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좋은 금발이 흩어진다. 아래에 놓인 육감적인 여체로부터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그녀에게, 지금 온 시선이 빼앗겨 있다는 것을 감추지 않았다. 자신에게 욕정 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그녀로 하여금 기쁨에 들어차 더욱 고양하게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녀는 내가 자신에게 욕망을 드러내는 것으로 행복을 얻는다. 섬기는 자의 입장으로서, 함께 전장을 조율하는 입장으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땀방울이 흐른다. 보기 좋은, 구릿빛의 살결에 떨어져 흐른다. 궤적이 빛난다. 손가락으로 그 궤적을 다시 아로새긴다. 그녀가 가볍게 몸을 떨었다. 다시 고개를 숙였다. 몸을 맞댄다. 숨결이 오간다. 타액이 흐른다. 허리를 가볍게 들이밀면, 가볍게 떨렸던 몸이 민감하게 반응해 허덕인다.


"응, 읏… 아, 흐으… 사령, 관…."


 백금발이 요란하게 흔들린다. 안긴 채 몸을 연신 떨어대는 통에 이쪽까지 정신이 없다. 간드러진, 열기를 가득 머금은 날숨이 귀를 간지럽힌다. 이성을 들뜨게 만든다. 뇌리에서 떨어져, 멀리 날아가는 것만 같은 감각. 손아귀에 힘을 주면, 탄탄한 살집이 욕망을 못 이기고 동그란 모양을 잃는다. 욕정을 물고 있는 욕정에 더욱 힘이 들어가, 조여온다. 숨을 토해낸다. 서로의 귓가에 서로의 탄성을 내뱉는다. 서로의 애달픔이 흐른다. 마주 안긴 몸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한랭지의 혹한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그러니까, 그 전선에서 눈발조차 얼릴 정도로 냉혹해야 했던 그녀의 모습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지금 뜨겁다. 애욕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허리를 들었다. 아래에서부터 그녀를 몰아붙이면, 등허리에 깊게 아릿함이 달려온다. 못된 버릇이다. 벌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자국이 남아 있다.


"…… 아, 하아…. 그렇, 게… 갑자기…."


 갈색빛의 머리칼이 시야를 어지럽힌다. 그다음은 작열하는 붉은빛, 그다음은 바다를 닮은 청록, 그다음은 짙은 고동빛의 것이 자꾸만 눈을 가려온다. 다시 금발. 다시 백금. 황야에서 강렬함으로. 거기에서 다시금 대해로. 짙은 욕정으로. 다시, 다시, 다시……. 세계가 섞인다. 현기증이 끝없이 달려온다. 욱신거리는 자지가 마지막으로 휴식을 가졌던 게 언제였지? 되뇌어도 대답이 없다. 다시 설원이 들이닥쳐 온다. 한껏 녹아 질척이게 된 눈밭이, 이제는 순백이 아니게 된 육욕이 몸을 밀어온다. 두통을 갈무리할 시간조차 없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되뇌어도 대답이 없다. 다시 대해가 파도쳐온다. 숨을 옥죄어 더 깊은 곳으로 밀어붙여 간다. 질식감에 입을 열어도 토해지는 것은 날숨이 아니라 허덕임 뿐이다. 뇌리를 찔러오는 쾌락이 이제는 극독인 양 머리를 마비시켜온다. 들려 떨리는 허리가 죄악으로까지 느껴진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되뇌어도 대답이 없다. 다시 무언가가 덮쳐온다. 뭐였더라…? 되뇌어도 대답이 없다. 침묵. 그리고 암전.


 조명. 닥터의 말에 따르면, 과로의 반작용이라는 듯하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껏 쌓아온 부담감의 폭주, 혹은 책임감의 흐트러짐…. 예상되는 이유는 다양했다. 신체는 개량을 거쳤다고 한들 인간의 정신이다. 마모되도록 애초에 만들어진, 그리 빚어진 정신이다. 기워 붙인 정신이 여태껏 제 역할을 하고는 있었으나 그것조차 한계는 명백했다. 기실, 지금과 같은 긴박 상황에서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으리라. 너무 많은 사건, 너무 묵중한 믿음, 너무 들이치는 욕정. 보통의 인간이라면 이미 꺾일 대로 꺾여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으리라. 필시 온갖 환영에 시달리리라. 쓰러지기 전 겪었던 육욕의 기억 역시 그 반동이라고 했다. 곧장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휘관 개체들의 공세가 나를 무너뜨린 게 아니라는 얘기였으니까. 그러나, 병실에 한데 모인 지휘관 개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둡다. 짐작할 수 있다. 그 많은 대원들 중 하필이면 자신들이다. 그간의 숱한 어프로치들이 아찔하게 연산기를 훑고 지나갔으리라. 이해할 수 있다.


