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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잡하니까 요약해서 보고할께 오빠"

"응"


  회의실 내부는 심각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두번째 인간이 발견되었다는 탐사팀의 보고에 따라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탐사팀에겐 함구령을 내린 상태였지만 언제까지 비밀로 부쳐두긴 힘든문제였다. 신속함 보다 더 확실한 기밀보호는 없다는 격언에 따라 소집된 회의는 엄숙하지만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우선 이 두번째 인간을 보호하고 있던 브라우니는 제조년식이 상당히 오래된것같아. 추정할순 없지만...아마 멸망전부터 이 인류를 지키고 있었다고 보는게 좋을것같아. 같이 행동하던 동료들은 전부..."

"그 친구들 유해는?"

"현재 전부 수습한 상태야"

"엄숙하게 치뤄줘"

"알았어"


  인류를 위해 봉사한다는것 하나만을 따라 오랜시간동안 스스로들을 희생했던 그녀들의 명예에 예우를 갖추는것에는 다른 지휘관들또한 문제삼지 않았다.


  "멸망전의 기록이 소실됬지만 조사해본 결과론 멸망전의 어느 영세기업 총수의 막내아들이었다나봐. 총수인 아버지의 여자관계가 복잡했다고나 할까?, 혼외 자식이었다는것같아"

"계속해"

"아쉽게도 더 알아봐야할 문제지만 출생에 관한것 이외에는 잘 알려진게 없어. 오히려 이정도 출신이 되어야 출생에 대해서 알수있을 정도야"

"조사는 계속해봐"


  닥터의 브리핑이 끝나자 회의실은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누구하나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고등 개체들인 지휘관들은 권력다툼이 불러올 문제와 분열의 참극을 알고있기 때문이었다.


"각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령관을 21스쿼드와 더불어 오르카 합류 초창기부터 그를 섬겨온 마리가 입을 열었다.


"알파"

"네 주인님"

"펙스의 정보망에 침입해볼수 있다면 저 친구와 관련된 기록들 모조리 찾아봐, 출생정보를 알수있을정도로 기록이 남아있다면 분명 더 건질수 있는게 있을꺼야.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고."

"명심하겠습니다."

"그 브라우니는 어떻게 할거야 오빠?"

"본인은 어떻게 하고싶대?"

"전역하고 싶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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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슨은?"

"...월슨?"

"그 브라우니 있잖아"

"그 친구라면...안정을 취하고있어, 너랑 똑같이"

"그런가"


  멸망한줄 알았던 두 인류가 처음 대면한 그 순간엔 격식이라곤 찾아볼수 없었다.


  "그러다 체하겠어"

"시발...몇일을 굶었는데...병원밥이 이렇게 맛있었나?"


  격식이라곤 찾아볼수 없는 남자의 붙임성에 만난지 몇분만에 통성명을 한 두사람은 어느덧 점심식사를 겸상 하고있었다. 으적으적 쉴새없이 꼭꼭 음식을 씹어대는 그 모습에 사령관은 이 친구가 자신을 끌어내리고 사령관이 되어 오르카호를 파국으로 몰고갈것이란 생각은 잠시 접어두었다.


  "전역하고싶대"

"그런가"


  월슨의 이야기에  수저가 멈칫한 남자는 잠시 감상에 빠진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시 억척스럽게 밥을 먹어대기 시작했다.


"달리 갈곳이 있나?"

"나한테는 있어"

"그래...사령관님이었나?"

"맞아, 오르카호 저항군의 사령관을 맡고있지"

"뭐...어쨌든 잘부탁해, 내 생사 여탈권을 이제 니가 쥐고있겠구만"


  어느 기업 총수의 혼외자식이라는 비범한 출생을 가진 남자답게 눈치가 빠른 그는 자신의 안위를 사령관의 손아귀에 맡겼다. 이미 사령관의 발밑으로 발을 들인이상 사령관은 언제든지 자신이 원한다면 그를 죽게 내버려둘수도, 살려둘수도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그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다.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거 아닌가?"

"달리 할 이야기가 뭐가 있겠나, 내가 누군지는 조사하고있을테고"


  차라리 C구역에서나 볼법한 인간쓰레기였다면 하고 생각한 사령관이었다. 눈치가 빠르고 약삭빠른 이들은 등뒤에 무엇을 숨길지 모르는 위엄한 이들이었다. 적어도 사령관은 그를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할 계획을 세우는것은 미루자고 생각했다.


  "기록이 소실된게 많아서 아직 다 조사해보진 못했어"

"그런가"

"기억나는걸 있는대로 말해주겠어?"

"그러고 싶지 않은데"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있다고 말한 방금전과는 달리 남자는 사령관의 뜻대로 입을 열어주지 않았다.


  "너나 나나 서로 알게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입을 열겠나"

"...이런말 하고싶진 않지만..."


  사령관은 옅은 미소를 띠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의 생사여탈권 뿐만 아니라...그 월슨이란 브라우니의 생사여탈권도 쥐고있는데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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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저희가 나서는게 좋겠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어떠한 정보든 술술 불게할 자신이 있습니다 각하"

"아냐, 생각보다 나쁜친구는 아닌것같아"

"그렇게 단정지어도 괜찮은거야 달링?"


  마리와 레오나가 걱정스럽다는듯이 사령관의 생각에 우려를 표했지만 사령관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월슨이란 브라우니 친구는?"

"방금전에 만나보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저 남자와 서약을 한 관계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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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자젤과 베로니카가 추도식 기도문을 읊고 레드후드의 구호 아래 스틸라인 대원들의 공포탄 소리가 울려퍼졌다. 남자는 어느샌가 어디서 담배를 얻어와 불을 붙이고 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오랜만에 피나봐?"

"몇년만이지..."


  오랜만에 피는 담배는 아주 맛없고 씁슬했다. 남자는 연신 기침을 토했고 오래간만의 흡연에 머리가 어지러운지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고  눈물을 흘리는걸 들키기 싫은지 고개를 바닥에 떨구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그녀들을 생각하며 작게 흐느끼는 그는 사령관이 부축해주기 전까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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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에 나오는 부사령관이 오르카호에 합류한 시점을 다루고있음

개그물인 본편과는 달리 약간 진지한 분위기의 단편물을 쓰고싶었음

설정오류는 너그럽게 넘어가 주셈