썼던 것 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31751038




피드백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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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롭게 시뮬레이션 기기가 설치된 방에 온 나는 기기 앞에서 한숨쉴 수 밖에 없었다.

가용할 수 있는 부대원은 다섯 명 제한에, 그조차도 대다수의 전투 요원들이 배제된 상태에서 구성해야 한다니. 물론 장비 선택은 자유이고 비전투 요원들로 분류되어 있는 바이오로이드들로도 부대 구색은 갖출 수 있겠지만 한 개 분대도 못 채우는 인원으로는 제대로 된 화력 지원이나 정찰을 기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국지전이라는 것만 알려주고 적군 정보는 전무하다니, 아무리 실전 같은 테스트라지만 한 개 분대도 안 되는 인원으로 국지전 상황 해결은 복귀전치곤 너무 빡센 과제였다.


답이 보이지 않는 조건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러설 수도 없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일이 실전에 없다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이 기회를 그냥 보내면 언제 나에게 다시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으니까. 어쩌면 이게 내 능력을 보여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지.


"일단 부대원들을 선출해볼까..."


맨 처음 눈이 간 부대는 스틸라인이었다. 내가 있었던 육군 부대와 가장 흡사한 구성의 부대인 만큼, 내가 알고 있는 전술을 그대로 사용해도 어느 정도 잘 따라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고, 대부분의 부대원들이 비전투 요원으로 분류되어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피닉스 모델이 전투 요원으로 분류되어 공중 지원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200미리 박격포로 어느정도 해결되겠지.


다음 대상은 정찰 요원이었는데, 좀 잘 날아다니거나 날렵해보이는 부대원들은 죄다 전투 요원으로 분류되어 있어 차출할 수가 없었고, 아쉬운대로 드론을 쓰기로 했다. 남은 부대원들이 드론보다 더 못 써먹을 것 같아서 그런게 아니라, 내가 부대에 있었을 때 썼던 유일한 정찰 자원이라 손에 익었기 때문이었다. 철충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염려되긴 하지만, 그래도 정찰 업무의 가성비만 생각하면 좋은 자원이니까. 


이제 남은 자리는 한 자리. 기간병과 정찰 자원이 가닥이 잡혀 있는 상황에서 누구를 넣어야 좀 더 조화로운 구성이 될까. 중장갑 병력에 대응하기 위해 직사화기를 넣을까, 아니면 공중지원 및 기동기 견제를 위한 공중 병력을 추가할까.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선택지가 만족스럽지 않았기에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차라리 기간병력을 더 보강할까도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른게 있었다.

내가 국가 아래에서 실전에 투입되었을 때, 기업과의 전투에서 기관총의 저지력만으로는 AGS들을 막을 수 없어 지근거리 전투가 자주 일어났었다. AGS의 몸을 빌린 철충은 안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근접 전투 요원을 하나 넣어두는게 낫지 않을까? 물론 스틸라인 부대원들이 총검술을 배웠을수도 있지만, 그 생각을 가지고 경호원을 소홀히 한 지휘관은 쉐이드들에게 찢겨나갔지.

그러면 누구를 넣어야 하지?


나는 그 질문에 대답을 찾기 전에, 당장 일어나 체력 단련장으로 갔다. 그 곳에는 늘 그렇듯 근육을 조지고 있는 마이티 R 모델이 있었다.


"어, 왔어? 연습 한다더니 벌써 끝났나 봐?"


"연습... 하려고 했는데, 문제가 생겼지."


"응? 무슨 문제?"


나는 마이티 R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마이티 R 모델은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더니, 감을 잡았는지 툭 물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내가 끼었으면 해서 여기 온 거야?"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나는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


"그 대답이라면 지난번에도 말했잖아. 안 하겠다고."


마이티 R 모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넌 나를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사령관의 명령을 기다리며 준비중이야. 너가 말하는 그 테스트가 뭔지는 모르지만, 난 단련해야 해."


"그 테스트 자리에 사령관도 올꺼다. 사령관에게 너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지 않나?"


"...아직 부족해. 난 더 단련해야해."


마이티 R 모델은 다시 바벨을 잡았다. 그녀의 등에 가려진 근육들이 올라왔고, 순간 그 모습이 구역질났다. 도대체 그 사령관이라는 작자가 뭐길래 이 바이오로이드가 자신의 기회를 포기하면서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는거지?


"마이티 R."


내 부름에도 불구하고, 마이티 R 모델은 바벨 컬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답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소리지르고 다그치고 싶었지만, 그런 방법은 내 아래 얼타는 병사들을 정신차리게 할때만 효과기 있었지 이런 상황에서는 역효과만 불러일으켰다. 그래, 11중대 중대장이란 놈이 생활관 구석에 이병 하나 굴비로 만들어버리는 것으로 그것을 증명했지.

