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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끝나고 생긴 아들 딸 오리지널 캐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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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스즈키는 준, 앙고라, 마리의 아들, 레오나의 아들에 이어 마지막 구인류의 수술을 받고 평생 쓸 통짜 티타늄 뼈가 전신에 이식되었다.

적응 기간이 끝나마자마자 스즈키는 흉터 때문에 앙고라처럼 될까 봐 움직이지 않았던 몸을 마음껏 움직였다.



수술 후유증으로 인해 소극적으로 행동하던 때와 달리, 신체 적응 기간이 끝나자마자 한 것은, 전속력으로 숨이 찰 때까지 도시 전체를 달려도 보고, 또 마이티R의 헬스장으로 가서 쇠질도 해보는 것이었다.

이따금 어머니 뻘 바이오로이드들이 말하는 아버지의 끝내주는 몸에 대해 자신도 동경하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수술이 필요 없기 때문에 어릴 적 앙고라처럼 놀아도 몸이 찢어지지 않을 정도의 강력한 신체 봉합 수술을 받았다.

이제 전신을 가로지르는 흉터까지 사라졌다.


오리진더스트가 주는 활력과 신체능력으로 건물과 건물 사이(10m)를 뛰어넘는 익스트림 스포츠까지 안전요원 바이오로이드들의 감독하에 체험해봤다.

그러다 피도나고 멍도 들었지만 이것이 큰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에 스즈키는 어마어마한 해방감을 느꼈다.


다쳐도, 상처받아도 좋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스즈키는 그때가 되어서 자신이 진정 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전에 없던 자신감마저 솟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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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호집 근처, 미호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자기 아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엄마 다녀올게요!"

"우리 일랑이 잘 갔다와~"


25세가 된 스즈키는 저 멀리 골목에서 초등학교 6학년의 일랑이를 배웅하는, 하나도 변하지 않은 미호의 앳된 얼굴에 첫사랑처럼 설레였다.

그도 그럴게, 자신이 아기일 때부터,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직전부터 보아왔던 얼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음..."


자기 시점에는 미호 이모의 키가 작아진 건가? 싶으면서도 다시금 주변 지형지물중에 익숙한 골목길 담장등이 자기 키와 비슷하다는 것에 다시금 자기자신이 변했다는 현실로 돌아왔다.


스즈키는 속으로 나이 먹고 변해버린 자신을 보고 '못 알아보면 어쩌지.' '하지만 나도 이제 거의 변하지 않을 텐데...' 같은 고민을 하며 차마 다가가지 못했다.


"혹시... 그때 일을 아직 기억하시는 건 아니겠지... 제발 까먹으셨어라... 제발... 제발..."


그렇게 얼굴 붉힌 체 우물쭈물 망설이고있던 스즈키는 아직도 그 뒷모습을 기억하고 있던 미호에게 포착되었다.

저격수로서의 기량은 사람을 구분하는 것에도 적용되었다.


"스즈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윽..."


미호의 부름에 고개를 돌린 스즈키는 어릴 때와는 다른 자신의 청년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정면으로 똑바로 보자, 스즈키는 정신 차릴 틈도 없이 가까워 지는 까치발 든 미호에게 머리가 쓰다듬어졌다.


눈 앞에 있는 미호는 여전히 앞치마를 두른 체, 미소 사이로 드러나는 변함 없는 송곳니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머리카락은 더 길어진 건지 땋아놓은 것을  또 땋고 또 땋았는데도 그 머리카락들이 종아리까지 머리가 낳는다.


'저정도면 모근이 끊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긴머리였다, 마치 꼬리같았다.

바닥에 안쓸리는 것만해도 기적같은 헤어스타일이다.



"예... 미호 이모는 잘 지냈..."

"하하, 나야 잘 지내지~ 내년이면 일랑이도 중학생이야, 좀만 더 있으면 너 고등학생 때 처럼 내 키를 훌쩍 넘어버릴 것 같은 거 있지~!"

"여전히 변함이 없으시네요..."

