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림표--




그림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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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몇달이 지나고, 이곳의 눈이 조금은 녹아내린 어느 날.


벙커 내 레이더에 포착된 철충 식별신호로 인해 수색을 나간 나는, 오늘도 해야 할 일을 하고있다.


"_&&)#?@!**""_₩#¢₱...."


저 푸른 색을 띄는 비행형 철충은, 스스로의 몸에 얼음을 두르게 되면 빠르고 단단해 처리하는것이 곤란하다.


"......"


인식범위가 넓고 회피가능성은 높지만, 문제없다.


이만한 거리 라면 맞출 수 있으니까.


탕-!


우상탄. 약 3.4km.


목표는 작을수록 더 맞추기가 쉽다.


눈이 많이 녹아 습도는 좀 높았지만, 오차범위 내여서 다행이군.


"...후-..."


찰캉-


볼트를 뒤로 잡아당기자, 매케한 화약냄새와 함께 황동빛 탄피가 팅,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욱..."


...정말, 언제 맡아도 역겨운 냄새다.


"....후..."


식별된 철충의 수는 15마리.


각각 네댓씩 뭉쳐서 산개해 주변을 수색하고있다.


"......"


대체 무엇을 찾고싶은건지, 녀석들은 언제나 15마리가 네댓씩 산개해 이 구역을 수색한다.


어느 때는 램파트와 셀주크의 기생체가, 어느 때는 덩치 큰 철충과 물탱크를 인 철충 등, 아주 다양한 녀석들이 이곳을 수색하고 있지만,


저것들의 수색은 늘 실패로 돌아간다.


내가 전부 쏴맞추어 전멸시키니까.


철충의 인식범위는 잘 알지못하지만, 나는 적어도 4km 이상 거리에서도 저격이 가능하니, 언제나 이렇게 고지대에 숨어 한놈씩 제거하면 15마리 정도는 쉽다.


"...후우..."


나는 침착하게 조준경을 기울여 방금 쓰러트린 철충과 붙어있던 녀석들의 상황을 확인한다.


본래라면 구역질을 참고 저격을 계속했어야 맞지만, 요즘들어 견뎌내는것이 힘들다.


화약냄새를 맡으면 맡을수록 눈에 비치는 모습이 두개, 세개로 갈라지기도 한다.


"........이런."


빌어먹을.


이쪽으로 오는군.


녀석들이 내 저격장소를 알아낸건가.


아무리 그래도 반년을 당하면 저 동물같은 놈들도 눈치를 채긴 채는군.


"...쳇."


하는 수 없지. 들킨 이상 이동해야한다.


아무리 멀어도 저쪽엔 비행체가 적어도 셋 이상.


순간, 저격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눈이 피로한 지금은 회피기동하는 비행체를 저격하는건 힘들다.


불가능하진 않지만, 탄을 많이 쓸수록 증상이 심각해진다.


그러니 안된다.


난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


그 아이를 홀로 두고 떠날 수는 없으니까.


설령 이렇게 다 낡아빠진 몸뚱이더라도,


나는 살아야만 한다.


그렇게...생각하고 있었지만,


"#@@₩&&₩₩_#@@#₩..."


철컹...!


부우우우웅-...


저 멀리, 분산되었던 또다른 철충 다섯마리가 내가 있는 절벽을 향해 무기를 조준하고 있었다.


...저건?


나는 일어서려던 몸을 다시 낮추고 조준경을 들여다봤다.


전체적으로 거무튀튀하고 큼지막한, 스스로에게 검붉은 방어막을 쳐둔 철충이었다.


여타 평범한 철충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몸체와 함께 길게 뻗은 대포와 비슷한 형상의 무언가에서 빛을 응집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


양 갈래로 뻗은 두개의 포신의 정 중앙에 응축되며 스파크를 튀기는 빛. 에너지.


저건 뭐지?


플라즈마 병기이거나, 레일건의 종류로 보인다.


