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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할 만큼 우울한 이틀이 지나고, 사령관은 다행히 멀쩡하게 눈을 떴음.

일어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리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지.

원작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에바가 남긴 말을 들은 사령관이 순순히 꿈을 꾸었다는 사실을 말한 것.

꿈의 내용에 대한 설명은 추상적이기 그지없어서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당장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어.


- 아니, 그럴 리는… 닥터! 지금 당장 정밀 테스트 준비를!

- 각하. 실례합니다. 혹시 수면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들지 않으십니까?


멸망 전부터 살아온 바이오로이드라면 '악몽'과 '긴 수면'이라는 키워드를 같이 듣는 순간 휩노스 증후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사령관의 몸이 휩노스 증후군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꿈의 내용을 모호하게나마 기억한다는 시점에서 휩노스 증후군과는 다르다는 것도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알 수 있지만- 그 정도로 침착해지기엔 사령관의 존재는 너무나도 컸던 거야.

주변의 격한 반응에 휩쓸린 사령관에게서 희미하게나마 불안감이 피어나는 걸 깨닫고, 리제는 말 없이 손을 잡아줬음.


괜찮아요, 다짐하는 듯한 속삭임에 사령관은 잠깐 멈칫했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힘있게 말했음.


- 나는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것만으로 분위기가 한결 이완되었고, 모여있던 간부들은 하나하나 이틀 사이의 일을 꺼내들었지.

물론 대부분은 라비아타가 잘 처리해 두었으니 사후 확인만 하면 되는 정도였고, 남은 건-


-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사령관.


에바와의 통신이었지.


- 몸은 좀 어떤가요? 귀여운 아내는 잘 있고?


……아니, 근데 거기서 왜 내 이야기를 꺼내들어요?


*   *   *


다행… 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에바는 리제에 대해서 깊이 추궁하지는 않았음.


- 리제는 당연히 건강해. 전할 말이라도 있어?

- 아니요. 시저스 리제 특유의 과대 망상이 아니라 정말로 아내 취급이라는 걸 확인했으니 만족해요.


그 와중에 살살 긁어대는 건 감수하기로 하고.

입을 삐죽 내밀고 노려보는 자신과 패널 너머의 에바가 잠깐 눈이 마주친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었지만 아마 착각이겠지.

리제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로 그걸로 되었다는 듯, 에바는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장소 - '말하는 자의 섬'의 좌표를 보내준 후 통신을 끊었음.


- 주인님, 에바가 알려준 곳으로 향하실 건가요?

- 라비아타는 어떻게 생각해?


자신의 의견을 표하기 전에 주변의 생각을 한 차례 묻는 것은 이제와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었지만, 이번 만큼은 라비아타도 평소처럼 무난히 대답할 수는 없었지.


- 저는 아직 저 에바를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막연히 싸워나가기만 하는 것보다는, 좀 더 많은 것을 알아내는 것도 중요할 테니….


- 아르망은?

- 제 연산 밖에 있는 일에 대해 논하기는 어려우니, 폐하의 의중에 따르겠어요.


- 마리.

- 수상쩍은 구석도 분명히 있으나, 그녀의 조언 덕에 각하의 감염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적어도 이제와 다시 함정을 팔 가능성은 낮지 않을까 싶군요.


닥터가 뿅 하고 튀어나온 건 차례차례 돌던 시선이 알렉산드라를 향할 즈음이었음.


- 오빠! 나는 찾아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오빠도 가고 싶어 보이고!


거의 바로 포츈에게 끌려 돌아갔지만, 분위기를 환기하기엔 충분했어.

안경을 치켜 올리며 닥터에게도 예의범절을 알려줄 필요가 있겠다고 다짐하는 알렉산드라에게 적당히 해달라고 당부 아닌 당부를 남기고, 사령관은 곧은 시선으로 정면을 바라봤지.


- 출발하자.

 여차하면 주변의 섬을 점령해 기지로 쓸 수도 있을 테니까.


잠들어 있던 이틀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각오와 생기가 넘치는 목소리였어.

그리고 리제는 그것이 무엇보다 안심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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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관련 짤막 설명 :

리제가 굳이 에바를 에바 존스로 부른 건 "에바를 애덤의 아내로 인정한다"는 뜻.

여기서 에바가 그럼에도 바이오로이드인 리제를 사령관의 수집품 취급하면 바이오로이드로 개조된 에바도 애덤의 아내가 될 수 없다는 논리가 - 에바 본인의 특수성을 들어 반박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튼 리제는 그렇게 취급하겠다는 주장이 - 성립해 버리는, 일종의 깔 거면 공평하게 까이자는 맞다이 신청이다.


에바가 굳이 더 파고들지 않은 건 딱히 리제의 기세에 눌렸다거나 한 게 아니라 바이오로이드 주제에 그런 식으로 '사람처럼' 생각하는 점이 "요것 봐라?" 싶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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