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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그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거슬러올라갈 필요가 있었다. 가장 설명이 잘 되어있는 곳은 바로 서점에 있는 책이었다. 왜 서점에 가야 하냐고? 전자책으로 나오지 않았냐고? 아니, 애초에 아직도 종이책이 나오고 있다고? 서점이라는 것이 존재하냐고?

 검열. 그것이 모든 질문의 답이었다. 연합전쟁의 실체가 대중에 밝혀지는 것을 기업들은 꺼려했다. 기업들은 연합전쟁의 원인을 모두 과거의 국가 중심의 국제사회와 국가들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야 자신들이 저지른 연합전쟁에 대한 명분이 설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과연 그럴까. 대한민국 서울시의 중심부, 세종로에 서있는 삼안 산업의 본사 빌딩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과거 대한민국 정부청사가 있던 곳에 서있는 높이 500m에 달하는 초고층 빌딩이었다. 그 빌딩은 혼자 서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변의 다른 삼안 그룹의 다른 초고층 건물들과 여러곳에서 이어진 서울 중심의 거대한 메가 스트럭쳐를 구성하고 있었다.

 과거 광화문로라 불린 도로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본다면 하늘을 볼 수 없을 것이었다. 건물들을 잇는 것은 단순한 육교가 아니었다. 높이로는 몇개층에 달하고 폭은 교차로의 대각선의 방향에 있는 건물까지 이어질 정도였다. 몇몇 건물은 아예 건물 자체가 공중에서 이어지게 만들어진 것도 있었다.

 도시를 흔히 정글이라 표현한다. 삼안 그룹의 메가 스트럭쳐는 덩쿨과 가지로 서로 엮인 수십그루의 나무에도 비유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묘사하고 싶은 것은 삼안 산업의 본사가 아니었다. 그 거대한 메가 스트럭쳐에서 벗어나 간신히 하늘을 한움큼이라도 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청계천. 과거에는 고가도로 속에 갇혀있었지만 2000년대 들어서 간신히 태양의 밝은 빛을 받을 수 있게 된 작은 하천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로부터 90년 정도가 지난 지금. 청계천의 하늘은 다른 메가 스트럭쳐로 인해 막혀 있었다. 청계천의 위에 놓인 도로에는 더러운 노점상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고 대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떨어지는 티끌을 주워먹는 사람들이 낮에 간편하게 한끼를 떼우는 곳이 되어있었다.

 갖은 향신료와 썩은 음식물 쓰레기 냄새, 땀냄새들이 어우러져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쓰레기통을 붙잡고 구토를 할 수 밖에 없는 끈적한 도로를 걸어가다보면 그곳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무엇을 구하든 얻을 수 있다. 청계거리를 가는 사람들의 이유였다. 오래된 휴대전화, 기업의 추적이 힘들다고 홍보하는 선불폰, 용도를 알 수 없는 전자제품들, AGS의 중요 부품, 바이오로이드의 신체를 본따 만들어진 자위기구, 혹은 진짜 바이오로이드의 신체 일부. 심지어는 총을 비롯한 화기도 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앞서 말한 성적이고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음식말고도 구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책. 현대인들이 존재조차 잊은 그것을 구할 수 있는 작은 서점이 청계거리에 있었다.

 청계거리에 들어가 200m 정도 동쪽으로 걸어가면 오른쪽으로 통로가 보였다. 모퉁이를 돌면 강렬한 우즈벡키스탄 음식점에서 나는 향을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대체 무슨 재료를 썼을지 모르는 라그만은 그 재료를 알고 싶지만 알아서는 안될 것 같은 깊은 맛이 느껴지는 국물맛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점심시간이 아니었다. 그 노점상을 방문하는 것은 미래로 미루고 앞으로 걸어가자. 쥐가 바닥을 기어가고 보도블럭틈을 쥐똥과 죽은 바퀴벌레의 시체가 메우고 있었다. 눈도 코도 있고 싶지 않아 하는 곳이었다. 고약한 냄새가 너무 짙은 나머지 목에서 냄새가 걸려 기침이 나올 정도의 장소였다.

