일이다. 전장에 나갈 인원들이 이제는 팬티 한 장에 연연할 일이 없다. 하지만..

 

“아자젤님. 이번 주 내로 작전관님에 대한 설교를 하셔야 합니다. 가시죠.”

 

“..그를 또 한 명의 구원자로 만들었다가는 안 됩니다. 베로니카. 우리의 교전에 흠집이 생겨요.”

 

“그래도 하셔야 할 일입니다. 작전관님에 대한 설교 말씀을 듣고자 하는 신도들이 많습니다.”

 

“..아아. 사라카엘. 그녀는..그녀는 무어라 하던가요?”

 

“..사라카엘님께서는..”

 

쿵!

 

 베로니카와 아자젤이 성당 중앙에서 차후의 설교에 대해 논의하던 중, 갑자기 오르카 1호 성당의 거대한 목조 문이 거친 충격음과 함께 세차게 열렸다.

 예의라곤 일도 없는 방문에 베로니카의 감겨있던 눈썹이 살짝이 열리며 그 속에서 제 머리카락 색과 같은 짙은 보랏빛의 눈동자가 그 침입자로 향했다.

 

“...설교시간이 아닙니다. 신도께서는..”

 

“나다. 이 타락한 자들아.”

 

 엄숙하고 차가운 검은 천사의 목소리에 베로니카는 하던 말을 멈추고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보랏빛의 두 눈에 불을 붙여놓은 것처럼 기다란 눈썹 사이로 보랏빛 빛줄기를 뿜어내는 빛의 교단의 심판자, 사라카엘이 성당 문을 거칠게 열고 등장한 것이었다. 

 

“..응? 사라카엘? 어딜 다녀오는 길인가요?”

 

“교단의 천사라는 자가 이 신성한 곳에서 그렇게 추한 모습으로 누워있다니. 네 죄목이 늘었군. 아자젤.”

 

“...”

 

또각-또각-

 

 새하얀 날개와 포용력이 넘치는 아자젤과 정반대되는 검은 날개를 등에 업은 채 상대를 압도하기에 충분한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검은 천사는 힘찬 발걸음과 함께 그녀들의 앞으로 걸어왔다.

 

“흥. 그 꼴을 보니 새로운 구원자의 등장을 인정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었나?”

 

“..아직 그가 구원자라는 확신이 없습니다. 사라카엘. 그리고..”

 

또각-또각-

 

“그리고 우리의 교전에 흠집이 간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너라면.”

 

“...”

 

또각-

 

“그때도 그렇지만 넌 교단의 천사라는 신분을 망각하고 있다. 아자젤. 구원자는 자신이 구원자라는 것도 제대로 모른 채 죄를 범하고 있지.”

 

 성당의 끝, 단상 앞으로 걸어온 사라카엘은 베로니카를 흘겨본 후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아자젤을 내려다보았다. 평소보다 한층 더 차가워진 그녀의 말투에 아자젤은 백옥같은 피부 위에 주름을 그렸다.

 

“..절 비난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구원자님의 흠을 보는 건 용납하지 못합니다. 사라카엘.”

 

“흥! 그건 내가 그를 인정하고 나서 이야기해라.”

 

“..하여튼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앞으로 성당에 들어오실 땐..”

 

휙!

 

“연유는 이거다. 아자젤.”

 

“응?”

 

 제 말을 끊고 오른팔을 앞으로 쭉 내미는 사라카엘의 행동에 아자젤은 어깨를 들썩였다. 그녀가 제 앞에 내민 것은 그녀의 단말기.

 그리고 그 단말기 위에는 어느 남성이 단상에 서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이 들어있었다. 재생 버튼을 누르지 않아 멈춰 있는 상태지만 그의 모습은 아자젤의 연보랏빛 눈동자 안에 확실하게 들어왔다.

 

“...어? 이..이건.”

 

“왜? 놀라운가? 이단심문관. 너도 와서 보도록.”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두 명의 천사와 한 명의 이단심문관은 성당의 한복판에서 3분 동안 한 남성이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연병장의 단상에서 무언가를 외치는 영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 아아아! 이것이군요! 사라카엘! 이거에요!”

 

“..호오. 이건..”

