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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키보刀대회] 출품작입니다.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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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기억 속의 그녀는, 언제나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반했던 수많은 이유 중에 하나는, 그 맑은 웃음이 차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되자, 그녀의 몇몇 웃음은 내가 생각하는 웃음의 의미와는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이 웃음을 지을 때, 항상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나는 그 사실을 언제 깨달았을까. 

 

- 저도 도련님을..... 사랑해요.

 

 그때 레비의 웃음은, 진짜 웃음이었을까?

 

///

 

 “......”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조금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있었던 모양이다. 시곗바늘은 어느새 아홉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분명히 네 시쯤에 집에 들어왔으니까...... 벌써 다섯 시간이나 지났다. 나는 쪼그려 앉아있던 몸을 피고 일어났다. 

 

 “......바닐라?”

 

 나는 천천히 부엌으로 걸어갔다. 평소라면 요리를 하고 있을텐데....? 아니, 지금은 저녁을 먹을 시간은 지났으니까....

 

 “바닐라?”

 

 화장실에도 없고.

 

 “바닐라?”

 

 내 방에도 없었다.

 

 “어디 갔지....?”

 

 밖에 나간걸까. 바닐라는 집에 없었다. 언제 나갔지? 나가는 모습을 본 적이---

 

- 주인님, 제발.....제가 주인님을, 당신을. 믿을 수 있게 해주세요......

 

 잠깐.

 

 “바닐라!!”

 

 나는 대문을 힘차게 열었다. 싸늘한 밤 바람이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고개를 아무리 오른쪽, 왼쪽으로 돌려도 시야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 그 말이 사실이었던 건가요.....

 

 “바닐라!!! 어딨어?!”

 

 나는 문을 거칠게 닫고 계단 아래로 뛰어내려갔다. 문이 닫히는 둔탁한 소리를 뒤로 하고 내달렸다.

 

- 폭행까지는 어찌저찌 넘어간다 치더라도, 설마 진짜로 죽이기까지 했다니..... 내가 미쳤지, 이런 인간의 뭘 믿고.....

 

-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 확실히, 주인님은 저에게 그 남자랑 만나도 된다는 명령을 내리지는 않으셨죠.

 

- 하지만 만나지 말라는 명령도 내리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 그리고 바닐라는 집 밖으로 나갔다. 바닐라가 집 밖으로 나간 것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이후다. 시간이 다섯 시간이나 지났는데 바닐라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면 바닐라는 지금 어디 있는 거지?

 

 나는 바닐라가 있을 만한 장소들을 찾아보았다. 근처에 있는 편의점, 카페, 그 외 장소들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집 근처 어디에도 바닐라는 없었다. 

 

 “바닐라!! 어디있어?! 바닐라?!!”

 

 달라진 게 없다. 언제나 그렇다. 소중한 것이 있는 생활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 소중한 것들을 내 실수로 잃어버린다. 언제나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다.

 

 레비가 없어지고 난 이후로 바뀐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젠장......”

 

 나는 바닐라를 찾기 위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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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나는 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씨발.....”

 

 욕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욕이 안 나오는게 비정상이지...... 조금 성급했나? 싶은 생각이 조금 들기는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나는 문 앞에 기대어 털썩 주저앉았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 떨어져 버린지 1달. 세상은 어느새 5월이 되었다. 바닐라의 주인, 저 남자가 정말로 바이오로이드를 죽일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 그 남자의 반응은 ---

 

주인님......

 

탁!!

 

 “주인, 님......”

 

 마치, 들켜서는 안되는 것을 들켜버렸다는 듯한, 노려보는 눈빛.

 

 “하아~~ 씨이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들어가서 주인님과 이야기를 다시 해보는 것이 맞겠지만......

 

- 폭행까지는 어찌저찌 넘어간다 치더라도, 설마 진짜로 죽이기까지 했다니..... 내가 미쳤지, 이런 인간의 뭘 믿고.....