"그야 나는 바이오로이드인걸, 그건 너희 엄마도 마찬가지 아니야? 맞다, 리앤은 지금 뭐하고 지내?"

"저희 엄마는..."

"아! 이런 이야기는 밖에서 하지 말고 안에 들어가서 할까? 겸사겸사 스즈키는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기도 하고!"

"네..."

"너도 몸만 커진 거 말고는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흐흥."


스즈키는 미호의 손에 붙들려 미호의 집으로 갔다.

그때 이후로 이사 간 적이 없는 지, 자신이 알던 미호집 그대로 였다.


자기 방처럼 쓰이던 방에 자신의 흔적이 완전히 없어지고 완전히 일랑이의 방이 된 것만 빼면.


그리고 자신에게 늘 주던 초코 과자가 나올 줄 알았는데, 그냥 차 한잔만 나왔다.

아무리 이제 애가 아니라지만 나올거라 생각했던 과자가 안나온다는 사실에 스즈키는 조금 서운했다.


"하하하... 요즘 일랑이가 먹성이 좋아서 손님용으로 사온 과자까지 다 먹어버렸네? 차는 어때?"

"아아... 괜찮아요."

"아참 리앤은 요즘 뭐해? 바빠? 예전에 이제 요리는 안 한다고 해서 좀 걱정되었거든."


스즈키는 그 말을 듣고 찔렸다.

그것도 침 놓을 때 쓰는 바늘 3개를 동시에 맨 살에 찌른 느낌이었다.


그 바늘이 뼈를 긁는다.


"..."


그때 당시 스즈키는 사과하며 다시 요리를 하면 실력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결국 리앤이 아들을 위해 앞치마를 두르는 일은 없었다.

그나마 어린 타카하시를 위해서만 요리를 해주었다.


"엄마는 제 동생인 '타카하시'를 낳으신 후로 육아에 매진하시다가 타카하시가 어느 정도 제 앞가림을 하게 된 뒤로는 지금은 다시 탐정 일을 하세요, 역시 일터가 그리우신가 봐요."

"타카하시는 몇 살인데?"

"이제 막 초등학생이에요, 1년 일찍 들어갔거든요."

"으응~ 그렇구나~"


미호는 그때 리앤이 배고 있던 아이가 1년 이르지만 지금은 초등학생이라는 사실에 세월 참 빠르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럼 스즈키는 무슨 일해?"

"음... 회사원... 이에요."

"회사원?"

"별건 아니고... 그냥 제 또래 애들이 모여서 만든 회사에요, 이프리트 아주머니의 아들인 '앙고라'랑 메이 아주머니의 딸인 '준'도 있고..."

"무슨 회사인데?"


스즈키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부끄러워서 말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 '인간 대여 회사' 에요..."

"인간 대여...?"


아까까지 사근사근하게 미소 짓던 미호도 스즈키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름이 아니라... 인간이 필요한 곳에 가서 저나 앙고라, 준, 그 이외에 다른 사람이 찾아가서 '도움을 주는'... 그런 일이에요."


'도움을 준다.'에서 힘을 줘서 말한 덕분인지, 이상한 눈으로 보던 미호는 입을 꾹 다문 체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으음~ 이라 이해해 주었다.


"'사령관' 같네."

"그런가요...?"

"사령관... 정확히는 너희 아빠도 늘 우리에게 도움을 줬었으니까... 스즈키도 그런 일을 한다면 리앤도 좋아할거야~!"

"네... 그럼... 미호 이모가... 생각하시기에도 좋으신가요?"

"나? 나야... 당연히 좋지! 리앤도 아이 둘 있는 몸인데도 탐정으로 여기저기 활약하고 다니잖아? 나는 바로 은퇴하고 같은 부대 대원들이랑 같이 지냈는데... 뭔가 리앤은 대단하단 말이지... 그 아들인 스즈키 너도."

"감사합니다..."

"어머니한테 잘해."

"명심하겠습니다..."

"왜 이렇게 딱딱하게 말해, 힘내겠다고 해!"

