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 다행이네.
일단은 큰 문제 없는 것 같아.
일단은.”
‘그건 또 무슨 뜻이야?”
리리스와 페로의 철벽 같은 경호 아래에서 닥터 둘이 내 뇌파 상태를 검사했다. 원래는 그 사진들을 본 사건이 있은 다음, 바로 심리 검사를 실시해야 했지만, 검사라는 행위 자체가 추가적인 의식의 불안정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표면적인 상태만 그 동안 말 없이 확인하고 있었다 했다. 이후, 아르망과 아스널 덕분에 심리적인 안정을 찾았다는 나와 리리스의 판단 아래에 닥터는 좀 더 심층적인 심리 분석을 시행할 수 있었다..
"뇌파 검사기 로그를 보면 별 다른 이상은 없는데…
그 지랄을 겪고 뭔 일이 없다는 게 말이 안되는데...
...
… … 그냥 엄살이었던 건가?
아니면 별 생각이 없는 건가?”
“오빠가 그 고생을 하는 걸 보고서도 그런 생각이 드니??
진짜, 너는 오빠한테 좋은 소리라고는 하나도 못하나 봐?
내 말이 맞지?
오빠, 저 애 말은 그냥 듣지 마. 내가 귀 막아줄게!
으이구, 우리 맘 약한 오빠가 언제 또 그럴지 내가 걱정이다, 걱정이야.”
"…흐흐, 둘이 잘 논다. 놀아.”
다크서클이 더 짙게 깔린 닥터가 그렇지 않은 닥터를 보고서 조소를 날린다. 이제는 저 아이에게서 이런 욕 한 마디 듣지 않으면 어색할 정도다.
“뭐?!”
“병신 같은 년이라 했다. 왜.”
“왜는 무슨! 내가 뭘 했다고 또 욕짓거리야!!”
또? … 평소에도 욕을 듣고 사나? 저 둘을 붙어놓은 것이 잘못된 거였을까, 걱정이 앞선다.
“여기 와서 로그 검사랑 뇌파 추출은 내가 다했지.
니는 여 와서 한다는 게 그 인간 껴안고 애새끼마냥 꺅꺅대는 것 말곤 없지 않니?”
"흥! 심리 치료에서는 환자의 정신 상태가 최우선인 건 몰라서 그러나 봐?
그 차가운 패치는 언제까지 오빠 머리에 붙여놓을 건데?
치료기기의 온도와 환자의 심리 상태에 대한 논문은 귓등으로 읽었나 보지?”
“아주 염병을 한다. 염병 지랄을 해.
그럼 니가 그러고 안고 있으면 환자 심리 상태가 더 나아진다니?
이건 자신감이 지랄 맞게 높은 건지, 아니면 그냥 뻔뻔한 건지 모르겠다, 야.”
그러자 내 품에 있는 닥터가 씨익 웃으며 내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어때? 오빠?
이렇게 안고 있을 게 있으면 더 안심이 되지?
그게 나같이 귀여운 여동생이라면 더 그렇지 않을까?”
"하하... 하... 그... 렇지..."
"… 에휴, 씨발...”
계속 로그를 살펴보던 닥터가 잠시 화장실로 향했다. 헛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면 좋겠다.
"후후, 우리의 사랑이 저 싸가지 없는 애를 물리쳤다!”
"… 이래도 돼?”
“괜찮을 걸? 쟤는 저러고 가서 술 한 번 마시면 다 싹 잊더라고?
술은 왜 마시는 거야? 그 쓰고 맛대가리도 없는 거.”
“다 마시고 싶은 이유가 있겠지.”
“난 잘 모르겠는 걸?”
난 어린 닥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는 아마 영영 모를 거야.”
화장실에서 또 다른 닥터가 나왔다. 다크서클이 아까보다 더 짙게 내려 앉은 것 같았다.
"… 왜, 그 지랄 맞은 오빠 짓거리는 이제 끝이야?
제발 부탁이니까
더는, 하지마.”
"아, 알았어...”
... ... 난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왜 나한테 그럴까.
"… 휴우… 그래, 상황 설명을 해줄게.
리리스 언니랑 페로 언니도 와서 같이 들으라고 해.
위급할 땐 당신보단 언니들이 머리 회전이 더 잘되니까.”
닥터의 말을 듣고 리리스와 페로를 불렀다. 문이 열리자마자 내가 본 것은 일그러진 둘의 표정이었다. 내 품에 쏙 들어와있는 닥터를 보고 들릴 만큼 크게 혀를 찬다. 그걸 본 닥터는 놀리는 건지, 신경 안 쓰는 건지 내게 더 달라 붙었다. 난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하나?
"흠… 그래, 뭐 하나 하나 설명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니까 결론만 말할 게.
일단 이번에는 별 일 없이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을 들은 리리스와 페로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리리스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아버렸다.
“휴우… 다행이네요. 주인님.
...
...
...
으윽… 페로? 저 좀 부축해줄래요?”
"네, 언니.
...
...
… 닥터, 근데 왜 '일단'이죠?
뒤에 더 붙일 말이 있나요?”
"… 뭐, 나도 이런 적은 처음이니까 잘 모르겠는데,
이론적으로만 보면, 문제가 없던 건 아니야.”
“또 머리 아프겠네...”
닥터의 말을 듣다 보면 얼마나 많이 머리를 잡아 뜯는지 모른다.
“그래, 그래. 당신 같은 일반인이 이해할 만한 내용은 아니니 그렇겠지.
근데 이번에도 그냥 넘어갈 거야?
내가 말했지? 그러다가 진짜 뒤질 수도 있다고?”
"… … 잘못했어요...”
진짜 말도 못하겠네.
"그래, 알면 됐어.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 동안 당신의 뇌파 상태와 심리 안정도 사이의 연관관계를 파악하려 했고, 진전이 없던 건 아니야.
덕분에 당신의 뇌파 변이도를 새로 정의하고, 신뢰도 99%에서 심리 상태와의 연결 방정식을 구했으니까.”
"… 99%?”
닥터는 똥 씹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 대충 믿을 만 하다고.”
"아… 알았어.”
"… … 다시 설명할게.
그 뇌파 검사기 덕분에 '일반’ 상태의 당신이 뇌파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었어.
그게 크기는 작아도 알 수 있는 건 꽤 많거든. 기능이 꽤 많아.
그런데 정작 중요한 기능에 하자가 있었지.”
“무슨 기능?”
“당신과 그 자식 사이의 뇌파 분리도 측정 기능 말이야.”
"… ?”
"그러니까, 당신과 그 개새끼 중 누가 더 의식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하는 기능 말이야.
원래는 당신의 뇌파와 그 자식의 뇌파를 분리해서 현재 상태가 어느 쪽에 더 유사한지를 기반으로 판단했단 말이야.
근데 뇌파는 감정, 심리 상태에 따라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거든.
근데 그 차이에 대한 보정을 하려고 해도 데이터가 없으니 할 수가 없었지.
그래서 이 기능 자체는 구현하긴 했어도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거야.
이번에도 경고음이 울리지 않았잖아.”
"… 그러네?”
“솔직히 이번 정도의 불안 증상은 단순한 증후군이 아니라 정신병 수준이었다고.
다시 한 번 주도권 변이 사태가 일어나도 이상하진 않았을 거란 말이지.”
"… … 엄청 위험했네?”
"… 참나... 자기 일인데 진짜 자각이 없네?
우리가 싫어? 그것도 아니면 그냥 살기가 싫은 건가?
어쩜 이렇게 세상 순수하지? 아니, 그냥 멍청한 건가?”
"… 으으으으...”
난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리리스와 페로는 미소를 지었다.
“나도 죽기는 싫거든.”
"… 그래, 이번에는 워낙 정신이 없었다고 참작의 여지가 있으니 별 말은 못 하겠네.
그래도 다음부터는 좀 생각하고 살아.
누가 준 건지는 몰라도 그런 스팸 메일이 오면 아무 생각 없이 열지 말란 말이야.”
