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네, 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휴대전화 너머로 고개를 숙여 말하던 마츠시타는 전화를 끊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차려입었던 옷을 벗기 시작했다.

 “마츠시타, 무슨 일이야?”

 토모 역시 나갈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던 그녀는 언제든 나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마츠시타와 같이 나갈 생각이었던 그녀는 마츠시타가 옷을 벗는 것을 보며 의아해하며 물었다.

 “오늘 잡혀 있던 인터뷰가 취소되었어. 급무가 생겼다는 모양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인터뷰하기 2시간 전에 가르쳐주는 경우가 어디있어. 그나마 집에서 안나갔으니 다행이지.”

 가벼운 티셔츠와 바지로 옷을 갈아입은 마츠시타는 토모의 옆에 앉아 리모컨을 들었다.

 “누구였더라? 방위성 사무착한이었던가? 착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봐.”

 “착한이 아니라 차관. 키시 방위성 사무차관이야. 장난같은 쿠데타 시기에 방위성내 분위기에 대해 물어보려 했는데 완전히 망한 거지.”

 마츠시타는 리모컨으로 화면을 조작했다. 그녀가 들어간 곳은 IPTV의 VOD 창이었다.

 “마츠시타, 뭐 보려는 거야? 설마 그 드라마 또 보는 거는 아니지?”

 “맞아. 아직 다 안봤잖아. 아직 37화중에 9화밖에 안봤다고. 말했잖아. 나도 이참에 한번 대전란을 보고 싶다고.”

 대전란. 덴세츠 사이언스의 엔터테인먼트 사업부인 D 엔터테인먼트에서 만든 드라마였다. 무로마치 막부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닌자 활극이었다. 마츠시타가 그 드라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얼마전 일어난 일련의 사건 때문이었다.

 전직 덴세츠 관련자를 인터뷰하러 갔다가 만난 쿠노이치 제로, 카엔 두 바이오로이드의 싸움을 본 마츠시타는 그녀들의 진짜 이야기에 관심이 갔던 것이었다. 겉으로는 드라마 영상에서 알아낼 수 있는 덴세츠 사이언스의 치부를 알아내고 싶다곤 말했지만 그녀가 관심이 있는 것은 드라마 그 자체였다.

 물론 지금 그녀가 보려는 드라마는 대전란 ~시들어버린 무로마치의 꽃~이 아니었다. 그보다 60년은 더 오래된 드라마였다. 아직도 VOD가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의 드라마의 제목은 ‘꽃의 난’이었다.

 “하지만 저건 대전란이 아니잖아. 물론 제목에 꽃이랑 난이라는 글자가 같긴 하지만 대전란은 다른 드라마라고. 대체 저 드라마를 왜 보는 건데.”

 토모는 재미없다는 듯 소파에 드러누우며 말했다.

 “토모, 잘 들어봐. 대전란은 기본적으로 오닌의 난에서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드라마야. 그말인즉슨 대전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닌의 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거야. 토모는 오닌의 난에 대해 알아?”

 마츠시타의 질문에 토모는 물을 걸 물으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알지. 불 번개 물 바람 땅 이 다섯 능력을 가진 닌자들이 모여서 반란을 일으켜서 오닌의 난이라 붙은 거잖아. 대전란에는 그렇게 나왔어.”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아. 오닌의 난은 고등학교에서 다들 배우는 거야. 공부에 관심 없어도 전국시대의 배경이 된 사건이라 하면 다들 알아들을 텐데.”

 “고등학교에서 못배운 걸 미안해 해야 하는 거야?”

 토모는 토라진 얼굴로 말했다. 토모는 고등학교에 잠입해 경호활동을 하는 바이오로이드였다. 그녀도 고등학교에 다녔을 것이었다. 수업도 들었겠지. 그녀가 오닌의 난을 처음 듣는 것은 그녀가 고등학교에 오래 다니지 못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들었지만 기억을 못할 뿐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토모에게 고등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민감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꼭 그런 건 아니고. 여튼간에 대전란을 이해하기위해서는 그 전 시대를 다룬 사극을 먼저 보는게 낫다는 거야.”

 마츠시타는 그렇게 말하고는 재생버튼을 눌렀다. 와이드화면 TV에는 양쪽이 잘린 영상이 재생되었다.

 “마츠시타, 오프닝은 꼭 매번 봐야겠어?”

 오래된 피아노 음악이 흘러나오는 TV를 보며 토모가 말했다. 벚꽃나무에서 벚꽃잎이 떨어지는 정적인 화면이었다. 잠시후 꽃의 난이라는 타이틀로고가 화면을 가득메웠다. 이제는 일부러 따라해야 구현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된 구식 CG였다.

 “오프닝을 봐야 그 드라마의 감성을 이해할 수 있는 거야. 방송은 오프닝을 넘길 수 없잖아. 그저 흘러가는대로 따라가는 거지. 이번화를 볼 준비를 오프닝을 보면서 준비하는 거야.”

 “너무 길고 지루하다고. 게다가 저거 사람이야? 움직임 너무 무서워.”

 마츠시타는 토모의 말에 동의했다. 흰색의 고히메 탈을 쓴 여자의 움직임은 부자연스러웠고 특유의 무표정에 가까운 고히메 얼굴 때문에 불쾌한 골짜기 한가운데 있는 모습이었다.

 “그 때 감성인가봐. 60년 뒤의 우리는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 60년 뒤에 대전란을 보면 이게 뭐야 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몰라.”

