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먹고사는 것과 같은 말이 되는 순간, 삶과 책임이 뒤바뀌는 순간 - 3 . 5 화

https://arca.live/b/lastorigin/33689569 링크모음



 아마빛 머리의 소녀. 안녕. 안녕하세요.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아직 그 쓰레기장같은 대학교에서. 그리고 그대는 속살을 벗기고 나를 바라보며 뒹굴 뒹굴, 나는 그것이 불과 육욕뿐인 관계라고 착각했습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이성 출입 금지의 기숙사 문틈 사이로 그대는 쇠주를 대여섯 병 봉지에 담아서 쉿, 조용히 해. 문을 닫고 담아온 마음들을 바닥에 풀어놓고 달콤한 숨을 쉬었습니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어떤 것은 달고, 어떤 것은 짭찌름 한 것이 잔을 기울이기 충분해 그지없는 것들 뿐이었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속이 많이 꼬인 사람이었습니다. 건반을 두드려봤자 늘어진 선에서 주장하는 음역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 기어나왔습니다. 자꾸 빗겨나가는 내 말처럼.




 자기를 의식할 수 있을 적이 되고서는, 아비 없는 생을 저주하는 법조차 잊고 있었다. 어렴풋이 위로를 들은 기억도 있으나, 차마 고맙다고 말 하는 것도 영 이상한 것이었다. 힘없이 늙어가는 아버지를 볼 일이 없다는 것 하나는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를 둥기둥기 껴안아주는, 혹은 권위적이지만 존경해 마지않을 품성의 올곧은. 그런 상상속의 어떠한 모습조차 없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그런 아들이었다.


 10년이 지나도록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생물의 생존법은 교육, 그리고 생명 연장의 시술과 수술이다.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에 열 넷 즈음부터는 미소지어 보인 기억이 없다. 친구랄 것도 하나둘 사라져갔다. 생에 질려버린 결과를 온전히 이해하고 타협했다. 그리고는 생을 계속했다. 왜냐하면, 나를 애지중지 키우는 그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열 여섯이 되던 해, 일을 처음 해보았다. 여자를 처음 사귀어 보았다. 미드 나이트 블루 색의 아우터를 걸친, 스무살의 젊고 건강한 처녀였다.


 내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 활기와 생명력. 만취 후의 다음날이 분실되듯, 나의 반년은 야근수당과 처음 코를 부벼본 그 여자의 향숫내에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떠올릴 만한 건 딱히 없었고, 일터에서 방긋방긋 웃으며 응대하다가도 돌아서면 한숨을 쉬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그녀는 나를 볼 때도 같은 미소를 지어보이곤 했다. 여자란 것, 별 것 없구나, 며 그런. 누구나 피식 웃고 지나갈 법한 생각도 하고는 했었다.


-


 열 여덟이 되던 해, 어머니의 닥달에 공부를 하며 지냈다. 일을 하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 기억이 까마득했다.


 다문 입에서는 치약기가 달아나 악취가 났고, 그때마다 껌을 씹었다. 찰나의 화악내가 곧 더욱 강한 악취가 되어 돌아왔다. 탁한 공기를 들이쉬듯 뱉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빽빽한 사람공기. 기침이 끊이지 않았다.


 선생들은 나를 실적에 용이한 도구로 봤다. 반 친구들은 나를 등신으로 봤다. 그래서 복수라도 하듯, 나는 마음먹은 달에 같은 반 여자애와 사귀고 사귄 주에 그녀와 나를 가장 심하게 놀려대던 놈의 나무책상 위에서 섹스를 했다. 


 ㅡ그러고는 나 자신을 죽일듯이 혐오했다. 떠나버린 동정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동정을 버리지도 못 했으며, 동시에 동정을 유년의 악의에 빼앗긴 것이었다. 떳떳한 삶이라고는 한 조각도 맛 볼 수 없이, 내리막을 계속해서 걷고 있었다. 성기 사이로 추한 수분이 뚝뚝 교과서를 적시고 있었다. 마룻바닥에 고이고 있었다. 지독한 풋내가 어지러우리만치 진동했다.


 거울 앞에 설 때마다, 그림자 얼룩이 낀 이끼같은 망령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생애, 결코 길지 않으리라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내게 헌신하는 이가 있어 그날을 앞당길 수 없었다. 밀레니엄의 범람 속에 홀로 석탄을 때우며 걷고 있었다. 그만 쉬고 싶었으나, 그녀가 잿가루 맞으며 계속 불을 때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머니. 