"… ...”
"또, 또 침울한 표정 짓지?
그러면 문제가 다 해결돼? 에휴… 말을 말아야지.
… … 근데, 리리스 언니?
아직도 누가 보낸 건지 못 찾았어?”
리리스는 무전기 선을 베베 꼬면서 우물쭈물 말했다.
"… 그러게, 누군진 몰라도 우발적으로 한 건 아닌 것 같아.
상당히 계획적이었어.
복도에서도 사각지대를 통해서만 이동했던 것 같아.
주인님께서 어떤 휴게실로 가신 것은 알 수 있었지만… 그 시간에 누가 거기에 갔는지는…
… 죄송해요. 주인님...”
"… ...”
내가 여기서 발키리가 범인이란 사실을 말 해야 할까? … 아니다. 상황이 너무 이상하게 흘러가 버렸다. 발키리는 그저 내가 그 사실을 알기 바랬을 뿐이라 했다. 내가 이렇게 반응하지만 않았어도 발키리가 범인 취급 받았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한 번, 한 번은 더 믿어줘야 한다.
“너무 애쓰지는 마.”
“어떻게 그렇게 하겠어요!
주인님께서 그런 일을 당하게 했는데...”
흥분한 리리스의 앞을 페로가 막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언니, 너무 흥분했어요.”
"그래도!”
“주인님 앞에서 추태를 보이실 건가요.”
"… ...”
“언니가 흥분하신 마음은 알지만, 지금은 냉정하게 말씀을 드려야 하는 때에요.”
“… 그래, 네 말이 맞네. 페로.”
페로는 양 손을 가지런히 자신의 앞으로 모으고는 내게 말했다.
"주인님, 이번 일은 엄밀한 의미에서 테러에요.
저희는 그저 주인님께서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계신 것일까 염려스러울 따름이에요.”
"… 테러...”
“그 일 때문에 주인님께서는 며칠 동안 업무도 보지 못하셨어요.
다른 분들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그 기간이 더 늘어났어도 이상하지 않았겠죠.
물론 주인님의 업무는 저희가 하려면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일은 더 나갔다면 단순히 심리적 문제가 아닌, 외적 상해를 입힐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상해?”
닥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쉽게 말해서 당신 안 죽은 게 용하다고.
우리가 그 자료들을 왜 당신한테 알리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
응당 사령관이라면 알아야 할 자료들을 당신에게 안 보여준 이유가 뭘 것 같아?”
“그 정도로 상세한 피해 보고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일으킬 정도로 심각한 자료에요.
저희도 그 위험성을 인지해 주인님께서는 그 자료에 접근할 수 없게 만들었던 거에요.
애당초 바이오로이드인 저희가 만든 자료는 처음부터 주인님께 보여드릴 생각이 없었어요.
평범한 사람과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는 안정된 심리 상태에서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수준이 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주인님께 보고드리기 위한 다른 형식을 만들어야 했지만, 주인님께서 여기 익숙해지신 다음 해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누군가 이렇게 일을 터트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그래, 그 자료에 대한 권한이 있는 언니들은 전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어.
그런데 누가 그걸 보낸 걸까?
아니, 그걸 보낸 의도가 뭘까?
당연히 당신한테 악의를 가지고 있는 거 아니겠어?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당신도 무사하진 못했을 거야. 알아?
당신이 이 지경이 될 걸 뻔히 알았으면서도 그걸 알려준 저의가 뭘지 궁금하지도 않아?”
"… ...”
"주인님. 이건 주인님께서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에요.
단순히 몰랐던 사진 몇 장 본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고요.
철충이 저희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했을 수도 있고,
외부에 있는 제 삼자가 이런 범죄를 시도했을 가능성도 있어요.
저희는 지금 모든 가능성을 염두해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요.
… 시티가드가 없으니, 저희 컴패니언이 맡아 할 수 밖에 없죠.”
"그러니까, 당신이 뭘 알고 있으면 빨리 말하는 편이 좋다고.
어때, 말할 생각이 있어? 아니면 정말 아무 것도 몰라?”
닥터가 볼펜을 툭툭 책상에 튀기면서 말하고 있다. 말 한 마디 하나 빠질 것 없이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발키리가 했던 말이 도저히 잊혀지지가 않는다. 이걸 알려주면 나도 덩달아 나쁜 놈이 될 것 같았다. 내가 아니면 이 애들이 고생할 일도 없다. 말해야 하는데… 말해야 하는데…
"… 주인님?”
리리스가 내 손을 잡았다.
“주인님께서 말씀하시기 싫다면, 하지 않으셔도 돼요.
… 힘든 기억을 저희 때문에 굳이 꺼내지 마세요.”
"리리스...”
“리리스는 언제나 주인님의 편이랍니다.
여기 있는 페로도, 닥터도 말이에요.”
닥터가 손사래를 쳤다.
"나, 난 빼줘.
그런 건 오글거려서 못하겠으니까.”
내 품에 있는 닥터가 저 닥터의 말을 끊으면서 말했다.
“난 오빠 편이야!
저기 있는 늙은 애랑 다르게 머리도 쌩쌩할 걸?
내가 더 도움 될 거야!”
"주인님, 저희는 그저 저희가 주인님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지 말씀 드렸을 뿐이에요.
그러니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으셔도 돼요.
주인님께서 좋으시다면, 저흰 괜찮아요.”
"… … 알았어.
그래도 너희가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아무 것도 안 할 수는 없겠지…
...
...
… 나중에 기억 나면 말할게. 기억 나면.”
"… 감사해요.
… … 닥터? 아까 하려던 말은 다시 해줄래?
아직 다 말 못 했잖아.”
리리스가 웃으면서 닥터에게 말을 이어가길 종용했다. 닥터는 못 이기는 척하면서 계속했다.
"후우… 그래, 솔직히 이번에는 그 검사기의 경고음이 울릴 줄 알았어.
그런데 그러지 않았지.
그럼 둘 중 하나겠지?
당신의 뇌파가 유의미할 만큼 변동하지 않았거나,
우리가 측정한 뇌파의 변이값이 기준치보다 너무 작았거나.”
"… 그렇겠지?”
“그래서 로그를 쭉 보니까 후자라는 걸 알 수 있었지.
뇌파가 격심하게 움직이긴 했어.
그나마 전체 비율로 따지면 그리 큰 비중은 아니었으니 다행이지.”
“그러면 괜찮았던 건가...?
“… 전에 철충 놈 기억하지?”
"응.”
“그 놈이 이상한 파장을 내뿜는 기기 같은 걸을 가지고 왔던 것도 말이야.”
"맞아, 그 때는 포츈이 부숴버릴 뻔 했지.”
“그래, 그 때 안 부쉈으니 다행이지.
덕분에 당신이 그 파장에 다시 노출되면 어떻게 되는지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었어.
그 결과로 나오는 뇌파 변이도도 같이 측정할 수 있었지.”
“결과가 어떤데?”
“당신이 이번에 겪은 일로 발생한 뇌파 변이도가 시뮬레이션 값의 68%였어.”
"… ??? 조금 애매하지 않아?”
"68%라고.”
그 말을 들은 리리스와 페로는 기겁을 하면서 숨을 쉬었다.
"그… 그 정도로 높았나요...?”
“그럼 주인님께서 정말로...”
"… 언니들 반응 보이지?
이게 정상이야.”
"… ...”
“하아… 그러니까. 원래는 이런 귀찮은 짓도 안 했을 거야.
그런데 이게 어디 전례가 한두 개라도 있어야 말이지.
고작 사진 몇 장 본 걸로 이렇게나 불안정해질 만큼 유리 멘탈인 사람인데, 감지하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기능 오류지.
경고음이 안 울리면 더더욱 안 되고.”
“그, 그럼 어떻게 하게?”
“뭐 어떻게 해?