 

 아자젤은 방금과 달리 양 팔꿈치를 갈비뼈 위에 붙인 채 환한 미소를 지었고 베로니카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감고 있었던 눈썹을 완전히 위로 올리며 단말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사라카엘은 오른쪽 입꼬리를 천천히 위로 올리며 누가 보아도 심상치 않은 흉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것이 새로운 구원자님의 역할이다.”

 

“응응! 이거라면! 교전에도 문제가 없어요! 베로니카! 어서 설교문을 써내리죠!”

 

“..네. 아자젤님.”

 

 근 2주간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가 단숨에 해결되자 아자젤은 하얀 날개를 퍼덕였고 베로니카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라카엘 역시 제 검은 날개를 퍼덕이며 엄중하지만, 어딘가 고조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드디어 이 타락한 대지에 심판의 때가 도래했다.”

 

29)

 

딸-그락.

 

“음. 향기 좋은데. 알파.”

 

“후훗. 사령관님, 오늘은 기분이 좋으신가 보네요.”

 

 사령관은 제 커피잔의 끄트머리를 코앞까지 들고 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 향을 들이켰다. 언제 맡아도 좋은 향기, 사령관은 코로 그 향긋한 향을 음미한 뒤 이번에는 미각으로 그 향을 맛보았다.

 

“음. 좋아. 어제 라붕씨와 간밤에 긴 대화를 나누었거든.”

 

“후후훗. 이번에는 화상이었나요?”

 

“으응. 화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문자로나마 서로의 근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어.”

 

 이 씁쓸하면서도 어딘가 중독되는 커피의 맛 탓일까, 아니면 어젯밤의 문자들 탓일까. 사령관은 제 뺨 위에 큰 보조개를 피워 올렸다.

 그런 그의 편안한 미소에 그의 뒤에 서 있던 비서의 얼굴에도 그와 같은 미소가 그려졌다.

 

“설마 어제 동침 이후에 나누신 건 아니시죠?”

 

“...으음. 그건 비밀.”

 

“영악하셔라. 후훗.”

 

 입술에 검지를 올리고 눈웃음을 짓는 사령관의 장난스러운 미소에 알파는 오른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며 쿡쿡 웃어대었다. 항상 오전 업무에 치여있어야 할 시간에 그들이 이렇게 한가로운 한때를 보낼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설마 그분이 후방보급 행정까지 전부 맡아주실 줄이야. 덕분에 저희도 업무량이 꽤 줄었어요.”

 

“응응! 정말 고마운 거 있지? 이제 알파도 그를 신뢰하겠어?”

 

“..후우. 처음에는 혹시나 영악한 오메가의 수작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이제는 의심할 여지가 없네요.”

 

“이렇게 우리 군을 불려주는데 설마 그 오메가의 수하일까.”

 

 후방 보급대대 총책임자, 그리고 특수작전관이라는 특이한 지위를 얻게 된 라붕이 대장은 첫 일 주일을 마치 없는 사람처럼 굴며 보내었다.

 따로 연락을 해보려고 해도 잘 지내고 있다는 말과 조금씩 늘어나는 보급품만 보낼 뿐. 거리가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진 걸까하고 노심초사하던 사령관이었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활발히 자신에게 업무 보고를 보내며 사담을 나눌 정도로 사이가 발전했다.

 

‘선물로 보낸 위스키도 마음에 든다고 했으니 이번에는 정말로 사이가 가까워진 것 같네.’

 

 리오보로스의 무덤에서 확보한 다량의 숙성된 양주 중 일부를 선물하자 그는 정말로 기쁜 듯 곧바로 그에게 회신을 보내왔었다.

 

“따로 차출해준 리제나 리리스. 그리고 소완도 그곳에서 잘 적응하고 있다나 봐.”

 

“아. 그 생체관을 부순 아가씨들 말이죠? 후훗. 그것 때문에 한동안 제조도 못 했었죠.”

 

“..안드바리는 좋아했지만 난 죽을 맛이었지. 그리고 요새 안드바리의 미소가 입에서 떨어질 줄을 몰라.”

 

“후훗. 매번 만류해도 사령관님이 자원을 제조실에다 가져다 바쳐 그 아이가 매일 사령관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던 때가 떠오르네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나쁜 놈 같은데. 하하하!”

 

 점차 늘어만 가는 보급량은 그 질도 훌륭해 오르카 1호의 물자를 담당하는 소녀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것은 사령관 역시 마찬가지.

 

‘이렇게 훌륭한 성과를 바로 올리다니. 역시 라붕씨야! 응!’

