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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령관은 리제한테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했어.

'바닐라 말고는 본 사람도 없었다'는 거.

물론 침실 안에 들어온 건 바닐라 뿐이었고 탈론페더 등등의 촬영도 한참 전에 금지했으니 '본' 사람이야 없는 건 맞지.

하지만, 감각이 어디 시각 뿐이던가?


- 천만 다행이었네요, 어젯밤의 경호 담당이 저여서.


문을 나서자마자 곁눈질로 사령관을 올려다본 페로의 말에도 사령관은 태연히 웃을 뿐이었음.


- 그렇게 자매들을 신경 써주는 점, 훌륭하다고 생각해.

- 따, 딱히 그런 의도로 한 이야기는….


살랑이는 꼬리랑 귀를 보면 맞는 것 같지만 사령관은 굳이 지적하기보단 그냥 일에 착수하기로 했어.

서류 업무는 딱히 없었지만, 그 이상으로 무거운 책무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옆 창고에 쌓여있는 초콜릿의 산을 조금이라도 줄여 나가는.


- 그럼 힘…… 내볼까.


완전히 녹아버린 리제와의 밤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의욕을 충전하고, 사령관은 문을 열었어.

냉기만큼이나 노골적으로 풍겨오는 단 냄새에 모처럼 충전한 의욕이 단번에 꺾일 뻔 했지만 사랑의 힘(?)으로 어떻게든 버텨냈지.

이렇게나 많으니 뭐부터 먹을지도 문제네.


- 페로, 추천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 당연히 있습니다만….


너무 노골적으로 사심이 들어갈 것 같아 사양하는 걸까.

기특하달지, 귀엽다 싶은 생각에 사령관은 가볍게 페로의 턱 주변을 긁어줬지.


- 냐, 냐앙…… 핫?!


아차, 어제 리제를 안아주면서 하도 자주 했더니 반사적으로.


- 주인님, 이러시면 곤란…합…….

- 일단 어젯밤 이야기는 모두에게 비밀로 해 주겠어?

- 그, 그 정도는 부탁하시지 않으셔도 당연히…….


말로는 저러면서도 고개를 때려는 시늉도 하지 않고, 눈을 반쯤 감은 채 꼬리를 느긋하게 살랑이는 걸 보니 퍽이나 마음에 든 모양이야.

뭐, 입막음 비용 겸 언젠가 리제와 고양이 플레이를 할 때의 예행 연습 정도라고 해둘까.

그렇게 사령관은 페로에게서 1급 고양이 쓰다듬기 기술자(?) 인증과 추천 초콜릿이 든 상자를 건네받았어.


*   *   *


그로부터 수 시간 후.


- 정말 잘 했어, 우리 고양이.


초콜릿을 사령관에게 넘길 때의 피폐함은 어디로 갔는지, 리리스는 얼굴에서 빛을 내면서 페로를 칭찬하고 있었음.

컴패니언과 페어리가 합동으로 만든, '미니 컴패니언 & 페어리 초콜릿'을 사령관이 크게 마음에 들어했거든.

거기에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나하나 먹기 전에 기록에 남겨야겠다고 탈론페더를 불러서 사진까지 찍으면서 다른 대원들로부터의 평판이 올라가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고.


- 언니 몫까지 만든 것처럼 되었는데, 괜찮은가요?

- 물론이야. 우린 자매잖니.


내심 걱정하는 페로를 안심시키고 리리스는 근무 교대를 위해 방을 나섰지.

평소보다 빠른 발걸음으로, 동생의 예민한 청력으로도 듣지 못하리란 확신이 들 거리까지 떨어지고-


- 하아….


리리스는, 차라리 사령관이 자신의 초콜릿을 발견하지 못하셨으면 좋겠다는 내심을 담아 한숨을 내쉬었음.

솔직히 말해서 자기가 만든 - 수수하다 못해 보기만 해도 질릴 것 같은 하트 모양 초콜릿이 영 마음에 안 들었거든.

양을 제한한다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원작 리제와 서로 눈치를 보고 의견 교환도 하면서 옥신각신한 끝에 나온 게 고작 그거라니 싶기도 했고.

애초에 누가 더 잘 만드느냐 신경쓰다가 결국 찌그러진 정도만 다른 복제품이 되어버렸다는 것도 이제와서 마음에 걸렸지. 

동생들 덕분에 망친 물건을 못 본 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한 리리스의 통신 단말에 짧은 메시지가 왔음.


「정성이 느껴져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어. 고마워, 리리스.」


동봉된 사진에 나온, 다소 못생긴 초콜릿이 자신의 것이라는 걸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음.


- 아아….


이러니까 제가 당신을 사모할 수 밖에 없는 거랍니다, 주인님.

한참 동안 바라보던 통신기를 소중히 갈무리하고, 리리스는 방금보다도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어.

자매에게서 멀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인에게 가까워지기 위해서.


레아가 자신의 몫까지 초콜릿을 만들어 준 동생들을 하나하나 끌어 안아주고,

원작 리제는 리리스와 거의 똑같은 표정으로 사령관의 답장을 확인하고,

소완은 비장의 대(對) 초콜릿 메뉴로 사령관에게서 진심이 담긴 감사를 받으며 내심 쾌재를 부른, 2월 15일의 오후.


발렌타인은 끝났지만, 달콤한 향기가 가시기까진 아직도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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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이야기가 길어져서 아우로라 이야기를 미루는 김에 티아멧 쪽까지 더해서 초코여왕은 다음 편으로 마무리짓겠스빈다


다음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94386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