 -


 스무살이 되던 해, 이 나라 누구도 얕보지 못 할 대학에 입학했다. 그녀가 병상에 올라 있었다. 


 어머니, 이제 나에게 맡기시라. 당신 아들이 명문대도 들어갔고, 이제 돈줄이 트일 것이다. 


 내가 공부한 것이 고작 입시에 그칠 것이라 생각하는가. 난 그 좁은 학교 안에서 세상을 들여다 봤다. 이제 이 멍청한 시대의 현명한 수혜자가 될 시간이다. 



 그러지 마라 아들. 엄마는 쉬고 싶다. 고 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나는 앉은 자리에서 그 무거운 빚을 변제받았다. 


 평범함이 짓밟히고 박살나 그 편린이 조각조각 흩어지고, 남은 것. 겨우 기워맞추듯 모아놓은 그 마지막 조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당신 수술비정도 못 구할 거 같아 ? 당신 아들이 그렇게 무능한 사람같아 ? 그런, 돈은. 당장 내일이라도 구해올 수 있어. 당장 .. 내일이라도.


근데왜자꾸당신목숨을값싸게처분하려는거야.



그럴생각이었으면나도그렇게하게뒀으면좋잖아.



나도확죽어버렸으면서로좋았잖아.



왜나한테니삶의무게추를다떠넘기고혼자편해지려고하는데 . . .






 엄마가 미안하다. 이런 방법밖에 몰라서. 한 번만, 용서해주면 안 되겠니. 한 번만 엄마 말 들으면 안 되겠니. 





 ------------------------




 도망쳐나오듯 이사한 단칸방은 복층의 건물이었다. 주인장 할머니를 매개로 모두 나름 끈끈한 유대를 가지고 있었다. 시간이 남으면 함께 보내고, 같이 흥에 겨워 취하고는 했다. 내겐 그런, 내 나잇대의 평범함이 절실했다. 바보같게도.


 내 삶의 두 번째 여자는 내 아랫층에 살고 있었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계속되다 보니, / 매우 후회스럽게도 / 이런 저런 얘기를 털어놓게 되었고. 네 눈에는 내가 그리도 가여웠나 보다. 




 




 한 아이가 산 폭죽 막대의 공연을 무임을 보고 있었다. 터지고 남은 화약내가 바닷바람에 쓸려나갔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막대 폭죽은 바다에서만 보아서 그런지, 그 불꽃의 연소가 어딘가 비릿하게 느껴지는 듯 했었다.


 네 옆의 사람이 누구여도, 혹여 없더라도 상관없는 그런 상태라고 생각했다.


 종종 내가 우리를 그런 인위적인 고립에 빠뜨리는 것을 방치하는 건 내 성격이기도 했고, 그걸 애써 부정치 않는 네 습관이기도 했다. 모든 붕괴는 작은 틈으로 시작된다. 


 


 -


 

 얼마나 더 사장에 있을 지 이야기했었다. 시간은 무덤덤하게 돌고, 모두가 손목에 시계를 차고 나서는 더 이상 시간의 흐름에 놀라는 사람은 없다. 아날로그 시계를 싫어하는 그녀의 손목은 부리나케 자전을 암산했다.


 네가 원한다면 네 시간까지도 가능해, 너는 그렇게 말했다. 숫자로 시간이 일축되는 것이 싫어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시계를 차야만 했다. 은색 아날로그 시계를 일부러 오른손에 차고 다녔다. 


 

 야시장은 멀리서 바라보면 아름다웠다. 저렇게 치열한 박자로 구르는 삶에 내가 또 네가 올라탄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부양할 가족도 이젠 없었고, 나 자신을 돌보지도 않았으니. 삶에 결핍이랄 것이 없었던 네가 옆에 있었으니. 나는 평생 이렇게 살 것 같았고, 너는 평생 그렇게 웃고 있을 것 같았다. 



 -



 유행도 타지 않는 신발에 옷을 두른 네 사소한 부분까지도 기억하는 것은 네가 나와 같은 시차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가올 내일에 치열하지 않은 박자로. 언젠가는 허비한 시간을 후회하리라 생각하면서도 끝내 달리지 않는 것. 