어느정도의 위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을 조준한 채라는건,


대략 3.4Km 떨어진 나를 맞추기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뜻이겠지.


그것도 고지차이가 있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등줄기에서부터 끔찍한 무언가가 스물스물 기어올라오는게 느껴진다.


어느틈엔가 비행체는 대략 네댓기가 내 주변을 돌며 나를 주시하고 있다.


...큰 안테나가 달린 형태.


지형정보를 알려주기 위한 형태로 보인다.


내 주변 지형을 알아내기 위해 다가온거군.


그래야 나를 맞출 수 있을테니까.


"...큭..."


...고도가 높다.


저만한 높이라면 탄이 닿지않는다.


저 네마리는 맞출 수 없다.


지지직...지직...


부우우우우우웅-...


얼마나 큰 소리였는지, 3Km 떨어진 이곳에서도 공격을 충전하는 소리가 들린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것이 느껴진다.


크나 큰 절망이 해일처럼 밀어닥쳐오며 내 머리를 흔들었다.


어쩌지?


이대로 도망쳐야하나?


하지만 어떻게?


저 날아다니는 철충을 데리고 어디에 가야하는거지?


내가 할 수 있는건 그밖에도 있나?


뭐가 있지?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대체 어떻게 해야만 하지?


".....큭...!"


타앙-!


악에 받쳐 쏘아낸 탄환이 충전을 계속하는 철충의 방어막에 맞았지만,


아무런 효과는 없었다.


저놈들을 해치울수 없다.


어떤 탄을 들고오더라도 저놈들이 두른 방어막은 뚫어낼수 없다.


다수의 부대가 화력을 집중시키는게 아니라면, 저 방어막은 절대 부서지지 않겠지.


고작 나 혼자선....


아무것도...할수없다.


"........."


...이걸로 끝이군.


저 멀리서 발전기가 돌아가는것만 같은 커다란 소리가 들려온다.


철충녀석들의 충전이 끝나가는 모양이다.


"......"


나는 소총을 바닥에 내려두고......고개를 숙였다.


".....흑....."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엄마는 여기까지인가봐."


"우리 딸. 사랑하는 우리 딸."


"또 먼저 가버려서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혼자 남아서 얼마나 슬플까.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가슴이 무너지는것 같고, 애간장이 끊어지는것 같은 고통이 느껴진다.


죽음을 앞두고 느껴지는 절망과 공포.


죽음을 앞두고 남겨지는 자를 향하는 슬픔.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이며 내 머리를 흔든다.


"@@₩&&&₩₩))/+))##*"


그때, 있어선 안될 일이 벌어졌다.


"....지직....폭스......재위치는?"


"...표에...접...입니다."


"좋....알....내면....보고할 수 있도록."


"....겠습니다, 본부."


".....?!"


...무슨?


방금....뭐였지?


나는 황급히 귀에 꼽아둔 무전 이어폰의 채널을 확인했다.


이 채널은 벙커에서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내가 늘 사용하는 채널이다.


벙커와의 교신으로 비상시에 딸과 연락을 취하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하는 채널인데...


대체 뭐지?


절망에 사로잡혀있었던 나는 갑작스럽게 들려온 그리운 목소리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오래 되어 흉터만을 남긴 상처에서 갑작스레 피가 튀어나오는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지직...여기는 폭스 원. 현재 목표를 위협중인 디스트로이어 3기, 아쿠아 칙 2기를 식별확인했습니다."


"그 외에는?"


...목소리.


너무나 그리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들의 목소리다.


대체 뭐지?


나는 죽은건가?


죽어서 환상이라도 보고있나?


"빅 칙 실더 3기를 앞장세워 빅 칙 런처 2기가 목표를 향해 접근중이며, 나머지 스카우터 3기, 칠러 2기가 목표 상공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흠....좋아. 폭스 원."


"듣고있습니다."


"디스트로이어의 충전은 얼마나 된것 같니?"


"거의 끝나가는 모양입니다."


