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어느 오후. 블랙 리리스는 자매인 스노우 페더와 함께 차를 마시며 보내고 있었다.


"일반 홍차보다 밀크티로 먹는 것도 맛있지?"


"그러게요. 만드는 데 조금 손이 가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요정 마을에선 별로 마시지 못했는데……."


"후후. 여기서는 먹을 것만은 풍족하니까."


"맞아요."


"주인님은 식량을 무엇보다도 우선시하거든. 정말 훌륭한 장군감이셔."


스노우 페더는 싱긋 미소지었다. 리리스는 인간 사령관을 거의 우상처럼 여기긴 했지만, 페더가 보기에도 사령관은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런 평화로운 티타임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들이닥쳤다.


"리리스. 나 좀 재워 줘."


문을 열고 들어선 시저스 리제가 겸연쩍게 말했다. 그녀는 리리스의 친구이자 오르카호의 농업 담당관 중 한명이었다.


"이 와플도 먹어 볼래? 벨기에 직수입했던 걸 운좋게 하치코가 찾았대."


"저, 언니."


"리리스, 나 왔다니까."


고의적으로 못본 척하던 리리스는 귀찮다는 듯이 돌아보았다.


친구인 시저스 리제가 면목이 없는 듯이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너 또 네 늙은 언니하고 싸우고 온 거야?"


"내가 싸우긴 뭘 싸워. 혼나고 온 건데."


리리스가 무어라 말하려는 찰나 벨소리가 울렸다. 단말기를 틀어보니 리제의 언니인 레아였다.


- 리리스 양. 거기 리제가 간 거 같은데. 맞나요?


"맞네요."


- 어, 미안하지만 리제 좀 잘 타일러 주실 수 있어요? 저희끼리 좀 일이 있어서.


리리스는 한숨을 쉬었다.


"어휴. 또 싸운 건가요?"


- 미안해요…… 나중엔 꼭 사례할게요. 예?


비록 레아와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부대를 이끄는 대장끼리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뒤로 몇 마디를 나눈 리리스는 전화를 끊고 리제를 바라보았다.


스노우 페더도 흥미롭다는 듯이 리제를 보았다.


"대체 오늘은 무슨 일로 쫓겨난 건데."


"쫓겨난 거 아니거든? 내 발로 온 거야."


"아, 그래요. 아무튼 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적당히 화해하고 돌아가. 이번이 벌써 두번째야."


"못해."


리제는 고개를 돌렸다.


"못해? 그럼 너 주인님한테 이른다? 싸웠다고."


리제는 사령관이라는 말에 끔뻑 죽고는 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하던지 말던지."


"뭐? 주인님이 그러면 실망하실 거야. 잘못하면 내 시녀도 못할 거라고."


"……어차피 주인님도 아실 테니 상관없어. 내가 언니 감이 아니란 걸."


리리스는 리제의 말에 표정을 바꾸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래."


침묵하던 리제는 차를 받아들고 앉아서 입을 열었다.


일전에 리제는 주인님의 총애를 받은 적이 있었던 동생 다프네와 싸운 일이 있었다. 싸웠다기보다는 리제가 질투심에 못이겨 달려든 쪽이었지만, 그 뒤로 리제는 한동안 다프네와 어색하게 지냈다.


마음씨 착한 다프네는 언니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였다. 실은 리제로서도 다프네와 사이가 틀어진 것을 뒤늦게 후회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먼저 사과하기엔 자존심이 상하고 은근히 두려웠다.


미안하다고 했는데도 사이가 회복되지 않으면 어쩌지. 게다가 그녀가 날 싫어하게 된 건 아닐까. 리제는 마음이 복잡한 까닭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참이었다.


그 와중, 다프네에게 화를 낸 일이 또 어떻게 레아의 귀에 들어가는 바람에 크게 혼이 났다.


- 리제, 그릇이 그것밖에 안 돼요? 어떻게 동생하고 치정 싸움이나 할 수 있어요?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리제도 자기의 큰언니 오베로니아 레아와 사령관한테는 꼼짝 못했다.


- …….


- 당신도 이제 동생이 셋이에요. 언니다운 면모를 보여야지, 언제까지 어리광만 피울 건가요? 리리스 양하고 어울려 지냈으면 좀 배워봐요.


혼나던 리제는 순간 발끈했다.


