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이벤트 응모용으로 썼던 것인데 퀄은 안 좋지만 불쌍한 샌드걸의 선거 때문에 생각이 나서 올려봄

 

 샌드걸 얘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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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선물이야.”

 

 잠수함의 갑판에 웨딩 아치를 꾸며놓고 바다를 보며 거사를 치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녀는 딱히 그런 걸 원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오르카의 함장실, 사령관 책상 앞에서 갑작스레 반지를 받아들게 된 그녀. 그 뺨이 파란 머리칼과 대조되는 새빨간 당혹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걸, 어째서 제게....”

 

 “알고 있지 않았어? 눈치는 좀 줬다고 생각하는데.”

 

 “저도 생각은 해보긴 했었습니다. 하지만...의외네요. 정말 의외입니다.”

 

 익숙한 정복 차림의 그녀는 반지를 눈앞에서 이리저리 돌려보였다. 처음에는 상당히 당혹해했던 것 같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감동을 받아서라기보다는 무언가를 처음으로 보고 신기해하는 어린아이를 연상시키는 모습이 되어갔다. 자신이 마음속 한 구석에서부터 원해왔기는 했지만, 절대 가질 날은 올 리가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 무언가를 실제로 가지게 되었을 때 나오는 반응.

 

 평소의 모습과는 꽤 대조적이다. 늘 진지했던 그녀에게도 역시 이런 면모는 있었던 것일까.

 

 “의외입니다. 제가 고급기도 아니고, 저보다 더 좋은 바이오로이드들이 많지 않습니까. 멸망 이전에 사람들에게 인기 있었던 기종도 아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령관님께서는 저를 봐 오셨으니 잘 아시겠지만...”

 

 “성격이 부정적이다?”

 

 “네.”

 

 “그렇지, 그런 선물을 받아들고서 방금 같은 말부터 할 바이오로이드는 잘 없지 않겠어.”

 

 GS-10 샌드걸. 대지상지원용 중장갑 공중공격기. 꽤 초기에 오르카에 합류했지만, 다들 개성 강한 발할라 부대에서 연락책 역할을 맡아 별 존재감 없이 지내는 바이오로이드다. 내가 자잘한 업무 핑계를 대고 그녀를 종종 사령관실로 불러도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건 장점이지만.

 

 “아...아닙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각하. 이 말을 일단 드렸어야 했는데...어쩐지 현실 같지 않아서...”

 

 그녀의 뺨이 한층 더 붉어졌다.

 

 “그렇게 의외였어?”

 

 “의외긴 합니다만, 그래도, 사령관님을 자주 뵈었으니까요...”

 

 “성격 문제 같은 거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발할라 부대에서도 다들 인정하잖아. 날 만나서인지, 너도 이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애초에 오르카에는 꼬마 대장님이나 너희 부대 대장님처럼 어찌나 까다로운 바이오로이드들이 많은지. 게다가 네 성격이 그런 것도 이유가 없어서도 아니고...이번에 새로 들어온 밴시만 해도 너와 비슷한 점이 좀 있지.”

 

 “밴시 양은...밴시 양과 저는 맡은 임무가 비슷하지요. 워낙 위험한 임무를 맡고 있기도 하고...”

 

 “밴시나 네가 맡는 지상지원 임무는 언제나 위험하지. 나도 출격할 때마다 걱정 많이 해.”

 

 “대공포화를 뚫고 저고도까지 내려가서 정확히 목표를 때리고 올라와야 하니 말입니다. 경공격기인 밴시 양과 달리 저는 장갑형이긴 하지만, 철충들의 공격이 거세면 항공기 수준의 장갑은 큰 의미는 없습니다.”

 

 샌드걸은 반지를 불안하게 만지작거리며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저는 슬레이프니르님이나 블랙하운드님처럼 재빠르지도 않고...잘못하면 엄청나게 두들겨 맞지요. 그렇게 엄청나게 얻어맞고 비틀거리며 귀환할 때 종종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제 구멍난 날개가 버텨주지 못한다면, 엔진이 좀 더 버텨주지 못한다면...그래서 저 아래로 추락한다면...어느 날 전장항공차단 임무를 나갔습니다. 꽤 큰 작전이었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제 주변으로 탄막이 잔뜩 펼쳐지는데...왈칵 겁이 났어요. 언제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말해왔지만, 정말 그 순간이 가까이 왔는데...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샌드걸."

 

 나는 책상에서 일어나 샌드걸의 흰 손을 잡았다.

 

 “일단 나는 모두를 안전하게 돌아오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 사정이 이러니 다들 싸움에 내보내야 하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 아닙니다. 제가 각하를 탓하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저는...”

 

 “나도 널 탓하려는 건 아냐. 하지만 어차피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잖아. 전쟁터에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다른 이유로 죽지 않는 건 아냐. 바이오로이드가 늙지 않는다고 해서 수명이 아예 없는 건 아니고, 나 역시 어떻게든 죽을 수 있겠지. 그러면, 생각해보자. 언젠가 미래에 우리가 죽고 나면, 뭐가 남을까?”

 

 “어...”

 

 매사 진지한 그녀에게는 아무래도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던가 보다. 샌드걸이 인상을 찌푸리자 나는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남는 거...시체 말입니까?”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을 픽 터뜨렸다. 그녀도 자기가 한 말을 돌이켜 생각해보고는 피식 웃다가 황급히 사과했다.

 

 “아닙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말을 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아, 진짜...우리가 죽고 나면 이야기가 남지 않겠어.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있잖아. 지금 이 순간에도.”

 

 평소에는 보기 힘든 그 당혹한 표정이 너무 예뻤다. 나는 샌드걸의 녹색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해 보았다.

 

 “가령, 누군가는 죽는 게 정말 두려웠고 매사에 부정적이었지만 그럼에도 죽음을 각오하고 용감히 싸웠더라, 누군가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더라, 그리고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그렇기에 자신이 평생을 함께하고픈 정말 소중한 존재로 생각했다더라, 그런 이야기들. 우리가 모두 떠나도 누군가는 그 수많은 이야기를 기억해줘야 하지 않겠어?”

 

 내 말을 들으며 평소의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가 깊은 생각에 잠긴 샌드걸, 그 손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천천히 힘이 빠져나갔다.

 

 “그럴 누군가는 만들어서 후대에 남겨야 하잖아. 우리가 이곳을 떠난 후에도 계속 그 이야기를 기억해줄 누군가.”

 

 나는 그 부드러운 손에 쥐고 있던 반지를 빼내고 천천히 그녀의 약지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건 나 혼자서는 절대 못 하는 일이라서. 네가 좀 도와줄 수 있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눈가에 천천히 눈물이 번져나갔다. 나는 히죽 웃고는 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