 모든 아날로그 시계까 그러하듯, 전력이 모자르던 태엽이 굳어지던. 어떠한 이유로 조금씩 시간이 엇나가기 시작하겠지. 다만, 네가 나의 시간 속에 있는 동안 만큼은. 나는 네 티끌까지도 세세히 기억에 남기고 새기리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나는 네 낭만의 한 조각이 되고 싶다.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부정한 적이 없는 것은 애정의 결핍과도 같은 그런 시시한 이유이다. 허나, 어쩌면 나는 사랑받기를 갈구한 적이 없는데도 네 기억에서 도려낼 수 없는 커다란 인과가 되고 싶어 했다. 오늘의 너보다 내일의 너를 더 갈구하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 네가 나를 지금 사랑해주기보다. 네가 나를 지금 만져주기보다, 10년이 지나고 문득 돌아봤을 때. 그 낡아빠진 기억 속에서 항상 네 눈을 보며 웃는 쪽이 되고 싶었다. 내 아버지도, 어머니도. 내겐 그래주지 못 했으니까. 


 

 어쩌면 이는 비논리적인 교환이다. 비논리적인 결론이다. 내가 너를 진득하게 감싸쥐고, 네가 나를 따듯하게 어루만질 때. 그제야 말로 씻을 수 없는 향기가 베기 시작하니까. 고로, 이건 투정이었다. 



 -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던 나의 그날 기분따라 널 멋대로 대했던 것은 그 증거일까. 허나, 네 취향에 맞는 답변으로 나의 단어들을 갈아치우는 것은 또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넌 내가 네게 맞춰서 대답하기에 사랑하니, 아니면 나로서 단어를 골라 뱉을 때의 모습을 사랑하니.


 너라면 알아서, 센스있게. 라고 답해주겠지. 가끔은 장난감 블록같이 철자들을 쉽게 끼워서 말하는 듯한 네 세계의 주민이 되고 싶다고 생각도 했었다.



 -



 슬슬 움직이지 않으면 집에 못 갈거야.


 라고 하니, 정말 그렇네. 며 바지에 붙은 모래를 툭툭 털어냈다. 차마 마시지 못 한 캔커피는 쓰레기통에 그대로 넣었고, 끈적임에 붙은 모래알은 수돗물에 씻어 내렸다. 


 

 네게는 좀 더 쾌활하고 밝게 보이고픈 나지만, 그리 변변치 못 한 탓에 언제나 한 권의 책인 양 네 곁에 그저 서 있고는 했다.


 무엇으로부터든 사유하고 고개를 기울여보는 네 말을 사랑하기 시작한 것은, 가시돋은 말을 빼면 내겐 별로 할 말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부터였다.


 

 -



 네 전화기는 카메라가 세 개나 달려있지만, 너는 두 눈으로 담고 두 귀로 들어두기를 더 선호했다. 우리는 추억을 위한 여행을 떠난 적이 없었다. 다만 늘 1초 전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했다.


 그것은 내가 사진첩이 아닌, 두 눈 감은 검은 풍경에 의존해 글을 적어 내려가는 이유이다.


 사진은 기억을 돌려주지만, 글은 상상을 부여하기 때문에. 신비를 잃어버린 금세기의 몇 안 남은 마법을 내게 걸어두고 우린 사라졌다.


 학문이니 보고서니 하는 것에 단어를 낭비하기보다, 자꾸만 열화되어가는 네 영상을 붙잡고 있는 이유이다. 그깟 명함값에 질질 싸는 가장 똑똑한 대학의 가장 멍청한 이들과의 결별을 선언한 이유이다. 



 -



 생각해보면 참으로 이상한 만남이었다. 90년대의 잔여물뿐인 우리의 족적은 당연해진 것을 그 사이로 비집고 나온 낡아빠진 낭만이었다.


 우리의 스마트폰 타자 속도는 아마 다른 이들만큼 빠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만개를 준비하는 푸른 벚나무를 보고 네 생각이 나면 바로 전화를 거는 속도만은 세상에 견줄 이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


 그 밤, 집 앞 사거리까지 너를 바래다 주고 나서는. 나는 다시금 자기혐오에 빠지고는 했다. 어린아이의 눈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한탄과 그 눈과 명랑함이 아직 감돌던 때 너를 보지 못한 것에 대한 한탄을 했다.


 새벽 공기에 취해서 발을 내지르지 않고서는, 그 문지방을 넘을 수 없었다. 끝내. 함께.



 -



 아마 내일 아침에는 오늘의 널 집 앞까지 바래다 주지 않은 것이라던가, 그런 것 따위의 무언가를 붙들고 후회하겠지. 네가 곁에 있더라도. 나는 옆의 네가 아니라 네 기억 속의 내가 되고 싶으니까. 


