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카엘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


쿄헤이 교단의 단죄의 천사 사라카엘은 베로니카의 말을 들으며 눈을 떴다. 그 어떤 천사들 보다 먼져 눈을 뜨는 사라카엘이였지만, 가고시마 사건을 겪고 나서부터는 말 수가 줄고 잠에 취해 일어나질 못했다. 사라카엘은 부스스한 머리를 긁으며 주위를 살펴 보았다. 베로니카 말고는 아무도 이 방에 있지 않았다.


"다른 천사들은?"


"빛을 전파하는 날이기에 복음을 하는 중입니다."


"너는....."


"저야 사라카엘님의 의지를 실천하는 이단심문관 아니겠습니까?"


동정받았다-

사라카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요즘 항상 이런식이다.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자신이 걱정되서, 베로니카에게 부탁한다. 베로니카는 조용히 자신의 수발을 든다. 그녀를 깔보던건 아니지만,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자가 무력해진 자신을 돌봐준다는 상황에 사라카엘은 이름모를 음습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누가 사라카엘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 감정을 자괴감이라 할 것이다.


"소속은 그때 잠깐 옮긴 것 아니였나?"


"엔젤님이 있으니 순리에 따라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너는....아니다. 이제 가도 된다."


"네 알겠습니다. 오늘의 아침은 소세지 볶음과 매쉬 포테이토로 준비했습니다.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으시길 바랍니다."


"....그래."


"그럼 저도 아자젤 님과 엔젤님, 라미엘님을 도와주러 가겠습니다. 좋은하루 되십쇼."


베로니카는 인사를 남기고 방을 나갔다. 사라카엘은 베로니카가 나가자마자 침대에 풀썩 드러누웠다.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오간다. 자신을 괴롭히는 자괴감에 질식할 것 같다고, 사라카엘은 생각했다. 마치 땅에 올라와 헐떡이는 물고기 처럼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기쁘게 받아들어야 하는 선의 조차 그녀에겐 지독한 칼날이 되어 마음을 해집는다. 아자젤은 구원자를 믿어보라고 했다.


"나는.....자격이 없어....."


허황된 빛 대신 구원자를 택한 아자젤의 마음은 이해했다. 자신도 그의 따듯함을 느꼈으니까. 그가 보여준 넓은 마음과 배려는 그를 구원자라 부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자신은 그에게 아자젤 처럼 의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임무를 저버린 배교자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거짓과 참을 구분해야 할 자신이 거짓에 휩싸여서 눈 앞에 진실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의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웠다.


"소세지 볶음...."


배가 고픈 사라카엘은 베로니카가 말했던 아침 메뉴를 중얼거렸다. 모든 활력을 잃어버렸지만, 배는 고팠다. 사라카엘은 팔을 늘어뜨린체 힘 없이 걸어가 상에 있는 소세지 볶음과 으깬 감자를 먹었다. 맛있긴 했지만, 맛을 모르겠다. 뭔가 좀 더 세련된 단어를 쓸 자리엔 자괴감이 자리잡아 일상의 모든 것이 단순해져 버렸다.


그렇게 배만 채우는 식사를 마친 그녀는 식기를 치우기 위해 싱크대 쪽으로 향하다가 낯선 종이를 한 장 발견했다. 싱크대 위 식기수납장에 붙어 있는 그 종이는 일종의 전단지였다.


"[메리와 함께하는 VR 미술관 투어 - 빛의 달인들인 인상주의 화가를 만나다]....?"


이 낯선 전단지는 종교인이라 무체색으로 도배된 이 방에서 홀로 수많은 색체를 발산하고 있었다. 


"베로니카가 벌인 일인가?"


이 전단지가 여기에 붙어있는 이유는 딱 하나다. 사라카엘이 저 행사를 참가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왜? 다른 천사들이 자신에게 바라는건 구원자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 아니였나? 평상시라면 그닥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에게 예술이란 경전의 삽화나 교회의 신성함을 더해줄 성화와 쿄헤이교를 상징하는 조각이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빛을 현혹시키는 외설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모두 의미를 잃어버린 지금, 이 종이는 사라카엘에게 묘한 느낌을 주고 있다. 