"괜찮아. 너희들 탓이 아니야."


 그런데도 표정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당연하다. 지휘관 개체들이 쉽게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많은 경험으로 미루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니까. 오히려 쉽게 납득했다면 그편이 더 이상했겠지. 연신 위로를 건네도 제자리걸음일 것이다. 여기서는 침묵을 골랐다. 이 개체들이 응당 직접 머리를 맞대 방안을 강구해뒀을 것이다. 게다가 아직은 현기증이 머리에 들러붙어 있다. 닿지 않을 위로로 지휘관 개체들과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내가 쓰러진 것으로 인해 오르카 호는 전면 정지일 테니, 최대한 빨리 이번 이슈는 끝을 맺어야 했다. 그러려면, 지금 앞에서 우물쭈물 하고 있는 지휘관 개체들 중 한 명이라도 어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개체들을 물릴 명분이 없다. 조바심이 일었다. 헛기침을 해도 반응이 없다. 이렇게까지 계산이 느렸던가? 머리가 지끈거린다. 닥터의 시선이 스쳐 지나간다. 읽을 수 없는 눈빛. 저 개체가 저런 감정을 품게 되어 있던가? 다시, 머리가 지끈거린다. 시야가 흔들린다. 지휘관 개체들에게 향해 있던 시선이 위로 쏟아진다. 그 잠깐의 흐트러짐 속에서, 손을 뻗는 바이오로이드가 한 대 있었다. 그것을 다른 바이오로이드가 막아섰다. 그리고 암전. 눈이 감겼다. 수렁에 빠지는 감각. 암전.


 조명. 다시 뜨인 시선은 몽롱하다. 시야가 흐리다. 환각인가. 아직 부담감의 마수에서 채 벗어나지는 못 한 모양이다. 숨을 들이쉬었다. 가슴이 들리다가, 격하게 떨린다. 하반신에서 격통이 달려온다. 아니, 격통이 아니다. 이건 저릿함이다. 척추를 타고 오르며 달려오는 죄악이다. 쾌락이다. 머리가 다시 공포로 물들어간다. 고개를 들어 그 모습을 살핀다. 잘 보이지 않았다. 얼굴인가? 몸은 아니다. 축축한 살덩이가 자지를 훑어 온다. 누군가가 자지를 빨고 있다. 그런 환각인가? 되뇌어도……. 아니, 대답을 기다릴 수만은 없다. 눈썹을 찌푸리고, 눈앞의 것을 똑바로 응시하려 정신을 그러모았다. 허리가 바짝 들려 여의치 않다. 쾌락이 몸을 쓰다듬고 쑤셔올 때마다 몸이 비틀려, 다리를 떨어내고 눈이 감겨 아찔하다가, 다시 수렁으로 떨어질 것 같다가, 기어 올라온다. 그 모습을 눈에 담아야 한다. 여자다. 당연하다. 바이오로이드는 죄다 여성체다.


"흡, 음…. 하아…. 쪽, 츄, 흐으…. 으응, 후후…. 하, 으읍…."


 목소리가 몽롱하다. 몽롱한 건 정신이다. 정신은 마모되어 있을 텐데. 그럴 텐데도 착실히, 쏟아져 오는 욕정을 담아온다. 토악질이 나온다. 허리가 들린다. 또, 또…. 자지를 물어, 혀로 훑어온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도톰한 혓덩이가 자지 기둥을 훑으며, 귀두와 이어지는 굴곡을 혀끝으로 눌러낸다. 곳곳을 기억하겠다는 듯이 질척하게, 혀로 자지의 실루엣을 그리며 간질여온다. 거기에 달아올라 버린다. 입안에서 조금 빼내어 귀두의 끝, 요도구를 연신 혀로 스쳐대면 발끝에서부터 열기가 달려와 허리가 추잡하게 떨려온다. 다시 자지가 삼켜진다. 귀두가 뭉근하게 살집을 누른다. 목구멍의 바로 앞인 건가. 얼핏 헛구역질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고 보니 청각이 멍해졌다. 그러나 그만큼 촉각이 예민해졌다. 눈앞은 안 보이게 된 것이 이미 한참 전의 일이다. 살집이 자지를 오물거린다. 침을 삼키는 듯이 입 안쪽, 여린입천장을 수축하면, 그 부드러운 살갗이 확연한 압력으로 귀두를 눌러온다. 삼켜지는 듯한, 잡아먹히는 감각. 진공감이나 목구멍을 범할 때와는 다른 감각이다. 발가락이 움츠러든다. 눈을 뜨고 있는데도 이렇게 어두운 건가?


