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이 땅을 위대한 정복자가 달렸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 이름이 여전히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면 그 정복자는 시간조차도 정복한 것이리라.


그 정복자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불가능하겠지.


그 정복자의 업적을 따라하기는커녕 나는 평범한 인간의 삶도 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인간이 아닌 바이오로이드이니까.



“무사했군. 9번 케시크.”


전투가 끝난 후 집결지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지휘관이 나를 찾아왔다.


인간님으로선 드물게 바이오로이드들을 존중해주는 좋은 사람이었다. 아니, 인간님을 이렇게 좋다 나쁘다 판단하는 것도 바이오로이드로선 그릇된 행동일 것이다.


“어디 다친 곳은 없나?”


“걱정해주신 덕분에 무사합니다.”


“하하! 내가 걱정해준다고 총알이 피해가나, 포탄이 안 터지나. 전부 네 운과 능력이지.”


지휘관은 담배를 꺼냈다. 그는 담배를 물고 나에게 담배갑을 내밀었다. 그러나 이내 그는 한 가지를 떠올리고 담배갑을 자신의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보니 9번 너는 담배를 안 태웠지?”


겉으로 봐서는 전부 똑같은 우리를 하나하나 구분해주는 사람이었다.


지휘관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은 후 말했다.


“이번 전투에서……4번 케시크가 죽었다.”


“그렇……습니까.”


어쩐지 보이지 않았었다.


“……이제 내가 최선임 케시크다.”


“알……겠습니다.”


목소리가 잠겼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주먹을 쥐었다.


나를 본 지휘관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자기 옆 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려 나에게 앉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나는 지휘관의 옆에 앉았다.


지휘관은 말없이 담배를 태웠다.


나는 동형기, 자매기, 4번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녀는 나와 같았지만 같지 않았다. 번호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도 달랐다. 그 다른 삶이 다른 인격을 형성했다.


동형기, 자매기의 상실은 나에게 적잖은 상실감을 주었다. 우리는 싸우고 죽기 위해서 태어났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이를 지나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그토록 많은 죽음을 보았지만 아직까지 익숙해지지 못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그럴지도 몰랐다.


지휘관은 말했다.


“9번 케시크. 너는 좋은 지휘관이 될 수 있을 거다.”


“그렇……습니까?”


“글쎄……그냥 아무렇게 말을 던지긴 했다만 나도 훌륭한 지휘관은 아니라서 확답은 못 하겠군.”


푸핫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지휘관. 나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지휘관님은……좋은 분이십니다.”


인간님을 좋다 나쁘다 평가하면 바이오로이드로서 그릇된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러나 지휘관은 나를 책망하지 않았다.


“고맙군. 하지만 위치가 위치다 보니 나는 좋은 지휘관보다는 훌륭한 지휘관이 되고 싶군.”


“좋은 지휘관과…… 훌륭한 지휘관이 차이가 있습니까?”


“있지.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많이 달라.”


그렇게 말하고 지휘관은 새 담배를 꺼냈다.


“좋은 지휘관은 인품의 측면에서 판단하지만, 훌륭한 지휘관은 능력의 측면에서 판단하지. 좋은 지휘관은 전우와 함께 울고 웃지만, 훌륭한 지휘관은 전우를 울지 않게 하지.”


지휘관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는 잠시 말없이 사라지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았다.


담배 연기가 사라지고 잠시 후 지휘관이 말했다.


“훌륭한 지휘관은 전우가 죽지 않게 한다.”


그렇게 말하고 지휘관은 고개를 숙였다.


“다음에는 너를 울지 않게 하겠다. 9번 케시크.”


그 말을 듣는 순간 억눌렀던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고, 뒤늦게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눈물이 슬픔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되자 뒤늦게 감정이 벅차올랐다.


나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소리만은 어떻게든 내지 않기 위해 이를 꽉 물었다.


지휘관은 그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내가 눈물을 그칠 때까지 그는 말없이 내 곁을 지켜주었다.



