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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 형제가 서로를 죽이고 사랑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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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은 저열하다. 그곳에 담긴 정의와 신념,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이득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서로의 무기를 상대에게 겨누며 상대가 사랑하는 존재를 죽이는 것. 그것이 전쟁의 본질이다. 그렇기에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전쟁에서 아름다움이란 희생을 줄이는 것이다. 승리는 전재 조건에 불과하다.

 

 흩날리는 깃발들을 바라보며 기사는 시시각각 검을 휘둘렀다. 옆에 있는 레드후드는 그의 검이 향하는 방향으로 병사들을 지휘했다. 전장임에도 총성은 들리지 않는다. 오직 임펫과 피닉스의 건조한 고함만이 평원을 뒤덮었다.

 

브라우니! 어디가요!”

 

 임펫의 지휘와 반대로 움직이는 브라우니를 챙기며 5384번 레프리콘은 이상함을 느꼈다. 평원에서의 전투치고는 너무 많이 움직였다. 그녀의 전투 모듈에 따르면 스틸라인은 이곳에 존재해서도 안됐다. 이렇게 광할한 지역에서는 앵거 오브 호드의 압도적인 기동력으로 적을 혼란시킨 다음, 둠 브링어와 AA 캐노니어의 화망으로 적을 섬멸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사고는 더 나아갈 수 없었다. 병사에게 생각이란 죄악이므로.

 

 기묘한 형세였다. 5000의 철충들이 형성한 전열은 6000의 기간테스와 포트리스에 의해 가로막혔다. 두 갈래로 나뉜 그들은 전열의 중앙은 막지 않았다. 두 갈래 대열의 끝에는 스틸라인 대원들이 진을 이루어 하나의 길을 만들었는데, 그 숫자를 모두 더하면 9000명이었다. 자살행위다. 총합 1만 5천의 병력으로 연결체가 포함된 5000의 철충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철충을 막기 위해서는 4배에 해당하는 병력이 필요하다. 철충을 섬멸하기 위해서는 6배에 달하는 병력이 필요하다. 이대로 가면 개죽음이라고 판단한 마리가 사령관을 돌아보는 순간, 철의 군세가 진군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그들을 바라보면 꽤 우스운 모습이다. 칙 계통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들의 군세는 이름답게 벌레를 쫓는 닭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무리의 선두를 차지해야할 장닭이 중앙에서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뿐이었다.

 

 5384번 레프리콘은 그들이 전진하는 소리를 듣고 마른 침을 삼켰다. 이제 곧 시작이다. 세상에서 가장 난폭한 대화가 일어난다. 총알이 몸을 꿰뚫고, 포탄이 아군을 찢어놓으며, 부식액은 무엇보다 빠르게 그녀를 대지로 돌려놓을 것이다. 몇 번의 전투에서 살아남았지만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느낌이다.

 

 공포를 감추기 위해 눈을 감는다. 전투 개시 전, 기사가 그들에게 내린 명령은 두 가지였다. 그중 하나가 지시가 있을 때까지 진형을 유지하며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 것.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 것.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 것.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 것.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 것.

 

적을 죽이는 것도, 내가 죽는 것도, 브라우니가 죽는 것도, 기사님이 패배하는 것도 생각하지 말자.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하지 말자 하지 말자 하지 말자

 

 생각을 멈추려 하면 할수록 사고의 연쇄는 계속해서 일어났다. 명령을 어기면 안된다는 중압감과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던 레프리콘은 결국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대원들도 방금 전의 그녀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프리트는 깨어 있는 상태로 악몽을 꾸는 듯 식은땀으로 몸이 젖어있었고, 노움은 콘크리트 수류탄의 안전핀을 연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심지어 AGS들 마저도 초조해하고 있었는데, 대기 상태에 있어야 할 엔진이 과열 직전까지 구동되는 것이 그 증거였다. 오직 브라우니만이 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녀들의 불안함에 개의치 않고, 철충은 레프리콘의 눈앞을 지나갔다. 발포도 없었고, 발로 짓뭉개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무엇에 홀린 듯 대열의 끝을 향해 전진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철충이 바이오로이드에게 소극적이라지만 이렇게 바이오로이드를 인식한 상황에서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은 터무니없다.

 

레프리콘 상뱀, 뭔가 이상하지 않슴까?”

 

나도 알겠으니 닥치고 있어요, 브라우니.”

 

아니, 우릴 내버려두는거 말고 말입니다. 저기 보십쇼. 보이십니까?”

