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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하니 스노우 페더가 세레스티아와 만나기 전에 함께 행동했던 '언니'가 그 바이오로이드였을 줄이야.

리제가 엄청난 비밀에 경악하거나 말거나, 시간은 착실히 흘러서 저항군은 마침내 괌에 남은 철충과 AGS 대부분을 제거하는 것에 성공했어.


로버트의 연구실을 그대로 무덤 삼아 생체 실험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행사도 치렀고, 세레스티아와 요정 마을 주민 중 지원자들도 합류 및 재배치를 끝냈고.

블랙리버의 군사기지에 남은 물자를 파악하는 작업은 진행 중이었지만, 그래도 확실히 여유를 찾았다고 할만한 상황이었지.


그리고 그렇게 된 이상 그전까지의 정박 이상으로 여름 휴가 기분을 내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그간 해온 노동이 끝난 보상으로 스틸라인 온라인에 수면 시간을 불태우는 그림렌과 유미.

수영이나 비치 발리볼 같은 운동으로 몸을 풀다가 어느새 경쟁심에 불이 붙어서 티격거리기 시작한 샬럿과 앨리스.

숲을 돌아다니며 자연의 소리를 듣고 릴렉스하는 금란.

간만에 본업인 벌목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워하는 럼버제인과, 그런 럼버제인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다가 요정 마을을 돌아다니며 설명하기 힘든 향수(?)를 느끼는 엘븐과 다크엘븐.

이번 작전의 제일 공로자로서 가장 좋은 휴식처 - 멸망 전 인간들이 남긴 리조트에 전세를 내고 흥이 오른 아머드 메이든.

여름이고 겨울이고 상관 없다는 듯 독서에 몰두한 하르페이아까지.


그러는 동안 리제는, 원작에서 마지막 선택지가 그러했듯 사령관과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

으면 참 좋았을 텐데.


- ……….

- 일어났어?


글쎼. 발렌타인 이후로 손에 꼽을 만큼 사령과에게 시달리고 있는 현 상황을 과연 느긋하다고 할 수 있을까.

바닐라한테 점점 더 고개를 들 수 없게 되어간다고 생각하기엔, 아직도 사령관의 품에서 벗어날 기미가 없어 보인다는 위협(?)을 타파하는 것이 급선무였어.


- 다아- 흠, 흠!


목소리 쉰 거 봐.

당황하며 헛기침을 하는 사이에도 사령관의 손은 착실하게 못된 짓을 하려 들고 있었지.

이러다가 또 휘말리면 진짜 뼈도 못 추리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말을 꾸밀 시간을 앗아갔음.


- 불안해 하지 말아요.

- ……으음.


직설적이었던 만큼 효과도 빨랐다는 게 지금으로선 천만 다행이었네.

아무튼 깊이 통찰하고 뭐하고 할 것도 없이, 원인이 어찌되었든 리제를 핀포인트로 노렸다는 것이 사령관에게는 그 나름대로 충격적이었던 건 뻔했으니까.

거기에 로버트의 행동은 좀 거시기한 이유 때문이었다 쳐도 레모네이드 오메가의 음습한 행동 양식을 생각하면 이후에도 악의적인 접근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도 하고.


- 당신이 그러면 저까지 불안해지니까.

- 별로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가볍게 묻는 것 치고 목소리에 살짝 심통이 묻어 나오는 것이, 차라리 좀 더 매달려주기를 바랐던 걸까.

반쯤 기가 막힌 기분이 들어서 리제는 손을 꺼내 사령관의 어깨를 찰싹 때렸음.


- 그렇다고 365일 24시간 붙어있을 것도 아니잖아요.

- …….

- 진지하게 고려하지 말고!


한대 더 때렸더니 하하 웃으면서 넘어가긴 했는데 과연 진심일까.

절로 눈초리가 가늘어지는 리제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사령관은 털어놓듯 이야기를 시작했음.


- 모두의 안전을 책임지는 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니까, 정말로 걱정하는 건 아니야.

 결국 내가 좀 더 힘내면 되는 문제니까.


힘낸다는 한 마디로 정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사령관의 대단한 점이긴 한데.

믿음직스러우면서도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공존하는 리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령관은 이야기를 계속했음.


- 다만…… 조금은 충격이었어. 레모네이드 오메가라는 바이오로이드가.

- 어떤 의미에서요?

- 악하다는 점이.


그야 물론 오메가가 손에 꼽힐 어그로꾼이긴 하지만 사령관이 말하고 싶은 건 그 부분이 아니었지.


- 아무래도 나는, 막연히 옛 인간은 나쁘고 바이오로이드는 착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 아아….


소완부터 시작해서 소위 어그레시브한 친구들까지 너무 스무스하게 받아들이다 보니 오히려 자각이 늦었다고 해야 할까.


- 그야 물론, 오메가의 행동도 펙스 회장의 명령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지 못할 건 없겠지만.

- 그것만은 아니겠죠.

- 역시?

- 그렇다니까요. 그냥 타고난 성격이 그 꼴인 거예요.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까는 건 분위기를 푸는 참 좋은 수단이죠.

아니, 자리에 있지도 않은 오메가를 떠올리는 건 그만두고.


- 원하는 방식대로 만들기 편하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결국 바이오로이드나 인간이나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착하기만 한 경우도, 나쁘기만 한 경우도 없으니까요.

 함께 살면서 서로서로 조율해 나가는 거죠.

 여기 모여 있는 대원들도 그렇고.

- 리제도?

- 그럼요. 제가 얼마나 나쁜지 알면 깜짝 놀랄 걸요?


사악하다기엔 꿀이나 빨고 싶었던 거였고, 그마저도 사령관한테 코가 꿰이면서 나가리되긴 했지만.

새삼 지금 상황이 즐거워서 키득거리고, 리제는 사령관을 힘줘서 끌어안았음.


- 당신은 잘 해내고 있어요.

- …….


음. 잘은 모르겠지만 좋은 이야기였던 것 같아.

아무튼 필로우 토크도 끝났으니, 이제는 좀 느긋하게 여름을 만끽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리제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는…데.


- …당신?


이상하다. 왜 사령관이 풀어줄 생각을 안 할까.


- 오늘은 내내 방에서 쉴 거라고 해 뒀거든.

 갑자기 예정을 바꾸거나 해서 휴가를 망치면 미안하잖아.

- ……그거 참 착한 상관이네요. 하지만 저는 그런 이야기를 한 기억이 없으니 잠깐 외출이라도-

- 나쁜 리제도 착한 리제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 그냥 나쁘게 남으면 안 될까앗, 응……!


결론적으로, 그 날의 사령관과 부관은 마지막까지 착한 상관으로 남았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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