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호접지몽


별이 마치 낮의 바다를 시기하는 듯,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바다처럼 빛났다.

밤하늘 아래 혼자 모닥불을 피운채 고기를 굽고 있는 그는 이틀 전까지만해도 오르카호의 사령관으로 불리우던 남자다.

얼마 전, 그토록 찾던 인간이 한명 더 발견되자 오르카호는 뒤집어졌다.

태양같이 빛나는 금발과 건강미를 과시하는 거무스름한 피부, 올라간 눈꼬리는 퍽 매력적이었다.

그가 깨어나고나선, 사령관은 자신을 아끼던 바이오로이드들의 등떠밀림에 오르카호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어젯 밤 꿨던 꿈은 썩 나쁘지 않았다.

철충들이 없어진 세계에서, 자신은 유일한 인간으로써 바이오로이드들과 평화롭게 살았다.

그녀들은 명령받지 않았고, 인간에게 봉사해야한다는 광기에 가까운 세뇌 또한 없었다.

자신의 노력으로 혹은 그들의 노력으로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고 더없이 행복한 나날들.

사령관은 아침을 알리는 수탉처럼 파도가 솨아-하고 밀려오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류에 파묻혀 지냈는데 도리어 할게 없어지니 처음에는 불안했으나 곧 편안해졌다.

사령관은 바이오로이드들을 인격체로 대했다. 그것들을 인격체로 대해주었기에, 지휘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부담이었다. 자신의 말 한마디로 수 많은 대원들이 죽을 수도 있다라는 부담감은, 사령관에겐 강박증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자신을 짓누르던 부담이 없어진 지금, 세상이 멈춘 듯한 내적평화를 만끽하고 있었다.

가끔은 이런 휴식도 나쁘지 않구나. 라고 혼잣말을 내뱉은 후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고기가 익으며 내는 소리와, 맛있는 향을 뿜는 연기와, 눈부실 듯 반짝이는 별들은 오르카호 안에서 생활하던 대원들이 왜 오르카호가 불편하다고 했는지 알려주는 듯 했다.



#02. 오, 내가 웃고 있나요?


-한달 전 오르카호-


처음 의식을 되찾았을 때, 그는 걱정스러운 듯 자신을 내려다보는 노란머리 소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소녀의 외침으로 뛰어온 남성은 자신이 잠수함의 사령관이며, 몸 상태는 어떤지, 기억은 있는지 따위를 물어보았다.

사령관이라는 남자는 만만해보일 정도로 사람 좋아보였다.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저 무장한 도구들을 치우지 않는다면 되려 잡아먹히는건 본인이 되리라.

생각을 마친 그는 사령관의 손을 잡고 대뜸 눈물을 흘렸다.

갑작스런 악수에 순식간에 총을 장전한 리리스를 제지한 사령관은 그를 안고 위로해줬다.

사령관의 멍청함을 속으로 비웃었다.


그는 귀빈으로서 대우받았다. 그러나 금방 몸이 좋아진 그는 이곳 저곳을 기웃대다 함장실로 갔고, 패널을 보며 전투를 지휘 중인 사령관을 보며 흥미를 느꼈다.

명령만 하면 움직이는 도구들. 그것은 꼭 게임과 같았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이것들을 반드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그는 함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고, 사령관은 종종 무언가를 감추기라도 하듯 어디론가 사라져 꽤나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다.

분명 저 도구들과 쾌락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멍청한 년들. 이것들을 인격체로 대해주는 ‘인간’도 결국 똑같은 것이다.

그는 턱을 한손으로 어루어만지며 공손하게 차를 건내주는 바닐라의 봉긋한 가슴을 힐끔 쳐다보았다가 고맙다고 미소 지어줬다.

자고로, 상처는 속부터 곪는 법이다.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함장실 거대 패널에 보란듯이 띄워져있는 대원들의 얼굴과 이름을 바라본다.

자신의 계획만 완수된다면 이 거대한 잠수함이 자신의 것이 되리라.



#03. 모두 거짓이겠죠.



“죄송합니다. 잠깐 일이 있어서요.”


함장실로 돌아온 사령관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미소 지었다.

그는 아니라며 손을 휘적거렸다.


“아닙니다. 항상 바쁘시겠죠. 이 잠수함이 당신의 것이니까요.”


그는 웃으며 사령관의 사상을 검증하기 위해 물었다.

그리고 사령관은 그의 물음을 알고 답해주기라도 하듯 원하는 답을 내주었다.


“오르카는 제 것이 아닙니다. 대원들의 것이죠. 저는 대원들의 배려로 같이 살고 있을뿐입니다.”


사령관의 대답에 그는 겸손하다며 사령관을 칭송했으나 속으로는 방금까지 이것들의 젖과 엉덩이를 부여잡았을 인간이 바이오로이드들을 치켜세우고 있음을 비웃었다.

그리고 이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함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메이와 뒤따라 들어온 레오나의 등장에 눈길을 돌렸다.


“사령관, 이게 무슨 짓이야?”


“응? 레오나?”


메이는 사령관에게 발을 세게 구르며 쿵쿵하고 다가가 사령관을 올려봤다.


“또 둠브링어의 출전을 막았지? 우리 부대의 화력이면 금방 밀어버릴 곳에 또 캐노니어 보내다니, 대놓고 차별하는거야?!”


“…우리도 납득할 수 없어. 설원 작전에 우리 자매단을 빼놓다니.”


“메이 미안하지만 안드바리가 한동안 자원을 아껴써야한다고 그랬잖아. 그리고 지금 나이트앤젤은 스카이나이츠랑 파견 나갔잖니..”


사령관이 아무생각 없이 메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화가 났는지 얼굴이 대뜸 빨개진 메이가 사령관의 손을 쳐냈다.