"힘낼게요!!"

"옛날처럼 말 잘 듣는 아이네? 귀여워라~ 그럼 이따가 저녁도 먹고 갈래? 아니면 일이라도 있어? 리앤도 혹시 시간 난데? 타카하시도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

"저..."


스즈키는 주머니 안쪽에서 명함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미호에게 건네주었다.


"혹시... 저희가 필요해지시면... 연락해주세요... 아니면 필요할 법한 분에게 소개드려도 괜찮아요... 그럼 저도 약속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어... 잘가."


명함에는 '인간 대여 서비스!! 인간이 필요한 곳이라면 지구 반대편이라도 달려갑니다!' 라는 문장이 쓰여 있는 명함이었다.

뒷면에 작게 '부사장 스즈키'라고 쓰여 있었다.


덧붙여 말하자면 사장은 '준'이다. 앙고라는 평사원이다.


미호는 명함의 앞 뒷면을 번갈아보며 귀엽다고 생각했다.



"흠... 귀여워라, 사령관이 애기들 노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귀여워할까. 후훗."


미호는 언제 불러줄까? 라며 귀여운 고민과 동시에 '이따가 저녁에 뭐 먹을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리앤과 조만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






"엄마 왔다~"

"엄마!!"


이사 간 리앤의 집, 슬슬 타카하시의 방도 필요하겠다고 생각해 큰맘 먹고 이사했지만, 얼마 안 있어 스즈키가 독립해버린 까닭에 방 하나가 비어버린 리앤의 집이다.


그 방은 매번 깨끗이 청소되고 있다.

그리고 특별히 창고로 사용하지도 않는 방이다.


"엄마! 오늘은 범인 몇 명 잡았어!?"

"음... 초코바 도둑 한 명, 참치캔 도둑 한 명, 민트미트파이 도둑 한 명, 초밥 도둑 한 명 잡았나?"

"4명!? 엄마 진짜 짱이다! 나도 엄마처럼 되고 싶어! 진짜 진짜 멋진 탐정 되서 엄마를 조수로 삼을 거야! 총도 쏘고 막 그럴 거야!"

"엄마를 조수로 삼는다고? 하하하! 이거 애 아빠가 들으면 기뻐하겠는 걸? 하지만 총은 안돼, 나도 총 안 쏴본지 20년이 넘었는 걸?"

"에엥~? 드라마에서는 탐정이 늘 형사 총 빌려서 총 쏘는데."

"드라마랑 달리 이제 총맞아야 할 정도로 나쁜 사람은 없어서 그래~ 그리고 총 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총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좋은 거야, 그리고 엄마도 따지고 보면 탐정이 아니라 형사인데?"

"그건 좀 재미업서, 형사는 맨날 주인공 탐정에게 뭐라하는 역할이란 말이야."

"아니야~ 서로 협력하는 관계라서 투닥거리는 일도 많을 뿐이야~"


리앤은 딸인 타카하시를 볼 때마다 아들 스즈키의 죽어가던 얼굴이 생각난다.

본래 그 아이도 이렇게 천진난만해야했을 아이가, 전신에 큰 흉터가 생기고, 그 때문에 성격도 버리고, 자신이 일을 하지 말고 더욱 아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


특히 아이를 이때 쯤 낳았다면 그 아이도 행복했을 까, 그런 생각이다.


그래서 리앤은 스즈키에게 해주지 못한 만큼 타카하시에게 만이라도 잘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타카하시, 엄마랑 같이 장 보러 갈래? 타카하시가 좋아하는 유부초밥 해줄 건데."


타카하시는 입을 떡 벌리고 소리 질렀다.


"와! 엄마 최고! 자비로운 엄마! 엄마 이제 요리 안한다고 했는데 해주는거야!?"

"우리 딸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해줘야겠지."



리앤은 타카하시를 낳고서야 자신의 모정을 오롯이 자녀에게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아픈 손가락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아프니까 아픈 건 당연한 거다.




서로 사는 동네가 같았기에, 그리고 저녁 찬거리를 사기 좋은 시간이기에.