"화력투사로 아쿠아 칙의 탱크를 공격해서 냉각수를 흩뿌리게 만들어둬. 보호막을 깨트릴순 없지만 시야는 막아질거니까. 그걸로 교란시켜서 목표를 향한 조준을 흐트러지게 만들도록."


"알겠습니다, 본부."


교신 종료의 알림음과 함께 공기를 찢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소리와 함께, 그리운 모습을 한 이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왔다.


"@@#_&-::_₩#????"


"₩₩&-₩#№@_&±$_¥#@!!"


"역시 충전중엔 목표 설정 변경이 느리시군."


두두두두두두두두-!


양 손에 들린 2연장 기관포의 속사가 하늘 위에서부터 들려오며 총탄이 떨어졌다.


"&&/#@?₩_(&"!***'&_....."


무수한 납탄으로 인해 이고있던 냉각수 탱크에 구멍이 뚫려버린 철충들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온 방향으로 냉각수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_&&!!! ₩#@@₩_'"!!!"


공대지 기관포 사격으로 지상군의 엄호를 돕는 저 비행방식, 푸른 머리칼에 하얀 전투복.


어딜 어떻게 봐도...저건...


"...GS-10...?"


검붉은 보호막 위에 쏟아진 냉각수가 얼어붙으며 시야가 차단되자, 무기를 충전하던 철충 세마리가 난리를 피워댔고,


"좋아. 그대로 이쪽을 봐라, 머저리들."


푸른 머리칼의 그녀가 그 철충 다섯마리의 주변을 비행하며 지속적인 화력투사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이제 무기를 충전하던 철충들이 나를 보고있지 않게되자, 내 주변을 날던 비행형 철충 다섯마리는 허둥지둥 하더니 그 중 두마리가 내게 돌진해왔다.


"....!"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진형에 혼란이 왔을 때 스스로를 진정시키지 못하면 죽는다.


이럴때일수록 더더욱 말이다.


"..후!"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땅에 떨군 소총을 잡고 황급히 뛰었다.


쿵-!


푸른빛을 띄는 철충 두마리는 내가 누워있던 자리에 그대로 돌진해 절벽을 무너트렸고, 새하얀 눈이 먼지처럼 흩뿌려졌다.


"₩_&&#@/?__?""????"


스스로 흩뿌려댄 눈 때문에 나를 식별하지 못하게 된 녀석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을 때.


찰캉-


"....후...."


나는 이미, 탄을 장전해 자세를 잡았다.


"......"


이만한 거리라면 조준경도 필요없다.


한쪽밖에 없어도, 맨눈이면 충분하다.


탕-!


명중. 좌하탄 30미터.


찰캉-


탕-!


명중. 좌탄 31미터.


흩날린 눈이 내려앉았을때, 푸른 빛을 띄는 철충 두마리는 절벽 아래로 떨어져 산산히 부서져버렸다.


찰캉-!


"...윽..."


매케한 화약냄새가 코를 찌르며 자극하자, 닫힌 오른눈에서 고름같은 액체가 흘러나오는듯 간질거렸다.


내가 오른눈의 고통을 참아내며 나무둥치에 몸을 기댔을 때,


"...!"


"₩₩#@@@##₩?_''!**!2!!!!?"


덩치 큰 철충 다섯마리가 포효같은 무언가를 내지르며 포격을 날렸다.


정확히 나를 향해 직진하는 수십개의 마이크로 미사일이 빠르게 날아온다.


"......!"


미사일 착탄까지 2초.


발포된 미사일의 수 대략 13개.


...피할 수 있을까.


아니. 피할 수 있다.


저만한 양이라면, 아직 가능해.


콰아앙-!


미사일이 폭파되어 화염과 파편이 튀긴다.


 "...윽...!"


....착탄된 미사일의 직접피해는 회피가능했지만,


그로 인해 발생된 파편은 피해내지 못했다.


돌무더기와 쇳조각이 오른다리와 왼쪽 허벅지, 왼팔 상박에 박혔다.


...이래선 더 움직일수 없다.


