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한참을 달리던 기사의 눈에 무언가 들어온다로시난테를 멈추고 얼굴을 찌푸린 채 한참을 바라보던 기사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흔들기 시작했다이럴 때를 대비하여 금속 실을 엮어 만든 덕을 볼 시간이다.

 

여깁니다레이디들!”

 

 몇 분이나 소리쳤을까한 무리의 바이오로이드들이 기사의 번쩍이는 갑옷과 손수건을 확인하고는 방향을 바꿔 달려온다그들이 자신을 향해 오는 것을 확인한 기사는 안장에서 마실 것을 꺼내 목을 축인다로시난테에게도 몇 모금 주니 목이 말랐던 듯 벌컥벌컥 잘 들이킨다.

 

 도착한 바이오로이드들이 목격한 기사는 소설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모양새였다우선 키는 눈으로 보기에도 2m를 훌쩍 넘겼고갑옷은 너무 뜨거워지는 것을 막으려는 듯 넓은 망토로 두르긴 했지만 그 거대함과 소박한 듯한 화려함은 숨길 수 없었다무기는 거대한 대검이었는데폭은 몰라도 길이만큼은 라비아타 대장의 것보다도 길었다.

 

 상식을 뛰어넘는 기사의 용모에 얼이 빠진 바이오로이드를 무시하듯기사는 로시난테에서 내려 과장된 동작으로 인사를 청했다.

 

안녕하십니까아가씨들혹시 근처에 저와 이 로시난테가 잠시 머무를만한 곳을 알고 계시는지요?”

 

... ...그게...”

 

소개부터 드렸어야 했는데제 무례를 용서하시길요즈음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이 별로 없다 보니 이 모양입니다.

 

 너는 뭐냐고네가 사람은 아니잖아.”

 

 아무튼 제 이름은...그냥 편하실대로 부르시면 됩니다그리고 이쪽은 로시난테바람과 같이 빠른 제 친우입니다속이 조금 좁은게 단점이지만 그것 말고는 든든한 전우죠.

 

 무례하긴네가 그러니까 속이 좁다는거야.”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부디.”

 

 기사를 뒤로 한 채 슬레이프니르마리리앤 그리고 다프네는 조금 떨어져 이야기를 나눈다그 틈을 타 기사는 검을 꺼내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한다다행히 날에는 손상이 없었지만 그립이 살짝 풀어졌다미리 챙겨두었던 얇은 가죽을 꺼내 손잡이에 두른다.

 

혹시 미친거 아니야?”

 

전대장!”

 

 떨어졌다곤 해도 귀가 밝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대화를 들을 수 있을 만한 거리였다기사가 정말로 정신이 이상하다고 할지라도 거대한 몸과 검을 봤을 때 그를 무시하는 건 위험한 행동이다.

 

아니멸망 전에 쓰여진 책에서 봤어인간은 너무 오랫동안 혼자 있으면 외로워 미쳐버린다고혹시 저 사람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리앤이 뒤를 돌아보자 기사는 본인이 로시난테라고 부르는 것을 쓰다듬으며 위로하고 있었다한참 혼자서 대화를 나누던 그는 시선을 느낀 듯 이리저리 둘러 보다 리앤과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며 웃는다멋쩍게 같이 웃어준 리앤은 다시 이야기에 합류한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도 그렇긴 한데뭐랄까... 리제 언니하고는 다른 느낌으로 뒤틀렸다고 해야할까요?”

 

동의하네어쨌든 저분은 인류고정신은 몰라도 육체는 상당히 강인하신 것 같군일단 나는 저분이 오르카 호에 합류하는 것을 찬성하네.”

 

저도요,”

 

나도 찬성샬럿 총사대장하고 합이 잘 맞을 것 같은걸?”

 

그러면 제가 사령관님께 연락드릴게요.”

 

 통신을 연결하는 리앤을 뒤로하고마리와 다프네는 기사에게 다가갔다다시 보아도 강인한 육체와 잘 정비된 무구다물론 정신까지 온전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어떻게 사람이 완벽할 수 있겠는가이미 사령관이 있는 그녀들로서는 단지 선량하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잠시 기사를 훑어본다는 것이 무심코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한다예의를 잊을 정도로 기사가 뿜어내는 위용은 대단한 것이었다관찰이 길어지자 기사가 불쑥 마리의 얼굴 앞에 머리를 들이민다.

