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이 부서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낀다.

몸이 너무 아파 도저히 움질일 수가 없다.


눈을 뜰 힘도 없어 어둠 속에서 여기가 어딜까 생각한다.

나는 방금까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라스트 오리진 채널을 하며 시간과 동시에 내 인생을 하염없이 낭비하며...


머리가 격렬하게 아파온다.

고통 속에서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려고 할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숨은 쉬는데? 살아 있는 것 같아! 벌써 죽어버린 줄 알았는데..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날 뻔 했겠는데?"


"그리폰, 조금 더 정중하게 말하렴. 드디어 찾은 인간님인데... 우리 주인이 되실 분이잖아."


이 전개는... 

분명 그리폰과 콘스탄챠가 말하며 시작하는 라스트 오리진의 초반부 내용이다.


"흥, 주인은 무슨. 난 아직 주인이라고 인정 안했거든? ... 어쨋든 그 주사부터 놔. 슬슬 숨소리가 간당간당해지고 있으니까."


목 옆이 따끔하더니 무언가 내 몸에 주입되고 있다.

주사 바늘인가?


집 밖으로 나갈 일 없어 코로나 시국에도 불구, 자발적 거리두기를 하는 진성 라붕이인 나에게 주사바늘은... 상상 이상으로 아팠다.


"이걸로 깨어나셨으면 좋겠는데..."


처음부터 깨어있었다.


"살아났나? 눈을 깜박거리는데? 숨도 제대로 쉬는 것 같아."


"휴.. 다행이야. 이 분이 명령만 내려주시면 우리도 이젠 제대로 싸울 수 있을 테니..."


역시, 눈을 뜨자 보이는 메이드 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콘스탄챠와 몸매가 드러나는 슈츠를 꽉 끼게 입어 볼록하지만 자기를 주장하는 가슴을 내밀고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은 그리폰이 보인다.


이건 챈에서 가끔씩 나오던 '내가 사령관이 된다면?'과 같은 상황이 분명하다.

내 인생, 이제는 바뀔 때가 됐는지도?


"괜찮긴 한 거야? 그러니까 명령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분명히 기억이 없을거라고 했잖아. 이상한 명령이라도 내리면 어쩌지?"


바로 그거다.

목 상태만 회복되면 바로 그 몰랑하고 조그마한 가슴을 주물러주지.


"그럴 리야 있겠니? 그리고 기억이 없어도 괜찮아. 적어도 파괴 명령만 내려주셔도.. 싸움이 훨씬 수월해 질 테니까."


당장 몸을 일으켜 행동을 취하고 싶지만, 아직도 몸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흐응... 응? 잠깐! 지금 움직였어! 움직인거 맞지? 깨어난거 같은데? 인간, 깨어난거지? 깨어난거 맞지?"


"아아..."


"어? 말을 하네? 저기 콘스탄챠, 인간이 말도 할 수 있어? 철충들은 말을 못하던데.."


"원래 말은 인간님들이 하는거야. 우린 인간님들을 흉내낸 거고. 우린, 인간님들을 모방해서 만든거니까. 잠시만요, 인간님. 

일단 일으켜드리고 설명은 조금 있다가 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반갑습니다. 인간님, 저는 가정경비용 바이오로이드 콘스... "


아, 목소리가 나온다.

목소리가 나오자마자 나는 바로 음탕하게 몸을 위 아래로 흔들며 날아다니고 있는 그리폰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그 타이트한 복장을 집어던지고 알몸으로 내 앞에 서라, 그리폰!"


"하? 미친거 아니야? 이딴게.. 인간?"


"저기.. 인간님..?"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명령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위 아래로 흔들리는 것도 멈춘 채로 혐오스런 눈길로 나를 흘기는 그리폰.


콘스탄챠 또한 자신의 말을 끊고 나온 인간의 첫 마디가 예상과는 너무나도 달라 그저 당혹한 채로 나를 바라볼 뿐이였다.


그리고 진성 아싸 라붕이인 나에게.. 아름다운 여성들의 벌레를 보는 듯한 시선은 무리였다.


"..."


불편한 침묵이 우리 세명 사이를 감돌았고, 그 사이 콘스탄챠는 많은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콘스탄챠, 그냥 저 인간 무시하고 발견 못 했던걸로 하면 안돼? 저런게 인간이라니.."