뇌파 검사기의 역치값을 아예 확 내려버리면 괜찮겠지만, 그러면 이 복잡한 걸 뜯어 고쳐야 하고,
그 보다 더 쉬운 방법이 있지.”
“쉬운 방법?”
“그냥 당신의 뇌파값을 크게 증폭시키는 거야.
마이크랑 스피커 마냥.
그건 그냥 그 검사기에 기능만 추가하면 되니 조금은 더 간단하지.”
"… 그걸로 되는 거야?”
“역치값을 줄일 수 없으면, 검출값을 키우면 되잖아.
뭐, 이것도 문제가 있으면 다시 만들면 돼. 걱정할 일도 아니야.”
"… … 괜찮을까?”
"이론적으로는.”
"… 그런 말을 하니까 더 불안한데?”
“일단 증폭기를 끼우면 뇌파를 엄청나게 키울 수 있을 거야.
반대로 작게 줄일 수도 있을 거고.
키우기만 하면 되는데, 혹시 모르니까.”
“너무 막 설계하는 거 아닌가...”
“하아…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만 작동하면 상관없지.
개선할 수 있는 다른 기능들도 있는데, 이 기회에 다 잡아야지.”
"… 맞는 말이야.
어차피 닥터말고는 못할 일인데, 내가 뭐라 할 수는 없지.”
“아무튼, 그렇게 하면 당신이 불안정해질 때 당신에게서 나오는 뇌파가 더 커질 거야.
… 정확히 말하면, 입력되는 뇌파의 크기가 커지는 거지만.
파형이나, 진동수는 변함이 없을 거야.”
“그러면 된 거야?”
“몇 가지 조정만 더 커지면.
그리고 만들다 보니까 그 뇌파 컨트롤 기능은 당신에게도 주는 편이 나을 것 같더라.
그러니까 이번에는 그냥 들고 다니지만 말고 써먹을 수 있게 배우라고.”
"내가? 굳이 그래야 돼?”
"… … 리리스 언니?”
닥터는 의자를 빙그르르 돌리면서 리리스 옆으로 갔다. 리리스의 등을 툭툭 치면서 리리스에게 발언권을 넘겼다.
“… 저희가 닥터에게 요청했어요.
주인님께서도 그런 기능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왜? 괜히 어렵게 만든 거 아닌가?”
"… 그건 닥터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이유를 들으면 주인님께서도 이해해주실 것이라 믿어요.”
“이유가 뭔데?”
“저희 바이오로이드가 어떻게 주인님을 다른 인간들과 구분하는지 아시나요?”
"뭔데?”
“한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 가지는 뇌파가 있어요.
웃을 때, 울 때마다 달라지는 그 사람만의 무언가가 저희는 느껴져요.
닥터가 이 검사기의 뇌파 추출 원리가 저희가 주인님의 뇌파를 감지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을 때 직감했어요.
주인님의 뇌파를, 주인님을 더 잘 기회일 것 같다는 생각 말이에요.”
"… 조금 어렵네.”
“전혀 어렵지 않아요.
그 검사기에서 뇌파가 커지면, 저희도 똑같이 커진 주인님을 느낄 수 있다는 거에요.
주인님께서 슬프실 때, 기쁘실 때, 어느 때에도 주인님의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을 거에요.
그래서 부디 주인님께서 원하실 때 저희와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그 기능을 만들어 주길 부탁했어요.
… 어쩌면 저희의 욕심이겠죠.”
"… ...”
리리스의 간절한 부탁을 듣고 나는 고민할 생각도 없이 닥터에게 부탁했다.
"닥터, 해줄 수 있어?”
"그래. 어려운 일도 아닌데.”
“꼭 해줘. 부탁이야.”
"… ...”
변함없는 표정으로 닥터는 나를 쳐다보았다. 이젠 저 표정에도 정들겠다.
"… 오글거려...”
“내가 왜!”
"… … 그냥.”
"… 넌 그냥 내가 싫은 거지…?”
“아무렴 어때?”
“난 미움 받을 짓은 안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 그래. 내가 병신년이 탓이지 뭐.”
닥터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건 아니어도...”
"알아, 알아, 뭔 말이 그렇게 길어.
만들어 달라고?
이미 여기 만들어왔으니까 가지고 가.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리리스 언니랑 가서 조작법은 알아서 배우라고.”
리리스는 얼굴을 붉혔다. 나도 헛기침만 뱉었다.
"흠, 흠… 따로 조심해야 할 건 없어?”
“어차피 가지고 놀라고 만든 기능이니까 고장 날 일은 없겠지.
… 대신 당신도 알겠지만 올릴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올리지는 마.
오버쿨럭 돌리면 망가질 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래,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 그리고…
… 아, 당신이 또 멋대로 굴까봐 경고 하나 해줄 텐데,
뇌파를 계속 키우면 당연히 경고음의 역치값을 넘기는 것도 쉽겠지?
그리고 그 경고 단계는 우리가 조정을 해서 이 이상은 위험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것도 알겠지?
그럼 당신이 또 생각 없이 올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 ??
경고음이 나겠지?”
“그리고 그 경고음이 무슨 뜻이라고?”
"… 위험하다?”
"응. 맞아.
그니까 생각 없이 막 만지고 있지 말라고.
뇌파 자체를 확 키워버릴 수록 불안정도가 증가해서 의식 변환이 일어날 수 있어.
필요할 때는 그 기기가 자동으로 검출값을 증폭시켜서 받을 테니까.
너무 헛짓거리 하지마.”
“… 너무 위험한 일 아니야?
출력이니 뭐니 해도, 결국은 이렇게 되면 이건 검출기가 아니라 의식 변환기잖아?
… 위험하지 않을까?”
“어디까지 이론의 영역이니까.”
닥터는 시니컬하게 웃으며 넘겼다. 내 품에 있는 닥터가 들어와 말을 꺼냈다.
"후후, 그만큼 오빠를 믿고 있겠다는 뜻이야.”
"… 지랄...”
“말은 저렇게 해도 말이지!
우리도 이렇게 위험한 건 주고 싶지 않은데, 출력 조절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여기 있으면 위급할 때 우리가 바로 달려갈 수도 있고, 우리가 가기 전에 리리스 언니가 상황 정리를 해놓을 거고,
애당초 그 사태가 되기 전에 검출기가 상황을 판단할 수도 있고.
이론적으로만 그럴 수 있다, 수준이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오빠도 우리랑 헤어지는 건 싫잖아?”
"… 그래, 그렇게까지 말하면… 상관없겠지…”
"휴우… 당신도 뒤지기 싫으면 그런 짓은 않하겠지.
또 헛짓거리 하면 다신 이런 짓 안 할 거야.”
"… 알았어. 조심해서 다룰게.
이것도… 닥터가 준 선물이라면 선물이니까.”
"어머? 오빠도 참!”
내 품에 있는 닥터는 부끄러워하며 내 가슴만 주먹으로 퍽퍽 소리가 나게 친다. 그러는가 하면 저기 있는 닥터는 또 못 볼 것 본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생긴 건 똑같은 이 둘의 기묘한 차이가 내가 여기서 본 가장 큰 미스터리다.
"… 사람 속 뒤집어놓는 말은 그쯤에서 끝?”
제발 그만 하라는 듯한 표정의 닥터를 보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끝.”
"좋아. 그럼 오늘 검사는 여기까지 하자.
나도 좀 쉬어야지. 당신도 좀 쉬어야 할 거고.
리리스 언니, 이 인간 좀 빨리 데리고 가줘.
가서 이 검출기 컨트롤러 조작법도 배워보고.”
“알았어, 고마워 닥터.”
나는 리리스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축 같은 걸 받을 필요도 없는 몸 상태이었지만, 그래도 거부하지는 않았다.
“… 아, 맞다. 그거 물어보려고 했는데.”
“뭘 또?”
“전에 아스널이 알려주던데, 내 ‘몸’을 새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면서?
내 유전자를 기반으로 해서 말이야.
그거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려고.”