 

“그런데 그 작전관님은 대체 어떻게 이런 발전을 2주 만에 이루어내신 걸까요?”

 

“으음..라붕씨 말로는 원래 이랬어야 했던 걸 되돌리고 있어서 그렇다던데.”

 

“? 원래 이랬어야 했던 일이요?”

 

“응. 마치 원래 이렇게 물자가 후송되어야 했다는 것처럼.”

 

 사령관은 다시 커피를 홀짝이며 어젯밤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식사는 잘 하고 있냐는 둥 그곳 생활은 어떻냐는 둥, 똑같은 대목의 대화를 몇 날 며칠을 나누어도 그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질리지 않았다.

 심지어 이제는 군에 관한 이야기도 오르락내리락하니 사령관은 앞의 나날이 더욱더 기대되기 시작했다.

 

‘지휘관들 앞에서는 최대한 불쌍한 척을 했으니..’

 

“조만간 볼지도. 후후후.”

 

“?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건가요? 사령관님.”

 

“아냐. 별거 아냐. 그냥 잠깐 짓궂은 생각을 조금.”

 

 사령관은 근래 작전 지휘실에 들어설 때마다 기운이 없는 척,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걸어 다녔다. 지휘관들이 보기에도 무언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할 만큼 사령관의 연기는 훌륭했다.

 

‘마리는 쉽게 넘어올 것 같고. 다른 지휘관들도 궁금해하는 것 같으니.’

 

“알파. 요안나 아일랜드에 가보고 싶지 않아?”

 

“..어머. 그런 속셈이셨군요. 역시 사령관님은 영악하시네요.”

 

“헤헷. 이 정도야 뭐.”

 

“그런데 그곳에는 어떤 게 있는 건가요? 이렇게 다량의 보급 물자를 수송할 정도면..”

 

“으음. 요안나가 제일 먼저 개척한 섬인데, 규모는 제법 커. 화산섬은 아니지만 섬의 가운데에는 산도 있고 또 해수욕도 가능한 백사장도 있고.”

 

“듣기만 했을 때는 리조트 같은 곳이네요.”

 

“응. 라붕씨 말로는 백사장을 휴양지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했어. 이번 여름에는 거기로 가볼까 싶기도 해.”

 

“어머. 그런 작업을 할 만한 인력이 있었나요?”

 

“부득이하게 전역하는 친구들이나 잉여 생산인력들도 그곳으로 차출되었으니 꽤 많은 인원이 그곳에 있을걸?”

 

“저희야 전방의 전선만 신경을 쓰다 보니 후방에 대한 걱정이 컸는데, 다행이에요. 이제는 후방도 든든하고.”

 

“내 말이 그 말이야!”

 

 사령관은 레모네이드 알파의 호응에 오른 중지로 딱-소리를 내며 핑거 스냅을 선보였다. 쾌재다 못해 호재요. 호재다 못해 쾌재요. 사령관은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어디 있느냐는 듯 환한 미소를 그렸다.

 

 그러다 사령관은 문득 어제 그와 나눈 대화의 대목 중 하나를 떠올리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라붕씨가 몇몇 바이오로이드를 임관해도 되겠냐고 묻던데. 알파. 혹 짐작 가는 게 있어?”

 

“임관이요? 그건 후방 행정까지 맡으셨으니 아마 전문인력으로 쓰시려는 게 아닐까요?”

 

“그런 일이라면 나한테 말해주지! 바로 제조해서..”

 

“사령관님. 그 이상 말하지 않는 게 멋지세요.”

 

“..딱 몇 번만 안 될까? 창고에 물자도 가득한데. 헤헤.”

 

 그렇게 만담을 나누기를 얼마간, 사령관의 집무용 패널 위에 노란색의 느낌표 마크가 줄지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삑-삑-삑-!

 

“..응? 이게 뭔..”

 

“전부 함 내 회신요청이에요. 그것도 모두 지휘관님들이고요. 사령관님.”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령관과 레모네이드 알파는 서로를 보고선 고개를 끄덕이곤 방금까지의 여유로운 분위기 대신 진중한 분위기로 돌아섰다. 

 

삑-!

 

“사령관이야. 다들 무슨 일이야?”

 

-각하. 지금 사령관실로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급히 아셔야 할 것이 있어 연락을 드렸습니다.

 

“..마리?”