"그리폰, 멸망 전의 기록물을 보면 인간님들은 대부분.. 아뇨, 저희는 그래도 저런 분이라도 명령이 필요..."


말을 끝내지 않고 나를 보며 한숨을 쉬는 콘스탄챠.

여전히 그리폰의 따가운 눈초리가 나를 때리고 있다.


분명 채널 소설이나 만화를 보면 명령에 거역하지 못했는데.

한번 분위기가 그쪽으로 흐르자, 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하아.. 지금 상황에 대해 설명해드리고 싶지만, 여긴 많이 위험한 상태라서 일단 본부로 가서 설명해 드릴게요."


본부라 하니 생각나는 그 이름.

남들에겐 진입장벽이었을지 몰라도, 내게 있어 그저 빛 그 자체였던 누나.


그래! 포츈! 

포츈 누나라면 나를 포옹해 줄거야!


"여기에 온 것도 철충들을 따돌리고 온 거라.. 들키기 전에 어서 빠져 나가야..."


어? 

생각해보니 튜토리얼 때 전투가 있지 않았나?


"칫! 콘스탄챠! 이 자식들 눈치챈 것 같아. 동쪽 통로에 적들이 탐지되는데? 거리는... 씨이.. 500 미터 이내!"


그 사이 다급하게 외치는 그리폰의 목소리.

내가 쓸데없는 짓을 하느라 시간이 뒤쳐지고 말았다.


"벌써? 다른 동료를 스캔해 줘. 철충이 없는 통로는 없어?"


"콘스탄챠! 싸우자! 숫자도 여섯 정도야. 흩어져 있기도 하고. 저래도 인간이긴 하니, 명령만 받으면 제대로 싸울 수 있어!"


너 방금 내 명령 무시했잖아.

그리고 진성 히키코모리인 내게 전투라니 무리야...


"... 일단은 통로부터 찾아줘. 하아.. 인간님이 노출된 전투는 너무 위험해. 일단은 피하는 걸로.."


나를 흘깃 보고 한숨을 다시 쉬고는 그리폰에게 부탁하는 콘스탄챠.

첫 단추를 심하게 잘못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빈 통로가 없어서 하는 말이거든? 이 자식들.. 문을 부수면서 오고 있어."


튜토리얼 상 전투는 확정이겠지...

그래도, 고작 튜토리얼 몹에게 지겠어?

게다가 지휘하는 모습 조금 보여주면 내게 빠지지 않을까?


"너도 나도 전투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잖아. 숫자가 적은 동쪽 통로에 있는 녀석들 정도는 충분히 이길 수 있을거야. 이 인간이 제대로 된 명령을 내려준다면 말이야."


"... 하아..."


아니아니아니.

콘스탄챠. 원래 이 대목은 한숨이 아니라 내게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구하는 대목이잖아?

왜 멋대로 시나리오를 바꾸고 그래?


심지어 원랜 여기서 배경지식을 듣고, 주인공이 지휘 능력을 각성해야하는데 내겐 아무런 징조도 보이지 않는다.


기억나는건 그저 포이의 새로운 수영복 뿐.

대놓고 천박하게 아기맘마통을 들어내고 맥주캔을 뿜는 포이.. 최고였지..


"우와... 진짜 저딴 표정이나 짓는 인간을 믿을 수 있겠어?"


"그리폰, 달리 방법이 없다는건 알고 있잖아. 전투 준비를 해."


콘스탄챠의 말이 끝나자 보이는 튜토리얼의 철충들.

항상 게임 속 보스몹들의 철충들과 오부이 철충으로 단련된 내겐 아무런 영향도...


무섭다.

막상 현실이 되니 저 기괴한 기계도 아닌 괴생명체가 너무나도 무섭다.


그도 그럴게 나.

공략은 커녕, 무지성 엘리스로 스토리 밀다가 무용 얻고 포격개시로만 살았는걸?


장비도 대충 비슷해보이는거 끼고 공략대로 했는데 왜 클리어 안되냐고 맨날 물었고.

그냥 가랑이나 만지면서 채널이나 돌아다니는 앰생이었다고.


"엘리스 마망... 어딨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