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앤... 노래 불러줘...”

 

“아가씨, 안됩니다. 안 돼요... 안돼... 안돼...”

 

“안돼애애애!”

 

허억허억

 

비명이 방안을 가득 채우다 이내 잠잠해진다. 비명이 지나자 거친 숨소리로 가득 채워진다. 또 망할 악몽이다. 이 기분 나쁜 꿈을 꾸고 나면 펑펑 운 듯 눈물을 흘리고 숨이 가빠진다. 

 

“하아... 수복 실이라도 가봐야 하나.”

 

내 몸에 문제가 생겼나. 그렇지 않고서야 며칠 동안 같은 꿈을 꾸고 일어날 수 없다. 차라리 닥터에게 도움을 청해볼까.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왜 계속 같은 꿈만 꾸며, 매일 꾸는지, 내 이름은 또 어찌 아는지 그리고 

 

“왜 노래를 불러 달라는 거지?”

 

 

 

//

 

 

 

매일 같은 하루가 흘러간다. 사령관님의 지시에 따라 임무를 배정받고 철충을 처리하며 멸망 전 기록들을 수집하는 것이다. 아 깜빡할 뻔했네. 나는 우리 멍청이 대장님을 무조건 데리고 가야 한다. 형식상 나의 상관이지만 나에겐 어린애에 가깝다. 매일 애처럼 굴고 항상 안기려고 하며 툭하면 울어버리니. 

 

“나앤, 오늘은 어떤 임무야?”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아 오셨어요, 대장님. 오늘은 폐가 수색입니다. 보고서에 의하면 멸망 전 어느 귀족의 저택이었대요. 부유한 집안이라 멸망 전 문화에 대해 알 기회라 수색하라는 명령입니다.”

 

“귀족? 귀족이 뭐야?”

대장님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대장님, 정말 모르는 겁니까?”

 

“모... 모른다니, 당연히 알지.”

 

대장님은 당황한 듯 움찔했다. 

 

“그, 그니까... 귀족이란 말이지. 음...”

 

대장님은 머리를 쥐어 싸며 생각하고 있다. 대신 표정이 ‘난 몰라요’라고 답을 했다. 그냥 모른다고 해도 괜찮은데 아는 척이라도 하고 싶은가보다. 

 

“그,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에헴. 나앤, 어서 수색하러 가자.”

 

대장님은 얼굴이 벌게진 채 허둥지둥하며 앞장섰다. 평소 같으면 무시하고 알려주지만, 오늘따라 대장님의 행동이 귀여워서 눈감아줘야겠다. 다만.

 

“대장님. 나가는 길은 그쪽이 아니라 이쪽입니다.”

 

“아... 알고 있으니까 아는 척 그만해! 흥!”

 

목표지점으로 가는 길은 오래 걸렸다. 아니 메이 대장님이랑 있어서 더 그런가. 출발한 지 얼마 못 가 다리 아프다며 찡찡대는 대장님 어르고 달래서 데려오느라 죽는 줄 알았다. 이럴 거면 나 혼자 가라고 하지 굳이 같이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지. 이럴 때마다 어디 버려놓고 혼자 복귀하고 싶은 생각이 수천 번 든다. 적은 철충이 아니라 상관인 게 분명하다. 

 

“나앤, 아직 멀었어?”

 

“아뇨, 거의 다 왔습니다. 그러니 그만 움직이시죠. 중심 잡기 힘듭니다.”

 

내 속마음은 모르고 천하 태평한 우리 대장님은 내 등 뒤에 업혀있다. 이럴 때마다 대장님이 아닌 사령관님이었으면 좋겠다고 상상한다. 이대로 비밀의 방에 데려가 대장님도 못 땐 딱지를 떼는 상상을. 

 

물컹

 

“나애앵, 나 심심해애.”

 

대장님이 움직이면서 천박한 지방 덩어리가 느껴지자 행복한 상상은 불쾌한 현실로 돌아왔다. 저런 지방 덩어리가 뭐가 좋다는 건지. 괜히 짜증 지수가 올라갔다. 

 

“여기서 철충밥이 되기 싫으면 가만히 있으세요!”

 

“에?! 애애애엥!!! 나앤 미워어어어!!‘

 

 

 

//

 

 

 

얼마나 더 걸었을까, 삐진 대장님 어르고 달래느라 많이 늦어졌다. 도착하자마자 복귀해야 할 판이다. 돌아버리겠네.

 

“대장님, 수색 장소에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어서 일어나시죠.”