그리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만끽하고 싶었기에.


당연하다는 듯이 타카하시를 끼고 있는 리앤과 미호가 서로 만났다.


오히려 지금까지 안 만난 이유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장보기나 간편식등을 인터넷 쇼핑으로 고집하던 리앤 때문이다.



"어라? 리앤~!!!"


저 멀리서 먼저 리앤을 발견한 미호가 장바구니를 끼고 달려왔다.

리앤 곁에 있는 타카하시는 저 멀리서 다리달린 핑크색 실뭉치가 하늘거리며 달려온다는 사실에 리앤 뒤로 숨기 바빴다.


"어... 미호구나, 잘 지냈어?"

"하아.. 하아... 숨차... 나야 뭐 그렇지, 그런데 같은 동네 사는데도 왜 이렇게 만나기가 힘들데? 좀 찾아갈 걸 그랬나? 조만간 만나야 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말이야..."


미호는 마트 안에서 만나고 싶었던 얼굴들을 보게 되어 기뻤다.

그리고 리앤의 허벅지 뒤로 숨는 꼬마 숙녀를 발견한다.


"이 꼬마애는... 리앤하고 꼭 닮았... 네가 '타카하시'구나!"

"어...? 미호 네가 타카하시 이름을 어떻게 알아?"


리앤은 자기가 예전에 말했었나? 하고 생각했지만 그건 태명인 '린' 이었다.

미호는 미소로 볼을 빵빵하게 키우며 이유를 말했다.


"스즈키가 오늘 아침에 와서 알려줬어, 아 맞다. 이거 스즈키에게 주려고 했다가 일랑이가 다 먹어서 못 준 건데 이따 계산 끝나면 전해줄래?"


미호는 아직 계산하지 않은 고급 과자 세트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미호의 장바구니 안에는 '어린이용 필기구 세트'가 있었다.


"아! 그리고 내 아들 꺼 필기구 세트 사줄 겸 타카하시 것도 샀는데 어때?"


리앤은 타카하시에게 대답을 양보했다.


"타카하시, 미호 이모가 너 주려고 선물 샀다는데."


잔뜩 찌그러진 얼굴로 미호를 노려보던 타카하시는 머리에 거대한 분홍색 실뭉치가 연결된 여우같은 여자의 말을 믿을 수 없어 보였다. 


"우움... 수상해! 뭔가 다른 의도가 이써!"

"뭐어!?"


미호는 몇 년 간 깜짝 놀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요 꼬맹이는 아주 먼 옛날, 사령관이 갑자기 자신의 가슴을 만졌던 것만큼 자신을 놀라게 했다.


"미호 이모는... 여우처럼 생겨서 수상해! 그러니까 꿍꿍이가 이써!! 머리카락도 엄청 많아!"

"어머나... 나는 내가 귀여운 상이라 생각했는데... 하하... 그리고 머리카락 양은 상관 없잖아!"

"그치만 수상할정도로 머리카락이 긴 사람은 수상하단 말이...!"


리앤은 타카하시의 입을 멈추게 하기 위해 손끝으로 정수리를 툭, 찍었다.


"아팟!"

"그렇게 말하면 안돼, 미호 이모가 너 주려고 선물까지 사준다잖아."

"그래도 맨날 여우가 악당으로 나오는데? 만화에서."


어린아이의 편견은 재미 있다.

언젠간 바뀌겠지 싶은 미호는 일랑이가 보던 만화를 최대한 기억해냈다.


"음... 주인공 친구로 나오는 만화도 있어... 그 팽귄이 주인공인거?"


'내가 애 한테 뭐 이딴 말이나 하는 거지?' 하고 스스로 우스워진 미호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 미호가 보기에 타카하시는 확실히 리앤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역시 엄마를 닮아서 탐정에 소질이 있나 봐 타카하시는."

"그런가...?"


타카하시가 자신을 닮았다는 말에 리앤은 미소가 지어졌다.


