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라인 4박5일 유격훈련의 마지막날 밤

병장 이프리트는 잠이 오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병장이라는 계급장을 바탕으로 이프리트는 지난 4일 동안 숙영지 경계를 전담했다.

덕분에 유격장에는 단 하루도 가지 않았다.


반면에 유격 훈련이 끝난 후 복귀한 분대원들의 모습을 보니 이번 유격은 장난이 아닌듯하다.

그래도 내일 오전 수료식만 남겨서 그런지 분대형 텐트 안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분대는 병장인 이프리트 1기를 포함해서 노움 1기, 레프리콘 1기, 실키 1기, 브라우니 3기로 구성되어 있다.)

잠이 오지 않은 이프리트는 노가리가 마려웠다.


"레후야 뭔가 재밌는 이야기 없냐?"

"...주무십쇼 이뱀."


오늘따라 후임이지만 같은 병장인 노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왜? 브라우니2593번이 사고라도 친 거야?"


착하디 착한 노움이 화낼 일은 십중팔구 브라우니2593번 탓일 것이다.

유격장에서 어느 사고를 쳤을지 호기심이 일어났다.


"...아무일 없었습니다. 그냥 주무십쇼 이뱀."


분명 뭔가 저질렀다. 선임인 자신에겐 항상 깍듯한 노움이 이 정도 반응이라니, 당장 브라우니2593번을 불러다 캐묻고 싶었지만 노움의 정신건강을 위해 참기로 했다. 이프리트는 착한 후임을 위할줄 아는 선량한 선임이닌까.

단, 부대에 복귀하면 반드시 무슨 사고를 쳤는지 확인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뱀 제가 이야기해도 되겠슴까?"


브라우니 3인방 중 A급을 담당하는 2777번이 나섰다.


"말해"


이프리트는 대답하면서 살며시 노움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이 노움이 더는 제지하지 않았다.


"이뱀, 오르카라이브에 올라온 글 보셨습니까?"

"글이 한두개 올라오냐? 뭔 글인데?"

"사령관님 바이오로이드썰 아십니까?"

"뭔 개소리야? 너 뇌파 탐지 못하냐?"


어이가 없었다. 사령관같은 '인간'과 이프리트같은 '바이오로이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뇌파다.

뇌파를 통해 상대방을 인식하는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의 뇌파를 내뿜는 사령관을 보고 뭐? 바이오로이드?

항상 브라우니2593번의 뒷처리하더니 물들었나?

분대원에 대한 걱정이 모락모락 피어나오기 시작했다.


"아니지 말입니다. 하 그게 뭐였지? 그럴듯한 이유가 있지 말입니다?"

"제가 설명할께요, 브라우니."


브라우니 개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쩔쩔매는 2777번을 위해 레프리콘이 나섰다.


"뭐야? 레후 너도 알고 있는 이야기야?"

"한동안 꾀 퍼졌던 썰 입니다."

"난 왜 몰랐지?"

"이뱀은 창작물 위주로 보시지 않으십니까? 자유글 게시판에서 퍼진 썰이라 못 보셨을 겁니다."

"그래서 사령관 바이오로이썰은 뭔데? 설명 좀 해봐"


브라우니도 아니고 레프리콘의 말이다.

이프리트는 조금전의 짜증보다 흥미가 샘솟기 시작했다.


"이뱀도 그렇고 지금 오르카호 소속 바이오로이드 대부분이 멸망 전쟁 이후 생산된 개체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럼 이뱀. 인간과 바이오로이드 뇌파의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뭐긴 뭐야. 인간 뇌파는 딱 느껴지는 그거 있잖아."

"근데 그게 진짜 인간 뇌파 때문이라는 걸 어떻게 아십니까? 이뱀도 그렇지만 저희 모두 사령관님 말고 다른 인간 뇌파는 모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래서 나온 썰입니다. 우리가 사령관님의 뇌파를 인간의 뇌파로 알고 있지만, 인간의 뇌파가 아닐수도 있다는 겁니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간게 사령관님은 남성형 바이오로이드, 고블린이라고 하나요?

 여튼 우리들과는 다른 남성형 바이오로이드의 뇌파를 우리가 인간의 뇌파로 인지한다는 거죠."


확실히 이프리트가 지금까지 느껴 본 뇌파는 바이오로이드와 사령관(인간), 그리고 철충 뿐이다.

사령관말고 다른 인간은 뇌파는 느껴보기는커녕 본 적도 없다.


"에이 너무 나간 거 아니야?"

"그거 말고도 더 있어요."


얌전히 있던 실키가 말문을 열었다.


"또 있어?"

"예. 우리 사령관님 갑자기 뚝 하고 생겨났잖아요."

"그건 21스쿼드의 누구더라? 콘스탄챠랑 그리폰이 발견한거잖아?"

"몇십년 동안 우리도 철충도 그렇게나 찾던 인간님이 갑자기 나타났다는게 이상하지 않나요?"

"어디 잘 숨어 계시던게 아닐까?"

"숨어 지내던 인간님들도 휩노스병에 다 죽었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사실 사령관님께서 발견되신 곳이 그 전부터 저항군이 활동했던 지역이래요."

"그래?"

"네. 사령관님께서 발견되기 전에 발견 장소 근처에서 활동하던 개체들은 인간님 뇌파는 하나도 못 느꼈데요."

 근데 그게 사령관님이 바이오로이드면 설명이 된데요."

