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https://arca.live/b/lastorigin/30055745?target=all&keyword=%EB%91%90%EB%AA%85%EC%9D%98&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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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불나방이 불을 보다.

 


그는 마침내 둠브링어의 지휘관실 문 앞에 섰다.

똑똑 가볍게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용건만 거기서 말해- 하는 소리가 울린다.

 

“저, 메이씨? 뵙고 싶어서 왔어요.”

 

쿠당탕 소리가 안에서 울리고 도도도하는 소리와 함께 덜컹하고 문이 열린다.

시선을 한참 내렸다. 아래에 있는 소녀는 가슴 밑으로 팔짱을 끼고 흐응하고 콧소리를 내며 흥미롭게 그를 위 아래로 훑어봤다.

 

“들어오도록 해.”

 

메이는 자신의 의자에 앉고 그는 소파에 앉았다.

둠브링어의 지휘관실은 생각보다 단촐했다. 아니, 오히려 어울린다고 해야하나. 그가 처음 사령관에게 소개받을 때, 이 곳에 있는 수많은 부대를 소개받았다.

둠브링어는 모든 부대를 통틀어서 가장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는 부대. 만약 둠브링어가 출전한다면, 모든 작전이 저 건방진 소녀, 멸망의 메이를 위한 작업.

전율이 돋는다.

매일 같이 재미없는 함장실에 있던 보람이 있다. 하필 분쟁이 일어난 부대가 둠브링어라니.

 

“오르카 안에서 떠들썩한 두번째 인간님이 찾아온 이유가 뭘까?”

 

“하하 그냥 만나고 싶어서 만나러 온 겁니다. 안되나요?”

 

그의 웃음에 메이는 눈에 힘을 준다.

주먹만한 년이 인상 써봤자 웃길 뿐이다.

 

“멍청하긴, 좀 그럴싸한 핑계는 없어? 인간은 원래 하나같이 생각이 짧나?”

 

‘하나같이.’

그는 한낱 바이오로이드의 매도가 신경도 쓰이지 않을 만큼 결정적인 단서를 손에 얻었다.

이 년은 사령관을 별로 안좋아하는구나.

 

“그런 말 들으면 좀 슬픈데요? 뭐, 묻고 싶은게 있어서 온건 맞습니다만.”

 

“말해, 질질 끌지 말고.”

 

“사령관님은 어떤 분입니까?”

 

메이의 한쪽 눈썹이 움찔거렸다.

이런, 너무 직설적이었나.

마음이란 게 참 이상하게도, 내가 욕하는 건 괜찮은데, 남이 욕하는 건 거슬리는 법이다.

 

“아니아니,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지금 인간이 저랑 사령관님 두명 뿐이니까 그냥 알고 싶어서 묻는겁니다.”

 

메이는 잠깐 손을 겹쳐 턱을 괴며 그의 눈을 쳐다본다.

혼탁하고 욕심이 많은 눈이다. 라고 생각하며 메이는 잠깐 두 눈을 감는다.

그러나, 이 남자는 이용가치가 있다.

 

“소심하고 쓸모없어. 지금 이 질문을 하는 너처럼.”

 

“당신은 오만하네요.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은 인간인 저에게 보통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데.”

 

“하, 이 몸이 다른 멍청이들과 같은 줄 알아? 나는 모든 적을 신의 곁으로 보내는 둠브링어의 지휘관이라고. 인간의 명령이라면 껌뻑 죽는 다른 멍청이들과는 다르지.”

 

정말 오만하다.

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콧대를 언젠가 잘근잘근 밟아주겠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저 오만한 소녀가 필요하다. 그러니 빙긋 웃으면서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래도, 우리 사령관보단 대담하네.”

 

메이는 부끄러운 듯 의자를 뒤로 돌린다. 그는 메이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나, 마치 성교를 하듯 섬세하게, 그리고 세심하게 메이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사령관님이 소심하신거 같진 않던데?”