 

정수리는 어떻습니까?”

 

?!”

 

#

 

 철의 은혜를 입지 않은 자들이 보았을 때철의 탑은 자칫 단조롭게 보일 수 있다빛은 철의 탑을 붉고하얗고검게 꾸몄지만더 넓은 범위를 ’ 수 있는 자들에게 철의 탑은 더없이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무슨 일 있어?

 

-오셨습니까누님.

 

-편하게 말해그런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정수가 혼탁해졌는걸.

 

 누이의 말에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과연 그녀의 말대로였다깊은 잡념이 영향을 미친 것인지 근처의 에센스의 흐름이 불안정했다이러니 사람이 오는 것도 보지 못하지그는 혀를 차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평범한 잡념이었습니다그저... 불신자들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아아너는 모르겠구나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지금에 비할 바가 못되지강철은 영원하지만 살덩이는 흘러내려불변하는 우리는 변하는 그들과 본질적으로 달라무슨 느낌이냐고글쎄... 말하자면 물물로 만들어진 몸을 입은 기분이야추운 곳에 가면 얼고뜨거운 곳에 가면 끓어오르지.

 

-무슨 느낌인지 잘 알겠습니다.

 

-이런이만 가봐야겠어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들어가시지요.

 

 그는 알현실로 들어가는 자신의 누이를 바라봤다아니느꼈다고 하는 편이 더 가까울 것이다에센스의 흐름이 교황과 그녀의 대담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그들은 다음 시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한참 동안 지켜보던 그는 지친 모양인지 몸을 돌렸다길을 걷던 중에센스에 각인된 누이의 생각과 마주쳤다.

 

오랜만에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

 

#

 

 네로만 의사를 표현하는 마리의 신기에도 기사는 변함없이 정수리를 얼굴에 들이대고 있다얼어붙은 마리의 머릿속에서는 기사의 행동에 대한 논리적 추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마리는 나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이 분명하다궁금함이 길어지면 마음이 불편해진다기사는 레이디의 불편함을 해소하거나 미연에 방지할 의무가 있다나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마리가 보지 못하는 곳이 어디지내 정수리를 보여주자.

 

아뇨괜찮습니다이거 실례했군요.”

 

그런가요?”

 

 일방적인 침묵이 시작된다기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평원을 바라보고 있지만어떻게든 기사의 주의를 끌어야 하는 마리는 죽을 맛이다고요함이 길어지자 기사의 뒤에서 다프네가 마리를 쏘아본다이런 상황에서 검사를 진행했다가는 단번에 들킬 것이다침을 삼킨 마리는 강수를 띄웠다.

 

... 검을 보아하니상당한 이야기가 쌓인 검 같군요혹시 들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검 말입니까얽힌 이야기가 기구하다면 기구하겠군요어디 보자제가 이 친구를 처음 만난 곳이 아마 하늘까지 솟은 탑의 정상이었을 겁니다그때 저는 거대한 괴룡에게-”

 

 기사가 마리와 대화하느라 정신이 없는 틈을 타 다프네가 검사를 진행한다사령관이 철충에 감염되어 있었던 사건 이후로오르카 호에 새로 탑승하는 인원들은 모두 신체 검사를 받아야만 했다실제로 레모네이드 오메가의 첩자를 잡아내기도 했으니 그 효용은 말할 가치도 없다.

 

 마리가 판단한 기사의 정신은 온전하지 못했기에그녀는 이렇게 몰래 검사를 진행하는 방식을 써야만 했다물론 마리 일행이 미루어 짐작한 기사가 남을 해칠 성격은 아니었다하지만 혹시라도 자신의 순결함을 의심하는 것이냐면서 난동을 피울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던 그녀로는 어쩔 수 없이 이런 방법을 선택해야만 했다.

 

나중에 설명을 드려야겠지,’

 

 미약한 죄책감을 느끼는 사이 다프네가 검사가 완료되었다는 신호를 보낸다눈빛을 교환한 마리가 기사를 최종적으로 회유하기 위해 악수를 청한다.

손 달라구요?”

 

 마리의 손에 자기 팔을 뽑아 쥐어주려는 기사를 말리느라 특별 탐색조는 진땀을 빼야했다.

 

#

 

-그래도 누님저는 여전히 그들의 삶이 궁금합니다.

 



대학원에 가기 싫어서 필사적으로 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