“(… 주인님께서 그걸 어떻게 벌써…??)”
옆에서 리리스가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 그거?
아스널 언니가 해달라고 하긴 해서 방법은 찾았는데, 왜 갑자기?”
“방법을 찾았다고? 어떻게???”
“당신 대가리에서 당신 유전자를 찾은 다음에 그걸 기반으로 새 몸을 만들면 되지.
이게 어려워?”
“아, 아니. 내 유전자를 어떻게 찾았냐는 뜻인데…
닥터가 또 한숨을 쉰다. 이젠 저 한숨에 정이 들 지경이다.
“후우… 이상하지 않아?
뇌파는 분명 물리적인 뇌의 신경 전달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종속적인 산물인데, 왜 당신이란 사람의 뇌파만 새롭게 따-란 하고 생겨났는지 말이야.”
“그러게?”
“그래, 뭐, 원인은 나도 모르니까.
아무튼 그 뭔지 모를 원인 때문에 당신 뇌파가 만들어졌다고 하자.
근데 왜 그게 아직도 안 사라지는 신기하지 않아?
당신의 뇌파는 단순히 나타난 게 아니라, 유지되기까지 하고 있다고.”
“… 듣고 보니 그러네??”
“그래서 생각을 해봤지.
당신의 뇌파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유지되는 이유는 찾아볼 수 있겠다고.
지금 내 눈 앞에 실험체가 떡 하니 서있잖아.”
“… … 왠지 서늘하네…”
“그래서 당신이 자고 있을 때 몰래 좀 살펴봤어.
마취제랑 수면제랑 복용해서 당신이 자고 있는 틈을 타 뇌 전체를 스캔 했지.”
“굳이 그렇게까지…?”
“하아… 지휘관 언니들이 당신 모르게 해달라고 했어.
원래 이것도 비밀인데, 이미 다 들통났으니 상관없겠지.”
“… 리리스?”
“… … 네…”
“이건 또 왜 비밀이었던 건데?”
“… … 죄송해요…
그냥… 주인님께 깜짝 선물로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
…그리고… 주인님의 몸 형태를 어떻게 할지 논의하느라 알려드리지 못 했어요…”
“… … 내 몸을 자기들 마음대로 만들려고 했어?”
“아, 아뇨!!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 그냥 저희들의 의견을 모아서 주인님께 전달해드리고 싶어서…”
“… 그래, 알았어.
너희들이 나한테 나쁜 짓을 할 성격은 아니니까.”
“물론이죠!”
리리스가 이렇게까지 당황해 하는 표정은 처음이었다. 우물쭈물 입도 오무리고 있는 모습이 매우 귀여웠다. 하지만 아무리 선물이라 해도 이 정도 선물을 깜짝 선물로 받으면 나도 놀랄 수 밖에 없단 말이다. 다음부터는 좀 미리 알려주면 좋을 것 같다. 아스널이 알려줬으니 다행이지.
“그래, 나도 이제 말 해도 되나?”
“응. 계속 설명해줘.”
“아무튼 그렇게 스캔을 떠보니까 역시 유전적 거부 반응이 일어나는 부분이 군데군데 있더라고.
그런데 전체적으로 보면 이상하리만큼 안정적이야.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 봤어. 연구를 해 봐야겠지.
근데 뭐, 우리 목적이 그건 아니니까, 그 거부 반응이 일어나는 곳을 토대로 뇌파와의 상관 관계를 실험해봤어.
그리고 당신의 뇌파가 유지되는 원리가 그 거부 반응이 일어나는 곳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 수 있었지.”
“그럼 그 부분이 내 유전자란 뜻인가?”
“그렇겠지.
뇌파도 지문처럼 사람마다 다르고, 해당 부분의 유전자가 그런 뇌파를 유지시키고 있으니까.
그럼 그 유전자가 당신의 것이란 뜻이겠지?”
“… 이게… 말이 되나…?”
“말이 되더라고? 나도 몰라.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그래도 너무 좋아하지는 마. 아직 문제가 끝난 건 아니니까.
해당 유전자를 베이스로 배양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걸 토대로 몸을 만드는 기관을 따로 찾아야 해.
내 기억이 맞으면… … 분명 한 번은 갔다 왔을 거야. 어딘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 !”
생체 재건 장치가 있는 곳. 에바의 기록이 있는 곳이었다. 분명 갔다고 하면, 그곳 말고는 없다. 그곳에 한 번 갔다 왔다는 건가!
“갔다 왔다고?!!”
“…? 으, 응. 갔다 왔지.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도 안 나지만.”
“그, 그렇다면 에바는! 에바 프로토타입에 대해서는 알아??!!
김지석은?? 생체 재건 장치를 사용했다면 분명 알 텐데?!!”
닥터는 놀란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뭐,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라비아타 언니가 알려주긴 했지만, 거기에 갈 수 있었던 건 거의 다 운이었다고!
그 수많은 보안 시설을 뚫은 것도! 그 위치를 알게 된 것도!
라비아타 언니가 그냥 나를 데리고 가서 연구할 기회가 있었을 뿐인데 내가 어떻게 알아? 그걸?
한국인지 어딘지 바다 근처였다는 사실 말고는 남아있는 기록도 없는데 어쩌란 거야!
라비아타 언니한테나 물어볼 것이지, 왜 나한테 큰 소리야…
에바는 또 뭐고? 김지석… 그 사람은 멸망 전에 유명했으니까 알긴 하는데…”
“… 뭐?”
에바를 몰라? 거기 들어가려면 에바에게서 좌표를 얻는 과정이 필수적일 텐데? 어떻게 이렇게 모를 수가 있지? 누군가 의도적으로 정보를 감추고 있는 걸까? 아니, 애당초 내가 알고 있던 게 맞기는 한 건가??
“에휴… 별의 아이니 뭐니 할 때부터 알아 봤어.
심리 상태는 몰라도 정신 상태는 나중에 검사를 다시 해야겠네.
아무튼! 그 개새끼가 몸이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시설이 있단 것만 라비아타 언니한테 듣고 가서 연구도 얼마 못하고 시술이나 했는데!
거기 들어가는 것도 억지로 열어서 간 거라 자원 부족으로 시설을 제대로 써먹지도 못했다고.
그래서 보고서고 뭐고 남길 세도 없었단 말이야.
하씨… … 이럴 줄 알았으면 위치 좌표만이라도 알아 놓으면 좋았을 텐데…”
“… … 에바 프로토타입… 몰라? 정말??”
“아, 모른다니까?
라비아타 언니한테 물어보라고! 난 그런 거 관심 없으니까!
그래서, 나중에 거기 위치만 알게 되면 당신 몸도 다 만들어줄 수 있는데 그걸 모르니까 이러고 있는 거라고!
왜, 당장 못하니까 불만이야? 뭐하면 당신 불알이라도 따로 만들어서 달아줄까?
왜 이렇게 사람 놀라게 만드는 건지…”
“아… 아냐. 미안해.”
내가 잘못 알고 있나? 뭐가 문제지? 라비아타는 분명 죽었다고 보고서에 나와있었는데? 안 죽었나? 닥터는 마치 라비아타가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한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라비아타는 나에게 엄청나게 분노하고 있을 것이 틀림 없다. 그렇다면 리리스나 다른 애들이 일부로 내게 알려주지 않고 있는 것도 설명이 된다. 어디까지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는 선에서. 당장 싸워야 하는 상대라면 나에게 알려줄 테니까. 라비아타가 우리와 싸우지 않을 이유가 따로 있는 건가?
… 아니다. 생간만 너무 앞선다. 일단이 이 몸에 대해서만 집중하자
“후우… 그래, 그럼 몸을 당장 만들 수는 없다는 거지?”
“그래, 그 장소에 대한 좌표나, 하다 못해 거기 기술만이라도 가져올 수 있으면
당신이 원할 때 언제든지 몸을 바꿀 수 있겠지.