[빛의 달인].

이 노골적인 문구를 본다면 대인관계에 서툰 에밀리나 네오딤 조차도 의도를 알아차릴 것이다.


"불경한 문구가 적힌 종이구나. 이런 방법까지 동원해야 될 정도로 내가 길 잃은 어린 양처럼 보였단 말이냐?"


사라카엘은 피식 웃으며 자조적인 말을 내뱉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자신이 어떻게든 빛을 다시 찾았으면 하는 천사들의 바램이 너무나도 따뜻해서. 또 그렇게 되도록 길을 찾지 못한 자신이 한심해서. 


"어두운 황야에서 내던져 진 것은  별 빛을 보고 길을 찾는 법을 알기 위함이니 해메임을 두려워 하지 말지어다-"


지금은 의미없지만, 그래도 이 상황에 위안이 되는 구절을 사라카엘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녀는 오랜만에 티셔츠가 아닌 정복을 꺼냈다. 오랜만에 꺼낸 것임에도, 구김하나 없었다. 베로니카가 매일매일 그것을 다렸을 것이다. 사라카엘은 반드시, 이 곳에서 빛을 찾을거라 다짐했다. 정복을 꺼내 입고, 장신구를 걸치고, 날개를 착용한 그녀는 종이를 손에 쥔체 약속된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뒤.


사라카엘은 VR 미술관 투어가 열리는 장소에 도착했다. 그 곳에는 전단지 처럼 정장을 입은 메리와 VR을 담당할 마키나, 더치걸과 타치, 알비스를 비롯한 어린 바이오로이드들이 있었다. 설마 관람하러온 인원 중 성인은 자신밖에 없는 것인가? 원래 아이들을 위해 하는 행사인건가- 라는 생각이 스치자 사라카엘은 볼이 화끈거렸다.


"아, 안녕하세요! 혹시 VR 미술관 투어에 참여하러 오셨나요?"


"그저 지나가던 길......"


이라고 거짓말을 할 뻔했다. 아무리 빛이 거짓이고, 자신이 길을 잃었다지만 해서는 안될 짓이 있다는 건 안다. 그 정도로 타락하진 않았다.


"에 궁금해서 왔봤다. 나도 참가 가능한가?"


"아, 네! 오드리님이랑 드라큐라님도 곧 오실태니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사라카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뒤, 오드리와 드라큐리나가 도착했다.


"그래서 로코코 양식에 영감을 받아서....."


"아, 그런 드레스라면 예전에 입은 적 있어. 광고를 찍었을 때......"


다행히 자신을 신경쓰진 않는 것 같다. 어린애들은 자신이 무서운지 떨어져 있고, 드라큐리나와 오드리는 대화가 잘 맞는지 둘만의 세계에 빠져있다.


"자, 오실 분 도 다 왔으니 시작할게요!"


딱 소리와 함께 방이 변했다. 크림색 벽지가 있는 벽이 생겨났고, 입구처럼 보이는 아치가 생겨났다. 사라카엘은 아자젤 처럼 빛을 능숙히 다룬다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을 빛의 세계에 대려다 줄 일일 큐레이터 메리 입니다! 잘부탁드려요!"


박수소리가 끝나자 주위는 조용해 졌다. 이제 본격적인 관람의 시작이다.


"먼져, 오늘의 주제인 인상주의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하는데요, 혹시 인상주의가 무엇인지 아시는 분 계신가요?"


"저요!"


"네, LRL씨!"


LRL이 눈을 반짝이며 손을 들었다.


"얼굴 찌푸리는걸 주의하란 것입니다!"


알비스를 비롯한 어린 바이오로이드들이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푸흣-

사라카엘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천사의 위엄을 생각해 일부러 으흠 으흠 소리를 내어 기침을 한 척을 했다.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오늘 말하고자 하는 인상주의는 조금 다른거랍니다."