 그러나 지금은 멈출 때가 아니었다. 조악한 카메라로 찍은 포르노 영상을 파는 가게를 지나고 겉으로는 컴퓨터 부품가게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AGS나 바이오로이드의 각종 모듈을 팔고 있는 가게도 지나가야 했다.

 악취와 빛이 적어질 정도로 깊은 골목의 안, 오래된 전등빛을 거리에 떨어트리고 있는 오래된 서점이 하나 있었다. 간판도 이름도 없는 서점이었다. 아니, 이 시대에는 서점이라는 이름 하나로도 족했다. 서울시, 나아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존재하는 손에 꼽을 서점이었으니까.

 그 서점으로 들어가면 탁한 종소리가 들렸다. 문에 달린 종이 찌그러진 탓에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 것이었다. 서점의 주인은 그것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손님이 오건 말건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인지 몰랐다. 책은 현대에 아무 가치를 가지지 못했고 책을 굳이 훔치려 하는 도둑도 없었다. 그리고 책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책을 훔쳐갈만큼 교양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서점이라 말했지만 그곳은 늘어선 책장에 수도 없이 많은 책이 가지런하게 꼽혀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런 것을 보고 싶다면 여의도의 국회도서관을 방문하는 것이 좋을 것이었다. 기업의 입맛에 맞지 않는 책은 모두 서고에서 빠져 국회의사당 뒤쪽 한강 공원에서 모두 불살라 없어진 반쪽 밖에 남지 않은 곳에 관심이 있다면 말이다.

 ‘서점’에 들어서면 일단 몸부터 비틀어야 했다. 살집이 있는 사람이라면 문을 열자마자 양쪽으로 천장까지 쌓여있는 책더미의 사이를 지나지도 못할 것이었다. 아니면 책더미를 무너트리며 들어갔다가 서점 주인의 욕설을 듣던가.

 그런 서점의 깊숙한 곳, 몇번을 겹쳐진 책더미를 파헤치다보면 하나의 책을 찾을 수 있다. 그 책의 표지는 화려하지 않았다. 심지어 책의 표지에 의례 쓰이기 마련인 두꺼운 종이도 아닌 속지와 같은 재질로 된 종이에는 제목만이 정자로 찍혀 있었다.

 ‘연합전쟁사’

 두꺼운 책의 제본 상태는 좋지 못했다. 몇몇 페이지는 이미 뜯어져 있었고 빛을 받지 않는 곳에 오래 있었음에도 책의 종이 대부분은 색이 바래있었다. 조심히 보지 않는다면 책 한권을 다 읽기도 전에 책이 뜯어질 정도로 부실해 보였다.

 이 책이 이렇게 허접하게 만들어진 것은 기업의 감시를 피해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연합전쟁은 기업의 잘못에 대한 서술이 없이는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합전쟁에 대해 가장 자세하고 객관적인 이 책의 출판을 기업이 반길 리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 책의 출판을 적극적으로 막았다.

 출판사를 도산하게 만들었고 인쇄소는 폭발시켰다. 편집자는 한강에서 시체로 발견되었고 책의 저자는 길을 가던 중 누군가의 습격을 받기도 했다. 책에 그 어떠한 개인정보도, 심지어 작가의 존재조차 적혀있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자신의 집에서 직접 인쇄기를 사서 직접 제본까지 한 작가의 노력이 담긴 산물은 그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서점의 한쪽 구석에서 조금씩 수명을 다해가고 있었다.

 책의 첫 표지를 넘기면 책의 목차가 드러난다. 머릿말이 없는 책의 시작은 연합전쟁이 일어나게 된 가장 오래된 계기가 적혀있었다. 그 챕터의 제목이란 ‘냉전의 종말’이었다.

 물론 나는 연합전쟁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냉전의 종식, 그러니까 1990년의 소련에서 시작할 생각이 없었다. 냉전의 종식으로 인한 제3세계의 대두, 미국중심으로 돌아가게 된 국제정세에 대한 반발, 서구와의 마찰로 인한 중동의 내분, 그리고 9.11. 그런 모든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지금까지 쓴 글을 쓸 시간에 이 이야기를 했다면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았겠지만, 다들 그런 이야기를 굳이 라오 팬픽에서까지 들을 생각은 없지 않은가. 그런 간접적인 원인보다는 직접적인 원인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자.