- 그럼, 내가 언니가 되서 뭐 좋은 게 있었어?


- 뭐라고요?


- 나 머리 나쁜 거 알잖아? 언니 따윈 못하겠다고! 나 챙기기도 힘들단 말야.


- 또 시작이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레아는 기가 막혀서 더는 아무 말도 못했다. 리제는 그 뒤로 레아와도  어색해졌다.


때문에,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쌓인 리제는 자기도 모르게 아쿠아를 혼내거나, 드리아드에게도 화풀이를 하고 말았다.


특히 어제는 드리아드가 사령관에게 작은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질투심에 눈이 뒤집혔다.


- 이 해충! 너까지 날 속이려고 들어?!


- 아, 아니에요. 이건 그냥 주인님이 남는 거라고 주신 건데……


- 거짓말 치지 마! 너도 다프네처럼 날 비웃는 거지?


리제는 드리아드의 어깨를 붙잡아 흔들며 추궁했다. 드리아드는 어쩔 줄 몰라하고만 있는데, 그 광경을 또다시 레아에게 들켰다.


이번에야말로 폭발한 레아는 리제를 아예 페어리 숙소에서 쫓아내버린 것이었다.


- 이번 일은 주인님한테 말씀드릴 테니, 그렇게 알아요!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니까.


머리에 피가 식은 리제는 그제서야 아차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러나 갈 데를 찾지 못한 바람에 결국 리리스를 찾아온 것이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리리스는 이마를 문질렀다.


"철 좀 들어, 스토커. 그런 일로 다프네하고도 싸워 놓고 또 드리아드하고도 싸우니?"


리제는 고개를 돌리고 중얼거렸다.


"말했잖아. 난 언니가 될 능력이 없다고."


"그런 능력이 어딨어? 그냥 하는 거지."


"몰라. ……애초에 너나 나나 인간처럼 진짜 자매라서 그런 것도 아니잖아? 그냥 의자매인 걸."


순간 리리스가 정색하고 받아쳤다.


"무슨 헛소리야. 태어나지만 않았지 나는 동생들과 같은 피를 나눈 친자매와도 같아."


"넌 그럴지도 모르지만, 중간인 난 아니라고…… 칫. 이럴 줄 알았으면 네 말을 듣고 컴패니언의 막내가 될 걸 그랬어."


"뭐?"


"그럼 언니라서 고민할 일도 없었을 텐데."


리제의 말을 들은 리리스가 표정을 바꾸고 엄히 말했다.


"너, 나가. 내가 그런 뜻으로 말한 건줄 알아?"


동생들을 아끼는 리리스로서는 넘기기 힘든 말이었다. 리제도 리리스가 정색한 모습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미안해. 그냥 아무 말이나 막 나왔어."


리리스는 한숨을 쉬며 친구를 바라보았다. 리제는 밀크티를 다 마시고는 한잔 더 달라고 청했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리리스의 동생들이 들어왔다. 임무들을 마치고 같이 퇴근한 것이었다.


"그러게 그게…… 엇. 햇충. 또 오셨스무니까?"


포이가 리제를 바라보자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리제와 싸운 적(정확히는 혼내준 적)이 있는 그녀로서는 별로 보고 싶은 상대가 아닌 것이었다.


"검은 고양이 해충. 또 너야?"


"언니. 리제 양은 또 무슨 일로 온 겁니까."


페로가 탐탁찮은 듯이  물었다. 리리스는 한숨을 쉬며 리제의 사정을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페로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아줌…… 레아 씨는 왜 자기 일을 자꾸 저희에게 떠넘기는 거죠? 하여튼 마음에 안 든다니까요."


펜리르는 관심 없는 듯이 자기 침대로 향했고, 하치코는 재미있다는 듯이 리제에게 다가왔다.


"그럼 이제 리제 언니도 저희랑 같이 사는 건가요?"


"누구 맘대로 같이 산답니까?" 페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에 리제도 발끈해서 받아쳤다.


"야, 나도 너희 허락 받으려는 거 아니거든? 너희 언니한테 허락 받으려는 거야."


"나니?"


비위가 상한 포이가 나서려는 걸 리리스가 제지했다.


"어허. 그만들 해. 내 친구니까 일단은 손님으로 받아 줘. ……스토커, 아니, 리제. 너도 애들한테 말 함부로 하지 마. 자, 서로 사과해."