"&#@#"**::'';!'₩₩&....!"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인간의 파장을 닮은 그것들이 엎어진 내게 다가온다.


"__&&₩#&. ₩₩##/__&_#@...."


"...."


어딘지 모르게 짐승의 그것처럼 야성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철충 다섯마리가, 나를 향해 무기를 조준했다.


"...큭!"


탕-!


팅!


마지막 저항으로 미사일 런처부위를 사격했으나, 전위의 방패막을 붙인 철충이 가볍게 막아냈다.


...혼란스럽다.


저만한 전력을 가졌으면서, 이전엔 왜 내 저격 한발에도 쉽게 주저앉는 녀석들이 왔던거지?


갑자기 전력을 내보이는 이유는 뭐지?


....모르겠다.


"&&)#++#)_'?'"**"


"......윽..."


어차피 중요한 일도 아니다.


중요한 건, 나는 이제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렸고, 눈 앞의 철충은 포와 미사일을 장전해 나를 조준하고 있는 사실이다.


직격으로 맞으면 잘게 다진 육편이 되겠지.


움직이고 싶지만, 움직여지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움찔거려도 파편으로 뚫린 상처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나온다.


...젠장!


이대로 끝이라니. 안돼.


절대 안돼.


난 죽을 수 없어.


내가 죽으면... 그 아이는...!


"좋아.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위이이이잉-!


"너희 모두 커멘드 프레임에 집중해."


"알겠습니다!"


"응, 언니!"


"네, 소장님!"


"지금부터 T-8W 발키리 4868번의 구출작전을 실시할게. 대열을 유지해서 지속적인 화력투사를 실시하도록. 알비스 9001번, 314번 외 10명."


"네, 소장님!"


"연막 뿌리고 전열에 서주렴. 66421번 베라, 45635번, 34002번 님프는 전열에 붙어 지원사격 해주고, 나머지는 뒤따라서 주변 철충을 섬멸시켜줘. 폭스 원?"


"여기는 폭스 원."


"지금부터 나머지 자매들의 지원이 도착할거야. 그들과 합류하는 즉시 AT미사일 발사준비 할수있도록."


"수신했습니다. 교신 끝."


....믿을 수가 없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당신은 분명 죽었...


"자. 그럼...."


찰칵!


"교전개시."


퉁, 퉁, 퉁, 퉁-


푸쉬이이이이익...


"진입준비! 진형을 갖춰, 얘들아!"


"와아아아!!"


"잠깐, 89021! 너무 앞서가면..!"


"66421 자매님. 감적공유 부탁드립니다."


"아, 네!"


두두두두두두두-!


"앗....아아...."


하얀 전투복에 그리운 목소리, 그리운 얼굴들의 바이오로이드.


그들이 오른팔에 찬 마크가 햇빛을 받으며 빛났다.


이건 불가능해.


모두 죽었을텐데.


대체 어떻게...?


"여기는 에코 1-1. 암사자 응답바람."


"여기는 암사자. 무슨 일이니?"


"명령주신대로 선회비행중인 스카우터 4기 포착완료. 저격명령 대기중입니다."


"좋아. 보이는대로 쏴버리렴."


"수신양호. 전술데이터 전송중인 스카우터부터 처리하겠습니다."


"좋아. 암사자 교신 끝."


탕, 탕, 탕!





그렇게, 수십여분이 지났다.


"__&_₩##₩"*___##@%©>...."


두꺼운 장갑으로 보호받던 철충무리들은 진형을 갖춘 바이오로이드들의 사격으로 인해 모조리 격파당했고,


"만나서 반가워."


바람에 나부끼는 금발을 뒤로 넘기던 하얀 제복의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씩 웃어보였다.


"제식번호 4868, 맞니?"


철혈의 레오나.


발할라의 자매들을 이끄는 자이자, 냉철한 심장의 소유자.


오래 전, 철충의 진격으로 죽어버린 그녀가...


내 눈앞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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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만임니다 라붕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