메리가 손가락을 딱- 울리자, 흐릿한 흑백사진이 나타났다.



"이 사진이 보이나요?"


"네에~!"


"이 사진은 최초의 사진이에요. 화질도 별로고, 흑백으로만 되어있어서 지금과 많이 다르죠? 그때는 커다란 충격이였어요. 이전에 어떤 사건을 이미지의 형태로 기록하는 건 오직 그림만 가능했거든요. 그런데 사진이 등장하니 사실적으로 그릴 필요가 없어진거에요.  그러면 이전까지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만 연습해온 화가들은 어떤기분일까요?"


사라카엘은 그 화가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의 자신처럼 믿어왔던 모든 것들이 부정당해 길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삶에서 빛이 사라진 기분일 것이다.


"그 당시 화가들은 되게 혼란스러웠다고 해요. 이전처럼 사실적으로 그려봤자 사진에게 밀리니까요. 때문에 화가들은 자신이 살아남을 방법을 찾기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어요. 그 중 하나가 오늘 설명하고자 하는 인상주의에요. 이 그림을 봐 주세요."



흐릿한 그림이였다. 전체적인 형상들은 전부 번져있었고, 무엇하나 선명한 것이 없었다. 무엇을 표현했는지 알기 어려운 이 그림을 한 참을 바라보던 사라키엘은 그림의 밑에 있는 제목을 보았다.


<해돋이, 클로드 모네>


제목을 보자 이 그림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안개가 자욱한 강변에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돌아다니는 이들. 그 모든 것을 빚추며 올라오는 햇빛과, 그 햇빛을 받아 자신을 물들이는 강. 클로드 모네라는 화가는 해가 뜨는 그 순간이 주는 전체적인 느낌을 이 그림에 담아낸 것이다.


"이 그림은 인상주의의 거장, 클로드 모네가 그린 <해돋이>란 그림이에요. 보시다 싶이 형태의 정확성은 거의 없어요. 있어도 안개가 낀 것 처럼 흐릿하게 표현되어 있죠. 모네는 왜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일까요?"


"저 순간을 담아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흐리나, 색감이 번짐을 표현하여 저 순간, 오직 저 순간에만 존재하는 빛을 잡아냈구나."


"네, 정답이에요! 사라카엘님은 보는 안목이 있으신데요?"


"이, 이정도의 안목은 빛의 규율을 세우는 치천사로선 당연한 것이다."


사라카엘은 갑작스러운 칭찬에 당황스러워 말을 더듬었다.


"네, 사라카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인상주의는 특정 사물의 특정한 순간에서 오는 인상을 표현하는 화풍이에요. 어떠한 사물이 내는 순간적인 빛을 마음에 보이는 대로 담아낸 것이죠. 지금 이 말만 듣고 감이 잘 안오는 분들도 있으니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도록 할게요."



이 그림을 처음 보고 느낀 인상은 '강렬하다' 였다. 거칠게 그은 붓질에 휩쓸리는 색체들이 그림을 가득 체웠다. 사라카엘은 이 그림을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시선을 옮겨가며 감상했다. 그러자 거친 붓질에 감쳐줘 있던 새로운 면이 보인다. 두번째로 느낀 감정은 '아름답다'다. 얼핏 보면 손이 가는대로 막 그은것 같은 그림일 것이다. 하지만 저 색체들을보라. 파란 하늘속에 영롱히 빛나는 노란 빛은 사라카엘의 시선을 놓아주지 않았다.


<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 반 고흐>


밤, 별을 헤아릴 수 없이 가득히 차오른 밤을 그린 그림이다. 고흐라는 화가는 달빛도, 구름도 가릴 수 없는 별빛이 가득한 밤의 한 순간을 그려낸 것이다.


"이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에요. 보다싶이 형태 보다는 빛들이 자아내는 색체와 그 인상을 화폭에 담아낸 그림이죠."


"이 화가가 아까 사람이랑 같은 인상주의 화가라고? 화풍이 엄청 다른데?"