포이나 리제나 모두 어쩔 수 없이 사과하는 시늉을 했다.


"하룻밤만 재워 주면 되겠지, 뭐. 전에도 한 거니까 너무 신경들 쓰지 말고."


천성이 밝은 하치코는 손님이 왔다는 말에 신이 난 듯했다. 붙임성이 좋아서 누구와도 잘 지내는 것이었다. 그녀는 싱글벙글하며 리제에게 오늘의 괴식 파이를 대접하려 들었다.


그리하여 리제가 어쩔 수 없이 파이를 들고 있는데, 문득 하치코가 궁금해져서 물었다.


"아참. 리제 언니는 레아의 동생 아니에요?"


"그래."


"그런데 레아는 하치코의 동년배 친구인데…… 리제 언니는 어떻게 되는 거예용? 하치코의 친구인가요?"


리제도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페로가 혀를 차며 나섰다.


"뭘 그런 걸 고민합니까. 아줌마 주책은 신경쓰지 말고 그냥 언니라고 하십시오. 하치코도 레아 씨한텐 항상 아줌마라고 부르고요."


일전에 레아는, 중학생 정도 되는 나이뻘의 하치코의 친구를 자칭하고 나섰던 것이다. 페로는 그 사실을 알고 학을 뗀 전적이 있었다.


그 모양으로 리제와 동생들이 어울리게 놔둔 리리스는, 일단 사령관을 찾아갔다. 각 부대의 인원 배치는 사령관의 통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사령관도 마침 레아에게 보고를 받고 이마를 짚는 중이었다.


"레아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휴. 제가 아무리 혼내도 리제에겐 별로 와닿지 않는 것 같아요. 게다가 혼내는 것도 한두번이지, 자칫하면 부작용이 생길 테고."


레아는 난감한 표정이었다. 비와 번개를 다루는 신적인 능력을 가진 그녀도, 자매 관계에는 어려움을 겪곤 했다.


"어떻게 해야 리제가 좀 배우는 게 있을까."


리리스는 고민하는 둘을 보다 못해 말했다.


"주인님. 이번에도 제가 잠시만 데리고 있을게요. 제 근처에서 동생들과 지내다보면 뭔가 배우는 게 있겠지요."


레아는 황송하단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했다.


"죄송해서 어쩌지요."


"미안한 줄 알면 레아 씨도 좀 어떻게 해보세요…… 언니 노릇이 쉽진 않겠지만."


면목 없어 하는 레아에게 더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회의를 끝낸 리리스가 돌아와 보니 방안엔 불편한 공기가 흘렀다.


그야 리제와 포이의 사이가 나쁜데다, 페로와도 데면데면한 탓이었다.


"스토커. 일단 오늘내일이라도 나랑 애들 지내는 거 보고 있어."


"……."


"주인님께서도 그러라 하셨으니까. 너도 언니 노릇 하려면 보고 배우는 게 있어야겠지."


자매들과 리제는 사령관의 명령이란 말에 어쩌지 못하고 따르기로 했다.


그로부터 리리스는 리제를 데리고 다녔다. 리제는 리리스의 곁에 있으면서 컴패니언 자매의 생활을 지켜보았다.


비번인 펜리르와 하치코를 따라 오르카호 내부 탐험(?)을 하기도 했고, 자매들이 다같이 식사하는 자리에도 끼었다. 리리스의 동생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놀잇감을 챙기거나 머리를 빗겨 주는 일에도 함께했다. 


동물의 특성이 강한 컴패니언 자매들은 은근히 챙겨 줘야 할 것 투성이었다.


그녀들의 몸에서 꼬리털 따위가 빠지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청소는 다같이 하기 때문이다.


포이는 시도 때도 없이 발정기 같은 게 찾아오는지라, 세심하게 달래 줘야 하였다.


펜리르도 고기를 훔쳐먹는다던가, 전자제품을 망가뜨리는 일로 리리스가 나서서 불려가곤 했다.


그런가 하면 하치코는 괴식을 자꾸 만들어서 먹이고는 했다. 게다가 같이 오르카호 내부를 산책해줘야 할 때도 있었다.


페로 역시 은근히 말을 듣지 않고 삐치는 일이 잦았던지라, 달래 주느라 힘들었다.


인간의 특성이 강한 스노우 페더만이 그나마 얌전한 모습이었다.