 

 브라우니의 손가락을 따라가자 연결체급 철충. 통칭 스토커가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헤치며 나아가고 있었다. 익스큐셔너 처치 임무에 투입되었던 레프리콘에게는 이상할 것이 없는 광경이었다. 돌아가면 오랜만에 얼차려를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레프리콘은 브라우니를 쏘아붙였다.

 

뭐가 이상한데요?”

 

저 자식, 원래 앞으로 나오는 일이 없습니다.”

 

그거야 사령관님이 유인하셨던 것처럼 기사님도 유인하신-”

 

그때는 산지였습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저격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단 말입니다. 지금은? 장해물 하나 없는 탁 트인 평원입니다. 심지어 기사님으로 향하는 길까지 뚫려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왜 모습을 드러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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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릴 수 없는 소리가 부른다. 들어서는 안 될 소리를 듣는다. 닫으려 하지만 너무나도 강렬하다. 발은 자연스레 발원지로 향한다. 멈춰서는 안 된다.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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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커가 기사의 앞에 당도한 것은 시간이 꽤 흐른 다음이었다. 그것은 무기를 충전하지도, 휘두르지도 않았다. 그저 대화라도 하는 것처럼 기사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기사 역시 검을 꼬나 쥐고서 스토커를 바라보았다.

 

열어라!”

 

 긴 침묵 끝에 기사는 한 마디 함성을 내뱉고서 돌진했다. 스토커의 머리에 칼이 들어간다. 뇌를 닮은 기괴한 축전기가 붉은 냉각수를 내뿜으며 터져나간다. 역겨운 웃음소리를 배출하던 입과 이빨은 제 짝을 잃었다. 기사는 그를 단칼에 두동강냈다.

 

 스토커가 반으로 갈라지며 쓰러지자 스틸라인의 포구가 열렸다. 무엇이든 기사가 말하면 철충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붓는 것이 두 번째 명령이었다. 브라우니와 레프리콘은 이프리트의 사격을 보조했다. 노움은 콘크리트 수류탄으로 지반을 강화시켰고, 피닉스는 공중에서 실시간으로 적의 위치 정보를 전달했다. 그 순간 이프리트는 스틸라인과 동치였다.

 

 발사하고, 장전하고, 옮긴다. 포탄이 일제히 착지할 때마다 전장은 주홍빛 화원으로 변한다. 날아오는 파편은 미리 설치한 방벽에 의미 없이 박힌다. 일곱 번째 포탄을 전하며 레프리콘은 발포 간격이 2초가량 되고, 한 번 사격에 25마리의 칙이 죽는다고 가정하면 5000의 철충이 전멸하기까지 1분 40초가 걸린다는 사실을 도출하며 전율했다.

 

 기사의 전술이 가져온 충격은 병사들에게만 전해진 것이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전황을 살피는 오르카 호 지휘부가 받은 충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연결체 스토커가 기사의 앞에 나타난 이후로, 모든 철충은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대기 자세를 유지하며 담담히 죽음을 맞이하는 듯한 태도였다. 옆에서 아무리 많은 동족이 죽어나가도 그것들은 개의치 않고 자신의 끝을 기다렸다.

 

 레프리콘이 느끼기에, 이번 전투는 저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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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는 싱겁게 끝났다. 기사의 전술로 절망적인 화력 차이를 극복하자 적은 순식간에 굳건한 자세로 스러졌다. 쉽게 얻은 승리에 희열은 없다. 전투에 참여했던 모든 대원은 전장을 정리하고 후방으로 이동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모두가 떠난 전장에서 기사는 아직도 스토커를 처리하고 함성을 외쳤던 그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바로 옆에 포탄이 떨어지는 순간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던 그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정적을 멈추었다.

 

이기셨군요.”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은 남자의 목소리. 뒤를 돌아보자 앳된 소년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대신한 그는 칼집에 검을 꽂아 넣었다. 그가 검으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호기심이 동한 사령관은 기사의 앞으로 나아가  땅을 보았다.

 

 무언가 적혀있었다. 기사 본인부터가 글을 가까이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검으로 바닥에 쓴데다가 바람까지 불어 대부분은 읽기 힘들었지만, 사령관이 읽을 수 있을 정도의 글도 있었다.

 

왜 이런 말을?”

 

모르겠습니다. 아마 심심풀이가 아니었을까요.”

 

보통 사람이 심심풀이로 욕설을 적지는 않아요. 뭔가 불편한게 있으셨-”

 

. 물을 빼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런.”