드라큐리나가 의문을 표시했다. 사라카엘은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모네의 그림은 부드럽게 번졌다는 느낌이 있다. 반면 고흐의 그림은 격렬히 휩쓴 느낌이다. 확실히 설명을 듣지 않고는 다르다고 생각 할 수 있다.


"그건 아튀스트~들의 고뇌를 고흐가 임프뤠시브~하게 표현해서 그래요. 메리 큐레이터님, 맞죠?"


"네, 오드리님. 고흐는 살아생전 단 한번도 인정받지 못하는 화가였어요. 동생이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 했을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죠. 거친 생활과 끝없는 좌절 끝에 정신병에 걸렸고, 결국 스스로 머리를 쏴서 목숨을 끊었죠.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는 어떤 기분이였을까? 사라카엘은 그의 기분을 떠올려봤다. 지금의 자신보다 더 깊은 어둠이 그를 옥죄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자신의 목숨을 포기했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빛이 보이지 않는이에게 왜 눈이 필요하겠는가. 진실을 판단하는 저울이 진실이 없다면 왜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그는 붓을 놓지 않았어요. 끝없이 자기 자신을 탐구하고, 화풍을 개선시켜보려고 끝없는 노력을 했죠. 세상이 그에게 권총 한 자루를 자신의 머리에 겨누게 할 때 까지도, 그는 그림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언젠가 자신의 그림이 빛을 볼거라는 믿음 말이죠. 아마 그를 끝내게 만든건 그림이 팔리지 않아서, 인정받지 못해서가 아닐거에요. 가난과 정신병에 시달린 육체가 무너져 그림을 더 그리지 못하게 된게 두려웠겠죠. 죽음에 패배할지언정, 예술에 패배하고 싶진 않았기에 그는 그런 선택을 한 것 같아요."


죽음에 패배했으나, 예술에 패배하지 않았다-

사라카엘의 머릿속에 한 줄기의 광명이 내려왔다. 어두운 안개가 떠오르는 해에 물러나는 것 처럼, 그녀를 괴롭히는 감정들이 사라졌다. 자신은 분명 진실에 패배했다. 더 이상 날카로운 심판을 결정하는 저울은 의미를 잃었다. 하지만 다른 것을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저울이라면, 반드시 진실이 아니더라도 잴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자, 이어서 다음 그림을....."


그녀는 오늘 답을 찾지 못했다.

대신 그녀를 이끌 질문을 찾았다.

사라카엘은 이 미술관 투어가 끝나고 나면 베로니카에게 감사의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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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사라카엘의 외전스토리는 섹스하거나 웃기게 나올거다. 라오첸의 사람들도 섹스자지보지를 이런 것 보다 더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다. 나도 섹스자지보지가 존나 좋다.


근데 이 이야기가 한 번 떠오르더니 나를 놔 주지 않더라고. 제발 좀 써봐라고. 나를 내보내 달라고 소리치더라. 존나 오글거리긴 한데 이렇게 밖에 표현못하겠음. 쓸 때도 몇번이나 이거 뇌절아닐까? 이런 생각했는데, 결국 쓰게 되더라고.


많고 많은 인상주의 화가 중에 왜 모네랑 고흐를 선택했냐면, 모네는 나를 있게 만들어준 화가고, 고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라서 그럼. 우리 아버지가 화가 겸 미술선생님이셨는데, 모네의 영향을 되게 많이 받았음. 울 엄마도 그림으로 만났으니, 모네 덕분에 내가 태어난거지. 고흐는 되게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화가임. 나랑 비슷하게 아싸고, 뭔가 예술적인거 하고 싶은데 인정받진 못한거에서 되게 동질감이 느껴지더라.


그리고 연작쓰는 사람들 존나 대단한 것 같음. 난 이렇게 단편으로 찍 싸는 거 말고는 못하겠는데, 연작하는 분들은 돈도 안들어오는 팬픽을 머리 짜내가면서 쓰니까 정말 대단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