가장 압권은 목욕을 시키는 일이었다. 페로와 포이며 펜리르까지 모두 목욕을 싫어하는 바람에 리리스는 항상 곤욕을 치렀다.


"페더, 스토커! 애들 꽉 잡고 있어."


"이, 이 햇충들. 가만 있으라고. 니들 언니 고생하는 거 안 보여?"


"우애옹!"


억지로 목욕을 시키기 위해 붙드느라 리제는 진땀을 뺐다.


이런 짓을 매일같이 해야 된다고? 언니가 되기 위해서?


목욕탕 전쟁을 치른 날 밤, 리리스는 잠든 동생들을 문틈으로 가만히 지켜 보았다. 리제는 그런 친구의 옆얼굴을 바라보다 말했다.


"이 정도 수고를 들이는 이유가 뭐야?"


리리스가 문틈에서 눈을 떼고 바라보았다.


"응?"


"솔직히 말해서, 다른 부대는 이렇게까지 안 챙기잖아. 결국 바이오로이드끼린 걸."


리리스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바이오로이드는 가족을 가지면 안 돼? ……나랑 피를 나누고, 내 딸과도 같은 아이들이잖아."


"저 애들도 널 그렇게 소중히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리제는 살짝 빈정대는 투로 말했다.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널 배…… 아니. 주인님이 대신 저애들을 총애할지도 모르잖아. 그래도 좋아, 넌?"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내가 저 애들을 미워하진 않아. 이미 각오한 일이거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배신감 들 텐데. 보답도 못 받고."


리리스가 미소지었다.


"넌 주인님께 보답을 바래서 싸우고, 농업을 감독하고, 정원을 가꾸었니?"


리제는 말문이 막혔다.


"그건……."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게 사랑이잖아. 난 주인님 다음으로 저애들을 사랑해. 그래서 그런 것뿐이야."


할 말이 없었던 리제가 겨우 입을 열었다.


"……손해 보는 짓이잖아. 그런 건."


"사랑은 손해 보는 거니까."


리리스는 망설임없이 답했다.


"주인님께 배운 거야. 그리고, 너도 동생들을 사랑하지 않아? 솔직히 말해 봐."


"난, 주인님 말고 그럴 여유가 없어."


리제는 애써 눈을 피했다.


"거짓말. 너 전에 말했잖아. 주인님하고 결혼하면 동생들한테도 한자리 주겠다고(물론 본처는 나지만). 그리고, 작업할 때마다 아쿠아가 못한 일도 네가 다 처리해 놓던데? 전투할 때마다 꼭 애들 근처에 맴돌면서 싸우고. 나한테 받은 간식, 애들 주려고 항상 챙겨놓고. 안 그래?"


리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도 동생들 좋아하면서 왜 말을 그렇게 해."


"난, 너랑 다르게 마음이 좁으니까. 여유도 없고."


"누군 처음부터 마음이 넓었던 줄 아니?"


리제가 리리스를 바라보았다.


"만약 내게 아무런 경험이 없었다면, 나 또한 동생들을 질투했을지도 몰라."


리리스는 눈을 내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럴 수가 없어. 왜냐면, 옛날에 라비아타 언니와 저항군 일을 하면서…… 동생들을 잃어 보았기 때문이거든."


"너……."


리제는 그제야 리리스가 자기보다 실제 활동 기간이 길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리리스의 신체 나이는 20세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사령관이 나타나기 한참 전부터 저항군에서 간부 급으로 활약했던 것이다.


"전장에서 그애들이 쓰러지고 나서 깨달았어. 그녀들도 결국 내 일부였단 걸. 난, 동생들을 잃고 나서야 그녀들의 소중함을 느꼈던 거지."


그리 말하는 리리스의 얼굴에 살짝 슬픔이 스쳤다. 다소 거만하고 허당인 아가씨 안에도 그녀대로의 슬픔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리제는 아무 말도 않고 서 있었다. 리리스는 그런 리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들어가 자. 내일도 내 동생들하고 신나게 보내야지? 있을 때 잘하자고."


리리스는 살짝 웃으며 사령관의 함장실로 향했다.


리제는 묵묵히 서 있다가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갔다.


손님용 침대에 팔배개를 하고 눕는데, 어둠 속에서 네 쌍의 오드아이가 빛났다. 리제는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났다.


"해, 해충."