그러면 난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이 복잡하게 얽혔다. 그리고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면 얽힐수록, 해결방법은 묘연해졌다. 이럴 때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잠시 문제를 내려놓고 보라고 말씀하셨지. 문제를 내려놓고... 나는 문제를 내려놓고, 마이티 R 모델 옆에 다가가 바벨을 들어올렸다.


"뭐하는거야?"


"답답해서 운동이나 하려고 한다. 문제있나?"


그녀는 대답 대신 바벨을 들어올렸고, 우리 둘은 아무런 말없이 운동했다. 내가 그녀에게 출격하고 싶지 않냐고 묻기 그 전부터 매일 그래왔듯. 팔이 저리도록 바벨 컬을 한 뒤 바벨을 내려놓고 주저앉자, 먼저 마치고 말없이 앉아 있던 마이티 R 모델이 나에게 물었다.


"저기, 그 테스트라는거. 사령관이 보면... 나도 다시 출격할 수 있을까?"


그녀의 질문에 나는 확신할 순 없었다. 그녀는 이 함내에는 널려있는 비전투요원 중 하나일 뿐이니까. 하지만...


"물론, 내가 출격할 수 있도록 해 줄께."


적어도 나는, 그녀의 능력에 확신을 가져야 했다. 나를 위해서라도, 마이티 R 모델을 위해서라도.


"그럼, 나...그 테스트에 참가참가해서, 널 도울께. 그 동안 같이 지내면서 도운 것도 있으니까..."


"그래, 잘 생각했다."


나는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말라가는 땀냄새 사이로, 그녀가 삼키는 울음이 들렸다. 


"고맙다. 용기내 줘서."


내 말에 마이티 R은 귓가에 흘리는 울음으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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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임스 씨의 테스트가 있는 날이다. 나는 알파와 함께 테스트룸 위에 설치된 발코니에 자리잡았다. 이 곳에서 나와 지휘관들은 제임스 씨가 지휘하는 모습과, 그 위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그가 내린 전술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마키나의 도움이 없었다면 힘들었겠지.

그나저나 대항군으로 설정된 철충이 너무 강한 거 아닌가? 당장 숫자만 해도 50기가 넘는데, 쉴더에 토터스까지 포함되어있다니. 내가 철의 탑에 데려갈 수 있는 부대원들을 모두 배제한 구성으로는 상대하기가 쉽지 않은 조합이었다.


"알파, 테스트가 너무 빡센거 아니야? 주어진 부대원들에 비해 철충이 너무 많은데."


"그러게요. 지휘관들이 저 테스트를 구상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역시. 일부러 이렇게 어렵게 테스트를 구성한 것을 보니, 아무래도 지휘관들은 제임스씨가 영 탐탁치않았나보다. 그럴만도 하지.


"뭐, 완벽한 승리가 아니더라도 제임스 씨의 역량을 파악하기엔 부족함이 없을테니까요."


알파의 너스래를 뒤로 하고, 나는 제임스 씨가 제출한 부대원 명단을 보았다. 드론, 브라우니, 이프리트 141, 노움, 그리고 마이티 R.


"마이티 R?"


나는 명단에 적혀 있는 그 이름을 보고 물음표를 머리 위에 띄울 수 밖에 없었다. 명단을 보니 대충 진지 구축하고 드론으로 정찰하면서 지연전 펼칠 계획인 모양인데, 마이티 R은 어디다가 써먹을거지? 사거리도 짧고 화력적으로도 별 도움 안 될텐데. 뭐, 그거야 지켜보면 알겠지.


제임스 씨와 그 부대원들이 테스트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늘 쾌활한 브라우니와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키는 노움, 귀찮아 보이는 이프리트와 뭔가 고양되어보이는 마이티 R까지. 매번 얼굴을 마주하는 부대원들이었지만, 오늘따라 그 부대원들이 낯설게 보였다. 내가 지휘하는 입장이 아니라서 그런가? 

제임스 씨는 중앙에 마련된 지휘 부스에 자리 잡았고, 부대원들은 그 주변으로 둘러서 설치된 가상현실 부스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 사이 내 주변으로 지휘관들이 하나 둘 자리잡았고, 그럴수록 지휘 부스에서 지휘를 준비하는 제임스의 모습이 초조해보였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제임스 씨를 불렀다.


"아아, 잘 들려요?"


내 질문에 제임스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부대원들은 준비를 마친 상황. 얼마나 긴장될까.


"지금부터 테스트를 시작할텐데. 준비 되었죠, 제임스 씨?"


내 말에 제임스 씨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진중하고 자신감있게.


"네, 좋습니다. 그러면..."


난 숨을 들이쉬고, 마치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것 처럼 힘껏 소리쳤다.


"그럼 지금부터, 제임스 씨의 테스트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