 2060년 9월 뉴올리언스, 그곳에서 한 사건이 일어났다. 뉴올리언스 대참사라 불리게 되는 블랙리버의 바이오로이드, T-1 고블린이 벌인 대규모 학살극이었다. 바이오로이드가 폭주해 수많은 시위대, 그러니까 민간인들을 살해한 것이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미국인들은 기업에 대한 분노를 토해냈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이어진 오래된 기업과의 갈등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바로 에머슨 법이었다. 그 법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법의 목적이 중요했다. 그 법은 오로지 한가지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기업에 대한 견제.

 과거의 기업이었다면 정부의 규제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었다. 하지만 바이오로이드 제조사는 달랐다. 그들은 거대한 군수기업이 되어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생산력으로 국가를 이길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전쟁이 시작되었다. 정부도, 기업도 자신들이 가진 힘을 과신했다. 서로 상대를 간단하게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과신으로 인해 죽어가야 했는가. 얼마나 많은 바이오로이드가 그 과신으로 인해 산산조각나야 했는가.

 그 과신의 한 곳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자. 영국의 하이랜드사가 영국의 공격으로 인해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자 블랙리버는 영국에 상륙해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 동료 기업의 유지를 잇고자 했다.

 그 미국마저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보여준 블랙리버였다. 과거 대영제국이라는 명칭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유럽의 구석에 있는 작은 섬나라가 된 영국은 블랙리버가 기침만해도 부숴질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영국은 섬나라였고 블랙리버는 영국에 상륙시킬 수 있는 병력이 제한되어있었다. 반면 영국은 하이랜드사의 병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그들이 블랙리버와 만들어낸 강력한 무기를 전선에 내세웠다.

 AGS 스트롱홀드. 블랙리버의 진격을 막기 위해 형성된 브리스톨-포츠머스 라인 중심의 평야지역을 달리며 브라우니 군단에 대해 기동전을 벌이던 수대의 AGS는 요새라는 이름 그래도 무적에 가까웠다.

 스트롱홀드 한대를 저지하기 위해 블랙리버는 한개 사단을 투입해야 했다. 사단 병력이 가진 모든 중화기를 퍼부어서 간신히 스트롱홀드 한대를 저지하면 그것은 자폭으로 기어코 한개 사단을 블랙리버의 부대목록에서 지우고야 말았다.

 그 마지막 스트롱홀드에 대한 공략전, 블랙리버는 만반의 준비를 세웠다. 브라우니와 노움을 앞세워 고기방패로 스트롱홀드의 움직임을 늦추어 둠브링어 부대의 공중폭격으로 작동불능으로 만들어 피해를 최소화 한다는 것이었다.

 한 브라우니가 있었다. 마지막 스트롱홀드 공략전에서 수많은 부대원이 죽으며 몇시간동안 다른 부대로 열번은 넘게 옮긴 브라우니의 얼굴은 흙과 절망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참호는 자매들의 시신으로 쌓아 만들었고 자신의 입속에서는 피와 살과 뼈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비가 오지 않았지만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흘린 피로 땅은 진창이 되어있었지만 스트롱홀드는 전혀 속도를 줄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포성이 울릴 때마다 수많은 브라우니는 조각나 하늘로 솟구쳐 날아갔다. 갖은 중화기를 쏘았지만, 몇몇 브라우니는 폭탄을 들고 장렬하게 자폭공격을 했지만 스트롱홀드의 장갑에 흠집을 겨우 내는게 고작이었다.

 “스트롱홀드가 이쪽으로 옴다!”

 참호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고 그렇게 외친 브라우니는 그 말을 마친 직후 스트롱홀드가 발사한 포탄에 턱 위가 말끔하게 잘려나갔다. 작동불능이 된 자매를 애도할 틈도 없었다. 그 포탄이 참호 한가운데 떨어져 수많은 브라우니들은 좋은 참호 재료가 되었다. 그 폭발에서 살아남은 브라우니는 몇 없었다.