 

 ......이렇게 말한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바로 다시 들어가는 것도 조금 그렇고...... 

 

 “밖에서 적당히 시간이나 보내다가......”

 “저기....누구신지.....?”

 “?!?!”

 

 갑자기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놀라서 고개를 돌리자, 한 남자가 한 손에는 우산을, 한 손에는 종이 가방을 든 채로 서 있었다.

 

 “그....여기가 김치웅, 집 아닌가요?”

 

 김치웅? 아, 맞다. 주인 놈 이름이었지. 항상 주인님, 저 남자, 라고만 부르니까 기억 한편에서 멀어진 느낌이다.

 

 “네, 저희 주인님 집이 맞는데...... 누구시죠?”

 “아! 그러면 그쪽이 그 풀옵션 바닐라? 치웅이는 안에 있어?”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드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만.....”

 

 남자는 우산을 접어 벽에 세우고는 머리를 긁었다.

 

 “아.... 나는 그 녀석 친군데..... 초등학교, 중학교 같이 다닌 불알 친구인데, 걔가 한 번도 이야기 한 적 없어?”

 

 남자의 말투는 순식간에 경박해졌다. 그건 그렇고,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인 불알친구라면...... 뭔가를 알고 있지 않을까? 

 

 나는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주인님은 지금 집에 안 계십니다.”

 “그래? 지금 쯤이면 아르바이트가 끝날 시간이라고 말 했었는데...... 그러면 언제쯤 오는지 알아?”

 “....얼마 안 걸릴겁니다. 그러면 이 근처에서 적당히 시간이라도 때우시는 건 어떠신가요?”

 “그래야겠지....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남자는 다시 우산을 펴고 내려갔다. 나는 남자를 따라 내려갔다.

 

 “어라? 따라오게?”

 “네, 손님을 대접하는 것도 제가 해야하는 일 중 하나니까요. 이 근처에 카페 같은 장소가 있나요? 있으면 거기서 시간이나 때우죠.”

 “......근처에 좋은 카페가 있지.”

 “그런가요?”

 

 나는 남자를 따라갔다. 남자는 마치 우산 안에 들어오라는 듯이 우산을 옆으로 옮기고서 어깨를 들썩였지만, 나는 비를 맞으면서 남자를 뒤따라 갔다. 남자는 그런 나를 보고는 아쉽다는 듯한 표정으로 우산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다행히 비는 그리 심하게 쏟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비가 심하게 오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마 이렇게 뒤에서 걸어갔을 것이다.

 

 ‘시선이 너무 티가 난단 말이지......’

 

 남자의 시선은, 내가 바이오로이드라는 것을 알자마자 음흉하게 바뀌었다. 시선이 가슴과 언덩이, 허벅지 같은 부분에 머물러 있는 것이 느껴졌다. 너무나도 노골적이고, 숨길 생각이 없는 듯한 끈적한 시선이었다.

 

 ‘설마 이상한 장소로 데려 가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저항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내 걱정이 무색하게, 남자가 들어간 곳은 대로변에 있는 멋들어진 카페였다. 나는 남자를 따라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주문은 뭘로 하실 건가요?“

 ”나는 아메리카노..... 아니, 에스프레소로. 너는?“

 ”사주시는 건가요? 그러면 카라멜 마끼아또 하나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에스프레소 하나에 카라멜 마끼아또 하나 주문 받았습니다. 자리에 앉아계시면 벨이 울릴거에요. 그때 가지러 오시면 됩니다.“

 

 남자는 종업원, 콘스탄챠에게서 알림벨을 받고서 근처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나는 남자의 맞은 편에 앉았다.