 

 총알 같이 튀어나온 기사의 말을 토대로 정리하면, 그는 물에 둘러싸여 지내야 하는 오르카호의 생활이 꽤 불편했던 모양이다. 반강제로 합류하고 나서 한동안 극도의 공수증을 보였던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사령관이 기사가 계속 불편해함으로서 가져올 손해와 그가 요안나 아일랜드 등의 후방 보급지대로 떠나는 것으로 생길 손해를 한창 저울질하고 있는 도중에, 기사는 입을 열었다.

 

이번 승리 말입니다만,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

 

 소년의 사고는 순간 멈추었다. 그 위대한 승리가 우연이었다고? 겁쟁이라는 멸칭으로 불릴 만큼 스스로를 철저히 숨기는 스토커가 당당히 자신의 앞에 설 것도, 스토커가 죽은 다음 이어진 포격에서 단 한 마리의 철충조차 움직이지 않은 것도 몰랐다고 기사는 증언했다. 전부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일어나고, 벌인 일이었다는 말인가.

 

아니, 그럼 어떻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습니다만,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제가 말한 우연은 병력의 수였습니다. 사실 철충의 수를 확인한 이후, 제가 했던 것은 정확히 그 세 배의 병력을 준비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우연히 그날 스틸라인이 나섰어야 할 다른 작전이 흐지부지되는 바람에 15만이라는 숫자를 맞출 수 있었죠. 그게 아니었다면 오늘의 승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 앞으로도 정확히 세 배의 병력만 준비하면 된다는 건가요? 고작 그걸로 모든 전투에서 피해자 없이 손쉽게 이길 수 있다고?”

 

 말도 안됐다. 아마도 기사의 광증이 다시 도진 것이리라. 그가 오늘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분석과 계산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아마 과거에 스토커와 기사 사이에 접점이 있었겠지. 그는 도망치는 와중에도 특유의 입담으로 연결체를 도발했을 것이고, 알아들었던 듣지 못했던 그 도발은 먹혀 들어가 기사의 앞으로 나서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자신들과 연결되어있던 연결체가 죽자 철충들은 혼란에 빠져 일시적으로 정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령관은 굳이 반박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반박해봐야 기사가 평소에 보여주는 끝없는 합리화와 광기로 결국 그를 인정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기사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불편한 상황을 피하려면 대화 주제를 돌려야 했다.

 

그래서, 충성 서약을 할 마음은 드셨나요? 저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답니다.”

 

, 그게 말입니다.”

 

 기사가 말하길 주저한다. 갑옷 위로 식은 땀이 나는 듯한 그에게 사령관이 다가가 갸웃거린다. 그렇게 기다리던 충성 서약이 눈앞으로 다가왔는데 머뭇거리다니. 과연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 치료 있잖습니까. 트레이시 양과 레아 부인께서 해주셨던. 그게 계기가 됐는지는 몰라도 제가 이미 충성을 맹세했었다는 사실이 기억났습니다.”

 

누구한테요?”

 

곤란한데. 이만큼 강대한 전력이 빠져나가면 앞으로의 계획에 차질이 생겨. 그러면 또 처리해야할 작업이 늘어날거고, 그러면 또 쓰러지게 될거고, 그러면 또 애들이 치료라는 명목으로 잔뜩 뽑아갈거야. 특히 마리는, , 마리는 정조대 차고 있지. 슬슬 풀어줄 때가 됐나. 어쨌든 안돼. 기사님은 반드시 오르카호에 있어야 해.’

 

 사령관에게 생각의 파도가 들이닥친다. 급속도로 변해가는 사령관의 표정을 보고 기사는 쩔쩔대며 소년에게 말한다.

 

그렇다곤 해도 사령관님을 떠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 당시의 저는 상당히 철이 없었던 지라. 무언가 관념적인 것에 충성을 맹세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아마 사랑이니 명예니 하는 것이었겠지요.”

 

, 그런가요.”

 

다행이다. 여기서 더 짜이면 위험했는데.’

 

 석양을 등지고 오르카호로 돌아가는 사령관의 발걸음은 눈앞에 놓일 어두운 운명을 모르는 것처럼 가볍다. 그는 곧 살려달라 외치며 심연으로 가득 찬 방으로 끌려들어가겠지만, 당장 닥친 위험을 해소한 그에게는 알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마리X쇼타 사령관 착정 플레이 써주거나 그려줄 사람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