 

 어딘가 다급해 보이면서도 자신이 어린아이 체형으로 바꿨을 때 내던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불굴의 마리 목소리.

 

-사령관. 그대 혹시 오르카 라이브 채널을 봤나?

 

“응?”

 

 무엇이 그리 즐거운 것인지, 한껏 고조된 로열 아스널의 물음에 사령관의 눈썹이 휘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이어 어딘가 즐거워 보이는 두 여성의 목소리가 그의 귀를 찔렀다.

 

-사령관, 나야. 지금 당신 목소리를 보니 당신은 모르는 것 같네.

 

-쿱..크큭..사령관. 얼른 보는 게 좋을 거야. 이 재밌는 걸 너만 놓치고 있다고.

 

 곧장 숨이 넘어갈 듯한 멸망의 메이의 말에 사령관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사령관. 나다.

 

“칸.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낫겠군. 후훗.

 

“? 너도 그러기..”

 

 평소에는 말을 잘 돌려 하지 않는 신속의 칸 역시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진실을 뒤로 숨기자 사령관의 평안했던 속이 더부룩해져 갔다. 그리고 사령관이 머리를 긁적이는 사이, 점잖은 성인 여성의 목소리가 또 스피커 너머에서 들려왔다.

 

-주군. 주군의 형제이자 친구인 그가 지금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두 눈으로 보셔야 할 것 같소.

 

“어? 형제? 라..라붕씨 이야기야?”

 

-물론이오. 주군. 어서 오르카 라이브 채널로 가보시오.

 

“으응! 잠깐!”

 

 이제야 이야기의 핀트를 잡아주는 무적의 용의 말에 사령관은 황급히 제 패널 위를 두들겨 근래에는 방문하지 않았던 병사들의 비밀스러운 사이트에 발을 들였다.

 뒤에서 통신을 듣고 있던 레모네이드 알파 역시 그와 같이 제 태블릿으로 그곳에 접속했고, 그리고 그들은 그 사이트의 글들을 읽다 동시에 입을 떡-벌리고 말았다.

 

“이...이건 대체..”

 

 경악하다 못해 입을 다물 생각이 없는 사령관.

 

“사..사령..후훗!”

 

 말을 채 잇지도 못하는 그의 비서. 그리고 사령관의 경악이 들려오자 스피커 너머에서 장교들의 거친 웃음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아하하하! 아핫! 하하하! 걸작이야! 정말로 걸작이라고!

 

-하하하! 그 남자가 이런 일을 벌일 줄이야! 재밌군!

 

 스피커 너머에서 터져 나오는 장교들의 웃음소리에 한바탕 난리가 난 사령관실, 그 가운데 사령관은 홀로그램 패널 위에 올라온 한 남성의 모습에 여전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이게 라붕씨..라고?”

 

 스크린 너머로 보이는 라붕이 작전관, 그는 일전의 무감각한 얼굴 대신 선글라스와 흉악한 미소로 무장하고선 한 손에는 자신이 선물해준 위스키병을, 한 손에는 기다란 지휘봉을 든 채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너흰! 오늘! 내 손을 거쳐! 진정한! 군인으로 거듭날 것이다!

 

-지옥에 온걸 환영한다! 이 개 썅것들아!

 

 리제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주체못할 광기를 온 얼굴에 그린 채 목구멍에는 악으로 가득 찬 그의 모습은, 진정으로 악귀나찰과도 다름없었다.

 사령관은 제 눈과 귀를 의심했다. 함 내에서 항상 점잖게 굴던 그의 모습은 이미 자신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라붕씨.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라붕이가 요안나 아일랜드에 도착한 날, 임관식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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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본 내용은 총 3개의 에피소드로 구상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프롤로그였고.


그리고 이게 첫번째 에피소드인데, 총 5편에서 길면 7편 내외. 아무래도 글 쓸때 캐릭터들 설정이나 배경을 구체화하고 공간을 배정하면 지들이 알아서 떠든다는 식으로 써서 요안나 아일랜드 심시티와 삼얀 아르망까지 다 들어가야 하다보니 좀 길어질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그래.

 오타 지적은 환영이야. 그리고 이제부터 진짜 1일 1연재 안 할거야!


※30번 플룻은 삭제되었습니다. 뒷 내용을 좀 더 자유로이 풀어갈 생각으로 후에 재편집해서 다시 쓰겠습니다. 혼동을 드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