"응! 나 나중에 꼭 엄마를 조수로 삼은 최고의 탐정이 될거야!"

"우와~ 나도 일랑이가 '나도 꼭 엄마를 부사수로 쓰는 저격수가 될 거야!'라는 말 듣고 싶다아~" 


미호는 눈에서 별을 띄우며 리앤을 부러워했다.

리앤은 그 말을 듣자마자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행복을 숨기지 못하고 미련 없는 미소를 지었다.




"어? 아까까지 뚱한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좋아졌네?"


순간 미호의 말에 다시 현실로 돌아온 리앤은 다시 표정이 굳었다.


"내가 그랬어?"

"응, 아까 한 말도 반 진심, 반 기운 차리라고 한 말이야."

"그랬구나..."

"스즈키도 사령관이 생각나는 일도 하고..."

"아 그 회사?"

"응, '인간이 필요한 곳에 가서 일한다'는 그거."

"하긴 그거 한다고 독립했는..."

"어? 같이 안 살아?"


그 말을 들은 미호는 아직 계산하지 않은 고급 과자 세트를 다시 갖다 놔야 하나 망설였다.


"음... 아니다! 스즈키 주려고 살려했는데 그냥 리앤이랑 타카하시 먹어, 만난 김에 선물이라도 하나 더 주고 싶으니까."

"우와... 여우 이모 최고... 이제 안 수상해."

"미호 이모야."


미호가 보기에 타카하시는 리앤과 꼭 닮았으면서 미래의 탐정으로서 벌일 시행착오가 많아 보였다.

그리고 내심, 필기구 세트에 수상하다고 말한 아이가 과자에는 안 수상하다고 말하는 것이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과자주면 따라올 아이네 이거...' 라고 미호는 생각했다. 


"음... 스즈키도 이제 애도 아니고 과자 하나 못 먹었다고 삐지지는 않겠지."

"하긴, 독립까지 한 애인데."

"아 맞다, 이번 주 시간 돼?"


리앤은 물음 표를 띄우며 갑자기? 라고 말하기 일보 직전이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 놀러 가자, 오늘 스즈키를 보니까 네 생각이 나서 언제 한 번 놀러 가자고 하려 했거든."

"애는 어쩌고? 애들도 데려가?"

"아니~ 스즈키에게 일감 좀 주고 싶어서 스즈키 부를 거야."


리앤은 더더욱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애 보기면 마리아를 부르는 게 낮지 않을까? 아니면 다른 프리터 바이오로이드라도..."

"'일랑이는 어릴 적에 놀아준 스즈키형이 좋아!'라고 핑계 대고 꼭 오게 할 거야, 그래서... 놀러 갈 수 있을까? 타카하시도 같이 맡기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럴까...?"

"응! 주부도 가끔 휴가를 나가야 하지 않겠어? 우리는 주.부. 잖아, 서로 아이 생각하면서 육아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하지 않겠어?"

"음..."


리앤은 일말의 악의 없는 미호의 선의에 이미 설득된 것만 같았다.

아직 가겠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가겠다고 찬성한다는 말을 어떻게 세련되게 말할까 고민하느라 침묵이라는 위화감이 생기고 말았다.


그리고 리앤이 복귀한 일터는 안정화된 제도 정비 등으로 대부분 AGS가 일처리를 하다보니 한 번 출근하면 그 다음주까지 비번이라 시간도 남아돌았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서둘러 대답했다.


"그래."

"엄마 어디 놀러가??"


타카하시의 눈빛은 '나도 데려가'라고 적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초롱초롱했다.

미호는 아까 수상하다고 하고 여우가 악당이라고 말한 것에 대한 소소한 복수를 했다.


"응! 너희 엄마 내가 데려갈거다~ 나랑 엄청나게 재미난 거 하고 놀거다~ 애들은 못 간다~?"

"에이잇! 여우 이모 다시 수상해졌어! 역시 다 꿍꿍이가 있는 거야!"


아이 다루기 Lv.10000인 만렙 주부 미호는 타카하시를 들었다 놓았다하며 놀렸다.