"뭘 그리 놀랍니까."


고양이 소녀인 페로와 포이가 일어나서 리제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고양이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난 모양이었다.


"이제 언니한테 좀 배운 게 있으면 좋겠네요."


페로가 하는 말에 리제는 퉁명스레 중얼거렸다.


"들었어? 얘기하는 소리."


"우린 귀가 밝으니까요."


"……너흰 좋겠네. 그렇게 챙겨주는 언니가 있어서."


"물론인데스."


포이가 으스대듯이 말했다.


페로는 정색을 하며 리제에게 말했다.


"그쪽도 솔직하게 행동해 봐요. 다들 아예 은혜를 모르는 타입도 아니잖아요? 사이좋게 지내면 주인님도 마음에 들어하실 테고."


"지는 게 이기는 것인 데스."


페로가 충고하는 말에 포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리제는 이불을 끌어당기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사령관에게 다녀 오던 리리스가 동생들을 보러 들렀다.


"얘들아, 스토커- 밥 먹어야…… 응? 얘 어디갔어."


리제는 아침 일찍 짐을 챙기고 떠난 채였다.


"고마웠다고 이만 가본댔어요. 언니한텐 나중에 사례하겠다고……."


"벌써 도망쳤어. 그러나 훌륭한 선택인 거지."


리리스는 빙그레 미소지었다.


한편, 짐을 가지고 나온 리제는 그길로 다시 페어리 구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근처까지 오자 고민이 되었다.


알량한 자존심은 진작에 접어둔 상태였다. 하지만 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열등감으로 실컷 싸움만 걸다 쫒겨난 자신을, 과연 자매들이 관대히 받아줄까.


하지만 걱정은 할 필요조차 없었다.


부지런하게 아침부터 물뿌리개를 들고 오던 아쿠아가, 리제를 보자마자 냅다 달려온 것이었다.


"리제 언니!"


전에 화풀이했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린 듯, 환히 웃는 아쿠아를 보자마자 리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녀는 달려온 아쿠아를 와락 안아주었다.


"미안해. 아쿠아."


"응?"


"전에 화내서 미안해. 언니가 스트레스가 많았어서……."


"으응. 아니야. 아쿠아는 별로 기억도 안했는 걸."


착한 아쿠아는 배시시 웃었다.


리제와 아쿠아가 서로 화해하고 있는 동안 다프네와 드리아드도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녀들이 온 것을 보고 리제는 입을 열려고 했지만, 좀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을 하려니까 새삼 겁이 나는 것이었다.


하필이면 두 동생도 어쩔 줄 몰라하는 참이었다.


"저……."


"미안."


리제는 드리아드가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선수를 치듯이 먼저 외쳤다. 그러면서 고개를 숙였다.


"내가 잘못했어. 언니가 속이 너무 좁았어…… 미안해, 다들."


뜻밖이라는 듯, 다프네와 드리아드는 자기도 모르게 놀라워했다. 그러나 이내 감격한 눈으로 리제를 바라보았다.


"언니……."


넷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들어 서로 안았다.


"그동안 얘기하고 싶었어. 내가, 너희들 소중한 걸 몰랐던 것 같아."


리제는 부끄러움을 참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조금 모자라고 이기적이지만, 용서해 줘. 앞으로는 속 좁은 짓 안 할게. 미안해."


평소의 리제답지 않게 똑똑히 하는 말이었다. 자매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글썽였다.


"고마워요, 언니."


뒤따라온 레아는 먼발치에서 흐뭇함 반 감격 반으로 바라보았다.


"리리스 양한테 맡기길 잘한 거 같네요. 정말이지, 참치캔에 초콜릿까지 더해서 줘야겠어."


곁에 선 티타니아가 뚱하게 이죽거렸다.


"너도 언니 되는 법좀 배워야 할 것 같은데."


"후훗. 티타니아는 동생 노릇을 제대로 하고 말이죠?"


레아가 도발하듯이 응수했지만, 티타니아는 혀를 차며 돌아설 뿐이었다.


여기서는 큰언니 된 노릇하러 가야겠지. 레아는 리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도 리제가 화해하는 것을 보며 무언가 깨우친 바가 있었다.


언젠가는 좋은 큰언니가 되고 싶다. 저 컴패니언의 아가씨보다 더…… 레아는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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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도 뽑아 주시고 리리스도 뽑아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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