"어떻게?"

"누군가 남성형 바이오로이드를 만들고 옮겨놓는거죠."

"그걸 누가해? 철충이? 아님 바이오로이드가?"

"왜 사령관님이 발견되신 인간님 수색작전 때 기억 안 나세요?

 그 때 라비아타 통령이 갑자기 부대를 나눠서 인간님 수색 작전을 지시했잖아요."

"그치. 그 때 저항군 소속 바이오로이드 거의 다 참가했지?"

"그 수색 작전이 사실 누군가의 연락으로 시작한거래요."

"진짜?"

"함교쪽 근무인원들에겐 어느 정도 퍼졌다고 해요.

 사령관님께서 합류하신 이후에도 이따금 연락이 온다는데요?."

"그럼 그 누군가가 사령관님을 제작하고 몰래 숨긴 다음 찾으라고 했다는거야?"

"바로 그거죠!"


계속되는 설명에 이프리트는 흥미가 동했다.


"다른 근거도 있냐?"

"그러고 보니 저도 들어본게 있군요."


이번엔 입을 다물고 있던 노움이 말했다.


"뭐야? 너도 아는거야?"

"취사지원 나갔다가 같이 작업하던 포티아 개체한테 우연히 들은겁니다."


헛기침을 한 이후 노움이 말을이었다.


"사령관님 맨 처음 오시고 바로 철충 쓰러뜨린 건 알고 계세요?"

"어? 진짜?"

"저랑 안면 튼 포티아가 은근 고참이더군요.

 지금이야 소완이나 아우로라 개체가 있지만 그땐 주방에 포티아밖에 없었던거 기억나십니까?"

"아 그 때 그 개체야? 혼자서 고생많았지 포티아씨. 오르카호 밥 다하고 살았잖아?"

"네 그 개체 맞습니다.

 하여튼 그 개체 말이 그렇더군요. 초창기 사령관님은 갑자기 뜬금없이 요리대회를 한다든지 엉뚱하고 미숙한 점이 있었지만

 전투지휘 하나만큼은 타고났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구요."

"에이... 그 땐 지휘관 개체들한테 매일매일 까이시지 않았나?"

"그 와중에 저희들 한 개체도 안 죽고 있기도 했죠."

"어? 정말 그렇네?"

"뭐 마리대장이나 다른 지휘관 개체분들이 옆에서 도와 주신 것도 있겠죠.

 그런데 그런 분들과 합류하기 전까지 21스쿼드를 포함해 소수병력으로 다른 개체들 구하시던 건 사령관이시구요."


그러고 보니 이프리트도 얼핏 들은게 생각났다.

마리 대장이 고립되어 있을 때 그 마리 대장을 구한게 사령관이라고 했다.

그리고 스토커였나? 연결체급 철충을 없앤 것도 사령관의 계획이었다고 한다.


"갑자기 발견된 사령관님이 평범한 인간님이라면 그런게 가능할까요?"

"힘들겠지?"

"그래서 나온 말이라는군요.

 멸망 전 생산된 고블린 개체 중 저희 마리 대장이나 레드후드 연대장처럼 지휘관 역할을 담당하는 개체가 있다면

 그런 전술이나 전략같은걸 알고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이죠."


"뭐야. 나만 이 재밌는 이야기 몰랐잖아. 다른 근거 또 있냐?"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문제아 브라우니 2593번이 말문을 열었다.

방금 전 까지 흥미로운 썰을 풀던 노움의 얼굴이 굳는게 어둠 속에서도 보였지만 이프리트는 애써 무시했다.


"너도 뭐 있냐?"

"그 좀 웃긴 이유이긴 한데... 다들 탈론허브 영상 보셨지 않슴까?"

"그거랑 사령관님이 바이오로이드인게 무슨 연관이 있냐?"

"사령관님의 정력이 사람의 정력입니까?"


???

이건 또 뭔소리지?

수십년간 철충과 싸워온 베테랑 이프리트는 예상 외의 상황에 잠시 정상적인 사고가 멈췄다.


"생각해 보십쇼. 바이오로이드한테 인간이 박는데 바이오로이드가 먼저 지치지 않습니까?

 아스널 준장님이랑 한 거 보십쇼. 무려 중장형 바이오로이드 그것도 SS급 바이오로이드인데 사령관님은 가뿐히 상대하잖습니까?"


이프리트의 본능이 맹렬히 외쳤다. 이건 너무 나갔다.

멈춰야 돼!


"레후야 쟤 입 좀 막아!"

"당장 우리 노움 병장님 보호기라 몸 하나는 튼튼한데 비밀의 방 다녀오신 후 중파 판정 받고 수복실에"

"브라우니!"


당황한 노움이 큰 소리로 외쳤고, 이프리트는 순간 아르망처럼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오호... 이것들 봐라? 마지막 날이라 적당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꾀나 재밌는 일을 벌려주는데?"


천막이 열리며 임펫 원사(진)이 들어왔다.


"야밤에 시끄럽게 떠드는 이유가 뭐지?"


임펫의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고양이처럼 웃으며 물었다.


"이프리트 안 자고 있지?"

"병장 이프리트!"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하지?"

"네..."


---------------------------------------------------------------------------------------------------------------------------------


콘문학으로 쓰고 싶었는데 엄청 어렵네.... 이걸 하루에도 여러편 올리는 놈들은 사람이 아니라 바이오로이드일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