 그 폭발에서도 살아남은 그 브라우니, 편의상 브라우니 A라 칭하도록 하자. 앞으로도 나올 브라우니는 수도 없이 많을 테니까,는 죽은 자매가 들고 있던 중화기를 들었다. 일반 전차라면 전면 장갑에 쏴도 격파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대전차 로켓이었다.

 스트롱홀드에게 대전차 로켓을 조준한 브라우니는 방아쇠를 당겼다. 요란하게 자신의 위치를 적에게 알리며 날아간 대전차 로켓은 빠르게 날아가 스트롱홀드의 옆을 맞추었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이대로 스트롱홀드가 폭발하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의 대폭발이었다.

 그러나 화염과 연기가 가시자 브라우니 A는 자신이 가한 공격은 그것에게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스트롱홀드는 그 자리에 여전히 서있었다. 다만 자신의 3연장 포탑을 천천히 돌려 그 끝을 브라우니 A로 향했다.

 이제 모든 것이 끝이구나. 브라우니 A는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미 늦은 것을 알았던 것이었다. 자신의 며칠 되지 않는 삶은 이곳에서 끝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한 순간 브라우니 A가 쏘았던 로켓보다 더 큰 폭발이 스트롱홀드의 위에서 일어났다.

 “저 AGS가 뭐라고 이 고생을 해야 하는 거야? 내가 버튼 하나만 눌러도 저따위 AGS는 수십대, 수백대가 있더라도 한방에 없어질 텐데.”

 브라우니 A의 위에는 날아다니는 의자를 타고 있는 한 바이오로이드가 있었다. 브라우니 A는 자신의 목숨을 살린 정체모를 바이오로이드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대장님, 수많은 자매들이 저 기체를 없애기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에 대한 경의를 표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바이오로이드의 옆으로 가슴이 작은 한 바이오로이드가 날아와 말했다. 그 두 바이오로이드를 바라보며 브라우니 A는 생각했다. 바보들아 곧 저 스트롱홀드는 자폭할 거야.

 스트롱홀드의 엔진은 핵융합 발전기였다. 핵융합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어마어마한 열을 가해 더 큰 열을 얻어내는 장치였다. 핵융합 발전기가 안정을 취하게 만드는 것은 단순히 강한 합금으로 주위를 두르는 것이 아니었다. 토카막이라 불리는 자기장으로 핵융합이 일어나는 플라즈마를 가두는 것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그 토카막을 끄는 것만으로도 핵융합 발전기는 불안정해지고 가지고 있던 힘을 모두 바깥으로 쏟아붇게 되는 것이었다. 그 열이 어느정도냐고? 같은 질량 만큼의 수소폭탄 만큼의 에너지였다.

 번쩍이는 섬광은 공중의 두 바이오로이드로 하여금 긴 그림자를 만들게 했다. 그 섬광을 맞은 직후 두 바이오로이드는 즉사했을 것이었다. 참호 안으로 몸을 숨긴 브라우니 A는 그것을 보지 않고 몸을 숙였다. 배를 땅에서 떼고 코와 귀를 막고 입을 벌렸다.

 충격파가 폭음과 함께 날아온 것은 순식간이었다. 지면을 휩쓸고간 충격파에 브라우니 A는 하늘로 날아갔다. 공중에서 브라우니 A는 스토롱홀드의 자폭이 만들어낸 버섯구름과 그 버섯구름 속으로 사라져가는 수많은 자매들을 볼 수 있었다.

 땅에 떨어진 브라우니 A는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에 감사했지만 충격으로 인한 것일까,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다른 브라우니나 차량이 자신을 밟고 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 순간 무언가가 브라우니 A의 앞에 떨어졌다. 얼굴이 새까맣게 타버린 바이오로이드였다. 조금전 공중에 떠있던 바이오로이드였을까. 머리카락이 타 얼굴에 녹아든 그 바이오로이드의 눈은 터져 구멍만이 얼굴에 남아있었다.