 

메이는 발끈한 듯 빠른 속도로 의자를 다시 돌리고 속사포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멍청하고 소심해서 자신의 부대를 사용하지 않는다, 눈치도 더럽게 없어서 자신이 말하는 의도가 뭔지 파악도 못한다 등등등 열 불 내며 말하자 그는 메이의 말에 맞장구 쳐주면서 “나였다면~” 같은 소리를 내며 은근슬쩍 자기 어필을 했다.

 

“인간, 말 좀 통하는데?”

 

“저야말로 대화가 즐겁네요. 나중에 다시 와도 될까요?”

 

“뭐, 좋을대로 해. 어떤 멍청이 때문에 여유로우니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손잡이를 잡고 가볍게 인사했다.

메이는 가라는 듯 손을 위 아래로 휘젓고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불나방 같은 남자네. 뭐, 오히려 좋아.”

 

양 손을 머리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핀다. 으아아아 하는 소리를 내고는 책상 위에 엎어진다.

 

“그치만.. 이게 옳은걸까?”

 

메이는 언젠가 다이카가 했던 말이 메아리치듯 울린다.

 

‘소중한 것에 대한 자각은 상실에서부터 오기 마련이에요, 후회랑 함께요.’

 

메이는 엎어져서 길게 묶인 머리 한쪽을 손으로 베베 꼬기 시작한다.

 

“소중한 것에 대한 자각..”

 

그녀는 자신이 사령관 품에 안겼을 때의 따스함,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의 다정한 표정을 떠올리곤 얼굴이 화 하고 달아올랐다.

 

“나이트 앤젤이나 다이카나 대장을 가르치려고만 한단 말이야. 복귀하면 혼을 내야겠어.”

 

 

#05 오해는 쌓이고 쌓여..

 

 

언제부턴가 사령관은 그가 레오나랑 메이를 자주 만나러 가는 걸 의식했다. 처음 자신이 오르카에 왔을 때, 가장 꺼려졌던 두 명의 지휘관하고 벌써 친해지다니..

메이랑 레오나도 많이 좋아졌구나! 따위의 속 편한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패널을 띄우니 결재 받을 문서들이 쌓였다. 문서를 하나하나 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번 여름은 대원들을 위해 어디에서 쉬어야 할까.

 

“아, 코피가..”

 

저번 여름에 커다란 가슴 두 쌍 사이에 낑겨 있었던 것을 떠올리자 머리에 피가 쏠렸다.

숲 속에서의 다크엘븐과 엘븐은 유독 섹기가 있었다. 개체의 특성일까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발소리가 또각 또각 하고 들리자 아무 생각 없이 흐르는 코피를 닦으며 고개를 돌렸다.

 

“주인님?”

 

바닐라가 드물게 싱긋 웃으면서 다가왔다.

그러나 아름다운 미소는 어째서인지 섬뜩했다. 

사령관은 아니, 업무 이제 막 시작했어, 니가 생각하는 그런거 아니야 라고 외치며 손을 저었지만 바닐라는 가볍게 무시했다.

 

탁-

허무하게 꺼져버린 패널을 멍청하게 쳐다보다 바닐라를 올려다본다. 어떻게 웃고 있는데 저렇게 무서울 수가 있을까? 그냥 평소같이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매도 해주는 게 나을 것 같아. 슬레이프니르가 블랙하운드를 무서워하는 이유를 알겠어. 같은 생각을 하는 순간 바닐라는 어디론가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콘스탄챠 언니? 보고 계셨나요? 아, 바쁘신가요? 주인님께서 코피를 흘리시며 쓰러지셨어요. 의식은 금방 찾으셨는데 빨리 조치해주셔야.. 네, 닥터양과 다프네양을.. 음.. 아뇨, 두 사람도 좋지만..”

 

바닐라가 눈빛이 흔들리는 사령관을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빙긋 웃었다.

 

“소완양을 부르는게 더 좋을 거 같네요.”

 

아, 망했다.

 

바닐라의 연락 한번으로 순식간에 달려온 라비아타가 사령관을 공주님처럼 안았다. 라비아타와 같이 함장실로 온 콘스탄챠도 주인님 괜찮으세요? 같은 말을 하며 걱정스럽게 올려다본다.