 이런 나의 행복했던 추억에 대한 열등감을 겸손으로 네가 알고 있을까 봐 가끔 두렵다가도, 날 위로하려는 듯 문득 안아주는 널 보면 넌 날 이미 티끌 하나까지 궤뚫어 보는 듯 했다.




 그래, 넌 날 이미 티끌 하나까지 궤뚫어 보는 탓에 나에게 이별을 고했으리라.


 다가올 내일의 준비보다는 지나간 어제의 후회를 하는 건 나의 감정의 원동력이라서.


 

 하루종일 네 얘기를 듣는 나는 내 얘기가 네 얘기보다 못났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루종일 네 곁을 지키는 나는 내 소망이 네 소망보다 못났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마 네가 고한 결별의 단어들이 지나치게 설명적이고 애매했던 것은, 너를 사랑하고 존중해서보다 나를 깎아내린 결과 너를 사랑하게 된 나의 이런 상태를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 했기 때문이겠지.


 자신의 삶을 너무 싫어한 결과 타인을 동경하는 건 너무나 흔치 않은 일이니까.

 아니면, 네가 상냥한 탓에 날 선 단어를 피하다 보니 그런 거였을까 ?


 그래도 늘 네 앞에선 자신 있게 미소 지어보고는 했다. 여러 도전도 머뭇거리지 않으려고 했다.


 생에 몇 번 못 부려본 나의 허세가 다른 모두를 속이긴 했어도, 나와 너를 속이지 못 했던 것 같다.


 

 -



 굳이 나의 자기혐오를 입으로 꺼내지 않아도 귀신같이 알아보던 네 말들만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네 잔향만이 은은히 남아있었다. 


 그런 나를 언젠가부터 동정하고, 내게 헌신하던 네 잔향만이 은은히 남아있다.


 나는 그 동정이 역겨웠다. 내 온 삶을 담쟁이넝쿨처럼 휘감은 표독스러운 집착. 

 얼굴 없는 아비가 남긴 얼굴이 준, 헌신케 하고픈 삶과 사람. 아마 내가 조금만 지독하고 역겹게 생겼으면 껍데기뿐인 동정도 헌신도 받지 않았을 텐데. 


 누구든 조금만 나와 가까워지면,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듯 고개를 푹푹 숙였다.



  내 삶이 니네들의 평범함, 내가 동경하고 사모하고 간절히 빌었으나 결국 흔적마저 잃어버린 그 평범함과 비하면 무겁다는 것도 이해 할 수 있었다.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은 아니나, 네가 날 보고 멋대로 비극의 주인공 취급하는 것처럼. 나도 멋대로 이에 화나고 싶었다. 어중간한 마음으로 유감을 표하지 마. 씨발련아, 그게 설령 너라도.


 ..


 아마, 이러한 이유이다. 얼핏 함께 발을 구르듯 보이나, 결코 너와 나는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 못 하니까.



 다만, 너를 떠나보내고 나서. 많이 배웠어. 


 나와 같은 시차에 살겠다며 멋대로 품에 안기는 아이를 만났어.

 그 아이는 원한다면 몇 없는 영원함이 되어 주겠다고 했어.

 그 아이는 시차 적응을 잘 한대.


 그러니, 이런 나라도 너무 사랑해주겠대.


 그래서. 뒤늦게 내가 너를 사랑했음을 깨달은 나는,

 너보다 내가 소중하지 않기에 너를 소중하게 여기던 나는.


 내가 너무 소중하기에 너에게 할애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나를 너보다는 조금 덜하게 사랑해보겠어.


 물론, 나의 이런 무리하며 부리는 오만은 네 눈빛 한 점에 으스러지겠지만.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 사는 동안, 네가 다시 나와 우연히 마주칠 그날에는, 내가 네게 먼저 말을 걸겠다. 


 부족한 날 봐주는 이가 꼭 네가 아니어도, 내가 먼저 그이를 사랑하리라고 다짐했거든.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도, 금방 그런 존재를 만났어.


 그러니 기어코, 나는 네 낭만의 한 조각이 되어보이겠다. 네 삶에 가장 커다랬던 인과로 남아보이겠다.


 네 품을 떠난 그 남자가. 비틀거리며 불행의 아지랑이 사이로 걷던 그 남자가 네 기억 속에서 너를 바라보고 있겠지만, 나는 결코 그 기억속의 남자인 모습 그대로 있지 않겠다. 


 그 알을 깨고 세계를 확장하는 순간, 네게 가장 커다란 인과가 되며, 네게 가장 인상깊었던 사람이 될 테니까. 부모도 주지 못 한 행복한 추억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