자원도 아낌없이 투자할 테니, 리리스 언니와 비슷하거나 더 강한 신체를 만들 수도 있을 거야.
어디까지나 기술을 찾을 수 있다면.
근데 당신이 찾을 수 있을까? 라비아타 언니도 모른다고 했거든.”
“… … 찾아야지.
어쨌든 고마워. 덕분에 머리가 좀 상쾌해졌어.”
“왜? 이제 좀만 버티면 잔뜩 섹스할 수 있으니까?
임신도 잔뜩 시키고, 아주 신나시겠어?”
“…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부정은 못하겠네…”
“에휴… 그래, 그래도 고자보다는 짐승이 낫지.
안 그래? 리리스 언니?”
“… …”
“리리스? 괜찮아?”
나를 부축하고 있던 리리스는 어느새 내 팔에 몸을 기대고 있는 꼴이 되어 있었다. 리리스도 내 몸을 만드는 것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그래도 제법 긍정적인 진척이 있었다는 소식을 이렇게 직접 듣게 되니 긴장이 풀린 것 같다. 리리스가 닥터에게 감사를 표했다.
“… 고마워, 닥터.
고마워…”
“… 됐어. 오글거리는 소리하지마.”
“나도 주인님께서 몸을 되찾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 솔직히 안 될 거라 생각했어…
그래도… 그래도 방법이 있던 거구나…
주인님께서 원래 몸을 찾으실 방법이…
… 다행이야.”
리리스는 쓰러질 듯이 내게 몸을 기대었다. 그런 리리스를 팔로 기대어 되려 내가 리리스를 부축하는 꼴이 되었다.
“… 당신, 이제 궁금한 거 없으면 빨리 가.”
“알았어. 고마워.
방해해서 미안해. 이제 갈게.”
"그래, 가. 빨리.
… …
… 그래도 혹시나 우리 수사에 협조할 생각이 있으면 말하고.
이래 봬도 나도 080 기관 소속이었으니 도와주려면 도와줄 수는 있을 거야.”
"고마워. 나도 생각나는 대로 말해줄게.”
“명심해. 상대는 우발적으로 이런 짓을 한 게 아니야.
계획한 거라고. 이 지경이 될 때까지를.
당신만 노린 것이 아닐 수도 있어. 당신이 무너지면 오르카 호 시스템 전반에 타격이 가니까.
그런 짓을 계획을 한 거라고. 무슨 뜻인지 알지?”
"… … 알지.
말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잖아.
… 조금만 시간을 줘. 천천히 생각해보면 떠오를 수도 있겠지.”
"그래, 그래 주면 좋겠어.”
리리스의 부축을 받으며 방 밖으로 나갈 때 닥터가 나를 불렀다.
"아, 언니들은 잠깐만 밖에 있어봐.
이 꼬맹이도 같이 데리고."
"... 야, 나는 갑자기 왜?"
"아, 아무튼 꺼지라고.
언니들은 방 밖에서 조금만 기다려줘."
"... ??
그래, 알았어..."
리리스는 페로를 보면서 같이 가자고 눈치를 주었다. 내 품에 있는 닥터가 안 나가겠다고 땡깡을 쓰는데, 그것을 리리스는 자기 팔 힘으로 웃으면서 떼어냈다. 리리스의 어깨 위에서 버둥거리는 닥터를 보고 있자니, 감옥에 끌려가는 사람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는 듯 했다. 아무튼, 리리스가 밖으로 나가고 문이 닫히자 닥터는 입을 열었다.
"... 후우... ..."
"왜? 뭐 심각한 거 있어?"
"아니, 그건 아니고...
...
...
...
... 그 임신 있잖아?"
"응, 그건 왜?
바이오로이드랑 사람 사이에서는 애를 만들면 안 된다고?"
"아니, 그건 아닌데...
...
... 하, 씨발..."
"왜 그러는데?"
닥터는 말 없이 머리만 계속 긁었다.
"...
...
... 그냥 그것만 명심해.
다른 언니들, 특히 지휘관 언니들 앞에서 아이 이야기는 최대한 안 꺼내는 게 좋을 거야."
"아스널은 괜찮아 보이던데?
막 배도 통통 치고 언제 임신할지 어쩔지 그런 얘기도 잘만 하던데..."
"... 그 언니는 원래 그러니까 상관없긴 한데...
... 워낙 옛날 일이니까 다들 신경 안 쓰는 것 같기도 하고...
...
...
... 그래도 아이, 특히 남자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마.
기억하는 게 좋을 거야."
"... ... 갑자기?"
"대답이나 해."
"... 알았어."
"후우... ... 그래, 그럼 됐어.
...
...
지금 이야기는 그냥 신경 꺼.
사진 사건 범인이나 찾을 생각하라고. 알았지?"
"... 알았어."
닥터는 등 뒤에 달린 기계팔로 내게 나가라는 신호를 주었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책상 위에 놓인 뇌파 검출기를 챙겼다. 개선된 것이라면서 외견은 딱히 변하거나 하진 않은 모양이다. 이후 방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리리스와 페로의 도움을 받으며 난 내 방으로 향했다. 다크서클이 조금 덜 내려온 닥터가 내 방까지 배웅을 해주겠다는 것을 간신히 말리며 나는 내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 그보다 걱정인 것은 발키리다. 백 번 양보해서 나를 이 지경에 빠지게 하려고 했다면 이해는 된다. 아무리 긴 시간이 있어도 아스널처럼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오르카 호 전부를 노린 테러라면… … … 그럼, 나도 봐줄 생각이 없다. 나만이 아닌 전원을 노린 것이니까. 그만큼 정상적인 사태가 아니라는 것이니까. 그렇게 된다면… … 인정하긴 싫어도 발키리는 위험한 인물이다.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을 만큼 위험하다.
하지만 발키리가 내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면 결국 난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았겠지. 내가 이를 아는 것이 정말 필연이었을까? 그랬다면 발키리는 그저 내게 먼저 매를 맞게 해줄 기회를 준 미숙한 아가씨일 뿐이다. … 테러범과 미숙한 아가씨. 발키리는 어느 쪽에 있는 사람일까? 내 개인 정보까지 컴패니언이 살피기 시작한다면 금방 잡히게 될 것이다. 발키리와 연락한 기록이 남아있으니까. 그러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많이 있지 않다. 지키거나, 고발하거나. 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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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읏… … !! !!”
"리… 리리스?”
"주… 주인님의 엉큼한 생각이… ”
"페로까지...”
컴패니언 애들과 함께 뇌파 검출기의 조작법을 배우고 있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까지 간단한 컨트롤러에는 up/ down 버튼만 있었다. 옆에 UI가 수치를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보니 뇌파의 증폭/ 감소 수준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오늘은 직접 실험을 해보겠다고 리리스와 페로를 불렀다. 경호는 딱히 할 필요가 없으니 편한 복장으로 오라 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로 증폭되는지 5%로 맞추어 실험을 진행했다. 리리스와 페로, 둘에게는 어떻게 느껴지는 지 말해보라 했지만, 무엇이 바뀌었는지 감도 못 잡겠다고 했다. 그래서 50%로 확 올려버리니 이 상황이다. 둘 다 눈까지 뒤집어지면서 내 팔만 가녀리게 떨리는 팔로 부들거리며 간신히 잡고 있었다.
"10… 10%로 내려볼게.”
컨트롤러의 수치를 10으로 맞추었다.
"… 하아… 하아...
… … 주인님…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 ”
"… 저희 셋뿐인 은밀한 장소지만… 아직 때가 아니지 않나요… 주인님...”
"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데!”
"… 뻔하죠? 페로? ”
“후후, 물론이죠, 언니.”
입 밖으로 야릇하게 흘러 나오는 침을 간신히 닦아내며 둘이 서로를 향해 말했다. 이럴 때를 보면 참 자매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왜 하필 이럴 때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걸까?
"…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다 보이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눈치라는 게 있으니까요.”