 

“으에에... 벌써 도착이야?”

 

대장님이 내 등에서 잠을 깨며 말했다. 울다 지쳐 잠든 우리 징징이 대장님을 두고 갈까 수십 번 고민하다가 안쓰러워 결국 업고 온 것이다. 아이고, 내 팔자야. 

 

“나앤, 저기가 수색 장소라고? 디게 크자나.”

 

“그렇게 말입니다. 귀족 저택이라 클 거라 예상했지만 이 정도 일줄 몰랐습니다.”

 

오르카 호에 2배, 아니 수십 배 크기의 저택이었다. 나도 이런 곳은 처음 본다. 비록 폐가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보수만 한다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집이 될 것이다. 부유한 귀족의 집이 맞는 모양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저택의 한쪽이 무너져있었다, 아마 철충들에 의해 무너졌겠지. 보통 수색 임무를 하러 가면 건물이 무너져있거나 반만 남아있는 경우가 보통이다. 하지만 이 저택처럼 한쪽만 무너져있는 경우는 특이한 케이스다. 이 정도면 수색할 가치도 높을 것이다. 제대로 된 물건을 들고 간다면 나도 참치와 비밀의 방 입장 기회를...

 

“나앵. 나앤!! 왜 멈춰있는 거야? 어서 가자니까!”

 

...일단 단독 행동할 자격부터 달라고 해야겠다. 

 

수색하기 전 주변에 철충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혹시나 매복한 철충이 있거나 놈들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면 정말 큰 일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2인 1조로 행동할 경우 한 명이 레이더 감지기로 주변을 살피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엄호해줘야 한다. 이게 맞는데...

 

“흐아아암. 나앵, 나 졸려... 그냥 오르카 호로 돌아가자.”

 

잠투정이나 하는 우리 대장님과 같은 조라면 말이 달라진다. 나 혼자 살펴보고 대장님을 엄호해야 하고 달래줘야 한다. 하아. 내 팔자야. 

 

“이상 없음. 대장, 어서 수색하러 가죠.”

 

“쓰읍, 나앤. 말이 좀 이상한 거 같은데 내가 잘못 들었나~?”

 

‘대장’이란 말에 우리 대장‘님’은 눈이 번쩍 떴다. 또 시작이다. 평소에는 대장 노릇도 안 하는 양반이 어디서 배워왔는지 요즘 대장 놀이에 푹 빠졌다. 만약 제대로 안 받아주면 2시간 동안 달래주기 벌을 받을 수 있어서 최대한 잘 받아줘야 한다. 

 

“하아, 메이 대장님!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수색하러 출발해도 될까요?”

“고럼 고럼, 이래야지. 좋아, 나앤 부하. 수색을 허락하지.”

 

우리의 메이 대.장.님.은 근엄한 표정으로 수색 장소로 걸어갔다. 짧은 다리로 최대한 멋있어 보이려고 쭉쭉 뻗으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첨엔 귀엽게 보였지만 이젠 아무 감정도 안 느껴진다. 차라리 저러다가 넘어져서 수복 실에서 전치 16주 나왔으면 좋겠다. 아니 일단 넘어지면 전치 32주까지 만들 자신은 있다. 

 

“나앤 부하 빨리 안 오나! 대장님 앞에서 농땡이 피울 생각을 하다니. 그럼 못써!”

 

정정한다. 다음 대장은 나다. 영구 수복실 자리 하나 예약해야겠다. 

 

문 앞으로 다가갈수록 근엄하게 걸어가던 우리 대장님은 어디 가고 천진난만한 아이가 뛰어가고 있다. 그런 꼬마 대장님을 보며 나는 주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근데 이상하다. 어째서인지 이 저택과 이 풍경이 낯설지 않다. 전에 와본 적이 있었나. 

 

“나 잡아봐라...”

 

“누구냐?!”

 

분명 어린아이 목소리다.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는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나는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며 총구를 겨눴다. 하지만 바라본 곳은 흙더미와 돌 파편밖에 없었다. 

 

“나앤, 뭐가 있는 거야?”

 

“어?! 아, 아닙니다, 대장님. 제가 착각했습니다.”

 

별일 아닌 듯 다시 제 갈 길 가는 대장님과 달리 나는 계속 소리가 난 쪽을 바라봤다. 내가 들은 목소리는 분명....

 

“메이 대장님 목소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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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올린 글 수정겸 다 쓴김에 재업함.  몰랐다고요? 그렇다고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