 

 ”달달한거 좋아해?“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는 그쪽은 쓴 걸 좋아하시나요?“

 ”커피는 쓴 맛에 먹는거지.“

 

우우웅~~~~

 

 ”벌써 나왔네.“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벨이 진동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에스프레소와 카라멜 마끼아또가 놓여있는 쟁반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남자는 쟁반 위에 놓여있던 에스프레소를 한모금 털어넣더니, 이상한 표정을 짓고서는 그대로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쓰죠?“

 ”아냐, 뜨거워서 그래.“

 ”그런가요.“

 

 홀짝. 나는 카라멜 마끼아또를 한모금 삼켰다. 달콤하면서, 은은한 쓴맛. 맛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커피를 마셨던 것도 꽤나 옛날 일이었다. 적어도 바닐라가 되고 난 이후로는 한 번도 마셔본 적 없으니...... 적어도 1달이네.

 

 ”치웅이는 잘 있어?“

 ”그게 무슨 뜻인가요?“

 ”말 그대로..... 뭐, 집에서는 잘 지내나 해서.“

 ”뭐, 평범하게 지내시죠. 아르바이트를 나갔다가, 집에서 주무시다가..... 별거 없습니다.“

 ”다행이네.....“

 ”뭐가 다행이라는 거죠?“

 ”......“

 

 남자는 다시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홀짝였다. 얼굴은 아까와 같이 찌그러졌다. 남자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니, 바이오로이드랑 잘 지내는구나~ 싶어서.....“

 ”그게 무슨 뜻이죠?“

 ”아니.... 그게....“

 

 느낌이 왔다. 저 발언을 파고 들면,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기회다. 나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내 시선을 보고서는 고개를 돌리고, 곤란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게, 하아.... 말해도 되나?“

 ”주인님께는 비밀로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빨리 말해보세요. 빨리. 자, 어서.“

 ”어? 어.... 뭐, 괜찮겠지....?“

 

 남자는 ’뭐, 별거 아닌 이야기인데.....‘라고 운을 띄우고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걔가 바이오로이드를 싫어하는 줄 알았거든, 그래서 너를 샀다고 들었을 때도 놀랐어.“

 ”바이오로이드를 싫어한다고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

 

 남자는 말끝을 흐리기 시작했다. 

 

 ”......진짜 말 안 할 거지?“

 ”안 합니다. 계속 말하시죠.“

 ”.....으음.....“

 ”걱정 마세요. 비밀로 해드리겠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무덤까지 안고 가겠습니다.“

 ”정 그렇다면야....“

 

 남자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니, 중학교에 올라오자마자,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바뀌어서는...... 우리끼리 바이오로이드 이야기를 할 때도 관심이 없다....기 보다는, 일부러 거리를 둔다고 해야하나..? 마치 바이오로이드에 관심이 없다는 듯이......“

 ”중학교에 올라오자마자라는 건...... 초등학교 때는 안 그랬다는 건가요?“

 ”..아아...... 이걸 진짜로 말해도 되나.....“

 

 진짜 끈질기네. 이렇게 된 거 그냥 계속 이야기 하지. 뭐, 그래도 대충 느낌이 왔다. 아마도 초등학교와 중학교 사이, 초등학교 6학년 말 쯤에 [레비]라는 바이오로이드와 일이 있었겠지. 이어지는 남자의 말은 내 추측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초등학교 때는 그렇지 않았거든. 그때만 해도 집에서 바이오로이드랑 같이 지냈던 거 같은데...... 갑자기 중학교 들어오더니, ’그런 건 안 써.‘ 라면서.....“

 ”바이오로이드인가요?“

 ”어, 그것 때문에 따돌림도 당한 적도 있었으니까.“

 ”따돌림....이요?“

 

 따돌림이 있었다고? 상상이 잘 안 가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돼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고 하더라고.“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그 일의 어디가 따돌림의 이유가 되는 거죠?“

 ”그때 바이오로이드를 누나라고 소개했던 모양이야. 그거 때문에 그 친구들하고 싸웠대.“

 ”아.....“

 

 그 누나라고 부른 바이오로이드가 아마 레비겠지? 누나라고 부를 정도면 사이가 좋았다는 뜻일텐데...... 정말로 죽였을까? 아닌거 같은데......