  

"..."


다만 리앤은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할 수 없는 미호에게 열등감을 느꼈다.

왠지는 알 수 없다.


이런 감정이 왜 드는 걸까, 리앤은 생각해보지만 자신의 뛰어난 지능으로도 미호가 타카하시와 낄낄거리는 모습은 보기 싫었다.



/






인간 대여 회사.

1세대 중에 1세대인 철남충의 자손들이 세운 회사다.(전부는 아니다. 스즈키, 앙고라, 준으로 구성된 3명 뿐인 회사다.)

아직도 인간의 명령이 필요할 만한 곳에 가서 명령을 내려주거나 아니면 자신의 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인간이라 해결해줄 수 있는 일들을 하는 회사다.


그중에 앙고라는 원래 임원겸 파견직이었으나 회의 때마다 늦고, 밤새 스틸라인 온라인했다고 회사를 빠지려고 해서, 메이의 딸인 준의 분노로 인해 평사원으로 강등되고 말았다.


다만, 아버지의 일 처리가 너무나도 완벽했기 때문일까, 생각보다 아버지의 아들 딸들이 세운 회사에 관심 가지는 바이오로이드 회사나 집단은 없는 수준이고, 회사 수익은 커녕, 철남충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 만으로 3명 뿐인 회사를 굴리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 내에서도 바이오로이드 하나 없이 사원들만으로 청소 관리를 다 하는 지경이다.




회사를 책임지는 입장에 서있는 사장, 준은 부사장과 평사원을 데려다 놓고 심각한 표정으로 아침 회의를 시작했다.



"하아... 어째서 일거리가 하나도 없는 거야!! 너희들 만나는 바이오로이드마다 제대로 명함주거나 광고 하고 있어!? 그리고 야 앙고라! 너 웹사이트 관리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거 어떻게 되어가!"

"음... 미안 지금 확인해볼게."

"지금 확인하면 안 되지!!! 2시간마다 꼬박꼬박 확인해야지!!!"

"미안..."

"계속 업무 태만하면 '평사원'에서 널 '사내 비품'으로 강등 시킬 거야!! 네 책상도 '비품실'에 쳐 넣을 거고!!"

"미안하다니까... 강등 하는 건 '스틸라인 온라인'에서 만이라도 족한데..."

"뒷 말은 못 들은 걸로 할게, 나머지는 노력해서 증명해! 그리고 스즈키! 각 지자체나 바이오로이드로 구성된 집단에 가서 사업 설명하고 설문 조사 받고 있어!?"

"응... 메일 주소 알려주니까 설문조사 한 거 보내준다더라..."

"몇 개 왔어."

"어제 갔던 곳은 다 왔어..."

"그럼 각 회사마다 주요 항목 액셀 돌리고 캡쳐 찍고 PDF파일로 만들어서 사내 클라우드 서버에 올려! 선 그래프 넣는 거 잊지 말고!"

"아... 알았어!"



준.

메이와 달리 키가 또래만큼 크다, 키는 철남충에게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리색과 성격 만큼은 메이에게 물려받았기 때문일까, 겨우 2명 뿐이지만 집단을 운용하는데 있어서 거침이 없었다.


회사 내에서는 사장 겸, 인사 관리 담당자다.


앙고라는 사내 PC로 주섬주섬 대충대충 메이가 부탁한 내용을 확인하다 뭔가 다른 것을 발견했다.


"어... 의뢰 하나 들어왔다."

"정말!? 의뢰자, 주소, 일의 내용, 특이사항 순서대로 불러봐."


앙고라는 하나하나 또박또박 읽었다.


"의뢰자... 미호 001..."

"미호?"


스즈키는 미호 이모에게 인간이 필요할 일이 있나? 그냥 동네 방네 소문내주길 바란건데... 라고 알 수 없는 기대감을 느꼈다.


"그리고... 주소는 철남16동 12-365번지 주택."

"잘됐네 가까워서, 법인 카드로 차비를 낼 필요는 없겠어."