"하아… 하아… 그… 그렇죠. 주인님의 경호는… 그런 감각도 필요하니까요.
언니도 그렇고, 저도 그렇죠…”
"… ? 이해가 안 되는데?”
아직까지도 내 뇌파에 취해 있는 페로를 뒤로하고, 보다 빨리 숨을 고른 리리스가 설명해주었다.
“음… 예를 들어 볼까요?
아침에 한창 싸운 두 연인이 같은 시간에 출근하려고 했어요.
하필이면 출근 시간도 똑같아서 같은 엘리베이터에 타서 한참을 같이 있었어요.
그럼 어떤 기분일까요?”
"좀… 그렇지?”
"그렇죠? 눈만 봐도 화내고 있단 게 뻔히 보이고,
숨 쉬는 것도 왠지 평소보다 거칠고,
의도적으로 안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계속 지켜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은 한 마디도 안 하지만 그런 게 다 느껴지죠?”
“… 맞아.”
“주인님의 뇌파도 똑같아요!
설명은 없어도 왠지 모를 감각, 주인님께서 느끼시는 여러 생각들을 여과 없이 느낄 수 있게 해줘요!
그런 걸 감추는 훈련을 사람이 할 수는 없잖아요?
물론 방금처럼 뇌파를 증폭하지 않으면 저희도 전혀 몰랐을 거에요.
그리고 뇌파에서 느꼈던 그런 느낌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저희처럼 움찔거릴 수 밖에 없을 거에요…
방금은… 그만큼 황홀했답니다…”
리리스는 자기 양 볼을 비비면서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워하는 리리스의 모습은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자기 얼굴에는 사람 마음을 홀릴 만한 파괴력이 있다는 걸 리리스는 알까?
“그래도 방금 같은 반응은 잘 이해가 안 되는데...?”
"… 조금 상스러운 비유긴 하지만…
… 그래도 좋으시다면… ”
리리스는 눈만 간신히 나를 향해 보며 내 동의를 구했다. 페로는 여전히 몸 이곳 저곳을 비비며 스스로를 가라앉히고 있었고, 리리스도 조금이지만 숨을 몰아 쉬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음… 뭐라 할까요…
가끔 제가 주무시고 계시는 주인님을 깨우러 가면…
… 그… 한껏 발기하고 계신 적 있단 거… 아시나요…?? ”
…?
“어… 몰랐는데…? 매번 바닐라가 깨워줬던 거 아니야??
그보다… 그거 적절한 비유 맞지??”
리리스는 눈까지 꼭 감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 그래. 근데 그게 무슨 뜻이야?”
“한… 10%쯤… 그러니까 지금 정도 상태는 딱 그런 감정이에요.
경호하기 위한 것이니까… 일이니까 딱 참을 수 있을 만한…?
주인님께서도 주무시고 계시니까 제 욕정에 마구 흔들릴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참을 수 있는 그런… 느낌이죠.
그런데 방금은… … …”
“방금은 뭔데?”
“… 그렇게 터질 듯이 발기한 주인님의 것을 제 볼에 생으로 비비는 기분이었어요…
전에도 느꼈지만... 정말이지, 주인님 생각만으로도 리리스는 참을 수가 없었어요…
”
“… …???
난 한번도 그런 적 없었는데…?”
“… … 있어요…”
“…??????
언제…????”
“… … 주무실 때… … 딱… 한 번…
… …
…
그, 그래도! 그냥 문지르고만 있었을 뿐이에요!!
사정이라거나! 그런 건 하나도 안 했어요!!
… … 할 기미도 안 보이셨지만… …”
“??????”
아스널만 위험한 줄 알았더니, 리리스도 위험한 애다. … 설마 페로도??
“아, 아무튼! 그런 감정은 어디까지나 주인님의 뇌파에 근거해서 나오는 거니까…
주인님께서 지금 그런 기분이시란 뜻이겠죠…
… 아닌가요…? ”
편안한 복장을 입고 오라니까 쇄골에 깊은 가슴골까지 다 보이는 와이셔츠를 입고 올 줄 누가 알았겠나. 페로는 치마 밖으로 삐져나온 꼬리까지 살랑거리면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데, 내가 이런 기분이 안 들면 정상이겠냐고! 그리고, 리리스의 이 눈빛. 이 섬찟한 눈빛을 언제 봤나 했더니 아스널이었다. 나를 이 악물고 유혹하려고 했을 때 그 입맛 다시는 표정이다. 아스널이 참고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 하긴 했지만 여기 있는 애들까지 그럴 줄은 몰랐다. … … 그래, 이게 정상이지. 내가 여기 온 것도 벌써 까마득한 일이니까…
“… 왠지 오싹한데...”
"후후후… 전혀 걱정하실 것 없어요…
리리스와 페로는 주인님의 무엇이든 전부
‘경호’ 해드릴 테니까요…”
“냐앙… 주인님…
”
부끄러워하던 표정은 어디 갔는지, 당장이라도 덮쳐올 것 같은 고혹적인 고양이 자세를 취한 둘을 보면서 나도 어쩔 줄을 몰랐다. 내 상황이 심각할 때만 해도 둘의 이런 모습은 상상도 못했는데, 내가 괜찮아졌다고 확언이 내려지자 마자 이러니 나도 고욕이다. … 그래, 포이를 안 불렀으니 망정이지. 그랬으면 이미 덮쳐지고도 남았다.
"나… 난 아무 것도 안 했다고...”
“그렇게 우람한 자지를… 저희 얼굴이 문지르고 계시면서도…
그런 말씀이 나오시나요...?
”
“냐… 냐냥…
!”
“난 문지르고 있던 적은 없다고...”
페로는 이제 말도 제대로 못한다. 왜 이렇게 진정을 못하지 했더니, 검출기가 어느새 리리스와 페로의 손에 있는 것을 보았다. 분명 10%로 맞춰놓았던 것이 어느새 40%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문지르고 ‘있다’는 게 이런 뜻인가? 그보다도 이런 물건을 남도 이렇게 쉽게 조절할 수 있게 만들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리리스..? 그거… 언제 가지고 간 거야...?”
“하아… 하아…
… 그런 감각을 느끼게 하셨으면서… 고작… 10%라뇨…
저희를 놀리시는 것도 아니고... ”
"그… 그래도 내 물건인데...”
“리리스도 주인님의 물건이랍니다”
“페로도 주인님의 물건이랍니다”
이미 말이 안 통하는 지경에 놓였다. 왜… 왜 유독 아스널을 만나고 나서부터 이런 일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아직 난 내 몸도 아니라고. 이 개새끼 몸을 쓸 생각은 추호에도 없단 말이다.
그러다가 문뜩 한 생각이 났다.
“리리스?”
“네에, 주인님”
“명령이니까, 그 컨트롤러 나한테 줘.”
그 순간, 리리스가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린 채,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컨트롤러를 주었다. 불쌍한 표정으로 명령 철회를 유도하는 건가? 뭐가 됐든 괘씸하다. 난 컨트롤러를 뺏으면서 말했다.
“리리스? 페로?”
“네에…”
“냐…냥… 쥬… 쥬인님…”
내 눈 앞에 있는 게 페로인지, 아니면 발정기인 펜리르인지 모르겠다.
“내가 괜히 미숙하게 이걸 써서 그런 기분 들게 해서 미안해.
그래도 이건 아직 내 몸이 아니란 거, 너희도 알잖아.”
“그… 그렇지만…”
“페로... 페로는 못 참겠어요…
”
“그래, 내 잘못도 있으니까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나는 컨트롤러의 값을 60%로 높였다. 그러고 둘이 반응하기도 전에 엎드리고 있는 둘을 양 팔에 하나씩 잡아 내 침대로 끌고가 던지듯이 눕혔다.
".... 쥬... 쥬인님....
”
“오늘은 이걸로 참자. 알겠지?”