 

 ”그런데 왜 말투가 전부 전해들었다는 듯한 내용이죠?“

 ”실제로 전해 들은 거니까. 걔하고는 그 일으로 친해졌거든.“

 ”그 일로 친해졌다고요?“

 ”직접 보여주는게 빠르겠네.“

 

 남자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지갑에서 종이를 꺼내 나에게 건냈다.

 

 ”이건...?“

 

 종이는 명함이었다. 명함에는 [바이오로이드 인권 단체]라고 적혀있었다.

 

 ”우리 부모님이 활동하시는 단체야.“

 ”그런가요......“

 ”뭐, 지금 나는 부모님하고는 생각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 일이니까.“

 ”혹시 그 바이오로이드의 이름을 아시나요? 아니면 특징이라도 말해주시면 고맙겠는데요.“

 ”글쎄다...... 10년도 더 된 일이라 그런지, 기억이 잘...... 으음... 빨간색 머리카락은 기억나네. 그리고 가슴이 컸어.“

 ”......저질.“

 ”너가 물어봤잖아.“

 

 그냥 밝히는 거였나. 하긴 아까 콘스탄챠도 힐끔힐끔 가슴에 시선을 보냈고...... 그런데 가슴 큰 빨간머리 바이오로이드라...... 빨간 머리..... 빨간 머리..... 일단 나이트 앤젤은 아니고, 빨간 머리 거유라......메이? 펜리르? 으음.....

 

 ”다른 특징은 기억 안 나시나요?“

 ”다른 특징? 으음...... 아! 안대를 끼고 있었어. 오른쪽 눈인지 왼쪽 눈인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눈 한 쪽에 안대를 끼고 있었다는 건 기억나.“

 

 안대? .....아니, 좌우좌는 아니겠지. 눈에 이상이 있는 바이오로이드를 구해온 건가? 

 

 ”혹시 기종도 기억이 나시나요?“

 ”글세. 아까 말했다시피, 초등학교 때 집에 몇 번 놀러가서 본게 다라.....“

 ”? 중학교도 같이 다녔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건..... 맞는데......“

 ”초등학교면 몰라도 중학교 때 일은 기억할 수도 있지 않나요?“

 ”......“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 말을 못 한다는 느낌이 아닌, 말을 하지 않으려한다는 분위기였다.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걸까. 그러면 내가 말 할 수 있게 해 줘야지.

 

 ”죽었나요?“

 ”...... 치웅이가 얘기했어?“

 ”...뭐, 그렇죠.“

 ”그런가.... 그러면 얘기해도 될려나?“

 

 

 남자는 다 식은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말했다. 이번에는 얼굴이 찌뿌려지지 않았다. 컵을 내려놓은 자리 옆에는 설탕 봉지가 있었다. 

 

 ”중학교에 올라와서, 사람이 바뀐 것처럼 성격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아까 했지?“

 ”네. 들었습니다.“

 ”성격이 까칠하다고 해야하나, 냉소적으로 변했다고 해야하나. 여하튼 성격이 완전히 바뀌어서 말이지..... 덕분에 친구도 별로 없었어.“

 ”중학교 때도 따돌림을 당했나요?“

 ”그건 아냐. 따돌림은 초등학교 4~5학년때 없어졌어. 중학교때는 ....본인이 다른 사람들을 따돌렸다는 느낌이었어.“

 ”그건 무슨.....“

 ”어쨌든, 그래서 나는 중학교 때도 그 녀석의 몇 안되는 친구였어. 덕분에 집에 갔더니....“

 

///

 

 - 야. 너희 집에 바이오로이드 하나 있지 않았냐? 어디 갔어?

 - 죽었어.

 - .....뭐?

 - 죽었다고.

 - ......

 

///

 

 ”이러더라고.“

 ”......“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다. 애매하다. 조금만 더 들으면 될 것 같은---

 

-띠리리리~~~!