그는 멀리서 이것을 보고 오호, 이것봐라? 하며 방관하고 있었다.


“사령관, 나에게도 납득할만한 변명거리를 준비해놨겠지?”


“변명이라니.. 요즘 안드바리가 업무 과다상태인건 알고 있지? 스틸라인의 실키는 설원에 보내기 부적절하고 차라리 아스널이 포함되어있는 캐노니어가 맡기 적절해서 아스널에게 부탁한거야."


레오나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고는 잠깐 생각하더니 다시 눈을 떴다.


“사령관이 우리 안드바리를 이렇게 생각해주는 줄은 몰랐는걸. 어쩔 수 없지, 또 양보하는 수 밖에.”


레오나가 몸을 돌려 도도한 발걸음으로 나가기 전에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금방 다시 시선을 돌려 발걸음을 재촉했다.

메이는 다시 애 취급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라는 선전포고를 외치고 뛰쳐나갔다.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자신의 욕망을 이렇게 빨리 풀어낼 수 있다는게 우스웠다.

그래, 최후의 인류라는 칭호는 바이오로이드들한테 빌빌대는 있는 저딴 놈보다는 내가 훨씬 낫지.


“사령관님, 그럼 저는 좀 쉬러 가볼게요.”


“아, 네. 그러세요. 필요한게 있으시면 언제든 대원들에게 부탁하세요.”


부탁같은 소리하네. 명령이면 편할텐데.


시꺼먼 자신의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그는 최대한 밝게 미소 지었다.



#04.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



그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먼저 떠난 두 지휘관들을 놓쳤을까봐 새삼 마음이 급해졌다.

당연하지만, 이 넓은 오르카를 혼자 다 뒤질 수도 없거니와 구조도 잘 모른다.

멍청한 사령관이라는 인간은 빨리 적응하길 바란다며 감시도 없이 혼자 다니게 했겠지만, 그 안일한 판단이 자신의 목을 죄어올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미소 지었다.

얼마 안가 먼저 떠난 레오나를 발견했다. 본래 타겟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메이였으나, 자신의 취향은 이쪽에 더 가까웠다.

레오나 역시 딱봐도 자존심 높은데 무시 당했으니 좋은 감정일리가 없다.


“레오나씨.. 맞나요?”


레오나는 자신을 부르는 중저음의 목소리에 이끌려 돌아봤다.


“새로 찾은 인간이네?”


“...맞아요. 아까 저랑 눈 마주쳤죠?”


그는 불편했다. 자신이 먼저 존댓말을 해줬는데 거만하게 반말을 하는 바이오로이드가 심기를 건드렸다.

그러나 그는 오르카호의 굴러들어온 돌이다. 박힌 돌을 빼내려면, 박힌 돌만큼은 커야했으며, 무언가 외부 작용이 필요하다.

그래, 삽으로 그 거대한 돌덩이를 파내야한다. 그리고 자신의 삽으로 방금 무시 당한 두 지휘관이면 손색이 없으리라.

그리고 모두 잘 이뤄지면 이 암캐를 먼저 손 봐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숙여야한다.


레오나는 눈을 잠깐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쳐다본다. 그리곤 도도하게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새로운 인간을 찾은건 우리에겐 또 다른 희망을 찾은거야. 관심이 없을 수가 없지.”


“이해합니다. 여러분은 제가 깨어나기 전에도 싸우고 있었으니까요.”


그가 웃으며 손을 내밀자 레오나는 손을 잡고 악수를 해준다.


“그런데 아까 사령관님에게 왜 화를 내신건가요? 오랫동안 본건 아니지만 사령관님께선 되게 좋으신 분 같던데.”


레오나는 그의 당돌한 물음에 잠깐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자신의 물음에 당황한 레오나를 보았다. 분명 정곡을 찔려 당황했을 것이다.


“.. 우리는 바이오로이드이자 군인이야. 전장에 나가는게 훈장과도 같은거지. 매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출전을 방해하며 무시하는데 불만이 안쌓일리가 없지.”


“흠.. 이해합니다. 아무리 좋은 칼도 쓰지 않으면 되려 날이 상하는 법이니까요. 모르는 제가 봐도 사령관님의 지휘는 좀 극단적으로 소심하신 듯 하죠.”


“맞아. 냉정히 보면 지휘관으로선 꽝이지. 우리 사령관은..”


탄식하는 레오나를 보며 그는 웃음이 나오는걸 가까스로 참았다.

의외로 배려와 존경은 공존할 수 없다.

아무런 사건 없이 물어봤다면, 자신들의 사령관님을 욕하지 않았겠지. 다만, 감정이란게 물과 같아서 끓기 시작하면 입으로 연기가 나오는 법이다. 그냥 거기에 약간의 온도만 끼얹어주면 된다. 팔팔 끓는다.

얼마나 쉽고 간편한가. 인간과 똑같이 만들어진 이것들은, 정말이지 너무 쉽다.


“아하하.. 그건 못 들은걸로 하겠습니다. 짧았지만 즐거웠어요.”


“나도 그래.”


“다시 만나서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아까 같이 오셨던 분은 어디로 가셨나요?”


“메이? 걔는 뛰어가서 둠브링어 지휘관실에 있을거야. 쭉 가다보면 핵폭탄 표시되어 있는 방 문 안으로 들어가.”


그는 행여 레오나가 왜? 라는 말을 할까봐 얼른 고맙다는 말을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레오나는 천천히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자신의 통신기를 켜서 어디론가 연락하기 시작했다.


“응, 레오나 대장이야. 잘 이용하면 계획에 도움이 되겠어.”


레오나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하얀 손가락으로 쓸어넘기며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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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상 '그'는 두번째 인간으로 칭하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재밌게 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