* * *



전투는 연일 이어졌다.


전투가 있을 때마다 자매기가, 전우가 죽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울었고, 그럴 때마다 지휘관은 내 곁을 지켜주었다.


지휘관은 내 곁을 지켜주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옛날 이 땅을 위대한 정복자들이 달렸다고 하지.”


“누구……말입니까?”


“알렉산더 대왕, 칭기즈 칸, 아미르 티무르.”


그는 세 사람을 거론하면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알렉산더는 언제나 전투의 최선봉에 서서 적들을 무찔렀다. 지휘관이 최전선에 서는 것은 무모하다 못해 멍청한 행위였지만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이보다 강력한 전술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 번도 패하지 않았지.”


“굉장하군요.”



* * *



“칭기즈 칸에 대해서는 들어봤지?”


“예.”


“그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땅을 지배한 군주였지만, 그의 시작은 초라했지. 몰락하고 몰락하면서 고작 9명만 남은 부족을 이끌게 되었지. 그러나 그는 거기서 포기하고 좌절하지 않고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면서 결국에는 거대한 제국을 만들었다.”


그는 기동성을 중시하던 칭기즈 칸의 전술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갑자기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게는 친위대가 있었는데 이름이 뭔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케시크. 너와 이름이 같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칸의 친위대의 이름에서 네 이름을 따온거지만.”



* * *



“은근히 잘 안 알려지긴 했지만 아미르 티무르도 훌륭한 지휘관이지. 아니,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것부터가 그를 모욕하는 것이긴 하다. 그는 인류역사상 최고의 지휘관을 뽑으면 다섯 손가락에는 들어갈 거다.”


“알렉산더 대왕과 칭기즈 칸은요?”


“당연히 들어가지. 이 두 사람이 너무 압도적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아미르 티무르는 그들의 뒤를 이어서 3위 자리에 들어가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어떤 사람이었나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자세히는 몰라. 티무르 제국의 건국자이자 훌륭한 지휘관이라는 것만 알지. 하지만 우리에게는 훌륭한 지휘관이라는 것만 알면 충분하지. 그는 기동전술도 훌륭했지만, 전략과 전술에 선입견 없이 잘 받아들이는 지휘관이었지.”


“지휘관님과 비슷하군요.”


“엥? 그 사람 엄청 잔혹한 사람이었는데? 내가 그렇게 잔혹해?”


“저희들에게 선입견이 없다는 면에서요.”



* * *



전쟁은 격렬해졌다.


그럴수록 많은 자매기와 전우들이 죽었다.


수많은 죽음을 마주하고도 나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내가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 전투는 유달리 격렬했다.


전선은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바뀌었고, 적들은 곳곳에서 튀어나와 우리를 공격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군의 수는 줄어들었고, 전선은 지휘 본부가 있는 곳까지 밀려들었다.


총성과 포성과 고함 소리와 비명 소리 속에서 나는 어떻게든 전우들을 독려하며 적들과 맞서 싸웠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순식간에 죽어버릴 정도로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희미했던 전투였다.


죽음은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적의 포격이 떨어졌다.


나는 전우들에게 포격을 알리고 바닥에 엎드렸다.


천지가 흔들리고, 토사와 살점들이 사방으로 튈 때.


나는 포탄 하나가 지휘 본부에 정확하게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포격이 끝나지도 않았건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휘 본부로, 지휘 본부였던 곳으로 달려갔다.


흔들리는 땅 때문에 제대로 달리지도 못하면서, 파편에 상처를 입어가면서도 나는 멈추지 못했다.


나는 무어라고 외쳤다. 그러나 포성에 묻혀 나는 그게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다.


결국 나는 포격이 끝나고 나서야 지휘 본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갈기갈기 찢긴 전우와 상관들. 그리고.


“지휘관님!”


사지가 찢기고 복부에 큼지막한 부상을 입어,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지휘관을 발견했다.


