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카에 두번째 인간이 온지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그에게 부사령관의 지위를 주었고, 그는 능숙하게 그 직책을 수행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를 믿었고 더 많은 권한을 넘겨주었다. 처음에는 좋았다. 내 일은 크게 줄었고, 체계적인 관료제 속에서 나는 더 많은 휴식과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안일했던걸까, 그에게 독립적인 지휘권을 준 지 단 한달만에 그의 부대는 사망자를 내었다. 비록 말단 브라우니라지만, 나는 처음 겪는 사망자에 마음이 크게 흔들려 그를 불러 질책하려 했다.


"자네는 바이오로이드를 대등한거라 생각하긴 하는건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구인류와 다를게 없단 말이다."


"당신이야말로 틀렸다. 당신이 바이오로이드를 객체로서 존중한다면 그와 동일한 논리로 AGS 역시 존중해야 한다. 당신은 그러지 않았고, 그저 우리와 비슷해보인다는 감상주의 하나만으로 바이오로이드들과 AGS들을 차별대우 하고 있지 않나. 또, 나는 바이오로이드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전쟁 중이고, 사상자가 없어야 한다는 몽상주의는 버려라. 승리하지 못한다면 죽음 뿐이고,  나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나 자신까지도 희생시킬 각오가 되어있다."


평행선을 달리는 주장. 누가 옳았는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았다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직위를 해재하고 민간인으로 대우하려 했다. 허나 내가 직위 해제를 입에 담기 무섭게, 사령관실에 지휘관들이 들아닥쳤다. 그들은 자신들은 이자를 따르겠다고, 그래야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화가 치밀어올라 그렇다면 너희 모두 추방이라는 말을 꺼내려는 찰나, 그가 오히려 그녀들에게 군인의 본분은 충성과 복종이라며 꾸짖었다. 어쩐지 힘이 빠진 나는 그에게 총사령관 직위를 맞기고 괌에 틀어박혀 컴패니언들과 지내고 있었다.


나는 내심 내가 옳았다는 자만에 차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5년의 시간이 흐른 뒤, 괌의 부두에 오르카호가 떠올랐을때 난 속으로 그것봐라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정 반대였다. 그들은 승전보를 전해왔다. 철충은 지구에서 패배해 사라지고, 별의 아이는 압살되었다. 그들이 찾아온 것은 단순히 승전보를 전하기 위함이 아니라 기세를 몰아 철충의 본거지로 대규모 침공을 계획중인 새로운 사령관이 전쟁 중에 사망할 경우를 대비해 신인류의 지도자로서 나를 지목했기 때문에 나를 모시러 온 것이었다.


좌절감과 패배감을 끌어안고 그들이 이끄는 대로 도착한 신 인류제국의 수도에선 수천만 바이오로이드들과 AGS들이 침공 준비에 한창이었다. 옆의 병사에게 물어보니 이 숫자마저 선봉일 뿐 주력 침공군은 수십억 단위로 준비중이라 했다. 무력함에 젖어 도착한 그의 사무실에서 그는 높이 쌓인 서류와 씨름 중이었다.


"어서 오시오, 전 사령관."


"왜 부른거지? 내게 패배감을 곱씹게 하고 싶은 건가?" 


"쓸데없는 소리. 전한대로 나는 다시금 전쟁을 준비 중이오. 내가 직접 그들의 본거지로 쳐들어 갈 것이기에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바, 당신이 그들을 이끌 필요가 있기 때문이지."


"하, 나같은 몽상가한테 손을 벌릴 정도로 여유가 없나보지?"


"아니, 당신이 몽상가기에 하는 말이지. 당신의 이상론은 틀린게 아냐. 그저 현실을 보는 감각이 부족했을 뿐. 이제 현실을 당신의 이상주의에 걸맞게 바꿨으니, 당신이 일할 차례다."


내가 지구에 남은 이들을 이끈지 10년, 우주에서 정보가 들어왔다. 철충의 본거지는 철저히 파괴되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나는 졸지에 항성간 제국의 지도자가 되있었다.


그렇게 그는 이긴채로 사라졌고, 나는 마지막까지 패배자로 남았다.


나는 오늘도 술잔을 기울인다. 그렇지 않으면 이 패배감을 잊고 잠들 수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