 “설마. 대전란은 이미 완벽해. 미래에도 그건 동의할 거야.”

 “모르는 일이지.”

 드라마가 시작되자마자 토모는 일찌감치 휴대전화를 손에 집어들어 무언가를 보기 시작했다. 어지간히도 보기가 싫었던 모양이었다. 토모의 반응도 이해가 되는 마츠시타였다. 시대극이라는 단어조차 어울리지 않는 SF풍 사극인 대전란과는 달리 꽆의 난은 정통 사극이었다. 화면은 정적이고 액션은 거의 없었고 현대 기준으로는 도저히 미형이라 할 수 없는 헤어스타일과 화장, 옷을 입고 있었다.

 현대의 입맛에는 도저히 맞을 수 없는 드라마였다. 전쟁을 다룬 드라마였지만 전쟁보다는 개인들의 관계에 집중해 볼거리도 많은 편이 아니었다. 물론 후반부 오닌의 난이 본격화되면 전투장면이 늘어나겠지만 그것은 십수시간을 본 다음의 일이 되겠지.

 “오, 이게 이렇게 연결되는 건가.”

 한편 마츠시타는 그 드라마가 재밌다는 듯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그녀가 오닌에 난에 대해 아는 것은 수업시간에 들은 정도 뿐이었다.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인 아시카가 가문의 후계자 싸움으로 인해 전 일본이 동군 서군으로 갈라져 싸웠고 그 전쟁의 영향으로 쇼군의 지배력이 약화, 전국시대가 펼쳐지게 되었다는 정도의 이야기였다.

 그런 간단한 지식이 있더라도 정사와 야사, 작가의 상상이 더해진 사극을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몰입감도, 재미도, 결과적으로 알게 되는 역사적 사실도 말이었다. 마츠시타는 토모도 이런 느낌을 받기를 바랬지만 토모는 영 관심이 없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직 30화 가까이 볼 편수가 남아있었다. 그동안 토모가 재미를 붙일수도 있겠지. 마츠시타는 그런 막연한 생각을 하며 드라마를 보았다.

 “마츠시타, SNS에서 그러는데 홋카이도 쪽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거 같대. 육자대 전차들이 어디론가 이동중이라는데.”

 “육자대? 또 뭔일이래?”

 마츠시타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방위성 사무차관이 인터뷰를 취소했다. 급한 일이 생겼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육자대가 움직였다. 두 사건은 관여되어있을 것이었다. 굳이 기자의 감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될 논리적 관계였다.

 “몰라. 설마 장난하는 쿠데타랑 연관된 거 아냐? 네오 해자대 잔당이랑 싸운다던가.”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일단 뉴스부터 보고.”

 마츠시타는 아쉽지만 보던 드라마를 끄며 말했다. 지금은 느긋하게 드라마를 볼 때가 아니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해야 했다. 그녀는 기자였다. 기자가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때 뒤쳐진다는 것은 앞으로 밥을 먹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뭐야, 아무 이야기도 없잖아.”

 몇개의 뉴스를 본 마츠시타가 말했다. 그녀가 본 뉴스라고는 사이마타현에서의 교통사고, 미국 나스닥에 대한 분석, 영국 축구 소식등의 별 중요하지 않은 뉴스들이었다. 자위대와 방위성에 대한 뉴스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면 아직 뉴스로 나오지 않았을 뿐,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것이 알려지기 전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마츠시타는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키시 방위성 사무차관. 마츠시타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음에 틀림없었다. 자위대가 출동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무엇인지 마츠시타는 알 수 없었다. 그 사실이 너무 답답했다. 그는 평소라면 전화하지 않을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편집장님. 지금 자위대가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데 무슨 일인지 아시나요?”

 -지금 여기는 난리났어! 인터뷰는? 잘 되고 있어? 너 지금 방위성이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봐!

 마츠시타는 방위성에 있지 않았다. 자신의 집, 그것도 거실 소파에 앉아있었다.

 “아뇨, 사무차관이 인터뷰를 취소해서 지금 붕 뜬 상태에요.”

 -그럼 당장 여기로 달려와! 홋카이도에서 report가 하나 들어왔어. 홋카이도 근해에서 battle이 일어나려는 거 같아!

 “전투요?”

 누구와. 언제. 왜. 기사의 육하원칙의 반이 의문으로 남았다. 하지만 스미스라고 아는 것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마츠시타!”

 정신이 없는 와중, 토모가 마츠시타를 불렀다. 마츠시타는 불안함을 품고 TV를 바라보았다. 화면에서는 속보라는 큰 글씨가 쓰여있었다.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홋카이도 오시마 진흥국 마츠마에초의 오시마오시마를 북조선 인민군이 점령했다는 소식입니다. 방위성의 발표에 따르면 오늘 새벽 2시, 북조선 인민군의 상륙정이 오시마오시마에 상륙해 그 지역을 점령했다고 합니다. 오시마오시마는 무인도로 알려져있지만 일본국민의 피해가 있는지는 아직 불명이며 현재 자위대로 섬을 탈환할 계획이 있다는 소식입니다.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홋카이도 오시마 진흥국 마츠마에초의 오시마오시마를 북조선 인민군이 점령했다는 소식입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마츠시타는 들고있던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북한군이 일본의 무인도를 점령했다. 이전에 일어난 간첩선 폭발 사건과는 비교도 안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