혹여나 그 숨이 내 손길에 끊어질까 나는 그를 만지지 못했다.


“구, 9번, 케, 케시크?”


그러나 그는 죽어가는 와중에 나를 알아차리고 말했다.


“예. 9번 케시크입니다.”


그는 헐떡이며 말했다.


“지, 지휘부, 생존, 생존자는?”


“지휘관님만……살아계십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는 잠깐의 침묵 후에 말했다.


“그러면……네, 네가 최, 최선임이다. 지, 지휘를 맡아라.”


“하지만 제가 어떻게. 저는 지휘용 모델이 아닙니다.”


“그건 안, 안 중요하다. 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변명거리를 찾으려고 했다.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니까.


눈물이 났다. 암담한 상황도 그렇지만 소중한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휘관이 눈을 떴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친 지휘관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는 죽어가는 사람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힘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울지 마라!”


언제나 내가 울 때마다 내 곁을 지켜주었던 사람은 말했다.


“너는 좋은 지휘관이 아니라 훌륭한 지휘관이 되어라.”


이 한 마디에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나와 지휘관 둘만 알 수 있는 말이었다. 


“가.”


그는 마지막 생명을 불태워 나에게 명령을 내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나는 그 상실감에 젖어있지 못했다.


그가 말했다.


‘좋은 지휘관은 전우와 함께 울고 웃지만, 훌륭한 지휘관은 전우를 울지 않게 하지.’


‘훌륭한 지휘관은 전우가 죽지 않게 한다.’


‘좋은 지휘관이 아니라 훌륭한 지휘관이 되어라.’


나는 그렇게 했다.



* * *



“9번 케시크. 지난 전투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군.”


“감사합니다.”


“지휘관 모델이 아닌데도 이런 성과를 거두다니. 좋은 의미로 예상외의 상황이군.”


“그래서 우리 위원회에서는 너를 지휘관 모델로 승급하는 동시에 개조하기로 결정했다.”


“불굴의 마리에 이은 두 번째 공식 지휘관 모델이니 C-2 번호를 부여하고……기존 케시크와 구분하기 위한 새로운 명칭도 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리는 전선 유지에 특화되어서 불굴이라는 칭호가 붙었고……이 케시크는……기동전으로 특히 활약했군요.”


“그러면……신속은 어떻습니까?”


“좋군요. 신속의……신속의……”


“외람되오나 한 마디 의견 올려도 되겠습니까?”


블랙리버 위원회 위원들이 의논을 하던 중에 나는 끼어들었다. 위원들은 내가 끼어들자 다양한 반응을 보였으나 나의 활약이 있다 보니 그 누구도 나를 책망의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허가한다.”


허가를 맡은 나는 잠시 생각한 후에 말했다.


“‘칸’이라는 이름을 쓰고 싶습니다.”


“호오.”


“칸. 좋은 이름이군. 유목민족의 군주를 뜻하던가?”


“케시크라는 이름도 칸의 친위대에서 따왔지요?”


“신속이라는 칭호에 맞는 이름이기도 하군요.”


위원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후에 말했다.


“좋다. 이 시간부로 너를 C-2 신속의 칸으로 명명한다. 1번 신속의 칸. 앞으로 많은 활약을 펼치도록.”



그 옛날 이 땅을 위대한 정복자가 달렸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 이름이 여전히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면 그 정복자는 시간조차도 정복한 것이리라.


그 정복자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나 같은 바이오로이드는 불가능하겠지.


그러나 그와 같은 이름은 가지고 그를 약간이나마 흉내는 낼 수는 있을 것이다.


위대한 정복자는 훌륭한 지휘관이었을 것이니.


나 또한 그처럼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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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보니까 설정상 오류가 보이네...


그리고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시간이 부족하고 내 능력이 부족해서 어쩔 도리가 없다...


어쨌든 칸 미스 오르카 1~3위 안에 들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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