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학교 2학년, 호주 유학생활 5년차 (고등학교도 호주에서 다님). 1학기때 과목 하나 떨어졌는데 내가 유학생이라서 과목 한 번 떨어지면 이것저것 준비해야 하는 게 많은데 성적 공개가 하필이면 2학기 시작 하루 전에 되어서 2학기 상황이 많이 어지러워질 예정 (수강신청 한다고 돈도 미리 냈는데 과목 변경했다가 추가금 들까봐 무섭다). 밤새도록 과제도 하고 시험준비도 열심히 했는데 F를 받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다. 


헌혈은 머학교 1학년 1학기 끝나고 해본 게 처음으로 했던 헌혈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가 있는 동네, 록햄프턴이 소 농장이랑 대학교, 탄광 빼면 아무것도 없는 동네라 심심하기도 했고, 평소 나 자신이 밥만 축내는 인간쓰레기라는 생각이 자주 들어 어떻게든 내 존재의 의미를 찾아보겠다는 이유에서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했던 헌혈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직도 헌혈을 할 때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하고 있다. 술이나 담배는 암 때문에 고생하시는 아버지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안 하고 있었는데, 이게 이렇게 빌드업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 


헌혈을 처음 했을 때 헌혈을 하기 전에 나름대로 자료조사를 하고 주의사항을 읽고 헌혈의집에 들어갔다. 주의사항이라고 해봤자 최근에 문신 한 이력 없고 성병같은거 없고 치과치료 받은 적 없고 기침이나 열 같은 증상 없는 놈이면 헌혈하기 전에 밥 좀 충분히 먹고 물 많이 마시고 피 뽑으라는게 전부였지만 말이다. 모쏠아다인 내가 성병은 무슨, 나한테 플러팅을 할 찌찌 크고 이쁜 여자들은 라스트오리진 같은 게임에나 있는거다. 피를 500ml 뽑아내면 엄청 피곤해질 줄 알았는데, 정작 해보니 피곤은 무슨 평소랑 다를 바 없었고 멀쩡했다. 헌혈이 끝나고 초콜릿바 하나랑 사과주스 하나를 받고서 택시를 타고 기분 좋게 기숙사로 돌아갔다. 몇 달 뒤에 했던 두 번째 헌혈도 별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오늘 했던 세 번째 헌혈은 좀 달랐다. 저번에 했던 것처럼 혈압과 헤모글로빈 수치를 측정하고 피를 뽑았는데, 피 좀 뽑고 나니까 확 피곤해지더라. 직원분께서 피곤해보인다며 괜찮냐 물어보셔서 그냥 배가 좀 고파서 기운이 없다 말하니 토마토 케챱이랑 따끈따끈한 소세지 롤을 건네주시면서 먹어도 된다 하시더라. 받아먹고 택시 타고 기숙사로 돌아가려 했는데 휴대폰에는 택시를 잡을 수 없다고만 계속 떠서 어쩔 수 없이 걸어서 기숙사로 돌아가야지 하고는 계속 걷는 중이다. 


헌혈의 집과 기숙사 사이의 거리는 약 8km 정도 된다. 지금 한 5km 걸어서 중간지점인 쇼핑센터에 도착해 물 좀 마시며 쉬는 중이다. 2학년 1학기때 몬스터도 여러 캔 마셔가며 과제 끝내고 시험공부 하다가 카페인 중독이랑 과로로 몇 번 쓰러지고 코피도 몇 번 흘린 탓일까, 1학년 때의 기운 넘쳤던 모습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처음 헌혈할 때보더 더 어두운 검붉은색이었던 내 피가 담겼던 봉투의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헌혈을 계속 하고 싶거든 건강부터 챙기자. 나도 귀여운 미호 보면서 기운 차리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