 

“아니, 괜찮아, 완전 괜찮으니까 일단 내려주겠어 라비아타?”

 

“주인님께선 항상 괜찮다고 하시니까.. 어쩔 수 없어요. 콘스탄챠, 바닐라 그동안 주인님의 업무 좀 대신 맡아주렴.”

 

안돼에에 제발 소완만은 봐줘어어

사령관의 외침이 점점 멀어지자 콘스탄챠는 곤란하다는 듯이 웃었다.

 

“계획을 앞당겨야겠군요.”

 

“응.. 레오나 대장님께 연락해야겠네. 생각보다 심각해.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지도 모르겠어.”

 

“주인님은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는데 되려 잘됐다 싶네요. 확률이 높아졌어요.”

 

음흉한 생각을 하는 듯한 바닐라에게 콘스탄챠는 그런 말 하면 안돼~ 라는 말을 하며 레오나에게 연락한다.

 

 

#06 벽도 말을 할 수 있나요?

 

 

오르카 인근 섬 상공, 스카이나이츠와 임무를 하던 나이트 앤젤에게 긴급 연락이 왔다.

 

“예? 그게 무슨.. 아니 울지 말고.. 저 지금 바쁘거든요?”

 

한숨을 푹 쉬며 하강한다.

하늘을 날던 스카이나이츠가 나이트앤젤이 멈추자 임무를 중단하고 돌아보자 나이트앤젤은 잠시 기다려달라는 손짓을 한다.

슬레이프니르는 고글을 올리고 마침 잘됐네! 우리도 좀 쉬자! 라는 소리를 하며 같이 땅에 내려온다.

 

“음.. 이해했습니다 대장. 요약하면 가슴 큰거 빼고는 장점이 없는 본인의 무능력함을 한탄하는거 맞죠?”

 

나이트앤젤 귀에 있는 통신기에서 메이의 큰 소리가 세어나온다.

 

“아오, 고막 찢어질 뻔. 제가 통신기로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죠? 그니까, 대장이 잘하면 그런 일 없잖아요. 이번엔 레오나 대장도 도와준다면서요?”

 

나이트앤젤은 저 멀리서 그리폰한테 한 대 쥐어박히고 있는 린트블룸을 쳐다보며 자신이 메이의 머리통에 꿀밤을 놓는 상상을 한다. 언젠가 사령관과의 데이트권을 따낸다면 자신의 대장에게 양보하는 대신 딱밤 한대만 때릴 수 있게 해달라고 협박하리라 다짐한다.

 

“제가 듣는 곳에서 그치만 하지 말라 했죠! 아니, 왜 그 얘기가 그렇게 됩니까. 손가락 가만히 내비둬요. 진짜. 하.. 금방 가겠습니다.”

 

나이트앤젤은 통신기를 귀에서 뺀 다음 땅에 집어던졌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고는 그리폰과 린트블룸의 꽁트를 쳐다보며 웃고 있는 슬레이프니르에게 다가간다.

 

“슬레이프니르? 저는 이만 복귀해도 괜찮을까요?”

 

“응? 임무가 아직 안 끝났긴한데.. 뭐 이젠 우리끼리도 괜찮을거 같아!”

 

“배려가 넘치시네요. 저희 대장 몰아내고 둠브링어 지휘관 하실래요?”

 

슬레이프가 곤란하다는 듯 웃는다.

 

“아니, 타부대지만 하극상은 농담으로라도 좀..”

 

나이트 앤젤은 잠깐 한 손으로 턱을 만지며 고민한다.

 

“그렇죠, 하극상은.. 저라도 좀 그렇긴 하지만..”

 

“응?”

 

슬레이프니르의 물음에 아무것도 아니라며 하늘로 올라간 나이트 앤젤을 멍하니 올려다본다.

뭐, 정말 아무것도 아니겠지! 라며 그녀답게 단순히 정리를 끝낸 슬레이프니르는 스카이나이츠 대원들에게 박수를 치며 주의를 끌고 임무를 빠르게 끝내고 복귀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