"그리고 의뢰 내용은 '애 돌보기'?"

"뭐어...!? 의뢰 취소 시켜, 아무리 일이 고프다지만 그건 우리 회사가 할 일이 아니야."


'인간 대여 회사'는 철남충의 아들 딸들이 만들었다고 해도 결코 공짜가 아니다.

회사 운용 자금을 받으려면 회사의 실적을 아버지인 철남충에게 증명해야 하는 데,그러지 못하면 회사는 머지않아 공중분해 된다.


회사 놀이하면서 정부 예산을 축 낼 수 도 있는 인간이든 바이오로이드든 막아야 한다는 레모네이드 알파의 쓴소리 때문에 자신의 첫 자손들이 세운 회사에 자금을 무상으로 주려는 걸 참은 철남충의 방침이다.


'회사 같은 집단을 운용하기 위한 금전은 반드시 '쓸모를 증명'해야만 추가 지원해주겠다.' 라는 방침이다.


"잠깐 준, 다짜고짜 취소하면..."

"누가 다짜고짜 취소 한데? 고객님에게 제대로 이유를 설명하고 취소한 다음 다른 유사 서비스를 설명 드리면..."

"특이사항, '우리 아들이 그쪽 회사 부사장인 스즈키를 잘 따릅니다, 꼭 스즈키를 불러주세요.'?"


앙고라의 마지막 말에 준은 턱을 괴고 생각을 바꿨다.


"'인간이 필요한 일' 맞네, 스즈키, 날짜 확인해 나도 같이 간다."

"어...? 왜? 나 혼자로도 충분한데?"


스즈키는 굳이 사장이? 라는 생각과 '까짓거 예비 중1 일랑이 돌보는 거면 껌이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깐깐하고 바빠 보이던 준도 같이 온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장인 내가 이런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일 내용을 모르면 되겠어? 그래야 나중에 사원이 더 들어왔을 때 역량에 맞춰서 일을 배치하지, 물론 그전에 이 회사가 망해버릴 지도 모르지만."

"아아..."


그야말로 철두철미한 대답이다.

아직 일한 건수 자체가 몇 안되다 보니 자주 시키는 일 위주로 카테고리를 만들고 서비스업의 시간과 코스트를 계산 해야 하는 입장에서 준이 말하자 스즈키는 반박할 도리가 없었다.


"날짜는 어... 내일이고 기간은 3일? 내부에서 숙식 하는 건 자유라는 데? 스즈키라면 믿는다고."

"미호 이모..."


벌써 고객에게 요구할 비용까지 산출한 준은 스즈키에게 말했다.


"2박 3일이라... 2일이나 자고 가는 거라면 나도 엄마한테 말해둬야겠어, 그리고 금액은 유사 업종 보다는 비싸야 해, 무려 '인간'을 쓰는 일이니까, 꼴랑 애 돌보기에 인간을 요구했다면 값을 톡톡히 치뤄야 해."

"아는 사이니까 조금 싸게 해줘..."

"음..."


준은 스즈키의 부탁에 잠시 생각했다.


"그래, 당장의 금액보다 중요한 건 첫 인상과 신뢰지, 이런 일을 또 받지는 않겠지만 '지금의' 회사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확실하게 해내겠어, 이번 일도 회사가 살아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준의 눈을 불타올랐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는 이미 핵이라도 한 발 씩 터진 것 만큼이나 불타올랐다.

스즈키는 자신이 하자고 한 이 회사 일에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준에게 내심 감동까지 느낄 정도다.


물론 그 열정이 부담스러운 것과는 별개다.

늘 소소한 일탈을 하느라 바빴던 앙고라가 준의 말을 순순히 따르는 이유는 준에게 이미 거하게 새우 등 터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에게는 PTSD를 느끼느라 철저히 자기 성격을 죽인다.


심지어 그 엄마인 이프리트가 앙고라를 '모질이'에서 '사람'으로 만들었다며 매달 준에게 용돈을 찔러 넣어 줄 정도고, 그 용돈을 받은 준은 이프리트의 신뢰를 위해서 앙고라가 사람 그 이상의 것이 될 때까지 갈굴 예정이다.