난 리리스의 입술에 혀를 넣고, 페로의 아랫배와 둔부롤 두 손가락으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60% 이상 증폭된 뇌파가 둘의 머리 속을 천천히 헤집어 놓기 시작했고, 둘은 팔 뿐만 아니라 몸까지 떨어가면서 내 몸을 더듬었다. 리리스는 양 팔과 다리로 내 목과 허리을 부숴버릴 것처럼 꽉 잡았고, 페로는 내 팔을 떨리는 손가락으로 마구 할퀴어댔다. 어찌나 팔이 떨렸으면, 상처 낼 틈도 없이 떨고 있어서 오히려 내 팔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츄릅… 츄릅…
… 주인님… 리리스는…
”
“아직 괜찮아? 그럼 더 해야겠네.”
“으읍!!!! !!!!”
강도를 65%로 올렸다. … 아니면 66%였나? 내 몸에서 떨어지는 죽기라도 하는 듯한 아가씨 둘이 내 몸을 붙잡고 있다 보니 일의 자리는 대충 감으로만 맞췄다. 확실히 고급 기종인 리리스가 페로보다는 더 잘 버티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미 페로는 눈까지 전부 뒤집어지면서 이불 시트를 다 적시면서 절정을 맞이하고 있었으니까.
“미안해, 그래도 오늘은 이 정도로 참자?”
“쥬쥬인ㄴ
님
!!!!!!!!!!!”
아스널이 했던 것처럼, 리리스의 혀를 감싸가며 키스를 하다가 마지막에 깊게 호흡을 하고 날숨을 내뱉으니, 리리스는 그 숨을 전부 받아가며 성대한 오르가슴을 맞이했다. 파르르 떨리는 눈과 옷 안으로 손을 거칠게 집어 넣어 등골의 라인을 살짝 만지면서 타고 내려오면 다시 가볍게 절정하는 모습을 보니 당분간은 진정될 것 같다. 리리스가 기절하니, 와이셔츠가 이미 반쯤은 벗겨진 페로가 내 소매를 가볍게 끌어당겼다.
“주… 주인님…
저도 언니처럼.. ”
"… …”
입은 건지, 벗은 건지 모를 와이셔츠가 남자의 마음을 얼마나 뒤흔들어 놓는지, 페로는 절대 모를 거다. 리리스에게 했던 것처럼 페로에게도 진한 키스를 해주었다. 하지만 리리스와 달리, 내가 혀를 놀리기 전부터 이미 입 밖으로 혀를 길게 빼놓아 놓은 페로였다. 나도 그 모습에 잔뜩 흥분하여 절제를 잃기 직전까지 달려들었다. 페로는 리리스보다 좀더 거칠거칠한 맛이었다. 혀의 표면도 그렇고, 절대 곱게 절정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
쥬쥬이
…ㄴ…
님…
!!!”
... 겨우 진정시킨 두 아가씨가 내 침대 위에서 기절하듯이 자고 있었다. 자는 것과 기절한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호흡도 규칙적인 것을 보면 그래도 많이 진정을 한 것이겠지. 이 모습을 닥터한테 보여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컨트롤러를 남이 함부로 만지게 하면 이렇게 된다고.
그리고 난 이 증폭된 것에 별로 영향을 안 받는 것 같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 나한테서 나오는 뇌파를 증폭시킨 것이고, 난 내 뇌파를 검출하는 기관 같은 건 없으니까. 화면에는 89.2% 이상으로 올리면 위험할 것이라 했다. 이 애매한 숫자가 희한하게 신뢰감을 준다. 단순히 경고음이 울리는 것이 아니라 철충 사태와 비슷한 비정상적 의식 변경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이라 한다. 내가 의도적으로 이보다 더 심하게 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걱정이 되긴 한다.
… 그래도 다행인건, 내가 이런 식으로 ‘흥분’하는 건 별로 상관이 없다는 것 정도? 만약 이걸로 영향이 간다면 아스널이랑 했을 때 이미 바뀌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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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이것 참 요물이네…”
리리스와 페로의 그런 모습을 보고 난 후에 난 이 컨트롤러에 손도 안 대고 있었다. 증폭 비율을 0%로 조정한 다음, 그냥 그 상태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단순히 정비례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비율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모양이다.
“… … 죄송합니다… 주인님…”
옆에서는 경호하고 있던 페로가 쑥스러워 하는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평소라면 괜찮다면서 위로의 말이라도 해줬겠지만, 이번에는 나도 같이 부끄러워진다. 저 멀리서 리리스가 조용하게 소리치면서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자기도 내심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이 나쁜 리리스!! 그런 기회를 그렇게 멍청하게 날리면 어떻게 해!!!!!!)”
… 딱히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뻔뻔하다고 해야 할지, 당당하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컨트롤러에 대한 첫경험이 그런 것이었으니, 나도 모르게 이것만 쳐다보면 그 때 생각이나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 뇌파 증폭이 활성화되기라도 한다면 또 전과 같은 일이 발생하겠지. 계속 생각하고 있지만, 난 내 몸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절대 안 할 거다. 죽었다가 깨어나도 안 할 거다.
“주인님,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없으신가요?”
“... 미안, 페로.
아직 생각하는 중이야.”
컨트롤러를 다루는 방법도 익혔겠다. 이제 좀 본 이야기로 돌아와야 한다. 발키리의 정체를 밝혀야 하는지 아닌지 말이다.
“아니면… 아직도 저희가 주인님의 패널을 직접 확인해볼 수 있게 해주실 수 없는 건가요?
물론 주인님께서 안 된다 하시면 저희도 바로 마음을 접겠지만…”
컴패니언 측에서 이런 식으로 무언의 압박을 계속 보내온다. 물론 그러는 것이 컴패니언 잘못은 아니다. 명확하게 거절을 표하지 않은 내 잘못이 크다. 나도 지금 뭐가 더 중요한지 알고는 있다. 발키리가 그랬다고 빨리 알려줘야 한다. 하지만 계속 뭔가 마음에 걸린다. 지금 내 위치는 원한다면 죽이고, 원한다면 살릴 수 있는 위치이다. 하지만 여기 있는 애들에게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는다. 날 죽이려 했다면, 아니, 내게 위해를 가하려고 하기만 했더라도 발키리는 즉결 처형의 대상이 된다. 내가 죽이지 말라 명령하면 상관 없겠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발키리와 화해할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사라지게 되겠지.
“… … 페로야.”
“네, 주인님.”
“범인을 잡고 나면 어떻게 할 거야?”
“어떤 형태의 범인인지에 따라 이후 접근 방식이 달라질 거에요.
철충이 배후에 있다면 닥터와 모든 ags 관련 부서 인원이 해부 및 검토를 해볼 것이고,
오르카 호 내부의 인원의 소행이었다면 실수 여부에 따라 즉결 처형에서 함 외부로의 퇴출 명령 사이에서 처벌이 일어나겠죠.”
“후우… 그래, 그렇겠지.
알았어. 고마워.”
“별 말씀을 다 하시네요.”
페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구석에 있는 자기 언니를 돌보러 갔다. 이런 걸 보면 가끔은 페로가 더 언니 같은 때가 있단 말이지. 아무튼, 내가 말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발키리의 운명이 결정될 수 밖에 없다.
만약 내가 알려준다면, 내 증언 자체가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될 테니, 발키리 역시 내가 알려줬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을 거고, 그렇다고 내가 알려주지 않고 내 개인 정보만 열람하게 해주면 그 때는 발키리가 잡히는 것도 시간 문제일 뿐만 아니라 그 이후부터는 내가 개입할 수가 없게 된다. 명령권이란 치트를 제외한다면, 컴패니언 쪽에서 찾은 범인을 내가 강제로 끌고 올 수는 없다. 그 상황에서 내가 발키리를 보호한다면 난 바이오로이드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적과 아군도 구별 못하는 병신이 되어버릴 테니까. 이 애들은 나에게 많은 것을 해줬다. 그러니 나도 최소한의 피아 식별은 하고 있어야 한다.