 그 끔찍한 얼굴을 브라우니 A는 피할 수 없었다. 자신이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브라우니는 한참이나 그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해야 했다. 살이 탄 냄새는 끔찍했다. 사람 모습을 한 바이오로이드가 탄 냄새는 고기가 탄 냄새와 다를 것이 없었다. 열이 식으며 연기까지 피어오르는 그 모습에서는 생명의 존엄따위는 느낄 수 없었다.

 브라우니 A는 술잔을 들었다. 그 날의 악몽에서 몇개월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블랙리버는 영국정부가 소유한 모든 스트롱홀드를 파괴하는데 성공했고 자사의 스트롱홀드를 전력으로 투입해 영국정부군을 성공적으로 몰아내기 시작했다.

 지휘부는 실패한 작전이라 평가했다. 브라우니를 비롯한 스틸라인의 바이오로이드의 피해는 적어졌지만 고급 전략자원인 둠 브링어부대를 잃은 것이었다. 스트롱홀드의 자폭에 대한 경계가 너무 적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브라우니 A에게는 어찌되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큰 전투가 끝나고 플리머스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 것이 그것에게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길가에 있는 아무 펍에나 들어간 브라우니 A는 맥주를 주문했다.

 “라거? 에일?”

 브라우니 A는 맥주에 대해 잘 몰랐고 왜 오히려 자신에게 묻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바에서 일하던 여종업원은 한숨을 쉬며 라거를 한잔 따라 브라우니 A에게 주었다.

 술은 고통을 잊기에 좋았다. 하지만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 기억이 고통스럽다는 사실만을 잊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니, 플리머스의 펍은 브라우니 A가 만들어낸 상상에 불과했고 아직 브라우니 A는 전장에 서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포탄이 땅에 떨어지면 폭음과 진동을 만들어냈다. 브라우니 A는 고개를 숙이며 귀를 막았다. 그럼에도 폭음은 손을 파고 들어와 브라우니 A의 고막을 울렸다. 포격이 멎자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브라우니 A는 고개를 들어 아주 조금만, 참호 밖을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만 고개를 내밀었다.

 “우아아아아!”

 수많은 군인들이 총을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브라우니 A는 총을 들었다. 그것은 군인들을 향해 총을 쏘았지만 군인들은 멈추지 않았다. 참호로 수많은 군인들이 쏟아졌다. 군인들은 모두 남자였다. 모두 인간이었다. 인간은 바이오로이드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총을 쏘던 브라우니 A는 총알이 다 떨어지자 주먹으로 군인들을 상대했다. 과연 그랬을까. 브라우니 A의 상대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군인이 아니었다. 브라우니 A를 상대하는 것은 펍에 있던 민간인들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난동을 부린 브라우니를 제압하려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 하나가 브라우니의 손에 목이 꺾여 죽자 그들은 이성을 잃었다. 그들은 맥주잔, 의자등 자신이 들 수 있는 무언가를 들었지만 브라우니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바에서 일하던 여종업원은 결국 바 아래에 있던 총을 꺼내들었다. 긴 엽총이었다. 그녀가 방아쇠를 당기자 브라우니의 머리에서는 피가 튀겼다. 하지만 평범한 엽총에 든 22.LR의 작은 총알로는 브라우니를 죽일 수 없었다.

 브라우니 A이 달려와 주먹으로 여종업원의 머리를 가격하자 그녀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녀는 그녀가 일하는 펍의 주인의 아내였다. 펍의 주인은 자신의 부인이 죽은 것을 보며 오열했다. 그는 바이오로이드라는 존재를 좋아할 수 없었다. 그에게 바이오로이드란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의 집의 건너편에 바이오로이드에게 박는 미친 놈이 이사왔다. 그 양키는 바이오로이드를 사랑했다. 그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것이 그가 건너편의 남자를 감시하던 이유였다. 그 변태 양키는 언젠가 무슨 일을 저지르고 말 거야. 저 놈 때문에 또 누군가의 아내가 죽게 될 거야.

 그리고 그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그 양키가 한 바이오로이드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은발의, 양 옆으로 분홍색 브릿지를 한 바이오로이드였다. 그는 그 자리에서 결심했다. 그가 무슨 짓을 저지르기 전에 자신이 막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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