만약 정말로 앙고라가 사내 비품이 되었다면 앙고라가 맡을 일은 '사내 정수기'일 것이다.

하루종일 물통을 들고있는 상태에서 컵 가지고 오면 물을 따라주는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앙고라도 평사워 이전에 이미 '접이식 의자'까지 되어본 입장이라 자신이 정말로 '비품'이 되는 상황은 막아야했다.


"자, 아침 회의 끝났다, 이제 다들 오늘 해야 하는 일만 다하고 보고 일찍 퇴근한다음 내일을 위해서 집에 가서 쉬어! 스즈키는 짐 챙겨 놓고 자는 거 잊지말고!"

"네... 엡!"


어차피 일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준 본인도 애 돌보기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해 일 끝나면 조기 퇴근하라고 아량을 베풀어주었지만, 스즈키나 앙고라나 '일 다 못 끝내면 재택근무 같은 헛소리 하지 말고 다 끝내고 가.' 로 알아들었기 때문에 빠릿빠릿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남자 두 명이 자기 말에 꼼짝도 못하고 일 처리하는 모습을 보며 준은 자신이 앉은 사장님의자를 반바퀴 회전시키며 씨익 웃었다.



"후훗, 바로 이거지."


원활하게 돌아가는 회사에, 준은 자기 어머니처럼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도 본인도 업무용 태블릿을 들고 있는 손을 쉬지 않았다.



/




...


때는 과거, 철남초중고통합학교 1회 졸업식 당시.

3명 뿐인 졸업생이었지만, 철남충도 이제 성인이 되는 자신의 자손들에게 한마디 해주기 위해 찾아왔다.


멍하게 있는 앙고라와 이제 성인이라는 걸 심각하게 생각하는 스즈키, 그리고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는 준이 있었다.



"앞으로 힘든 일도, 괴로운 일도 많을거야, 하지만 힘든 일도, 괴로운 일도 최선을 다해 맞이하면 후회는 없을 거야."


정말로 한마디만 하고 철남충은 다시 일하러 갔다.



[짝짝짝짝짝짝짝!!!]


그 말에 진심으로 박수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준이었다.


이후 초대 학교장을 맡은 시라유리의 긴 소감문에 따라 졸업식의 폐회식이 진행되었다.


앙고라는 '이따가 스즈키랑 PC방 가자고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이번 만큼은 놀러갈 생각 없던 스즈키는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일도 없고, 그리고 딱히 직장을 가지지 않아도 바이오로이드 분들이 대신 일하기 때문에 사실 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앙고라처럼 독립후에 '내 꿈은 오르카 호의 토모를 뛰어넘는 최고의 인간 프로게이머가 되는 것이다.' 라고 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스즈키는 생각했다.

어차피 세상은 '아버지', 그리고 '준'이나 여타 바이오로이드들처럼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거라고.


그런 점에서 지금도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가 자신을 왜 낳았는지 모르겠다.

사랑, 아니면 후계자 양성? 후자라면 스즈키가 본 바로 가장 어울리는 건 역시 준이다.


지금 이 시대에 정치에 참여하는 인간은 유일하게 철남충 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현재 200명이 넘는 자손들 중에 한 명은 아버지와 비견되는 인재가 태어날 것이다.




'그렇지 못한 나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고개 숙인 스즈키는 생각했다.







"그래도... 나도 아버지에게 도움되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혼잣말한 직후, 스즈키는 졸업식이 끝나, 저 멀리 당당하게 교문 밖을 나가려는 준을 붙잡았다.



"저기...! 준... 나와 함께... 회사를 차려보지 않을래...?"


"네가 꼭... 필요한 일이야."




그리고 준은 그 다음에 말한 스즈키의 말에 고개를 몇번 끄덕이더니 스즈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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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여기 쯤 끊어야 하고 생각하니까 진짜로 10화도 안되서 끝나겠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