… 상황이 결국 이렇게 되네. 발키리와 화해할 생각만 하지 않으면 일이 이렇게 복잡하게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걸 포기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
“… 리리스? 정신 차렸니?”
“… … 네에… 주인님…
… 페로는 이만 보내줘도 될까요?”
리리스는 자기 동생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리도 부끄러운 것 같다. 내 침대에서 시트에 자신들의 암컷 페로몬을 잔뜩 뿌렸을 때, 페로는 대부분 기절하고 있었다. 덕분에 리리스처럼 부끄러워하진 않나 보다. 페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지, 나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물러갔다. 방 안에는 다시 나와 리리스, 둘뿐이다.
“아직도 부끄러워?”
“부끄러운 것도 있지만… …
… 그… 아쉽기도 하고… …”
아직도 리리스는 그 때 생각만 하면 눈에서 하트가 흘러 넘치는 것 같다. 저건 완전히 포식자의 눈빛이다.
“그래? 난 전혀 안 아쉬운데.”
“… 네에…?”
“아직 내 몸도 아닌데, 난 씨앗을 뿌릴 생각이 없거든.
난 내 유전자를 리리스한테 뿌릴 생각이지, 이 몸으로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고.”
“… 아… … 아아아ㅏ아ㅏㅏㅏ!!!”
"리리스? 괜찮아?"
"아...아ㅏ...!!"
리리스는 갑자기 나에게 무릎을 꿇으며 달려들었다. 눈동자는 덜덜 떨리기까지 하면서 내 손만 겨우 잡고 버티고 있었다.
“죄,죄송해요주인님다시는!다시는!!안그럴게요!!리리스도주인님의씨앗만원해요!다른사람들은전부죽어도상관없어요!!오직주인님의것만가지고싶어서그렇게나미쳐버릴것같은거에요!그나쁜개새끼의것은전부태워버려도속이시원치않을판에주인님께이상한모습만보여버렸어요!!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주인님만있으면이렇게자제하지도못하는음란한리리스는나쁜리리스에요!그럴생각은진짜진짜진짜진짜전혀없었어요!!!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ㅎ…”
“그만.”
“하…. 하지만…”
내가 멈추지 않으면 몇 분은 계속 이렇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야.
리리스가 다른 게 아니라 나를 원하는 거여서.”
“… 주인님…”
“그냥 확인해보고 싶었어.
정말로 리리스가 리리스 말대로 유혹만 하면 전부 넘어가는 암캐인지,
아니면 정말 주인님을 위해 사는 충실한 경호원인지.”
“저, 저는 맹세코 후자에요!!”
“알지, 알지.
그러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말라고.
나도 겨우 겨우 참았던 거니까.”
“... ... 네에...”
떨리던 눈동자를 겨우 멈춘 리리스는 다시 눈에 하트를 그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감정의 기복이 이렇게나 심할 수 있는 것도 고급 기종의 능력인가? 보다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아무튼, 그걸 물어보려고 했던 건 아니고.
리리스, 만약에 오르카 호 내부 인원이 내게 사진을 보냈는데
혼자 한 게 아니라면 어떻게 하지?”
“공범… 말씀이신가요?”
“맞아. 공범.
내부라던가, 혹은… 외부라던가?
외부에 공범이 있을 가능성은 없나? 철충 말고는 없는데?”
“음… 철충 말고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전에 제가 설명 드리지 않았나요?
오르카 호 밖에 모인 저희 인원들이 있다고?”
“말해주긴 했는데…
… 그래, 그 애들이라면 알리바이도 명확하네.
자기들을 괴롭힌 인간을 죽이거나 해를 입히기 위한다는 행위의 의도가 명백하니까.
하지만 그 쪽 인원이 어디 있는지, 얼마나 있는지, 또 누가 이끄는지는 자료가 없다고 하지 않았어?”
“네, 지금까지 남은 보고서나 자료는 없어요.
한 번은 그 사람 몰래 수많은 인원이 탈출한 사건이 있긴 한데,
워낙 탈출에 집중을 하던 시기라 무언가를 작성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어요.
그리고 그 때는 제게도 다들 뭘 믿고 나갔던 건지는 말해주지 않았거든요.
아마 그 때부터 이미 남아 있는 아이들과 나간 아이들 사이에 선이 그어졌던 것 같아요.
동조하지 않으면, 전부 적이라고 믿었던 거죠.”
“… 후우… 그래, 그 애들이 범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편이네. 지금은.”
“그렇죠.
그리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니, 수사할 수도 없고요.”
“… 알았어.
아무튼 만약 내부 인원의 소행이고, 누군가 공범이 있다고 하면 어떡하지?”
“… 그러게요.
그러지 않기를 바래야겠죠.
저희가 발품을 팔아도 할 수 있는 한계가 있으니 말이에요.
아무리 컴패니언 아이들이라 해도, 수사 전문인 시티가드와는 다르니까요.”
“… 후우, 일이 복잡해지네.”
발키리가 정말 밖에 있는 애들과 협력을 했다면?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하는 거지? 애당초 그게 맞긴 한건가? 발키리와 했던 말을 보면 그 아이가 뭔가를 믿고 있는 구석이 있다는 느낌이 지울 수가 없다. 닥터가 말해줬으니 생각을 하는 거지만, 상황이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다면 일에 대해 진지하게 수사가 될 것이란 것도 알고 있을 것이고, 그럼 자기가 잡힐 껀덕지까지 남기면서 내게 메일을 보내고, 직접 만나기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였다면 아예 얼굴도 노출시키지 않고 사진만 보게 했을 것이다. 진짜 테러가 목표였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지. 뭔가 있긴 하다.
… 그래, 발키리가 그런 짓을 했던 의도까지 내가 알 필요는 없겠지. 그나마 발키리를 만나러 갔을 때 리리스에게 문자를 보내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랬다면 내가 이런 고민을 할 시간도 없이 발키리가 범인으로 특정되었을 것이니 말이다.
지금 상황을 정리해보자. 발키리가 나에게 사진을 줬고, 그걸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그걸 내가 알리면 모든 일이 끝난다. 하지만 발키리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 나에게 일부로 상황의 키를 주고 있다. 이건 분명 의도적인 행위다. 다른 모두에게 들키지 않을 만큼 신중하게 했으면서, 나에게는 모든 증거를 전부 흘리고 있으니까. 아무튼, 수사가 점점 진행되면 나도 애들에게 협조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고, 그럼 곧바로 발키리가 잡히게 된다. 발키리가 내 손에서 떠나는 일이다.
“… 후우… 그래, 나도 결단을 해야지.”
“네? 무슨 말씀을…?”
그것만은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발키리는 적으로 낙인 찍힌다. 더 나아가면 발할라 전원이 동조한 인원으로 몰릴 가능성도 있다. 발할라라는 다수의 인원이 범죄자가 된다는 것이다.
“리리스?”
“… 네, 주인님.”
샌드걸도, 베라도, 알비스도, 전부 낙인이 찍힐 가능성이 있다. 아니, 가능성으로 끝날까? 절대 아니지. 지혜롭게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애들에게는 오르카 호가 두 번째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상황이 내 손에서부터 떠나가면, 그 때부터는 내가 할 일이 없어진다.
“방금, 문득 생각이 났어.
누가 나한테 사진을 보냈는지.”
“… ! 누구죠?! 누가 보낸 거죠?!!”
난 이 애들에게 다시는 그 지옥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겠다고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내가 총대를 매야 한다. 내 생각이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다고 해도 상관없다. 난 그걸 막을 거고, 그럼 적어도 내가 그 애들을 품어줄 수 있다. 모두가 그 애들을 범죄자로 취급해도, 내 입으로부터 시작된 일이라면, 어떻게든 내가 마무리 지을 수 있다.
“발키리.
발할라의 발키리야.
발키리가 내게 사진을 보냈어.”
난 주사위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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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스토리가 진행이 되는 느낌이다
아주 좋다
아무튼
절대 애 호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