 

 ”아, 잠시만. 전화가 와서요.“

 

 남자는 호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내 받았다.

 

 ”네, 네....네?! 네.... 네, 알겠습니다. 하아......“

 ”무슨 일이죠?“

 ”미안한데 나는 가봐야 할 것 같아. 회사에서 부르네..... 그 가방이랑, 내가 만나러 왔었다고 치웅이한테 전해줘. 그러면 먼저 가볼게.“

 

 남자는 급하게 일어나더니 출구로 나갔다. 나는 다 식어버린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셨다. 달콤했다. 그리고 커피를 다 마신 뒤 시간을 보자 7시 10분 전이었다.

 

 ”이제 들어가도 될려나.....“

 

 시간도 거의 3시간 쯤 지났고. 이제 집에 들어가도 괜찮겠지.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둘다 머리도 식었을테고..... 당사자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나는 카페 밖으로 나와서 집을 향해 걸어갔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도 덕분에 길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지금 내 위치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건 조금 불편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편리한 기능이었다. 기분은 조금 이상하지만.

 

 ”어라?“

 

 그렇게 길을 걸어가던 중, 대로에 사람들이 단체로 행진을 하고 있었다.

 

 ”바이오로이드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일자리를 보장하라!!!!“

 ””””보장하라!!!!““““

 

 팻말을 든 채로 걷고 있는 많은 사람들. 가장 앞에 있는 사람이 외치면, 다른 사람들이 따라서 외치고 있었다. 팻말의 써진 글들도 살벌하기 그지 없었다.

 

 바이오로이드는 기업의 착취를 위한 도구라느니, 바이오로이드를 전부 없애버리고 인간의 시대로 되돌려야 한다느니..... 저 사람들 눈에 띄면 여러모로 골치 아플 것 같았다. 나는 가만히 서서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바이오로이드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일자리를 보장하라!!!!“

 ””””보장하라!!!!““““

 

시위대는 도로 한복판에 서서 시위를 계속했다.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도로를 지나는 건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집에 갈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았다.

 

 ”....으음....“

 

 시간은 어느새 해가 져서 발갛게 노을이 지고 있었다. 지도에 의하면, 시위대가 점거하고 있는 저 대로를 지나지 않고 내가 집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 어두컴컴하고 협소한 뒷골목이었다.

 

 ”.......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나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골목길을 걸어나갔다. 잠시 갈래길이 나오면 멈춰서 방향을 확인하고, 걷고, 다시 갈래길이 나오면 방향을 확인하고를 반복했다.

 

 골목길은 매우 복잡했다. 그 길이 이 길인지, 저 길인지 헷갈렸다. 지도가 아니었다면 분명히 길을 잃고 해멨을 것이다. 그렇게 몇 분 동안의 미로 찾기가 끝나고, 이제 남은 것은 쭉 직진만 하면 되는, 간단한 길만 남았다. 

 

 이제 곧 집에 도착할.....

 

 ”잡았---“

 ”깜짝이야!!!“

 ”커헉?!“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끌어 안았다. 내가 깜짝 놀라 몸을 돌리자, 팔꿈치가 그 사람의 코를 때렸다.

 

 ”으으으......“

 ”괘, 괜찮....아니, 당신 누구야? 갑자기 무슨.....“

 

-퍽!!!

 

 둔탁한 소리가 머리 뒤에서 들린다. 뒷통수가 얼얼하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으...아.....“

 

 머리가 얼얼하다. 뒷통수를 무언가에 얻어 맞은 것 같다. 점점 정신이 흐려진다.

 

 ”야! 똑바로 안해! 제대로 해야지!“

 ”미, 미안..... 손이 떨려서.....“

 ”으으... 코가....“

 ”지금 코가 중요해? 저것만 파는 데 성공하면 치료비는 몇 번이라도 낼 수 있다고! 빨리 만나기로 한 장소......“

 

 3명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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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4자


이유 모를 폭력이 바닐라를 덮친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