"헤, 읍…. 으응, 쪽, 쪼옥…. 하… 압. 츗, 츄흐, 으…."


 밀어붙여 오는 것이 아니다. 애태우는 것도 아니다. 봉사심을 쏟아내는 것도, 가학심을 쏟아내는 것도 아니다. 오묘한 감각. 자지를 빨리는 것으로부터 이렇게까지 모호한 감각을 받게 되는 일은 없었다. 뭘 위해 이러는 거지? 환각이라는 자각은 어느덧 머리에서 흩어져 사라져 있었다.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다. 몰려 들어오는 쾌락 탓에 눈꺼풀이 닫히는 건지, 열리는 건지도 분명하지 않다. 눈을 떴다고 생각했다. 새카만 와중에 실루엣이 보인다. 다시 정신을 한껏 쥐어 잡았다. 천박한 소리를 내며 자지를 빨아오는 존재가 누구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금발인 건가? 하면 그 색이 옅어진다. 백금이다. 다시 짙어진다. 이제는 마구 혼재해 전혀 알 수 없는 색이 튀어나온다. 여성임에는 틀림이 없다. 당연히 여성체다. 그러나 환각은, 현실은, 착각과 인지는 그것을 비웃는 듯이 자꾸만 모습을 바꿔 간다. 뒤집히고, 돌아가, 자지에 코를 박고, 귀두까지 빼내어 집요히 자극하다가, 뒤로 넘어가는가 싶더니 볼 안쪽으로 자지를 문질러대며 뺨을 부풀려내다가도 금방 자지 기둥에 입을 맞춰온다. 다시 뒤집힌다. 뭘 보는 거지? 내가 지금? 되뇌어도…… 압도되었다. 


"으응…. 하아…. 으읍, 웁, 읍, 흐읍…. 응, 쪼옥……. 뽁쟉…."


 틀어지는 인지가 어지럽다. 머리를 수차례 가격당한 것 같다. 짓눌리는 것 같은 현기증. 기시감. 현실과의 괴리감이 엄습해왔으나 쾌락에 휩쓸려 금방 무엇보다 노골적인 현실이 된다. 다시 내 몸을 휘감고 소용돌이친다. 현실에서 떨어뜨리려는가 싶더니 질식의 품으로 나를 익사시킨다. 숨이 막혀온다. 숨이. 호흡이. 쉬어지지 않는다. 비강을 넓히고, 입을 벌리고, 공기를 들이쉬려고, 목에 힘을 줘도, 쉬어지지 않는다, 더, 더, 더, 더, 갈구할수록, 구가할수록, 갈망할수록, 갈증할수록, 막혀온다, 막아온다, 조여온다, 죄어온다, 눈앞이 흐려졌다가, 희미해졌다가, 뿌옇게 번졌다가, 상을 되찾는다, 위엄이, 설원이, 황야가, 폭발이, 대해가, 포신이… 강철이, 더 강하게, 마지막 날숨을 내뱉는다. 의식이 가라앉는다. 떠오른다. 매달린 것 같은… 기어 올라가야만 할 것 같은…. 상이 맺힌다. 거기에…… 있다. 소리를 내고 있다. 자지를 물고 있다. 빨고 있다. 당장은 그렇게 느꼈다. 감각이 다시 중추를 쳐올린다. 허리가 바짝 굳고, 쾌락이 달려온다. 소리가, 저 소리가, 차가운 소리가 나를 덮친다. 혼수상태의 나를 범하고 맨정신의 나를 범하고 또, 나를, 이 몸을, 자지를 물고, 소리를, 뽁쟉, 뽁쟉, 뽁쟉뽁쟉뽁쟉뽁쟉뽁쟉뽁쟉뽁쟉뽁쟉틴틴틴틴틴틴틴틴틴틴틴틴……. 틴, 틴, 틴… 추잡한 소리가 퍼져온다. 뽁쟉, 뽁쟉, 뽁쟉, 강철이 서로 맞닿는 소리. 틴틴틴틴틴…. 그럼에도 여체인가? 상이 다시 흐려진다. 여체였던가? 되뇌어도 이제는 의미가 없다. 그것이 자지를 게걸스럽게 빨아올려 온다.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그리고 기어이 절정에 이르게 한다. 어느 때보다 차갑고 섬짓한 절정이 달려온다. 이후 암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을 하지 않으려 한다.


 조명. 그리고…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